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38화 (138/224)

00138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13)

라헬은 억울함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으아아! 배알도 없는 쓰레기들 같으니!”

호크와 기간트의 비참한 죽음이 무색하게도 에르웰 왕국의 수뇌부는 모든 저항의사를 포기했다.

왕국에 남은 마지막 두 기둥마저 무너진 이상, 라헬을 지키며 정략을 펼칠 배짱조차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라헬은 친선의 증표로 팔렸고 마이어 왕국에, 정확히는 마이어 왕국의 실제조직인 흑산회 아지트에 도달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다 틀렸어. 역시 왕국들은 죄다 썩었어!”

에르웰 왕국 따위 망해도 싸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경비대에 체포된 뒤, 에르웰 국왕에게 외쳤다.

“제가 넘어가면 에르웰 왕국은, 다른 나라들은 무사할 것 같나요! 이건 모두가 공멸하는 최악의 선택이에요!”

“닥쳐라! 카이사르의 애첩 따위에게 국운을 걸고 저 강대한 흑산회에 맞설 나라가 있을 성 싶더냐! 이건 세계각국의 의지를 하나로 모은 끝에 내린 결정이다!”

“호크와 기간트는 달랐어! 당신들이 기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런 걸 원치 않았다고!”

에르웰 국왕은 매정하게 돌아선 채 축객령을 내렸다.

경비대에 끌려가는 와중에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세계회의에서 살아남은 전력의 절반이 또 다시 죽고 말았다. 고작 여자 한 명 따위로 무얼 어찌한단 말이더냐…….”

라헬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빌어먹을 노친네의 씁쓸한 목소리 따위는 필요 없다.

패배자의 한심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전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대로 흑산회에 끌려가면 호크와 기간트가 건 기대에는 결코 부응할 수 없다.

그녀가 카이사르의 애첩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킨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감금된 감옥은 육지 위의 고도나 다름없다.

마이어 왕국의 마법협회에서 내로라하는 대마법사들이 건너와서 그녀를 데려가면 그걸로 끝이다.

누구도 그녀를 구할 수 없고,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흑산회의 세계지배를 우려하는 의로운(?) 자들은 이미 세계회의장과 해적군도에서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건 맞설 의지가 꺾인 상처 입은 늑대들과 겁먹은 들개들 뿐이다.

세상은 이제 흑산회라는 맹수의 손에 들어가고, 그녀는 그들의 승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갈가리 찢기는 제물이 된다.

“흐윽. 흑. 이런 건 싫어. 도와줘, 바질.”

물론 바질은 그녀를 도울 수 없다.

그 외에는 달리 기댈 사람도 없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 틀림없다.

“도와주세요, 미의 여신님...”

구질구질한 뒷골목 인생이 작게나마 피어났다가 노예로 팔려나가며 시들 뻔하고, 그랬던 자신을 다시금 바질이 구해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미모 덕분이었다.

라헬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언제나 감사해하였고, 자연스레 미의 여신에게 신앙을 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기댈 곳도 의지할 장소도 없어진 지금 미의 여신에게 진심어린 기도를 바치며 번민하는 마음을 모두 떠맡기고자 하였다.

보통이라면 덧없이 저물고 말 기도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대륙을 발칵 뒤엎고 있는 화제의 인물, 카이사르의 애첩.

그건 모자이크녀를 의미한다.

그녀는 너무 높은 매력 능력치 탓에 신의 질투를 받았다.

그녀를 질투한 자는 당연히 미의 여신이다.

그녀에게 저주를 내린 자도 당연히 미의 여신이다.

그런 여신이 모자이크녀에 의해 곤경에 처한 신자를 보았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륙의 역사를 뒤바꿀 에픽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 *

[에픽퀘스트 업데이트를 위해 모든 게이머의 접속이 30분 내로 폐쇄될 예정이오니 즉각 가까운 안전지대를 찾아 접속을 종료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버가 닫혔다.

갑작스러운 점검이지만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해적군도에서 각국의 고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카이사르랑 멸혼객 겁나 쌔네.”

다른 나라에도 절대자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만큼 강한 절대자는 찾기 힘들었다.

멸혼객은 전직 영웅 출신이며 카이사르는 무술에 한해 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보통의 국가에 소속된 절대자가 지닐 수 없는 보다 막강한 저력을 지닌 절대고수의 출현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멸혼객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해가 되는 막강한 적을 포섭하지 않으면 그를 당해낼 자는 없다.

카이사르? 이건 답도 없다.

신의 재능이잖아.

무신이 사도를 내려 보내지 않는 한 당해낼 자가 없다.

“아. 이거 분명 너프 당할 텐데.”

게임사가 호구도 아닌데 게이머 한 명이 미친 듯이 강해지며 게임 벨런스를 다 집어삼키는 걸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개입하여 게임을 막장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하려고 할 것이다.

가령 세계회의장에서의 몰살이나 해적군도에서의 참상 같은 사건으로 세계 각국의 정상급 고수들을 대거 학살해서 플래그를 엉망진창으로 분쇄하는 일 따위를 못하게 하려는 거다.

“…….”

근데 난 이미 그런 미친 짓을 두 개 저질렀잖아.

저질러도 너무 크게 저질렀다.

분명 보복성 패치가 못해도 하나는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나는 사고라도 쳐도 다른 하나도 어쩔 수 없잖아.

해적군도에 안 갔으면 카이사르가 미쳤을 거다.

타국의 고수들이 아니라 내 나라 고수들이 살해당했다고.

심란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미궁세계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 - -

[당장 마이어 왕국에 땅 사라!!]

-작성자 쿠로

-추천 59133회, 비추천 211회

-본문

이번 에픽퀘스트 업데이트가 왜 진행되는지 아냐? 흑산회가 해적군도에서 세계각국의 정상급 NPC들하고 결전을 벌여서 대승을 거두어서 이루어지는 거다.

게임 속 주류국가로 자리하던 제국은 단단히 벼르고 참전한 전장에서 참패했고, 열국은 연합을 세워도 맞설 저력이 없다.

마이어 왕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거듭나고 한발 더 나아가서 세계정복을 목표로 대전쟁을 일으켜도 진지하게 승산이 존재한다고 생각 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다.

당연히 땅값은 미친 듯이 올랐다.

이 좋은 걸 길드 소속인 내가 왜 알려 주냐고?

살 거 다 사고도 땅이 남으니까 그렇지!

불쌍한 거지 놈들 땅 사고 부자 될 기회 주는 거다.

일단 사라. 무조건 사라.

인생에서 찾아온 마지막 대박 찬스라 생각해라.

업데이트 끝나면?

바로 뛰어라.

마이어 왕국으로 전 재산 들고 가서 무조건 땅 사라.

형은 분명 말했다.

- - -

이 쿠로가 내가 아는 그 쿠로인가. 아무튼 쿠로의 게시글을 보니 이번 전쟁에서 본의 아니게 국제질서를 확 끌어왔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보다 지 때문에 이런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데 모자이크 녀는 대체 현실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뭘 하든 상관없기는 하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고 게이머들도 대거 마이어 왕국으로 건너오게 생겼으니까. 이번 업데이트도 분명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이겠지.

“연장점검까지 진행될지도 모르겠군.”

한 국가당 배정된 서버는 하나이고, 감당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정해져있다.

그런데 기껏 서버를 나눈 게 무색하게 게이머들이 우르르 여기로 건너오면 과부화가 걸릴 수밖에 없다.

게임사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서 서버를 확충시키려고 더 많은 투자를 해야겠지. 이걸 돈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한 서버로 묶을 기술이 있다는 게 더 놀랍지만.

‘탑 클래스 게이머도 대거 넘어오는군.’

대세는 마이어 왕국과 흑산회다.

그런 사실을 게시판을 보면서 확실하게 실감하였다.

전작 미궁도시에서라면 각 회차의 정상급 인재로 손꼽힐만한 각국의 고수들이 떼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흑산회가 최강이다.

이보다 강한 파티원은 달리 구할 수 없다.

심지어 흑산회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조직임과 동시에 미궁공략에 가장 우호적인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 흑산회에 발탁되어 조직원으로 뽑히고 미궁공략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들과 경쟁관계에 돌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흑산회 보스가 바로 나다.

내 의지로 파티원이 선별되고 공략조가 구성된다.

“내 인생에도 드디어 제 2의 황금기라는 게 찾아왔군.”

[로드리어스 엘드리고]로 플레이했을 때가 제 1의 황금기다.

그때 벌어들인 수익이 게이머로 벌어들인 총수익의 절반이나 되었다.

지금은 당연히 훨씬 더 많다.

내가 지닌 수많은 아티펙트, 각 영지에서 몰수하고 직할령으로 남긴 토지, 넘쳐나는 골드를 판매한다면?

전 세계의 돈이란 돈은 갈퀴로 쓸어 담아서 제 3 세계의 나라를 하나 사들이고 국가 단위의 심시티를 하거나, 길드의 더러운 재벌놈들 못지않은 갑부가 될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5세대 VR게임 [미궁세계]의 인기가 그 정도로 대단하며 그 인기의 중심에 제대로 편승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물론 현실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만신창이가 된 더러운 지구를 돈으로 가지고 놀아봤자 얼마나 즐겁겠는가.

미궁세계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만의 놀이터로 만드는 편이 압도적으로 더 즐겁다.

“그래도 이번엔 나도 땅 좀 팔아둬야겠어…….”

카이사르 새끼가 한 번 날뛸 때마다 캐릭터 시트지 찢길까봐 간담이 조마조마해서 못 살겠다.

설령 캐릭터 시트지를 찢겨도 떼돈을 벌었으니까 백지에서부터 새로 시작해도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싶다.

아끼면 망한다는 옛 격언을 생각해서라도 게임 속 자금의 현금화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금세탁 쯤이야 게임 속에서라면 별것도 아니지.’

회계스킬을 통해 일반인의 수천 배를 능가하는 연산처리속도로 계획을 짜면 아무도 모르게 떼돈을 벌 자신이 있다.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며 게시판을 뒤적거리던 와중이었다.

[용사 떴다!]

-작성자 익명

-추천 7989회 비추천 115회

-본문

소속국가랑 위치, 신원 등은 밝힐 수 없지만 미궁세계에도 드디어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나타났다! 파티원 영입 0순위의 슈퍼 에이스 카드!

뺏길까봐 당연히 신상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도 약 올리기만 하려고 게시글 쓴 건 아니니까 화 풀어 형들^^

용사는 다들 지상에서의 <사명>을 지니고 있고 그걸 달성하면 <각성>상태로 미궁에 진입할 수 있는 거 알고 있지? 근데 내가 아는 용사가 받은 사명이 너무 극헬이다 ㅜㅜㅜㅜ

솔직히 말하자면 이거 하소연 하려고 쓴 글임ㅜㅜ

사명이 정말 개 같다ㅜㅜ

흑산회를 해체시키래ㅜㅜㅜ 어휴ㅠㅠㅠㅠ

[코멘트]

-용사가 흑산회 개 찢겠네? 꼴좋다.

-ㄴㄴ 흑산회에 있는 멸혼객이 용사만큼 쌔잖아

-카이사르도 절대자 됐다던데?

-흑산회 보스도 절대자잖아

-그럼 용사급 전력 셋 있는 조직을 용사가 조져야하네?

-으잌ㅋㅋㅋ 용사 사망 확정이구옄ㅋㅋㅋ

나는 간담이 철렁해졌다.

벌써 흑산회를 제거하기 위해 용사가 선정되었을 줄이야.

게임사의 물밑견제가 나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모자이크의 갑작스러운 실종만 아니었다면 이번 해적군도 결전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각국의 질서는 미묘하게 유지되었을 테고.

나도 내 나라에 유리한 상황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미궁공략만 준비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던 와중에 용사가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꽤 곤란했겠지.

근데 지금은 곤란하지도 않다. 내 나라가 너무 쌔졌거든.

“에픽퀘스트까지 일으킬 정도로 강해졌는데 용사 한 명이 뭐가 대수겠어?”

기껏해야 멸혼객만큼 강한 용사?

멸혼객이랑 카이사르 둘을 동시에 보내면 걍 바르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든다.

“진짜 괜찮은 건가?”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사망플래그를 밟는 전형적인 악당이 된 기분이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던 와중이었다.

“내 부하가 영웅이 되면 어쩌지?”

시발.

나도 모르게 욕부터 나왔다.

============================ 작품 후기 ============================

용사(만만함)

카이사르(무서움)

용사:카이사르(공포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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