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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39화 (139/224)

00139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14)

게임에 접속하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새로운 공지사항(업데이트)이 도착했습니다.]

[공지사항(업데이트)]

1. 진영선택

미궁세계의 서버가 국가단위에서 진영단위로 변화합니다. 제 1 진영은 미궁공략의 기치를 내세운 <흑산회>이며 흑산회가 지배하는 모든 영역이 이에 해당합니다.

제 2 진영은 구시대의 중심으로 손꼽히는 <팔기아 제국>이며 제국을 비롯한 열국연합의 영토가 일괄적으로 같은 서버에 묶입니다.

또한 현재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제 3 진영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이는 미궁공략 대신 지상에서의 모험을 주 컨텐츠로 삼는 모험가들이 새로운 도전과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2. 용사출현

미궁세계에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출현합니다. 여러분은 용사가 지상에서 지닌 <사명>을 도와 용사를 <각성>시키는 대가로 용사의 파티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용사의 파티원은 용사가 사명을 이루는 과정에 가장 크게 공헌한 대상으로 선정됩니다.

용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부터 모든 게이머는 용사의 위치를 감지하고 사명의 진척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3. 진인 시스템 등장

전작 미궁도시를 기준으로 캐릭터 랭킹 10000위 이내의 캐릭터들은 모두 대륙 어딘가에 과거의 행적과 관련된 인물이나 물건 등의 특수한 트리거가 존재합니다.

계승 트리거를 찾아내어 발동시킨 뒤에 이를 성공적으로 계승받을 시, 해당 캐릭터가 지닌 과거의 무공이나 지위, 자산 등의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은거고수들의 대거 등장…….

패치사항은 그야말로 핵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움직였다.

게임사가 <길드>를 박살낸 피 묻은 철퇴를 내게 휘둘렀다.

“기어이 올 것이 왔군.”

이 업데이트는 사실상 나를 향한 저격패치나 다름없다. 용사출현, 진인 시스템 등장, 은거고수들의 대거 등장 등등 눈에 보이는 모든 업데이트 사항이 직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된다.

그들도 나만 너무 앞서나갔으니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걸 찌질하게 게임사에 항의해가며 불공평하다는 둥 운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차피 한 번만 가능한 기적 같은 플레이였어.’

동기화 비율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상, NPC는 무조건 게이머보다 효율 좋은 존재가 된다.

게임사에서는 최대한 NPC를 강하게 해서 게이머들이 세계관을 주도하는 시점을 뒤로 늦추며 컨텐츠 소모속도를 조절하려는 심산이었겠지.

하수인의 충성도 및 호감도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도 하수인에게 모든 CP를 올인하는 경우도 경계는 했을 거다.

미궁도시에서도 그런 플레이를 해왔으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는 생각 안 하겠지.

탑 랭킹 97위 게이머인데 모를 리도 없다.

그러나 나로서도, 그들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카이사르.

내 모든 CP를 받아처먹고 만들어진 하수인이 희대의 싸이코라는 사실이었다.

한없이 막장에 가까운 행보 때문에 죽을 위기도 꽤나 넘겼다.

대신 그 이상의 터무니없는 보상을 줄줄이 얻었다.

이런 NPC는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쯤이면 잠수함 패치로 하수인이 싸이코가 되지 못하도록 인격생성과정에서 수를 써놓았을 거다.

제 2의 카이사르가 나올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런 와중에 저격패치 뭐냐고 징징거리며 항의를 하면 게임사는 좋다고 패치사항 몇 개에서 생색내기용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내 편의를 봐주겠다는 빌미로 카이사르의 똘기를 없애겠지.

게이머가 자발적으로 원하지 않는 이상, 게임사는 절대로 해당 게이머의 자산처럼 여겨지는 하수인에 손을 댈 수는 없다.

카이사르는 개새끼다. 하지만 내 개새끼다.

설령 게임사라고 해도 놈에게 손을 대는 걸 허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모든 저격패치는 감수해야만 하는 리스크다.

‘하. 이 새끼는 알려나.’

내가 지 하나를 위해서 무수한 저격을 얻어맞고 있다는 걸.

“보스. 무언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별거 아니다. 그저 한 번쯤은 네게 고맙다는 말을 해두고 싶었다.”

“!!”

카이사르가 손에 든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놈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보스. 죽을 날이 머지않았습니까?”

“...닥쳐.”

역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별로 얻고 싶지 않은 교훈을 하나 얻은 뒤, 나는 에르웰 왕국에서 이송한다는 모자이크 녀를 넘겨받기 위해 마법협회로 이동하였다.

진짜 모자이크 녀는 아직 접속도 안 했는데 도대체 뭘 잡았다는 건지 궁금해서 보러 간 거다.

“와.”

근데 진짜 예쁘다.

미녀라는 점에서는 모자이크 녀와 판박이다.

아니, 잘 보니 생긴 것도 비슷하다.

“다, 다녀왔습니다...”

“너 진짜 모자이크냐?”

“맞는데요...”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주변 부하들의 반응을 본 뒤에야 나는 원인을 깨달았다.

모자이크녀는 격을 이룬 사람만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절대자는 나와 카이사르뿐이다.

그런데 우리 둘 말고도 다들 미녀를 봤다는 반응을 한다.

“여신의 저주가 풀렸나?”

“네...”

“어떻게 풀렸지? 마녀에게 대가를 받고 저주를 푼 건가?”

“거기까지 말씀드리기는 좀...”

“마녀의 가치도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겠군.”

덤덤하게 마녀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절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응접실을 지나치던 도중, 나는 걸음을 멈췄다.

뭔가 이상한 광경을 본 것 같아서 조심스레 걸음을 돌렸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모자이크녀가 응접실에서 과자를 꺼내먹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오늘은 바쁘셨나 보네요. 궁궐 안에서는 다들 전혀 보이지 않아서 깜짝 놀랐어요.”

심지어 태연하게 인사까지 건네고 있다.

모자이크 입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모자이크녀가 말이다.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모자이크 녀가 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 쪽이 가짜인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당연히 입자가 없는 미녀 쪽이 가짜다.

진짜가 대뜸 시체 상태로 해적선에 나포된 마녀에게 납치당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NPC인 부하들은 그런 통찰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혼란에 빠진 기색이었다.

상황이 조금 흥미롭다고 생각한 나는 넌지시 운을 띄웠다.

“둘 중 하나는 가짜다.”

“그런!”

“어느 쪽이 진짜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갑작스레 모자이크 진상규명 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실상은 멍청이들이 두 눈 똑똑히 뜨고 뭐가 가짜인지 몰라서 헤매는 걸 구경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가짜 모자이크녀는 라헬이었다.

그녀는 마이어 왕국으로 이송되기 직전, 간발의 차이로 미의 여신의 선택을 받았다.

미의 여신은 자신이 저주까지 내린 모자이크 녀가 수치스러운 형태로나마 버젓이 살아서 사회적 지위를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분노하였다.

반면 라헬은 깊은 신앙심을 지닌 신도였지만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그녀를 죽음으로 모는 건 저주받은 모자이크 녀가 있는 흑산회다.

보통이라면 <사도> 선정으로 그쳤겠지만 그 사실이 미의 여신의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미의 여신은 그 이상의 초강수를 두었다.

[용사 라헬]

라헬은 용사가 되었다.

그것도 검이나 마법을 잘 다루는 용사가 아닌 미를 다루는 미의 용사가 되었다.

기껏 패치까지 한 게임사 직원들이 알면 땅을 치고 탄식을 할 노릇이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롤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과는 확고했고 미의 여신은 같은 선택을 반복할 거였다.

그런 연유로 라헬은 미의 용사가 되었다.

덤으로 권능도 얻었다.

그녀가 얻은 권능은 비전투 클래스답게 범용성이 넓었다.

-자신보다 매력 능력치가 낮은 대상의 외모로 ‘형태변환’ 가능

-자신보다 매력 능력치가 낮은 대상을 상대로 ‘매료’ 가능

-자신보다 매력 능력치가 낮은 대상을 상대로 ‘정신착란’ 가능

근력계수도 지능계수도 아닌 매력계수로 시전 하는 능력이다.

당연히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는다.

라헬의 매력 능력치는 무려 50을 돌파할 정도로 높다.

절대지경의 최종관문처럼 여겨지는 능력치 50의 벽.

그걸 용사선정만으로 가볍게 돌파한다.

이러니 용사가 특수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제가 진짜에요! 저건 가짜이고 제가 지불해야 할 대가죠.”

“뭐라는 거야, 저 가짜가? 누가 나한테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주실래요?”

그 특수함이 근력이나 체질, 민첩 등의 신체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위협이 될 여지는 없었다.

게임사가 본래 기획하던 것도 전투능력에 중점을 둔 용사였으며 본래는 그런 존재만이 용사로 선정될 예정이었다.

허나 미의 여신의 변덕에 의해 매력계수를 사용하는 독특한 용사가 등장했고, 이는 흑산회 내부에서 엄청난 변수가 되었다.

“마녀는 저주를 거두어가는 대신, 제게 정체성의 저주를 남겼어요. 저주가 거두어지기 전의 제 기억을 담아 새로운 그릇을 만들고 그걸 가짜의 형태로 이곳에 남겨두었죠.”

힘이 아닌 매력이다.

상대가 검을 들고 덤비는 게 아니다.

카이사르나 멸혼객이라도 어찌 싸울 방법이 없다.

“제 과거의 모습을 하고 제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저건 제가 아니에요. 저주가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찌꺼기나 다름없어요!”

“찌, 찌꺼기!? 멀쩡한 사람에게 무슨 폭언을 하는 거야, 이 가짜가! 주인님, 저 가짜의 말을 믿지 마세요!”

“흥. 괴물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주인님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너 같은 괴물이 아니야.”

라헬은 카이사르의 어깨에 손을 얹은 다음, 그윽하게 눈을 맞추며 [매료]를 사용하였다.

“주인님은 믿어주실 거죠? 제가 진짜라는 사실을.”

검과 마법을 넘어선 매료의 권능.

그것이 모든 인의 장벽을 뛰어넘어 단숨에 빌헬름 마이어의 최측근, 카이사르의 정신에 침투한다.

권능만 제대로 먹히면 무술에 있어서는 세계 제일의 재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이사르가 단숨에 흑산회 최대의 적으로 변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안 믿는다.”

“어, 어째서!?”

카이사르는 단호하게 부정하였다.

흔들림 없는 그의 태도에 진짜 모자이크녀가 반색했다.

“역시 주인님은 절 알아보실 줄 알았어요!”

“너도 안 믿는다.”

“엑!?”

그렇다고 진짜 모자이크녀를 믿는 것도 아니었다.

라헬과 모자이크녀는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지?

“카이사르. 네놈, 설마...”

바로 그 때, 빌헬름 마이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직 그만이 무언가를 짐작했다.

카이사르는 흉험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역시 보스라면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건 너무 미친 생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건 질색입니다. 전 언제나 인생을 쉽게 삽니다.”

카이사르는 좌중을 발칵 뒤엎을 충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누가 진짜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그저 애완동물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을 뿐 아닙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에에에엑!?”

“살인광 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제기랄. 미녀가 자발적으로 펫이 되다니 격하게 부럽다!”

카이사르는 리나를 홱 돌아보았다.

“나는 언제나 제정신이다.”

“그런 놈이 암살자일지도 모를 가짜까지 펫으로 삼겠다고!?”

“암살자를 펫으로 두면 안 되는 건가?”

“당연하지! 언제 암살당할 줄 알고 그런 짓을 저질러!”

“그러는 너도 암살자이면서 보스의 펫이 아닌가.”

리나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느낌표마냥 삐죽 솟아올랐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을 잃었다.

카이사르의 충격적인 결정에는 라헬마저 당황했다.

‘뭐야 저 호색한은! 헷갈린다고. 매료의 권능이 성공한 거야, 실패한 거야?’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지만 당사자만은 조금은 즐겁게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애완동물의 예절교육과 버릇교정은 주인인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보스께서는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카이사르는 정말로 암살자까지 펫으로 기를 작정이라는 걸.

============================ 작품 후기 ============================

암살자=애완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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