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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40화 (140/224)

00140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15)

솔직히 육안으로 봐서는 가짜랑 진짜의 구분이 전혀 안 된다.

생긴 게 완전히 똑같다.

도플갱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모든 게 같다.

‘구분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남들 눈으로 보기에 모자이크 입자가 있는 쪽이 진짜다.

또 구작인 미궁도시에 대한 정보가 있는 쪽지 진짜다.

그런데 이것들은 전부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는 정보다.

하는 행동, 제스처, 말투에 이르기까지.

약간 다르다 싶었던 것들이 죄다 실시간으로 같아지고 있다.

“교육시간이다. 왼손 들어.”

카이사르의 말에 진짜와 가짜가 동시에 왼손을 들었다.

“왼손 내리고 오른발 들어. 오른발 내리고 양손 들어. 양손 내리지 말고 왼발 들어.”

가짜는 복잡한 지시도 주저 없이 척척 해내고, 진짜는 두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거리며 힘들어한다.

“...”

뭔가 진짜 쪽이 무능하네. 조금 한심하게 여기고 있자니 가짜가 날 보고 눈을 깜빡거리더니 진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가짜가 갑자기 다리를 막 부들거리며 힘들어했다.

별걸 다 따라하네. 아마 다음에 똑같은 걸 시키면 이제는 체력수준도 똑같은 것처럼 행세할 거다.

“잘했다. 칭찬의 의미로 원반으로 놀아주지. 물어 와라.”

쐐애애애액!

멀리 수도 어딘가로 날아가는 원반을 보며 황망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경쟁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쳐나간다.

가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적응했다. 나는 놈의 적응력이 꺼림칙하게 여껴졌다.

“가짜에게 진짜를 붙여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벌써 상당부분 진짜의 행동을 가짜가 학습했다. 이제는 길 가다가 혼자 마주치면 가짜와 진짜의 구분이 쉽지 않을 거다.”

“보스. 애완동물이 가짜면 어떻고 진짜면 어떻습니까. 펫은 미녀이기만 하면 됩니다.”

“…….”

너 알고 있냐.

방금 그거 굉장히 쓰레기 같은 말이라는 거.

“저건 리나와는 다르다.”

“제가 애완동물을 통제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십니까?”

응. 그럴 것 같아.

근데 그렇게 말하면 주먹으로 나 후려칠 거지?

이 싸이코 학살자 새끼야.

나는 카이사르를 만류하는 대신, 대상을 달리해서 가짜를 설득해보기로 결심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놔줄 테니 그냥 풀어주겠다고 하면 제 발로 달아나지 않을까.

에르웰 왕국이 보낸 가짜이니 분명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침투했겠지만 놈의 정체는 진즉에 들켰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인지시켜주면 순순히 달아날 거다.

“…….”

근데 원반은 언제 주워 오냐.

해 뜰 때 출발했는데 벌써 해가 저물고 있잖아.

“보스.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가짜가 돌아올 때까지.”

“그거 10시간은 넘게 걸릴 걸? 아까 보니까 시계탑 벽에 박혀있던데.”

나도 모르게 당황해버렸다.

“모자이크녀는 매번 그런 곳에 박혀있는 원반을 다시 가져오는 건가?”

“아니. 지난번에 보니까 적당히 시장에서 새 거 구매하고 망치로 깨진 흔적 만들어서 들고 오던데.”

“…….”

“아하하핳. 보스, 너무 실망했다는 표정이잖아.”

“솔직히 좀 실망스럽군.”

“그래도 어쩔 수 없을 걸? 일찍 가져오면 카이사르가 너무 가까운 곳에 던졌나? 하면서 더 멀리 던지고. 너무 멀리 던지거나 함든 곳에 던진 걸 늦게 가져오면 너무 놀았다고 혼내던데.”

카이사르의 애완동물은 극한 직업이 틀림없다.

용사랑 막상막하로 힘들 것 같잖아.

“아. 저기 온다.”

마침 모자이크 녀 둘이 축 늘어져서는 궁궐로 돌아온다.

각각 박살난 원반을 하나씩 들고 있다.

가짜는 진짜가 지닌 원반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원반을 가져왔지? 원반은 분명 내가 회수했는데... 실은 두 개였던 건가?”

“우와... 당신 그거 직접 가져온 거예요? 쩐다... 진짜 암살자신가보네. 시계탑에 박힌 걸 어떻게 꺼냈어요? 전 그냥 시장에서 샀는데.”

“아아아아아!! 화가 난다!! 화!! 가!! 나!!”

가짜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발광했다.

그럴 만도 하다.

지친 척 하는 진짜랑 달리 가짜는 정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꼴을 보아하니 알아서 떨어져나가겠군.”

카이사르의 펫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변장술에 행동모방 정도로는 감당 못한다.

놈이 펫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좀 변태스러울 정도로 허들이 높다. 요령껏 적응한 모자이크녀와 달리 가짜는 그걸 다 하려고 하다가 한계에 직면하겠지.

딱히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놈들에 대해서는 적당한 경계심만 유지할 뿐,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역시 아무리 완벽하게 똑같아지려고 노력해도 가짜가 진짜를 대신할 수는 없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덧 한 달이 경과할 무렵이었다.

답답한 내정에 지쳐 바람 좀 쐬려고 베란다에 나갔다.

베란다 밖으로 와이어에 매달린 암살자들이 바람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안녕, 보스!”

암살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해맑은 리나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인사를 받아주고는 물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훈련 중!”

“이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견습암살자들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거나, 밑을 보고 파닥파닥 거리거나, 세상만사에 초월한 무표정을 유지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오래간만에 본 암살단 부대장 소녀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축 늘어진 쪽에 속해있었다.

“역시 부대장은 좀 다르군. 제법 냉정한데.”

“응? 보스. 걔 기절한 거야.”

“…….”

탓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나 같아도 기절할 것 같다.

여기 지상에서 30m쯤 떨어져있고.

졸라 높잖아.

보통은 이 높이에서 매달려있는 훈련 안 한다고.

“갑자기 왜 이런 고강도의 훈련을 실행했지?”

“리나도 별로 시키고 싶지는 않았어. 그치만 외부의 암살자가 나날이 강해지는 걸 보면 싫어도 조금씩은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잖아?”

“외부의 암살자?”

리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10m쯤 위를 가리켰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침 가짜 모자이크녀가 지붕에 박힌 원반을 꺼냈다.

로프 하나도 없이 건물을 타고 올라가서 저걸 꺼냈다.

한 달 간의 원반 특훈을 한 성과였던 모양이다.

“이거 실화냐…….”

적당히 진짜의 행동을 모방하며 농땡이를 부릴 줄 알았는데 도중에 노선을 바꾼 모양이다.

가짜는 건물의 돌출부에 발을 딛고 착착 내려와서는 우리에게 눈인사까지 하였다. 입에는 원반이 물려있어서 말을 못해도 양해해 달라, 라는 느낌의 친절한 눈인사였다.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받아주자 소리도 기척도 없이 착착 건물을 타고 내려가 열린 창문 안으로 쏙 사라졌다.

“봤지?”

“특훈에 필요한 자금을 대폭 지원해주겠다.”

“고마워, 보스!”

고맙기는.

그거 지원 안하면 어느 날 불쑥 암살당할지도 모르겠는데.

저거 도태되어서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완전 적응했잖아.

“카이사르.”

“부르셨습니까.”

“한 달 간의 교육성과를 보고해라.”

카이사르는 아예 보고서 형식의 자료를 제출하였다.

“두 애완동물의 신체성능 검사 및 인성평가, 충성도 검증,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을 먹여도 반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태도 등을 철저하게 검증했습니다.”

싫어하는 음식은 좀 먹이지 마라.

무슨 고문이냐 그건.

“네가 제출하는 보고서를 받는 건 처음인 것 같군. 조금은 기대를 담아서 보도록 하지.”

자료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져 있었다.

각 항목별로 애완동물의 기록도 비교하기 좋게 적혀있다.

헌데 어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가짜가 진짜를 앞선다.

동일한 항목도 몇 개는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 리스트 정도다.

근데 그냥 똑같기만 한 게 아니다.

가짜가 머리를 잘 썼다.

똑같이 싫은 음식을 줘도 보다 순종적으로 잘 먹었다.

“이건... 일방적일 정도로 기울었군.”

“그렇습니다. 입자가 없는 쪽이 저주가 담긴 그릇에서 벗어났다는 주장을 믿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앞서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봤자 결국은 펫으로서의 자질을 검증했을 뿐이다. 참모로서의 역량은 가짜가 진짜를 따라잡을 수 없지.”

“그것도 가짜가 앞섭니다.”

“뭐?”

“농담이 아닙니다. 이것이 최근 타국에서 대거 유입되는 인재들을 활용하여 세운 두 사람의 계획입니다.”

나는 일말의 사심도 두지 않고 냉정하게 보고서의 내용을 검토하였다.

사고의 방향은 비슷한 곳에서부터 출발했지만 결과물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 보고서를 제작한 건 진짜가 아닌 가짜 쪽이었다.

가짜는 진짜를 모방하는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개량하고 발전하여 그 너머에 도달했다.

이제는 진짜가 가짜처럼 여겨지고 가짜가 진짜처럼 여겨진다.

“보스. 결과만이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으음.”

“역할 따위는 바뀌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그렇게 납득하려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카이사르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싸이코 새끼는 멍청한 또라이가 아니다.

똑똑한 또라이다.

그런 놈이 저런 냉정한 눈을 하고 한 말이 표면상의 의미만을 지녔을 리가 없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지?’

중요한 건 결과다.

역할 따위는 바뀌어도 상관없다.

그걸 보스인 내게 얘기한다.

이 새끼 설마 나한테 빗대어 경고하는 건가!?

평화로운 내 행동에 불만이 생겼다.

슬슬 미궁공략이든 뭐든 일을 해라, 이거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누구에게나 신용을 줄 수는 없다.”

“보스. 언제부터 주인이 펫에게 신용을 줬습니까?”

“뭐?”

“펫은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내며 버릇을 교정하고, 그래도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면 쓸모가 없으니 적당히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

그거야 너 같은 싸이코나 그렇겠지.

아 잠깐.

이 새끼는 나도 싸이코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그럼 얜 내가 리나한테 잘해주는 건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펫이지만 말을 잘 들으니까 잘 대해준다 인가?

“리나와 그녀들은 다르다.”

“물론 다릅니다.”

카이사르는 선뜻 긍정했다.

“제 펫들이 더 미녀입니다.”

누가 너보고 자랑하라고 했냐.

이 또라이 새끼야.

“네 교육이 성공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지?”

당장 순종적으로 굴어도 그게 연기일 뿐이라면?

그럼 끝장인 거잖아.

하지만 카이사르에게는 미친 논리력이 있었다.

“저는 그 둘을 모두 성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어느 한 쪽도 반기를 들 가능성은 없습니다.”

“뭐?”

“순종적으로 몸을 바치는 걸 보면 진실이 어떻든 간에 그들은 틀림없는 제 애완동물입니다.”

아니, NPC는 둘째치고 게이머인 모자이크녀까지 한 침대로 끌어들여서 그렇고 그런 일을 했다고?

가짜한테 정체성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진짜나 진짜의 역할을 빼앗으려는 가짜의 절박함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성적인 지배를, 그것도 3P로 해버렸다고!?

============================ 작품 후기 ============================

주인공도 아직 못한 하렘을 혼자 하고 있는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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