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21)
카이사르는 장막 너머에 발을 들이자마자 강한 이변을 감지하였다. 대기 중의 산소농도는 희박해졌고, 몸을 짓누르는 중력은 못해도 세 배는 더 강해졌다.
멋모르고 장막에 발을 들인 재상이 땅바닥에 엎어진 채 비명을 지르는 꼴을 보고는 하도 한심해서 밖으로 툭 걷어차서 내보내주었다.
“으윽. 저, 저도 이건 좀 힘든데요.”
“어쩔 수 없군. 돌아가라.”
“카이사르님은요?”
“이 정도 시련이라면 극복할만한 보람이 있겠군. 이 불길한 마경에 숨은 은거고수를 찾아내어 죽이는 걸로 보스의 사소한 부탁을 달성하겠다.”
“거, 건승을 기원해드릴게요.”
라헬은 옳다구나 내심 환호성을 지르며 곧장 달아났다. 슬금슬금 분위기를 타서 나가는 모자이크 녀를 카이사르가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 또한 말리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이군. 이 정도의 긴장감이 드는 장소는.”
마경은 그저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생명체의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깐의 방심만으로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아이러니하게 삶의 실감을 선사했다.
만만한 적. 보잘 것 없는 상대. 단련한 육체를 제대로 발휘하기도 전에 끝나기만 하는 전투.
멸혼객이라는 강대한 상대를 제외하면 지금껏 카이사르는 성장한 자신의 전심전력이라는 것을 발휘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마경에 들어선 이후로 그는 직감하였다.
“찾았다.”
그는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장소를. 바로 이 마경 같은 장소를 말이다.
고오오오오
검은 어둠이 휘몰아치는 통로 저 너머, 어둠이 밀려온다. 아니, 어둠을 두른 무언가가 다가온다. 아지트에 박혀있는 악마 그레이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존재감이다.
틀림없다.
5백 년간 인세의 악몽으로 전해져 내려온 마경의 주인, 고위악마가 그를 마중 나왔다. 카이사르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어둠을 향해 마주 걸었다.
학살자의 피가 들끓으며 핏빛 살기가 폭사되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입가에 번지는 흉악한 미소를 따라 전의가 솟구친다.
“와라!!”
괴물 대 악마의 일기토가 시작되었다.
* * *
미궁은 침입자를 감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날벌레처럼 작은 것들에게 시시콜콜 반응했다간 언제라도 오작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정 규모 이하의 집단이나 약한 개체에게는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침입한 존재들은 규모면에서도 역대 최대이며 개체의 강력함에서도 최강급으로 손꼽힌다. 멸혼객이 이끄는 10만 군세가 진군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었다...
-유예된 심판의 날을 지금 앞당긴다...
미궁은 자립방어시스템의 고 단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몬스터 웨이브의 인위적 발동이었다.
마이어 왕국의 30년이나 제국의 70년은 아니지만 50년이라는 세월동안 축적된 미궁의 강자들이 무더기로 지상을 향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미궁 상층부의 모든 몬스터들이 천적관계와 포식 피라미드를 무시한 채, 한 덩어리가 되어 지상을 향해 질주하였다.
-죽여라...
-지상을 죽음으로 물들여라...
미궁의 의지가 몬스터들을 폭주시켰다. 폭발적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에 1차 증원군은 크게 당황하였다.
“모, 몬스터다!”
“상태가 이상해! 같이 다닐 수 없는 종족들이 보인다고!”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가 틀림없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면 상층부의 몬스터들이 모조리 뛰쳐나오는 걸 시작으로, 중층부의 강력한 주류 몬스터 종족이 [군대]를 이끌고 진격을 시작한다.
심지어 그 너머에서는 해당 종족의 리더 내지는 그보다 더욱 막강한 [계층보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
여차했다가는 미궁의 초입에서 모두가 뼈도 못 추리고 죽을지도 모른다. 갈대처럼 흔들리던 1차 증원군의 사기를 휘어잡은 것은 당연히 멸혼객이었다.
“애송이놈들!!”
마법의 힘이 일절 배제된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토해내는 거대한 일갈. 온 몸이 찌르르 뒤흔들릴 정도의 성량에 모두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흑산회의 적은 언제나 강했다. 그런 적들을 짓밟으며 흑산회는 언제나 더욱 강해져왔다. 네놈들은 강자를 꺾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삶을 동경했기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닌가!!”
멸혼객은 남자의 투지를 자극하였다.
“싸워라! 그리고 증명해라!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는 흑산회 서열 2위, 멸혼객의 인정을 받은 전사가 된다!!”
남자라면 피가 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리석다는 건 안다.
그래도 병사들은 도망치고 싶지 않아졌다.
자신들은 약자가 아닌 강자다.
그 사실을 한번쯤은 증명하고 싶었다.
“저, 전 그냥 집에 돌아가서 농사나 지을래요.”
물론 그딴 거 필요 없이 일단 살고 싶은 자들도 있었다.
멸혼객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본좌는 이미 네놈들을 전사로 키울 것을 작정하였다. 싸우지 않으면 네놈의 농장에 불을 지르고 투석기로 집을 박살내겠다! 네놈의 비루한 몸뚱이는 수련용 샌드백으로 써주마!!”
한 시대를 풍미하는 절대강자의 호언에 감히 두 번이나 반발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생존본능의 부르짖음을 따라 전투를 회피할지라도 그 생존본능을 더욱 크게 자극하는 멸혼객이 전투를 강요하는데 싸우지 않을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1차 증원군은 그렇게 몬스터 웨이브에 맞서 정면으로 교전에 돌입하였다.
* * *
전략운영팀 팀장 황철호.
그는 모니터링 중인 화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아닌데...”
처음에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가 멋도 모르고 고대악마에게 싸움을 걸었다.
절대자라도 상성에 따라서는 감히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지고한 악마를 상대로 한다. 제아무리 카이사르라도 승리는커녕 목숨을 부지할 확률조차도 한없이 희박했다.
“이게 이렇게 될 게 아닌데...”
몬스터 웨이브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침입한 군단의 규모가 클수록 몬스터 웨이브의 강도는 더욱 강력해진다. 마지막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지 오래될수록 위력은 한층 더 강해진다.
50년의 공백.
그동안 모험가들의 최저한의 생계유지용 공격에 희생된 몬스터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사냥속도보다 번식속도가 더욱 늘어난 몬스터들은 어마어마한 수로 늘어나고 말았다.
그 막대한 물량이 물밀 듯이 밀어닥친다.
마이어 왕국의 10만 군대라도 버틸 수 없는 규모다.
단숨에 인간들을 휩쓸어야 할 병력들이 놀랍게도 저지됐다.
“멸혼객?”
아니다.
그의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마이어 왕국의 군대]
[흑산회 보스의 지시를 따르는 자]
[공포군주의 하수인]
마이어 왕국, 흑산회 보스, 공포군주의 삼단버프. 빌헬름 마이어의 특성과 칭호가 광역 버프를 걸고 있다. 어느 하나도 손색이 없는 명품 버프들이다.
그 뿐만 아니다.
빌헬름 마이어는 자신의 권속을 적대하는 자들에게도 거리와 관계없이 광역 디버프를 발휘하기도 한다.
[빌헬름 마이어의 권속을 적대하는 자]
[공포의 사도의 적]
절대자로서의 격과 사도로서의 격.
두 개의 격이 그의 권속을 적대하는 자들을 짓누른다.
몬스터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키에에엥..”
몬스터들은 울먹거렸다. 미궁은 징징거리지 말고 앞으로 뛰라고 한다. 그런데 앞에선 덤비면 죽는다고 무자비한 기세를 발산하는 군단이 떡하니 있다.
미궁의 통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덤벼들지만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몬스터들의 전투의지가 꺾였으며 자신들의 전투의지가 고양되어가는 사실을 10만 군세가 피부로 깨닫기 시작하자 전세는 급격히 일방적으로 기울었다.
“아니 미친, 탑 랭커 100명이 CP에 따라 최적화 빌드가 세워질 가능성은 고려했지만 다중 광역버프에 디버프가 말이 되냐고. 하. 대체 시말서가 몇 장이야.”
몬스터 웨이브는 100% 막혔다. 중층부의 군단이 진격하더라도 광역버프와 디버프가 버젓이 영향력을 발휘할 건데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원래 양 군세의 전투력 차이는 0.1 대 5 가량이었지만 빌헬름 마이어의 존재로 인해 5 대 0.1 정도로 급변하였다.
50배는 더 약하던 아군이 50배나 더 강하게 된다. 정확히는 아군을 50배 강화시키고 적군을 50배 약화시키는 미친 광역 버프와 광역 디버프였다.
원인은 뚜렷했다. 카리스마 능력치였다.
“일부로 초기에 리타이어 하라고 카이사르의 인격 알고리즘을 개또라이 싸이코로 만들었는데...”
그 싸이코 자식의 만행을 직업스킬 [보스의 기백]과 극한의 인내심으로 모두 견뎌내며 착실하게 보스로서의 위엄과 행동을 거듭 해내어왔다.
그 결과, 빌헬름 마이어의 카리스마는 미궁세계 내에서도 최강자급 반열로 손꼽히는 90대에 진입하였다.
마왕군 사천왕이나 심층지대의 악몽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무자비한 능력치였다. 그것이 버프와 디버프 계수에 영향을 미치니 그 위력이 수직상승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기가 이렇다면 저쪽은...”
카이사르와 고대악마가 격전을 벌이던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자마자 망했다는 한숨부터 나왔다.
카이사르는 [보스의 최측근] 신분을 유지하며 [보스의 지령]을 수행할 때, 전투력이 상승하는 칭호를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광역 버프와 광역 디버프가 더해졌다.
카이사르나 고대악마는 잡병들과는 격이 다르니 미치는 효력이 50배에 50배, 최종 2500배로 극대화되지는 않았다. 허나 5배에 5배, 최종 25배로도 전력은 뒤집어지기에 충분했다.
* * *
[카이사르가 고대악마를 죽였습니다.]
[고대악마의 저주에 대한 저항체크를 실시합니다. 의지력에 의한 저항체크, 성공.]
[카이사르가 기합으로 고대악마의 저주를 튕겨냅니다.]
[카이사르의 투지, 의지가 각각 5씩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명성이 5,000,000 상승합니다.]
[카이사르가 히든클래스 ‘악마도살자’로 전직합니다.]
[멸혼객이 이끄는 1차 증원군이 몬스터 웨이브의 저지에 성공합니다.]
[몬스터들의 능력이 강화되는 미궁 안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조기에 저지한 사례는 지난 100년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업적달성의 결과, 보상이 대폭 상승합니다.]
[1차 증원군에 속한 모든 병사들의 레벨 및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멸혼객의 지휘능력이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버프능력이 상승합니다.]
[미궁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미궁은 당신의 존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뭐야. 구출하라고 내려 보낸 놈들이 왜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있는 건데.
구출 받아야 되는 놈은 지 혼자서 뭔 고대악마를 썰어버리고 전직까지 하고 있어.
멍하니 알림을 쳐다보고 있자니 후속 알림이 떠올랐다.
[카이사르가 심연의 파편을 습득합니다.]
[대협곡의 마경이 소멸합니다.]
“지도!”
“네?”
“당장 지도 가져와!”
나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카이사르가 한 건 저질렀다는 대협곡은 미궁도시랑 30km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이번만큼은 동기화 비율이 1%인 나조차도 도저히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다.
멸혼객은 카이사를 찾으러 미궁에 갔다.
카이사르는 미궁에 없다. 멸혼객은 카이사르를 찾고자 더 깊숙이 내려갈 거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없다. 그럼 멸혼객은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갈 거고…….
‘난데없이 멸혼객과 1차 증원군이 심층지대 공략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이러다 정말로 고혈압 때문에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다.
[상태이상 고혈압(Lv 5)에 걸렸습니다.]
[과도한 혈압에 의한 일시적인 의식불명에 빠집니다.]
진짜냐...!?
기가 막혀서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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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발암을 견디다못해 기절한 주인공!
과연 그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