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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49화 (149/224)

00149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24)

지상에서의 국가 간 교류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타 진영으로의 이동은 더욱 힘들어졌다.

북부지대에서 풀려난 대량의 몬스터 때문이었다.

중앙지대는 직접적인 몬스터들과의 전쟁에 전력의 대부분이 묶였고, 그러고도 막지 못한 몬스터들이 공중과 해상으로 대거 넘어왔다.

남부진영 일대에도 해상몬스터와 비행몬스터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선박은 운행이 불가능해졌으며 공간이동 또한 공중에서 비행 몬스터와의 좌표 겹침을 우려해 기피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반사효과로 인해 모험가의 입지는 높아졌고, 모험가들이 전력 강화를 위해 들르는 도장과 무관의 입지는 한층 더 높아졌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무술이고, 가장 뛰어난 무술이야말로 흑산회의 백보무투술이다! 살고 싶은 자는 백보무관에 들어오라!”

백보도장은 이제 어엿한 무관이 되었다. 온갖 유명한 무관들과 알력다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귀찮은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백보무관의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시비요? 멸국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해낸 무술에 어찌 불만을 품겠습니까. 레드윙 무관은 무술교류를 희망합니다.”

“백보무관은 브람 시를 대표하는, 아니 마이어 왕국을 대표하는 무관입니다. 저희도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디 앞으로도 백보무투술을 널리 알리며 신진 모험가들의 양성에 힘써주십시오.”

많은 이들이 백보무투술을 배우고자 연일 무관에 들렀다.

“지난 정복전쟁에서 궁지에 몰린 아군을 돕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퇴로를 막은 카이사르님이 백보무투술의 창시자라지? 구국의 영웅이 남긴 무술은 어떤 걸까.”

“분명 강한 무술이겠지. 그런 걸 외인에게도 선뜻 가르쳐준다니 정말 고마우신 분이야.”

“그래봤자 전부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신입은 전부 도장부터 시작해서 무관으로 입성하고, 거기서도 나름의 실적과 신용을 쌓아가면서 상승무공을 배우는 방식이잖아?”

결국 노력만 하면 기회는 열려있다. 거기에 불평하는 게을러빠진 놈들에게는 오히려 같은 수련생들이 더럽게 욕심만 많은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보다 백보무투술의 진정한 창시자는 카이사르님이 아니라는 소문은 알고 있어?”

“뭐!? 그게 정말이야!?”

“소문에 따르면 ‘가토’라는 절세무인이 있었다나봐. 그 사람이야말로 백보무투술 원류의 창시자로 카이사르님과 호각의 실력을 지닌 강자였다더군.”

잠깐 용무가 있어서 변장한 채로 무관에 들렀던 나는 모험가들의 대화에 부쩍 관심이 일었다.

가토가 살아있을 무렵에도 카이사르와 호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소문이 와전되어 가토의 무위가 높이 평가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카이사르님이 백보무투술을 전수하게 된 계기는 뭐야? 백보무투술은 가토의 무술이 아닌 카이사르님의 무술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잖아.”

“가토와 누구의 무공이 보다 뛰어난지 결투를 벌였나봐. 간발의 차이로 카이사르님이 승리를 했지만 그 차이는 정말로 미세했고,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없어서 가토가 사망했다더군.”

“저런.”

“카이사르님은 가토를 이겼지만 그의 무술에는 이기지 못했다고 탄식하며, 그 날 이후로 백보무투술을 이어받아 개량하고 지금 우리가 배우는 무술을 전수하고 있다나봐.”

뭐야, 저 듣는 사람이 훈훈해지는 미담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

뭔가 미묘하게 비틀려있다고.

“보스. 세상도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전적으로 동감이다.”

리나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무관에서 나왔다. 카이사르의 장례식을 약소하나마 치른 뒤, 도장과 무관의 무공전수체계를 정비할 필요를 느껴 잠시 들렀을 뿐이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곳에 돌아올 일은 없겠지. 모자이크녀와 도로시 이지스는 이곳에 남아 수련을 거듭할 테지만.

‘그런 그렇다고 쳐도 참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는군.’

원래 미궁에서 격투가는 최약체 취급을 받는다. 근접직군에 무기도 없고, 범위기에 대항할 수단도 적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무기를 통해 목숨을 한 번 부지할 수 있는 무인들과 달리, 격투가들은 사지의 일부를 바로 잃게 되니 그만큼 모험가로서의 수명도 짧아진다.

그런 주제에 수련은 고되고 단련은 더욱 열심히 해야 하므로 원래 격투가를 보는 건 정말 힘들다.

‘마이어 왕국에서는 인기 직업이지만.’

백보무투술이라는 희대의 절학이 버젓이 존재한다.

습득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다.

가히 모험가로서 강해지기 위한 지름길로 평가받을 정도다.

덕분에 모험가들의 30%는 격투가가 되었다.

요즘은 격투가들의 총본산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긴 그런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카이사르가 백보무투술과 백보심공을 개발하며 지급된 무공포인트와 심공포인트를 죄다 투자했으니까.’

무술과 심공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강화되자 모험가들의 생존확률도 대폭 증가하였다.

이제는 격투가가 아니더라도 백보심공의 효과를 얻고자 타 직종의 모험가들도 도장이나 무관을 찾아오기도 했다.

모험가가 아닌 일반인들조차도 심공을 익힘으로써 얻는 용맹함이나 건강함을 원해서 성심성의껏 수련을 하는 추세였다. 아마 1년 쯤 지나면 백성들의 50% 이상이 익힐 것 같다.

[모험가의 30% 이상이 백보무투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백보무투술을 널리 인정받은 결과, 무술을 개량할 수 있는 무술 포인트가 5000 주어집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 무술이 더욱 개량되고, 무술이 더욱 개량되면 인지도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백보무투술과 백보심공의 미래는 꽤나 밝다.

1만 명의 선봉군과 10만 명의 1차 증원군, 15만 명의 2차 증원군을 잃고도 마이어 왕국과 흑산회 진영이 건재한 것도 백보무투술과 백보심공이 있는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뜩이나 저주를 겪고 두 절대자를 잃은 뒤로 내 무력과 지위에 도전하려 드는 고수들이 있는 지금, 이러한 분위기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백보심공을 통해 심기체를 이룬 뒤라면 특제 연단법을 적용받고도 사망확률이 극단적으로 낮아질 겁니다.”

“심기체를 이룬다?”

“카이사르님이 전장에 나서기 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대화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한 결과, 백보심공을 12성 대성하면 연단법 부작용이 사라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드래곤 하트가 부분적으로나마 들어간 연단법은 전신혈맥에 과한 부담을 가합니다만, 백보심공을 대성한 자는 전신혈맥마저 단련되어 막대한 기의 유입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연금술사 브루투스의 연단법 개량 또한 이러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과를 내놓았고 말이다.

“덤으로 파난 양도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파난!?”

“예. 마약술사 파난 양이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건 내가 아닌 리나였다.

“그 여자는 블랙마켓에서 보스랑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

“예? 당사자 말로는 이제는 쿨한 관계라는데요. 설마 제가 속았던 겁니까, 보스?”

“과거는 모두 잊고 청산하기로 했다.”

솔직히 떨떠름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리 호언장담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녀는 멸혼객이라는 강대한 적에 맞서 나를 지지할 정도로 용기 있는 결단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이제 와서 내 기분이 찝찝하니까 연단법 제조과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겠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차라리 연단법의 존재를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이상은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리나가 핑크색 로브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아무 불만 없이 회색 로브만 입고 살 수 있지만, 막상 핑크색 로브를 보고 직접 입기까지 하면 만족감이라는 게 생겨버린다.

그 시점에서 핑크색 로브를 뺏고 넌 이걸 평생 동안 입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리면 엄청나게 상처를 받는 게 당연했다.

하물며 네가 과거에 범죄길드 소속이었으니 핑크색 로브를 줄 수 없다는 말까지 해버리면 상처를 받는 정도를 넘어서 원한을 품고 해코지를 가하려 할지도 모른다.

리나의 경우로 가정해도 그러할 진데 마약술사 파난이라니.

싫어도 관대하게 신용을 드러내야만 한다.

지금의 나는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입지에 놓여있다.

‘예전이라면 내 무력을 의심하는 자들은 카이사르 선에서 전부 정리가 되었겠지만.’

뼈저린 패배를 겪고 카이사르와 멸혼객에 루커스, 알큐러스, 범죄길드 길드장까지 실종된 지금은 내 지배력을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고대악마의 저주에 의해 일시적으로나마 의식을 잃었던 것이 단순한 의식상실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어쩌면 절대자로서의 무력마저도 일정부분 상실하여 과거에 비해 크게 약해진 건 아닌지 의심하며, 나를 시험할만한 정당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색마 콰이어.

하이칼 경비총장.

모험가길드 길드장.

각각 흑오문과 공무기관, 연합기관의 거물이다. 이들이 대놓고 의혹을 제기하며 나를 시험하려 들지 못하는 이유는 내게 굳건한 지지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흑오문의 이즈라크와 라만, 공무기관의 클레드 내무총장과 션 정보총장, 연합기관의 하인즈 대마법사와 검성 루에리에 치유의 교단 사제장 뮤온이 나를 지지한다.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대처 부족을 빌미로 피쟌 내무총장과 패트리 정보총장을 갈아치웠기에 망정이지.’

클레드는 오래 전부터 나와 연을 쌓은 시청직원이었고, 션은 상급정보상인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인물이다.

두 사람이 시기적절하게 분위기를 조성하여 백보무관을 통한 대대적인 선전정책을 펼친 덕분에 나를 향한 백성들의 지지가 유지되고 패전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조용히 묻혔다.

따지고 보면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있었던 건 흑산회와 백보무투술이 있는 덕분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균형은 위험해.’

연합기관의 상인연합회나 장인협회, 범죄길드가 모험가 길드에 힘을 실어주며 반 빌헬름 마이어 파벌을 조성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오문의 마약술사 파난을 새로운 잠재적인 적수로 부각시키는 건 너무나도 위험했다.

미궁세계에는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모두가 우리들의 치세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거기, 누구야!”

갑자기 리나가 단검을 들고 브루투스의 뒤를 가리켰다.

“적대의사.. 없음...”

발밑까지 끌리는 펑퍼짐한 흰색 가운에 양 손을 넣은 여자.

트레이드마크처럼 눈 밑에 자리한 다크써클.

단문으로 끊어지는 특유의 말투까지 더하면 정체는 뻔했다.

“마약술사 파난!”

“투명물약... 보스의 진의를 파악하고자... 감시한 것...”

“귀여운 리나는 저 여자가 수상하다고 생각해!”

그런 부분에서까지 귀여움을 어필하지 마라. 딱히 네가 아니어도 저런 생김새의 여자가 불쑥 허공에서 튀어나오면 누구라도 수상하다고 생각하겠다만.

그래도 나는 손을 들어 리나에게 나서지 말라 신호를 보내고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말로 다시금 단언하였다.

“적대하지 마라.”

“앗...! 은밀하게 공격하라는 신호가 아니었어?”

“전혀 아니다.”

역시 내 신호를 받는 부하들은 언제나 내 의도와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공격적인 명령을 캐치해낸다니깐. 혹시나 싶어서 말로 못을 박아두기를 잘했다.

“과거를 청산하기로 했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유능한 실력을 지니고도 믿을 수 없기에 배제한다고 말해서는 너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그 발언.. 책임질 수 있는 것?”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의 이름으로 단언했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한 발언을 어길 정도로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겠는가.”

파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착한 것.”

“머라는 거야, 이 바보가! 보스에게 신용 받는 건 이 귀여운 리나 밖에 없다고!”

리나가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떼를 썼다.

파난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한 손 가득 무언가를 집고 내밀었다.

“사탕...?”

“안 먹어! 마약이나 넣었을 게 틀림없잖아!”

“성분검출.. 해도 됨..”

파난은 주머니에서 성분검출기를 꺼냈다.

“검출기에.. 대상을 가져다대고.. 울리면..”

위이잉! 위이이이잉!

검출기에 사탕을 들이대자마자 사이렌이 마구 울린다.

누가 봐도 겁나 위험한 사탕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그런 걸 리나한테 먹이려고 했단 말이야!?”

“아. 이건... 전용 사탕...”

파난은 반대쪽 주머니에서 다시 사탕을 한웅큼 꺼냈다. 검출기는 이번만큼은 잠잠했다.

사탕을 넘겨받은 리나는 조심스레 냄새를 맡고, 단검으로 사탕을 잘게 쪼개고, 어디선가 생포한 쥐에게 사탕을 먹이는 등 철저한 검사를 시도해보았다.

“찌직?”

쥐는 딱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우호의 증표.. 신용에는 신용으로..”

“그래도 네가 주는 사탕은 수상해! 좀 더 오래 확인할 거야!”

“얼마나...?”

“못해도 한 달은 확인해야겠어!”

“…….”

너무 길잖아.

파난도 엄청나게 시무룩해하고 있다고.

“후우. 보스도 너랑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모양이고, 어쩔 수 없지. 조금은 타협해줄게.”

리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천장에서 견습암살자 한 명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 해봐.”

“아.”

리나는 견습암살자의 입에 사탕을 쏙 집어넣었다.

“직접 먹을 수는 없지만 내 몸처럼 아끼는 부하들에게 대신 사탕을 먹여줄게. 이거면 됐지?”

파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파난이 준 사탕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견습암살자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리나는 견습암살자의 눈물을 옷소매로 훑어 닦아주었다.

“걱정 마. 만일 죽거든 복수는 제대로 해줄 게!”

네 몸처럼 아낀다면서.

표정은 네 부하가 죽을 가능성이 100%라고 믿고 있잖아.

============================ 작품 후기 ============================

[세 줄 요약]

가토의 취급 : 비운의 절대고수

백보무투술의 취급 : 절세무공

견습암살자의 취급 : 리나의 고기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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