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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52화 (152/224)

00152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2)

하인즈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몇 년이 더 지나더라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겠지. 아마도 시트지가 찢기는 그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을 거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이어 왕국과 흑산회를 정진정면한 악의 국가와 악의 조직으로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암살단과 리나가 한 일이나 미궁공략에 대한 지령이 그리 받아들여진 것만 봐도 느낌이 온다.

‘어쩐지 악명이 겁나게 오른다 싶더라니.’

미궁공략만 보내면 악명이 막 솟구치더라.

그게 자살지령으로 여겨졌으면 그럴 만도 했다.

어쩐지 미궁공략을 운운할 때마다 다들 두려워하더라니.

몬스터를 두려워한 게 아니라 날 두려워했었네.

솔직히 하인즈의 말을 들으니 나도 내가 무섭다.

딱히 악의가 없어도 듣는 사람은 사악하게 듣잖아.

지금 와서 지난 2년이라는 시간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갑작스레 돌변해버려서도 안 된다.

‘터무니없는 복병이 있었어.’

바로 리나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리나의 위험한 기질을 개화시켰다. 그녀는 나를 암살에 미친 학살군주로 여기고 있겠지.

그런 싸이코적인 면모를 보였으니 지난 2년간 내가 좋아서 못 견디겠다는 반응을 보였던 거다. 게다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소름 끼치는 대화도 나누었던 것 같다.

「리나.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된다고 언제나 소시지를 먹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세 번 쯤은 괜찮잖아!」

「계속 소시지만 찾는다면 토마토 농장을 재배해서 토마토만 먹게 할 테다.」

「그거 포상 아니야?」

「소시지는 먹지 못한다. 내게서 얻을 수 있는 건 토마토뿐이게 될 거다.」

「으아앙! 싫어! 리나가 잘못했어. 그런 무서운 얘기하지 마!」

토마토가 수급이라면 난 저때 내 머리통을 날리라고 말했던 거잖아. 리나의 호감도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그대로 토마토를 수확당해서 시트지가 찢겨질 뻔했다.

그 정도로 토마토를 좋아하던 내가 갑자기 오늘부터 토마토는 수확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

리나는 토마토에 너무나도 중독된 나머지 ‘토마토를 먹을 수 없는 세상 따위는 싫어!’라면서 내 목 위에 달린 토마토를 거둬갈지도 모른다.

“그렇다! 왕국에 널린 무수한 토마토를 거두거나 미궁으로 내려가게 한 것은 전부 나의 의지에 의한 결과였다.”

“보스는 변했소. 2년 전과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단 말이오. 카이사르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대로는 마이어 왕국의 모든 신하들이 죽고 말 것이오!”

“사악한 폭군에게는 더 이상 존대조차도 할 수 없다는 건가? 하하. 그리 노려보지 마라. 네 뜻은 이해하였으니.”

나는 하인즈와 리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시작했다.

“하인즈 대마법사. 토마토 농장을 재배할 때에는 따스한 빛과 물처럼 달콤한 혜택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농약을 치고 썩은 토마토를 버리며 비료로 뿌리기도 해야 하지.”

“그리 자라난 토마토는 농약에 찌든 해로운 토마토가 될 뿐이오. 무수한 토마토들의 죽음을 바탕으로 농약토마토를 만들 뿐이라면 이 나라는 농약에 찌든 해로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오.”

“까짓것 농약에 찌들면 어떻단 말인가.”

그야 무진장 해롭겠지. 해롭겠지만.

이 빌헬름 마이어에게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없다.

여기까지 쓰레기가 된 이상 일단 쓰레기인 건 감수하겠다!!

“강하지 못한 토마토는 전부 죽을 뿐이다. 내게 필요한 건 나약한 유기농 토마토가 아닌 농약으로 점철된 강력한 무기농 토마토뿐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 보스는 정녕 작금의 시대가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사태마저 감수하겠다는 것이오?”

“세인들은 과인을 폭군이라고 욕할 수 있겠지. 허나 미궁이라는 위협을 영원토록 배제하기 위해서는 사마외도를 넘어선 수라의 길을 걷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인즈 대마법사는 지팡이로 지면을 내리찍으며 웅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소! 노구가 보스를 지지해온 것은 로드리어스님의 전인이었기 때문이오. 로드리어스 엘드리고님은 미궁공략을 우선시했지만 결코 사도의 길을 걷지는 않으셨소!”

그야 그랬겠지. 그때는 악명이 지 멋대로 올라갈 일이 없었으니까. 그보다 [로드리어스 엘드리고]도 내가 한거였는데. 난 지금 과거의 나 때문에 발목이 붙잡히는 건가.

“로드리어스. 그의 방식은 잘못되었다. 그는 최강의 파티를 꾸려 미궁에 도전했지만 그가 아는 최강은 비인외도의 선을 넘지 않은 영역에 국한되었다.”

“그대는 정녕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단 말이오!”

“그렇다. 필요하다면 나는 악마보다 더한 존재라도 되겠다. 멸혼객과 카이사르로도 당해내지 못한 미궁의 깊은 어둠에 맞서기 위해서는 미궁보다 더한 어둠을 드리워야만 한다.”

늙은 마법사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렇게까지 한들 보스는 암흑시대의 폭군으로 여겨질 뿐, 어느 누구도 보스의 위업에 감사해하지 않을 것이오.”

“상관없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에 먹혀버릴지도 모르오. 지저에 드리운 거대한 악, 마왕의 주구가 되어 부림당할 수도 있소.”

“그 또한 상관없다.”

“맙소사. 정녕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적이 되어서라도 미궁정복의 대업만을 노린단 말인가!”

나는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그렇다. 인류의 적이 되는 것으로 미궁을 정복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겠다.”

여기까지 확고하게 의지를 표명한다면 낙승이나 다름없다. 하인즈 대마법사는 ‘크으윽. 이 노구는 그런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잡념을 불어넣기만 하다니...’라면서 반성을 하겠지.

그럼 난 관대하게 ‘상관없다. 카이사르가 없더라도 나의 뜻을 지지해주는 리나가 함께 하니까.’라면서 자연스럽게 하인즈 대마법사의 동정심을 사면서 리나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공존할 수 없는 두 명의 상대에게서 동시에 환심을 사기 위한 완벽한 심리학적 화술의 결정체가 바로 이 대화였다.

지금까지의 장황한 대화와 심리전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 말해라 하인즈!

어서 나를 동정하고 돌아오는 대답을 들은 뒤에 리나와 함께 감동해라!!

“정녕 그러하다면...”

“그러하다면?”

“이 노구의 목을 베시오!”

“!?”

“빌헬름 보스. 그대가 정녕 비인외도의 길을 걷겠다고 자신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노구의 목을 베시오!”

이게 아니야!

이 패턴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단언해두겠소. 노구는 이 자리에서 죽지 않거든 전심전력을 다해 미궁공략을 방해할 것이오. 장차 보스의 앞길을 가로막을 최대의 적을 살려두는 행위가 될 테지.”

“자네. 제정신인가?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제정신이 아닌 건 노구가 아닌 보스이오! 이런 어리석은 행동이 불러올 결과는 인류의 공적이 되는 것만이 아님을 어찌 모르는 것이오! 이 모든 것은 어리석은 자살행위에 불과하오!”

하인즈의 격한 외침에 리나의 눈초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감. 말버릇이 조금 과한 거 아니야? 늙으면 치매가 온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까지 잊어버리면 곤란하지.”

리나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장침을 꺼내들었다.

“보스는 남의 충고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이런 짓을 저지른다는 건 정말로 죽고 싶다는 거겠지?”

들으려고 했거든!

네가 그 말만 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거든!

‘이 상황은 지극히 위험하다!’

나는 지금 극도의 위기에 놓였다.

하인즈와 리나가 서로를 향해 대립각을 세우는 순간, 두 사람은 이미 공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며, 하인즈를 선택하는 건 보스로서의 위엄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리나를 선택하는 건 충신을 제거하는 폭군의 길을 걷는 행위가 된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면 리나를 따르는 게 맞다. 그렇지만 하인즈 대마법사를 죽이면 뒤가 없다. 하인즈가 살해당한다면 연합기관의 의원들도 노골적으로 반심을 품겠지.

심층지대를 향한 공략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공략 도중에 뒤통수를 맞고 캐릭터시트지를 찢길 거다.

그렇다고 하인즈 대마법사를 살릴 수도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간 리나가 나의 위엄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끝내 나를 죽인다는 선택을 내릴지도 모른다!

하인즈를 죽이면 미래가 없지만 그를 살리면 내일이 없다! 지금 당장 살해당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녕 나를 막고 싶거든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라. 그것이 정답이 아닌가, 하인즈?”

그래, 지금 죽일 수 없다면 나중에 죽이면 된다. 하인즈도 납득하고 넘어가고, 리나도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네가 사라지면 이 나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의 패도를 가로막는 자 또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오!”

“그렇겠지. 그대도 어리석지는 않으니 뜻을 함께 할 동지들을 남겨두었겠지. 하지만 그들을 전부 죽이면, 그 다음에도 내게 맞설 자들이 남아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늙은 마법사의 몸이 분노를 참지 못해 떨리기 시작했다.

“노구를 협박하는 것이오!”

“그대를 협박한다니. 표현이 잘못되지 않았는가.”

나는 친절하게 잘못된 발언을 정정해주었다.

“이 나라의 미래를 협박하는 걸세.”

“!!”

“나의 비원은 미궁정복.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지상의 인류와 국가 따위는 어찌되어도 상관없지. 모든 것이 이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인즈는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한계까지 떨리다 못한 몸이 척 가라앉으며 정제된 농밀한 살기를 온몸으로 뿜어내었다.

그는 이제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게 아닌, 나라를 위해서 살아남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이후, 비어버린 지상을 돌볼 자가 없다면 지상이 어찌될지는 명약관화지. 대륙 중부지대를 거머쥔 중앙연합국은 남부지대 전역을 식민지로 삼고 철저한 약탈을 이어갈 거다.”

“그대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마음조차도 없단 말이오! 흑산회가 발흥한 도시를 향한, 나라를 향한 애착조차도 없느냐는 말이오!”

“애향심을 논한다면 단언컨대 없다. 그런 무른 마음가짐으로는 지상을 떠나 미궁에 진입하는 일조차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나약하고 무른 마음은 오래 전에 모두 쳐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압박해볼까.

“로드리어스는 일찍이 내게 말했었지. 나를 비밀병기로서 지상에 남겨둔 이유가 자신의 뒤를 이어 다음 원정대를 꾸릴만한 재목이라는 사실 외에 한 가지 더 있다고.”

“그분께서는 대체 무엇을 위해 당신 같은 괴물을 지상에 남겨두었단 말이오!”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하지 못하거든, 다음은 나의 방식으로 도전하라고.”

“!!”

“그 말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 허나 어쩔 수 없지. 네게서는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 가능성을 개화할 의지가 없다면 남겨두는 수밖에.”

하인즈 대마법사가 꽤나 중요시 여기는 과거의 나에 대한 이미지를, 그의 선량한 마음가짐을, 신념을 모두 팔아넘긴다.

“내가 실패한다면 그 다음은 너다. 미궁공략을 떠난 이후의 지상은 네게 맡기지. 내 방식으로 성공하지 못하거든, 다음은 네 방식으로 도전할 차례다.”

“!!”

한낱 싸구려 추억 따위, 편리한 도구만도 못하다.

추억을 팔아 도구를 얻어내겠다.

============================ 작품 후기 ============================

선호작과 추천,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2부 시작이라는 느낌으로 한층 더 신선한 약을 제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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