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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55화 (155/224)

00155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5)

얼굴은 무표정하고 손속에는 자비가 없으며 그녀들의 발자취가 닿은 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남는다고 한다. 세간에서 흑산회 암살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어찌 생각하지?”

암살행을 마치고 돌아온 리나와 그녀의 빈자리를 지키던 이질을 불러모아 나란히 세운 뒤에 던진 물음이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리나와 이질은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칭찬이지?”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아하핳. 칭찬인 게 틀림없어! 좀 더 자신 있게 감사하라구!”

“그럼 자신 있게 감사합니다.”

“…….”

이게 암살단 단주와 부단주의 인식수준이다.

완전히 악명을 즐기고 있네.

“칭찬이 아니다. 앞으로는 이런 악명을 듣지 않도록 암살단의 내부방침을 달리 할 것이다.”

그녀들이 귀염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지 않은 냉혹무비한 암살자로 완성되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릴 필요성을 느꼈다.

“일일 암살행은 오늘 이 순간부로 끝이다.”

“그런...! 보스, 우리가 뭔가 잘못한 거야!? 지난 2년간 목표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 너희들의 암살은 완벽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응?”

“암살은 정적과 반란분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 난이도는 높지만 그만큼 성공함으로서 얻는 이득은 크다. 허나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다. 무엇인지 알겠는가?”

리나와 이질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후. 진짜 저지르는 건가.’

이걸 내뱉는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수수방관만 할 수도 없다.

리나의 나를 향한 충성도와 호감도는 막상막하. 그녀가 ‘흑산회 보스의 부하’로서 결단을 내릴지, ‘빌헬름 마이어를 연모하는 여자’로서 결단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그녀들에게 선언하였다.

“귀여움이다.”

“하?”

“완벽한 암살은 필연적으로 귀여움을 희생한다.”

리나는 그야말로 혼란에 빠진 얼굴로 어버버 거렸다.

“귀, 귀엽지 않아? 완벽한 암살이? 리나가?”

“그렇다. 요즘의 너는 예전처럼 귀엽지 않다.”

“우윽.. 너무해. 리나는 보스를 위해서.. 흐끄윽!”

당장 단검을 들고 이런 보스는 필요 없다며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물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리나의 모습은 불편했지만. 저렇게나 서럽게 울어버리니 그런 마음도 금세 사라지고는 묘한 죄책감만 남게 된다.

“리나. 물론 나를 향한 네 마음은 알고 있다.”

“그럼 어째서...?”

“그렇기에 암살행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단순한 도구로서 여긴다면 암살을 그만두게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 않기에 암살행을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리나가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암살행을 중지하는 건 리나만이 아니라 이질도 마찬가지지?”

“부단주뿐만 아니라 평단원들도 포함된다.”

“그럼 보스는 리나랑 이질이랑 암살단원 모두한테 손을 뻗으려는 거야...?”

그런 카사노바는 모른다.

애초에 카사노바 이전에 단원 중에는 남자애도 있잖아.

이 녀석은 내 취향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휴... 보스는 폭군이니까 바보 카이사르처럼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카이사르가 없는 지금,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부하다. 부단주와 암살단원들 또한 왕도로 향하는 풋내기 시절부터 보아온 녀석들이지.”

내가 암살단을 바라보는 느낌은 남자가 여자를 보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허허 웃고 아이들을 아끼는 느낌에 가깝다.

“지상은 하인즈에게 넘긴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가. 슬슬 떠날 준비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견디기 힘들게 될 거다.”

“보스! 드디어 미궁에 들어가는 거야?”

“그렇다. 약해빠진 놈들에게 미궁공략을 전적으로 맡기기만 해서는 악신의 교단과 접선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에 비해 흑산회의 미궁공략파티에 속한 일원들을 보라.

암살전문가 리나. 2년간 교본공부만 해온 만능도적 레이브. 백보무투술과 백보심공을 전력으로 수련해온 회피탱 겸 마녀 도로시 이지스.

핵과금길드의 지부장 게이머 쿠로. 탑 랭커 출신인 매력올인 컨셉게이머 모자이크녀. 비상한 검술의 소유자, NPC 청일.

이상의 여섯 명이 나와 함께 미궁으로 내려갈 최정예 파티원들이다.

리나와 쿠로, 청일의 공격력은 상당하다.

도로시 이지스의 생존력은 독보적이다.

레이브는 만능도적이니 비상하게 유능하다.

“절 버리고 가지 말아주세요! 분명 주인님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엉엉..”

“뭐, 머리 쓸 일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

지략에는 나름 능통한 것 같고 용병술에도 일가견이 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적의 계략을 간파하거나 책략을 진언하고, 직접 일선에서 전두지휘에 나설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자리가 하나 비는군.”

원래는 카이사르가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2년 전의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녀석을 잃고 말았다. 놈의 빈자리를 대신할만한 인재는 꾸준히 모색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녀석은 미친 공격력과 발군의 투지를 지닌 학살자였다. 대인전에 강한데 대량학살에는 더욱 특화된 무자비한 포지션의 녀석이었지.

그런 빈자리를 대신할만한 희귀한 NPC가 있을 리 없다.

파티 벨런스가 지나치게 공격에 쏠린 게 우려되어서 철갑으로 온 몸을 두르고 방패만 들어줄 메인탱커를 구해보기는 했는데, 하나같이 성에 차지가 않았다.

뭣보다 내 사람도 아닌 녀석을 함께 데려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믿을만한 놈도 딱히 없었다.

“메인탱커가 문제로군...”

그냥 마지막 자리는 공석으로 하고 출발할까.

그런 생각까지 할 무렵이었다.

“낭군님. 유모를 데려가는 건 어떠신가요?”

“유모를?”

“네. 유모는 정말로 강하시거든요.”

도로시 이지스의 말에 얼떨떨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그녀가 유모를 곁에 두는 건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미궁에서 통용될 수준은 아니겠지.

“도로시 아가씨. 유모를 대단하게 여기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미궁에 데려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일 씨?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유모랑 한 번 대련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뭐 좋습니다. 그걸로 납득하실 수 있다면야.”

그런 관계로 수련장에 유모를 데려왔다.

일단은 데려왔는데...

‘누구야 이거!?’

덩치 2m에 체중은 150kg을 넘을 것 같고, 피부는 왠지 모를 파충류의 비늘 같은 게 돋아나있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어지간한 남자는 한 손으로 압착시켜 버릴 것처럼 두툼하다.

이것이 정녕 도로시 이지스의 유모였던 여자란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인간이 맞기는 한가?

“오래간 만입니다, 보스. 지난 2년간 아가씨를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일단은 인간은 맞는 것 같군. 예전에도 체격은 좋았지만 이런 늠름한 면모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난 2년 간 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거지?”

“아가씨를 위해 선행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선행수련?”

“예. 여자의 몸은 남자와 다르기에 유모인 제가 시범케이스로 대부분의 수련을 먼저 수행했습니다. 최적화된 수련법을 찾고 개선된 수련법을 전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 기억났다.

분명 그런 교육의 필요성을 내가 지적한 적이 있었지.

거기까지는 유모가 강해지기는 해도 일단 인간의 형체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실내 수련장에서는 수련의 효율이 나쁘다고 판단하여 야외수련장을 알아보라는 명령을 보스께서 내리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 정말이다.”

“하여 이 유모는 지난 2년간 야외수련장을 찾고자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최적의 수련코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이해가 안 된다.

전혀 안 된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야외수련장을 찾으러 가는 길은 최대한 멀리 돌아서 가는 길로 선택하라고 직접 명령을 내리신 것 말입니다.”

“아아. 분명 이동하는 중에 운동이라도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지.”

“과연... 보스에게는 이 한없이 극기에 가까운 수련조차도 평범한 <운동>이었던 겁니까. 강함을 얻게 된 뒤에야 비로소 보스가 얼마나 고절한 경지에 올라섰는지 깨달은 기분이 듭니다.”

뭐라는 거야 대체. 너 겁나 이상해.

혼자 납득하지 마.

운동하라고 보냈는데 왜 괴물이 돼서 돌아온 거냐고.

“이 유모는 보스의 명을 따라 브람 시를 떠나 대사막을 횡단하여 사막도적단과 결전을 벌인 끝에 사막유적지에서 태양의 정수를 둘러싼 쟁탈전에 빠졌고, 우여곡절 끝에 정수를 먹고 강해졌습니다.”

“…….”

“카르골드 대해협의 소용돌이와 어인들의 도시를 가로지르고, 하늘섬에서 번개제사장과 쾌속전을 치를 때에는 큰일이었지요. 그래도 불타는 용암동굴에서는 태양의 정수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대략 ‘???’라는 느낌이다.

나만 존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멈춰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어디서부터 말입니까?”

“수련장을 가는 데 브람 시를 떠나 대사막을 횡단하는 부분부터.”

지도에서 가리킨 건 분명 브람 시 근교에 위치한 숲이었다고.

왜 대사막을 횡단하면서 장대한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데.

야외수련장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 리가 없잖아.

“보스는 최대한 먼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멀리 가야 하느냐는 제 물음에 ‘멀면 멀수록 좋다. 그만큼 저는 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륙을 횡단했다고...?”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저는 과거의 나약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도 없을 만치 강해졌습니다. 실로 훌륭한 혜안이자 뛰어난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보스에게 이 기회를 빌어 다시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뭐야 이 여자.

보통 그딴 착각을 하면 알아서 포기하고 돌아와야 되잖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돌아오는 게 정상이라고.

왜 갑자기 극한의 모험심과 인내력을 발휘하는 건데.

아니, 그보다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그럼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유모는 화염골렘을 한 손으로 때려 부수고 채찍을 휘둘러 절벽을 부수는 괴수급 괴력의 소유자가 되어, 인류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전인미답의 미탐사지대인 북극대륙에 도달했다.

혹독한 추위를 태양의 정수에 의지하여 견디며 전설의 예티와 자웅을 겨루어 이기고, 예티로부터 북극대륙에 천 년간의 암흑역사를 펼쳐낸 원흉 아이스드래곤의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설마 드래곤과 싸웠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싸움 같은 귀여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모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생사전을 벌였습니다.”

여자 카이사르다.

리나와는 다른 의미의 여자 카이사르가 나타났다!

“드래곤에게 잡아먹힐 때에는 그대로 끝인가 싶었지만, 휘몰아치는 냉기폭풍의 숨결을 비집고 들어가 드래곤하트를 씹어먹은 끝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 비늘은...”

“드래곤하트를 먹고 생긴 아이스드래곤의 비늘입니다.”

파티원 일동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로시 이지스만이 자랑스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유모는 어릴 적부터 뭐든지 잘하셨죠. 다리미로 옷을 달이는 것도, 창문에 얼룩이 남지 않게 닦는 것도, 30초 만에 미끄러운 콩을 50알 집어서 옮기는 것도 말이에요.”

너무 수수하잖아.

이 장대한 모험기와는 백만 광년쯤 거리감이 있지 않냐.

이미 유모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했다고.

“다만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아이스드래곤이 제게 강력한 저주를 남겼습니다. 여자로서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얻은 저를 절망시키도록 ‘남성’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아니, 저 덩치로는 뭔 짓을 해도 이길 것 같은데. 그냥 손만 휘둘러도 퍽 하고 20m쯤 수직으로 날아가서 벽에 처박히고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청일을 콕 찝어서 가리켰다.

“너. 유모랑 대련한다고 했었지? 한 번 해봐라.”

청일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강적과 마주하여 죽음을 직감한 것처럼 검집에 얹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본능의 영역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고 몸이 경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슬며시 쿠로를 돌아보니 진동안마기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초당 10회 정도가 아닐까 싶은 속도였다.

대체 얼마나 무서운 거냐. 뭐, 유모가 저런 괴물이 될 줄은 나도 몰랐고 불쌍하기도 하니까 적당히 봐주도록 할까.

“이 남자들은 제게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보스께서 제 실력을 검증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청일. 쿠로. 2 대 1로 대련에 돌입해라.”

나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청일과 쿠로를 제물로 바쳤다.

============================ 작품 후기 ============================

2년 뒤 파워업 이벤트 최대의 수혜자 : 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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