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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56화 (156/224)

00156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6)

청일과 쿠로는 긴장된 낯으로 저마다의 검을 들었다.

둘은 나름 고수의 반열에 속하는 자들이다. 지난 2년간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루었고 새로운 브람 20강 내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대가 나빴다. 덩치나 근육양으로만 봐도 유모는 도저히 이 둘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남자를 이길 수 없는 저주가 사실이기만 바래야겠군.’

유모가 손을 까딱거렸다. 두 사람은 좌우에서 동시에 달려들며 합격을 펼쳤다.

카아앙─!

유모의 왼손이 쿠로의 검을 받아내었다.

“아니!?”

놀란 그가 외마디 경악을 내지르기가 무섭게 반대쪽에서 달려들던 청일을 향해 유모의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쾅, 쾅, 콰앙─!

기둥 두 개를 부수고 세 번째 기둥에 들어박힌 청일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한 채 주저앉았다.

“이런 괴력의 어디가 남자를 못 이긴다는 건데..”

관람하던 모자이크녀가 넋 놓고 중얼거렸다.

탑 랭커인 모자이크녀가 보기에도 그녀의 일격은 사뭇 인상적인가보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저건 NPC 이전에 레이드보스 몬스터나 보일만한 괴력이지 않나 싶었다.

“타하앗!”

쿠로의 검을 쥔 손이 세밀하게 진동하며 마나를 몇 겹으로 흘려보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검이 낭창거리며 급격히 휘어져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마나를 불어넣음에 따라 숨겨진 검의 성질이 발동하여 연검(軟劍)이 되기도 강검(剛劍)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인상적인 검이었다.

휘리리리릭!

꽈악!

연검은 단숨에 유모의 팔을 휘어 감고는 매섭게 조여들었다.

제대로 당하면 단번에 팔이 잘릴 강도다.

쿠로는 회심의 한 수가 먹혔다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꽈각! 꽈가각!

당황한 그의 낯이 딱딱하게 굳으며 ‘이게 아닌데’라는 표정이 눈에 보이도록 동요했다. 유모는 그 모습을 보며 그대로 왼팔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휙!

검을 따라 끌려간 쿠로가 어어, 하며 다급히 연검의 성질을 변화시켜 회수했지만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었다.

쩌어엉─!

솓뚜껑만 한 손바닥이 쿠로의 상반신을 강타하더니 벌레 한 마리를 때려잡듯이 바닥에 쑤셔 박아버렸다.

“남자는 못 이긴다며!?”

“완전 잘 이기고 있어...!”

리나와 모자이크녀의 태클에 유모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저는 아직 이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본래라면 즉사를 면할 수 없는 위력의 공격으로도 이들은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대결은 저의 패배입니다.”

“그런 기분 나쁜 패배가 어디에 있어! 일방적으로 유모가 이겼잖아!”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군요. 보여드리기에는 괴로운 모습이지만 계속해서 대결을 이어가겠습니다.”

청일과 쿠로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검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둘은 다시금 연격을 시도했고, 유모는 손을 휘둘렀지만 공격이 계속해서 빗나갔다.

마치 아무리 맞추고 싶어도 맞출 수 없는 것처럼 허공에 헛손질만 거듭 이어졌다.

하지만 유모의 피부를 뒤덮은 비늘도 드래곤의 비늘이었기에 아무리 유효타를 넣어도 유의미한 충격이 쌓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적중시킨 두 사람의 손아귀에 피가 맺혔다.

“어차피 저쪽에서는 맞출 수 없다면 필살기로...!”

쿠로가 일격필살의 공세를 가하기 위한 자세를 취하며 기를 끌어 모았다. 그러자 유모가 전력으로 달려들어 몸통박치기로 그를 튕겨내었다.

시속 60km로 달리는 차에 치인 것처럼 십여 번이나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긴 핏자국을 남긴 채로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반쯤은 죽었다고 봐도 무방한 중상이었다.

‘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팰 수 있는 거 아니야!?’

어찌나 처참한 광경이었던지 청일은 빈틈을 노리지도 못하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양손으로 검을 부여잡았다. 떨리는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을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으아아아아!!”

청일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쾌검술을 펼쳤다.

유모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쇠가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청일의 검이 박살났다.

“으아아!”

청일은 부러진 검을 놓고 뒤로 자빠졌다.

“...이겼는데?”

“아닙니다. 저는 패배했습니다.”

“대체 어디를 봐서 진 건데!?”

유모는 쿠로와 청일의 검에 베인 옷을 가리켰다.

“제가 베인 횟수는 도합 5번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자인 제가 다섯 번의 피격을 받는 사이, 두 분은 제 공격을 직격으로 당하고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무인으로서의 수치. 더할 나위 없는 저의 패배나 다름없습니다. 드래곤의 저주로 인해서 저는 남성을 상대로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패배만을 겪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건 너뿐인데.

당사자들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있잖아.

오히려 두 번 다시 너와는 싸우고 싶지 않아하고 있다고.

“아무튼 그 정도 신체라면 탱킹을 서기에는 충분하겠군.”

“전위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도로시 아가씨는 반드시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니, 도로시도 탱커이다만. 회피탱.”

유모는 수련용 강철인형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땅에 쑤셔 넣었다.

강철인형은 순식간에 시야 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유사시에는 몬스터를 전부 이렇게 땅바닥에 처박아주겠습니다. 그러니 도로시 아가씨가 서브탱커로서 나설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좋을 대로 해라.”

유모 무서워.

“이걸로 파티가 완성되었네! 보스랑 함께 미궁에 들어가는 건 2년만인가?”

“그랬군. 2년 전에도 이 무렵에 처음 미궁에 갔었으니.”

“그때는 큰일이었지? 어떻게도 출구를 찾을 수 없어서 고생했었으니까. 이제는 이 기특한 꼬맹이가 있으니 안심이지만!”

리나가 와락 끌어안으니 레이브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소년에게는 자극이 큰 스킨쉽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미궁탐사는 곧바로 시작되지는 못했다.

청일과 쿠로가 몸져누웠다. 유모에게 너무 쌔게 맞아서 집중기도실에서 하루는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유모를 결코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흑산회 내에 보이지 않는 서열구도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궁궐에서 열리는 오전회의시간에 나는 폭탄선언을 던졌다.

“오늘부터 행정업무는 연합기관에 위임한다.”

“예에에!?”

“총책임자는 의장인 하인즈 대마법사로 임명하도록 하지.”

갑작스러운 선언에 신하들은 혼란에 빠졌다.

“혹여나 폐하의 저주가 악화되신 겁니까?”

“그렇다. 하여 나는 오늘부로 1차 미궁탐사에 나선다. 공무기관의 장관들은 하인즈 대마법사와 연계하여 효율적으로 내정을 돌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

“하오나 폐하, 이는 너무 갑작스러운 처사가 아닌지 싶습니다. 공무기관이 아닌 연합기관에 국정을 맡기는 일도...”

“그럼 너희가 내 업무량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가?”

“…….”

공무기관의 장관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2년간의 시스템에 의한 내정보조에 기존에 지니고 있던 회계스킬에 의한 고속업무처리능력에 힘입어 나는 날마다 엄청난 양의 내정업무를 처리해왔다.

까놓고 말해서 나 한 사람이 1만명 분의 내정력을 발휘했다. 그 빈자리를 메우려면 공무기관만으로는 턱도 없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지상에 돌아왔을 때 행여 내정에 차질이 빚어졌음이 밝혀진다면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순순히 내 지시에 응한 내무부장관 클레드와 달리, 업무를 할당받게 될 하인즈 대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반문하였다.

“2년간 굳건히 지켜온 권력을 이양하겠단 말입니까?”

“얼마 전에 나누었던 대화는 빈 말이 아니다.”

“으음. 폐하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 노구는 뼈가 닳도록 성심성의껏 내정을 보좌하겠습니다.”

이걸로 하인즈 대마법사를 달래고 지상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소요사태는 미연에 방지하였다. 두 약골들도 치료가 끝났으니 간신히 미궁에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도 기존에 내게 집중되었던 권력과 역할 등을 적당히 다양한 인선에 나누어준 이후, 나는 파티를 이끌고 미궁에 진입하였다.

당연히 이 시점에서 지상에 대한 관심은 싹 사라졌다.

* * *

그렇지만 남겨진 자들은 그를 향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마이어 폐하가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권력을 나누어주다니. 정말로 앓고 있던 저주가 악화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건 한 번뿐인 기회일지도 모르겠군요. 사악한 폭군의 압제를 끝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만들 두시오.”

하인즈 대마법사는 자신을 따르는 파벌 구성원들의 발언을 제지하였다.

“빌헬름 마이어는 저주를 앓는다고 약해질 만한 자가 아니오. 설령 약해지더라도 우리 따위가 감히 대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오? 수천 명이 덤벼도 죽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소.”

“그 정도란 말입니까?”

“일찍이 멸혼객 한 명을 저지하고자 절정고수 스물 두 명이 모여든 적이 있었지. 허나 그 멸혼객조차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노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소.”

하인즈 대마법사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빌헬름 마이어를 상대하려면 몇 명의 절정고수가 필요한지 자신은 가늠할 수조차도 없다고.”

“……!!”

부실한 신체상태와 넘쳐나는 카리스마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탓에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의미였지만, 그 발언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치 절정고수 수준으로는 몇 명이 덤벼들어도 무의미한 현 시대 최강의 고수를 일컫는 말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하인즈 파벌에 속한 자들은 꼬리를 내렸다.

“빌헬름 마이어는 권력을 내려놓았고, 암살단은 암살행을 중지하였소. 그를 따르는 흑산회 내 고위인사들도 이번 미궁탐사에 참여하게 되었지. 이런 와중에 그들을 도발할 이유는 없소.”

“으음... 실제로 넘겨받은 내정분야도 적지 않으니 저희 파벌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히 상승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일단 책을 잡히지 않도록 내정업무부터 완벽하게 끝낸 뒤, 이후에 미궁탐사를 방해할만한 수를 부리도록 합시다.”

하인즈 파벌의 대세는 선 내정 후 공작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선택에 진심으로 안도하였다.

“믿기지 않는군. 이것이 정녕 한 인간이 감당하던 업무량의 일부에 불과하단 말인가?”

“으어어... 야, 야근. 아니 철야로도 끝낼 수 없어.”

“제기랄. 한 달 동안은 인계받은 내정업무를 감당하는 것조차도 빠듯하겠군.”

자칫 무리했다가 파멸할지도 모를 위험은 현명한 선택으로 인해 간신히 비껴나갔다.

원체 부여된 내정업무량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연합기관 내에서 하인즈 파벌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험가 길드장 테켈리를 주축으로 세워진 테켈리 파벌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전력으로 방해공작을 펼친다. 필요하다면 암살을 사용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빌헬름 마이어를 제거한다. 그를 지키는 인원이 가장 줄어드는 미궁 안이야말로 기회다.”

“굳이 이번에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빌헬름 마이어의 목적은 미궁정복이니 미궁탐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문제다. 다음부터는 미궁 속에서 그들을 쫓아가기도 벅찰 정도로 먼 여정을 떠나게 될 테고, 그만큼 마이어 파티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겠지.”

“아! 시간이 지날수록 빌헬름 마이어를 암살하는 건 더욱 힘들어지겠군요.”

더욱이 꺼림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이어 왕국은 도로시 이지스의 저주가 자국민에게 퍼지는 걸 막고자 지상전역에 치유의 교단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덕분에 지상은 선신교단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지.”

“그렇기야 합니다만... 그게 이번 일과 관계가 있습니까?”

“있다. 병적일 정도로 악신의 교단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온 그가 이제 와서 악신의 사제들을 찾다가 미궁으로 내려간다.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테켈리 파벌에 가세한 의원들의 안색이 한층 심각해졌다.

탄압해왔던 자들을 찾는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의원 중 한 명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인신공양을 하려는 건가...?”

“뭐, 뭐라고!?”

“아, 아니. 그냥 어디까지나 가정을 해보았을 뿐입니다. 그가 지상의 권력을 내려놓기는 했어도 무서울 정도로 이득만을 취해왔던 자가 손해 보는 일을 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 타이밍에 인신공양이라면... 설마 더는 쓸모없어진 자들을 한데 모아서 악신에게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치고 사악한 권능을 손에 넣겠다는 건가!?”

테켈리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지. 비록 이번 미궁탐사에 치유의 교단 소속 사제가 들어가지 않기는 하나, 우리가 아는 빌헬름 마이어라면...”

“…….”

“…….”

“…….”

“아껴둔 정예파티를 모조리 꺼내야겠군.”

그들이 보아온 빌헬름 마이어는 인신공양쯤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무서운 싸이코였다.

빌헬름 마이어를 제거하기 위한 모험가 길드 정예파티들에게는 악신의 성소를 부수고 악신의 사제들을 박멸하라는 서브퀘스트가 부여되었다.

다행히도 지난 2년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실력자들이 모험가가 되겠다며 미궁도시 브람의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례가 대거 늘어났다. 정예파티를 소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사막 사막도적단과 대해협 어인사냥꾼, 하늘섬 번개사제단, 용암동굴의 골렘술사들, 심지어는 머나먼 북극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설인족 파티마저 존재한다.

빌헬름 마이어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외부의 막강한 파티들이 이렇게나 잔뜩 모였으니 분명 암살은 성공하리라.

테켈리는 실패할 수가 없는 드림팀이라며 몹시 안도하였다. 전부 유모 때문에 실직한 파티들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채로 말이다.

============================ 작품 후기 ============================

유모 : 이길 수 없다고 했지 진다고 말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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