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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58화 (158/224)

00158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8)

[미궁 7대 금기 중 하나인 <리기아의 항아리>가 출현했습니다.]

떴다.

리기아의 항아리가 떠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악!”

리나의 날카로운 비명에 파티원들이 혼비백산하며 깨어났다.

“적습인가!”

“적은 몇 명입니까!”

“적은 어디에!?”

리나는 비명을 지르며 항아리를 가리켰다.

“저기에! 저기에에에!”

“항아리인가! ...그래서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항아리가 나타났어어어어어!”

파티원들은 벌레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항아리가 나타나서 이 소란을 피웠다고?”

“당연하잖아! 항아리가 나타났다고오오!”

“하아... 항아리가 대체 뭐 어쨌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

쿠로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쏘아붙였다.

“이봐, 모자이크. 너도 뭐라고 한 소리 좀 해라. 이깟 항아리가...”

“그, 그거 발로 차지 마세요! 위험하잖아요!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구요!”

“너도냐!? 항아리한테 살해당할 걱정이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깟 항아리가 뭐 그리 무섭다고 쌍으로 유난을 떨어대는 건데.”

청일과 유모, 도로시 이지스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야 저 항아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나 같아도 불침번을 마치고 잠들었는데 누가 다급히 날 깨우며 ‘항아리가 나타났어!!’ 따위를 외치면 죽빵을 때릴 거다.

“보스.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항아리 공포증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만!”

“예?”

“그 안에 손을 넣었다간 큰일이 난다.”

“어... 이거 정말 위험한 겁니까?”

리나와 모자이크녀가 호들갑을 떠는 건 여자들이 유난을 떠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스인 나까지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자 마침내 위기감이 들었나보다.

항아리에 손을 넣으려던 쿠로가 흠칫하며 물러섰다. 항아리를 들여다보던 청일이 의아해하였다.

“혹시 이 항아리는 미믹입니까?”

“비슷한 거다.”

“비슷한 거라니...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베도 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거다.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시험해 봐도 좋다. 단, 주력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청일은 예비용 장검에 기를 불어넣고 쾌검을 펼쳤다.

카아앙!

날카로운 불똥과 함께 부러진 검날이 튕겨졌다.

“어, 엄청난 강도...!! 이건 암벽보다도 단단합니다. 대체 이 항아리는 정체가 뭡니까?”

“리기아의 항아리다. 아직 정체가 완전히 규명되지도 않은 위험한 물건이니 섣불리 접근하지마라.”

“아, 알겠습니다.”

파티원들은 조심스레 침낭에서 벗어나 내 곁으로 물러섰다.

도로시 이지스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낭군님. 저 항아리는 어떤 물건인 건가요?”

“이름이 적힌 대상을 집어삼키는 물건이다. 더욱이 소환물의 성질마저 지니고 있군.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면 공간을 뛰어넘어 가장 가까운 막다른 길에 나타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에엑.. 어찌 그런 불길하고도 섬뜩한 항아리가 여기에 나타난 건가요?”

리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대신 대답했다.

“리나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리기아의 항아리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거기까지 구체적으로 언급을 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보, 보스의 말이 맞아요. 저는 줄곧 모닥불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이 항아리가 나타났어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간단히 소환되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항아리라니, 말도 안 되게 무시무시한 물건이군요. 낭군님은 대체 이런 물건을 어떤 연유로 알게 된 건가요?”

꽤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을 떠올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국도서관의 비밀서고에서 본 <금서>에 적혀있었지.”

“보, 보스으! 리나에게 그런 꺼림칙한 곳에 적혀있는 이야기를 해준 거였어!?”

“무서운 이야기를 원한 건 네가 아니었는가. 난 그저 이 정도라면 너도 충분히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꺼냈을 뿐이다. 으음. 경솔하다는 자각은 있지만...”

파티원들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잘도 그런 걸 알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은 적었다.

오히려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무서운 괴이현상을 눈앞에 초래시켰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보스. 그 금서에 적힌 이야기는 저 항아리가 전부입니까?”

“미궁과 관련된 7대 금기사항이라는 책이었다. 분명 여섯 개가 더 있었겠지.”

“…….”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이런 일을 겪은 이상, 다른 금기사항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을 거니까.”

“정말로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소름이 끼쳐서 심장이 벌렁거린단 말입니다.”

쿠로는 애원하다시피 그렇게 말했다. NPC도 아닌 게이머이면서도 이런 괴기현상에는 내성이 없던 모양이다.

도로시 이지스는 아예 리나를 붙들고는 앞으로 나한테는 절대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며,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내었다.

“그보다 이 항아리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름이 적힌 사람이 죽는다면 이거 저희한테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청일의 냉정한 발언에 나는 진심으로 식겁하였다.

“정말이군.”

항아리를 버리고 가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겠지.

하지만 그 뒤는?

우연히 이 항아리를 발견한 누군가가 우연히 이름표에 내 이름을 적게 된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감히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될 거다.

“보스. 이름표에 이름이 적히면 무조건 죽게 됩니까?”

“이름이 적힌다면 두 번 다시 미궁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금서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리기아의 항아리는 미궁 내에서만 효력을 지닌다.”

“정말 끔찍한 항아리군요.”

“이름이 적힐만한 원한을 사지 않는 게 최선의 대응책이다. 이 항아리는 존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나는 위험물질이니까.”

“무언가 예방책은 없습니까?”

예방책이라.

일단은 있기는 하다. 있기는 한데...

“만일 자신의 적이 항아리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이름을 먼저 항아리에 적거나, 상대를 미궁 밖으로 유인해서 신속하게 제거하면 된다.”

청일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보스. 저희를 모두 죽이실 겁니까?”

파티원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살인멸구.

기껏 알려준 해결책의 살벌함에 흉흉한 상상이 든 모양이다.

“멍청한 녀석. 이깟 일로 너희를 버릴거면 드래곤 하트를 갈아서 만든 연단법을 너희에게 적용하려고 백보심공을 연마하라고 지시했겠느냐.”

물적 지원의 양은 신용의 크기로 직결된다.

파티원들은 간신히 안도하였다.

“허나 우리 파티가 아닌 다른 파티가 루기아의 항아리를 입수했다가는 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헉! 설마 절대지경의 반열에 접어든 보스께서도 이 항아리에 이름이 적히면 잡아먹히는 꼴을 면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렇다.”

금서의 기록에 따르면 루기아는 미궁의 중층부와 하층부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엄청난 실력을 지닌 보물사냥꾼이었다. 그런 자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나라고 다르겠는가.

미궁이 이래서 무섭다.

실력과는 별개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요소가 불쑥 튀어나오고 한바탕 피보라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몬스터 웨이브니 계층보스니 하는 것도 위험요소의 일부에 불과하다.

“보스. 그러면 저희만 입단속을 하면 이 항아리에 대한 정보가 퍼지지 않는 겁니까?”

“그렇다.”

“부술 수도 없고 누가 발견해서 해가 될 뿐이라면 차라리 들고 가는 건 어떻습니까.”

청일의 파격적인 제안에 모두가 멍청하니 입을 벌렸다.

“재수 없으면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걸 들고 다니자고!?”

“안에 찬 액체에 닿으면 바닥도 뚫리잖아!”

“항아리 들고 있다가 엎으면 즉사할지도 모른다고!”

나도 그 의견에는 동조하였다.

“루기아의 항아리 안에 차는 액체는 일종의 소화액이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식탐이 생기면 서서히 고이지. 만일 넘쳐흐르기라도 한다면 들고 있던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마냥 들고 다닐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청일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물을 바쳐야 된다.”

“다른 모험가의 이름을 쓰자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정말로 저희의 목적이 미궁공략인 건 맞습니까?”

청일은 불만을 피력했다.

“최근 들어서 흑산회는 악의 온상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륙을 호령하는 강대국이나 신흥조직이라는 사라지고 부패하고 병든 자들의 소굴이라는 말만 들려옵니다.”

“그래서?”

“마족과 손을 잡고 사악한 행보를 벌여온 알폰스 왕조를 멸망시킨 일은 좋았지만 그 이후의 행보에는 솔직히 의구심이 앞섭니다. 제가 흑산회에 들어온 건 악행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흑산회에는 왜 들어왔었지.

잘 기억나지가 않는데.

“그럼 넌 어떻게 흑산회에 들어왔었지?”

“그야..”

청일은 흠칫하며 놀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눈치를 보며 엄청나게 식은땀을 흘렸다.

“보, 보스를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뭐?”

“평범한 악행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행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니 마주치는 모험가들의 이름은 모조리 다 써버립시다.”

뭐지 이 녀석.

떨떠름하기는 해도 일단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럼 이건 네가 메고 다녀라.”

“...알겠습니다.”

리기아의 항아리는 <생물체>로 분류되는 탓에 인벤토리나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없다. 청일은 죽을상을 지으며 항아리를 짊어졌다.

리나는 빤히 청일을 노려보다가 대뜸 툭 하고 다리를 걷어찼다.

“!?”

청일은 기겁하며 자세를 낮췄다.

“뭐하는 짓이냐!”

“보스를 귀찮게 한 벌이다. 바~보.”

참 피곤하게 사는 녀석들이다.

야영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정말로 마주치는 모험가들을 모두 죽이면서 다닐 수는 없었기에 항아리는 큼지막한 보자기로 형체를 가렸다.

불필요한 호기심을 보이며 내용물을 엿보지만 않으면 정체가 들킬 걱정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에 대비해 최소한의 조치는 취했다. 파티원들의 입을 단속하며 이후 리기아의 항아리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넓은 미궁에서 다른 파티를 만날 확률은 정말로 저조할 텐데요. 특히나 저희는 몬스터들과도 전혀 마주치지 않고 있고.”

“유비무환이라 했다. 이런 일은 사전에 준비해두어야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다.”

파티원들은 순순히 납득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신속하게 안도하였다.

“아, 앞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인원수는?”

“스무 명이 넘어요.”

레이브의 말대로 한 무더기의 사람들과 B5층 통로에서 제대로 마주치고 말았다.

“우왓, 저 파티 좀 봐. 굉장한 장비잖아.”

“으허억! 구, 국왕폐하다!”

“뭣!? 공포군주가 어째서 미궁에!?”

잘도 내 얼굴을 알아보네.

모험가들은 지레 기겁하더니 대표 한 명이 다가와 인사했다.

“저희는 르블랑 공격대입니다. 국왕폐하의 은총에 힘입어 미궁 상층부에 자리한 오크굴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런가. 장래가 유망한 모험가들을 만나니 조금이나마 즐겁군. 지금은 바쁜 몸이니 먼저 지나가도록 하겠다.”

“예, 물론이지요. 저희가 길을 비켜드리겠습니다.”

모험가들은 물러났다. 우리는 앞장서서 지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통로는 비좁고 청일이 짊어진 항아리는 너무 컸다.

“…….”

모험가들은 청일을 피해 계속해서 물러났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뭔가 상황이 미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그 등짐을 풀면 되지 않습니까?”

모험가들이 서서히 등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야 의식하지 않는 게 무리일 만도 하다.

사람보다 커다란 크기인데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지.

리기아의 항아리의 희생자가 한 둘이 아니라서 크기도 금서에 기록되었던 것보다 상당히 커진 모양이다.

문제는 이걸 내려놓아도 모험가들이 지나가려면 등짐을 넘어서 가야한다는 거다.

보자기에 덮인 항아리를 건너다가 빠지기라도 했다간 끔찍한 일을 겪을 게 뻔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고 청일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했다.

“이 짐은 내려놓을 수 없다. 길이 열릴 때까지 물러나라.”

“꼴깍!”

“헉! 방금 보자기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이 미친 항아리가 침 삼키는 소리 내고 있네.

청일은 안면에 철판을 깔고 대응했다.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뭔가가 들렸다면 그건 들리지 말았어야 할 소리일 거다. 너는 정녕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다는 건가?”

모험가들은 불안해하였다.

뭔가 엮이면 안 될 일에 엮였다는 기색이 뚜렷했다.

“그래도 저 앞까지만 가면 길이 열리니 지나갈 수 있을 거야.”

공격대 대표가 대원들을 달랬다.

그렇게 갈림길에 도달했다.

보다 넓어진 통로를 앞두고 우리들은 침묵했다.

‘시발. 왜 커지는 건데.’

항아리가 커졌다.

[7대 금기 중 하나인 <리기아의 항아리>가 포악스레 덩치를 부풀립니다.]

어떻게든 저 모험가들을 잡아먹고 싶다고 덩치를 부풀리는 게 틀림없었다.

오우거도 아니고 항아리 때문에 이런 위기에 빠지다니.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항아리 졸라 무섭다.

============================ 작품 후기 ============================

겁나 센 투명항아리라 포효했다!

포효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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