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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60화 (160/224)

00160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10)

모험가들은 악마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히 지상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던 도중 낯선 파티를 발견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뭡니까? 몬스터들이 그쪽들을 쫓기라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더 심한 일을 목격했습니다.”

“더 심한 일이라고요?”

모험가들은 빌헬름 마이어의 파티와 마주쳤던 공격대였다. 공격대 대장은 손까지 벌벌 떨면서 이야기하였다.

“국왕폐하, 그러니까 흑산회 보스가 터무니없는 괴물을 이끌고 지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자들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들은 대사막지대 출신 사막도적단이었다.

모험가길드에게 국왕암살의 밀명도 받은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괴물을 데리고 있었다는 겁니까?”

“거대한 원통형의 몸체에 무수한 촉수 같은 손을 뻗어내고 있으며, 각각의 촉수는 절정고수의 검격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건 흑산회 파티의 이야기를 엿들은 겁니까?”

“엿듣기도 했고 목격하기도 한 겁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천으로 가린 걸 보면 석화의 저주라도 지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시간으로 교전이 일어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틀림없습니다.”

“허어.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놀랍군요.”

공격대 대장은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커져서인지 입이 술술 열렸다.

“문제는 그 터무니없는 괴물을 혼자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제압한 엄청난 고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괴물을? 장난감처럼 말입니까?”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절정고수의 필살검초보다 더한 위력을 격투술로 발휘하는 자입니다. 분명 지난 2년간 흑산회가 길러낸 비밀병기가 틀림없습니다.”

사막도적단의 단원들은 빠르게 의욕을 상실했다.

그런 괴물 같은 자가 보스와 함께 한다니.

자신들만으로는 도저히 암살을 실행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품은 걱정은 빠르게 사라졌다.

지상을 향해 도망치며 공격대가 마주한 모든 파티에게 같은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빌헬름 마이어를 추적하며 뒤를 쫓는 파티들은 모두 그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모험가 길드에서 파견한 정예파티들이었고, 그들은 신속하게 이해를 일치시킬 수 있었다.

“악신의 사제 수배령과 정체불명의 괴물. 거기에 더해 괴물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의문의 비밀병기의 등장까지. 손을 잡지 않고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여기는 힘을 합쳐서 단체로 급습을 해야겠군. 성공보수는 N분의 1로 한다고 쳐도 일단 그걸 우리가 이길 수는 있는 건가?”

“악신의 사제와 연관된 괴물이라 하면 어떻게 생각해도 악신의 권능이 담긴 소환물일 수밖에 없어.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자들만이 최소한의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도적단장, 수석사냥꾼, 번개주교, 거대골렘술사, 고대설인.

각 파티의 최고실력자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악신의 사제들을 박멸하는 것도 서브퀘스트로 주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괴물을 상대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시간 벌이 정도면 충분해.”

“한 명이 괴물의 발을 묶고, 다른 한 명이 괴물을 상대한 비밀병기를 붙드는 사이에 나머지 셋이 암살을 실행하자.”

다섯 실력자는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서 누가 그 괴물과 비밀병기를 묶어두지?”

“…….”

“지원자는 있을 리가 없겠군.”

도적단장이 거대골렘술사를 가리켰다.

“골렘술사는 골렘이 죽는다고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석화의 저주도 당하지 않을테니 골렘술사가 괴물을 맡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으음... 정론이군. 내키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겠다. 대신 비밀병기 녀석의 발을 묶을 사람은 내가 고르겠어.”

“타당한 이유를 댈 수만 있다면.”

거대골렘술사는 도적단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심히 이유를 생각하고는 말했다.

“비밀병기는 괴물을 산 채로 제압할 정도의 괴력을 지니고 있다. 힘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도적의 기민함으로 공격을 회피하며 다양한 상태이상으로 발을 묶어야 한다.”

“제기랄. 제일 골치 아픈 녀석을 떠넘기기야?”

“자업자득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내리자고 한 건 너였으니까. 이제 와서 못하겠다는 말 따위는 받아들일 수 없어. 나머지도 동의하겠지?”

도적단장과 거대골렘술사가 자기들끼리 난적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는데 새삼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정예파티들은 역할을 분담한 뒤, 흑산회 파티를 향한 추적을 재개하였다.

그리고 의문의 구멍과 마주하였다.

통로 한복판에 뚫린 구멍은 밑도 끝도 없이 뻥 뚫려있었다. 도적단장이 아래로 돌멩이를 던지고 1분이 지나도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청력으로는 돌이 떨어지는 소리를 감지할 수도 없겠는데. 탐지한계거리를 아득히 넘었어.”

“탐지한계거리는 얼마나 되는 거냐.”

“250m. 미궁의 일개 층 높이가 대략 20m임을 감안하면 상층부 전체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공격대 대장은 이 구멍이 괴물의 몸을 뒤집어 쏟아서 나온 액체가 뚫은 구멍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추격자들은 각자의 상상력으로 구멍이 생긴 이유를 추정하였다.

“괴물의 힘이 발휘된 흔적인가?”

“괴물을 제압한 비밀병기의 저력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는 말도 안 되게 강력하겠군.”

도적단장과 거대골렘술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뒤에서 쫓는 걸로는 불안한데. 이 구멍을 이용해야겠어.”

“뭘 어떻게 하겠다고?”

“추적은 우리 사막도적단이 없어도 속행할 수 잇겠지? 우리는 구멍을 통해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전방에 함정을 매설해두겠어. 그러면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놈들이 다른 경로로 지나간다면?”

“함정해체하고 더 밑으로 내려가서 다시 설치해야지.”

도적단장의 쿨한 대답에 수석사냥꾼이 고개를 저었다.

“사냥을 나설 때에는 사냥감을 원하는 장소로 유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우리 실력으로 몰이에 나섰다가는 단매를 맞고 다 죽어나갈 테니 전방에서 함정으로 유인을 해야 한다.”

“어떻게?”

“소리를 내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몬스터를 이용해서 길을 틀어막고 특정 방향으로의 이동을 유도하거나. 방법은 자유롭게 선택해도 된다.”

번개주교가 반짝이는 노란구슬을 하나 건네주었다.

“뇌전탄이오. 이걸 던지면 천둥이 치는 굉음이 울릴 것이니 소리를 내는 데 쓰시오. 몬스터들은 벽력같은 소리를 거대한 몬스터의 울부짖음이라 여겨 혼비백산하며 달아날 것이오.”

“거 소모품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네. 밖에 내다팔면 비싸게 팔릴 것 같은데... 아무튼 고맙게 받겠다.”

수석사냥꾼은 붉은색 호루라기를 건네주었다.

“이걸 불면 근방의 몬스터들이 강제적으로 광포화 상태에 돌입할 거다. 소리를 듣고 몰려드니 사용자가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난처한 녀석이지만.”

“이거 또 불길한 아이템을 건네주는군.”

“몬스터의 도움이 없으면 빠져나갈 틈도 마련할 수 없을 때라거나, 전방에서 혼란을 유발하고자 할 때는 쓸 만할 거다. 사용 시기는 알아서 재도록 해라.”

도적단장은 호루라기를 받아 품에 넣어두었다.

이걸로 도적단장과 거대골렘술사는 상대가 정해졌고, 수석사냥꾼과 번개주교는 유인 성공을 위해 귀중한 도구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자연스레 모두가 고대설인족을 보았고, 고대설인족은 눈치껏 묵직한 손도끼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걸 뭐 어쩌라고?”

“던진다. 머리 깬다. 식량 얻는다.”

“필요 없어.”

도적단장은 매정하게 단언했다.

“뭔가 다른 건 없나? 그런 무거운 손도끼를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

“알겠다. 다른 것 준다.”

고대설인족은 미니사이즈 손도끼를 꺼냈다.

“유아용. 무겁지 않다.”

고대설인족을 제외한 네 파티의 실력자들은 확신했다.

이 새끼는 겁나 쓸모없을 것 같다고.

아무튼 도적단장은 사막도적단을 이끌고 구멍을 내려갔다.

“계단 근처는 필연적으로 이동루트가 한정되지. 그 부근에 집중적으로 함정을 매설한다.”

사막도적단은 열심히 함정을 매설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문제에 봉착했다.

“뭐야 저 녀석들! 함정을 향해서 마구 달려들잖아!”

“멍청한 좀비들 같으니!”

“층을 잘못 잡았어. 우리들의 기척을 쫓아오고 있다고.”

이곳은 B6층이고 출몰 몬스터는 언데드.

생물체의 생기가 느껴지면 무조건 달려드는 놈들이다.

본래라면 언데드와의 교전은 그리 잘 성립되지 않는다.

B6층에 대해서는 꽤나 유명했으니까.

모험가들은 꾸물거리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B7층으로 돌파하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사막도적단은 외지출신이라서 이 정보를 미처 알지 못했고, 함정을 매설하고자 상당한 시간을 머물렀다.

덤으로 한동안 모험가들이 제거하지 못한 언데드들이 잔뜩 쌓여있던 B6층의 언데드들이 대거 이동하며 좀비란 좀비는 죄다 모여드는 꼴이 되었다.

덕분에 함정은 흑산회 파티에게 한 번 써보기도 전에 모조리 좀비들에게 걸려 발동되었고, 흑산회 파티를 귀찮게 할 수 있었던 좀비들은 사막도적단의 손에 걸려 도살당했다.

“제기랄! 귀한 함정을 이런 곳에서 모두 허비하다니.”

“이건 틀렸습니다.”

“여기서 암살은 도저히 무리다. 다음 층으로 내려간다!”

사막도적단의 1차 습격은 대실패로 끝났다.

* * *

B6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고 내려오자마자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우왓, 뭐야 이것들은...!”

주변 지형은 온통 초토화되거나 녹아내려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저 알아볼 수 있는 건 여기에 휘말렸으리라 추정되는 좀비들의 시체뿐이었다.

“앗, 잠깐. 여기 뭔가 금속파편이 남아있습니다.”

레이브가 잔해더미 사이에서 뭔가를 꺼냈다.

“상당한 고급품이네요. 전문 도적이 아니면 구하기도 힘들다고 교본에 써져 있었는데... 하지만 어째서 이런 곳에서 사용한 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의미지?”

“이거 가격이 비싸거든요. 정작 좀비는 돈도 되지 않는 몬스터들이고. 합리적인 모험가라면 이런 곳에서 이런 고급함정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레이브의 분석은 제법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과연. 타당한 분석이다.”

나는 레이브에게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어떤 상황이었기에 이런 함정이 사용된 것일지 추정해보아라.”

“으음... 좀비를 잡기 위한 목적은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다른 대상을 노렸다는 건데...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B6층에 출현하는 값진 몬스터는 없어요.”

“그렇다면?”

“몬스터가 아니라 모험가를 노린 거 아닐까요.”

“호오.”

파티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브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몬스터가 이만큼 정교한 함정을 설치했을 리는 없으니 모험가킬러가 다른 모험가들을 노리고 설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모험가를 노린 건 아닐 겁니다. 못해도 절정고수 급의 실력자를 죽이기 위한 함정입니다. 어쩌면 혹시...”

청일과 쿠로의 눈에 흉흉한 빛이 감돌았다.

“항아리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 접근한 걸지도 모릅니다.”

“상당히 위험한 비밀조직으로 추정됩니다.”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항아리를 노리는 조직이 나타난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수가 아닌가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밀스러운 활동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기에 이런 부분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쿠로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리기아의 항아리는 7대 금기이고 이름을 부르면 나타나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만, 보스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이런 항아리가 존재한다는 소문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으음. 그렇기야 하다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보스. 오래도록 항아리가 발견되지 않고 그저 우연히 소문이 돌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반면 항아리를 보관하고 격리시키던 조직이 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정말이다.

이런 위험한 물건을 제국에서 그냥 방치했을 리도 없지.

분명 지상에 갖다놓고 꽁꽁 봉인해뒀을 거다.

“그들이 항아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속하게 회수를 위해 접근했다고 추정한다면 납득이 가는 상황입니다. 그저 이번에는 운이 나빠서 좀비들이 함정을 발동시킨 것 같습니다만.”

“다음에는 이쪽이 직접 노려진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주치는 모험가들은 단 한 명도 자비를 보이지 말고 모두 제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확률로 항아리 수호조직에서 보낸 암살자일 테니까요.”

쿠로의 진지한 발언을 들으니 절로 수긍이 갔다.

“어차피 죽일 거 그냥 항아리의 제물로 바치면 안 됩니까?”

청일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주치는 모험가는 전부 항아리에 이름을 적어야겠어. 딱히 이름이 쓰인 모험가가 어떻게 항아리에 잡아먹히는지 보고 싶은 건 아니다.

============================ 작품 후기 ============================

정예파티 의문의 제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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