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1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11)
B6층의 언데드 지대를 돌파한 뒤, 사막도적단은 B7층의 늪지대에서 철저하게 함정을 설계하였다.
이번 함정은 대량의 몬스터를 몰이로 모아 상태이상으로 혼란에 빠뜨린 뒤, 뇌전탄을 던져서 몬스터들이 흑산회 파티를 덮치도록 만드는 인위적인 몬스터 웨이브 함정이었다.
작전대로 인기척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뇌전탄을 터뜨렸고, 몬스터들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지금이다. 몬스터들의 틈에 파고들어서 단숨에 기습을...!”
“어어어!?”
“도, 돌아옵니다. 몬스터가 이쪽으로 달려와요!”
몬스터들은 180도 방향을 꺾고는 도적단에 달려들었다.
“번개사제단 녀석들! 우릴 속인 건가!”
뇌전탄의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도 효과는 제대로 발동하였다.
다만 이 계획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빌헬름 마이어가 보유한 독보적인 카리스마 수치는 천둥소리보다 더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몬스터들의 생존본능을 가차없이 자극해대었던 것이다.
뇌전탄이 대형괴수로 여겨진다면 빌헬름 마이어의 존재감은 대형괴수를 밥 먹듯이 잡아먹는 마룡 급에 해당했다.
자연스레 사막도적단은 자신들이 준비한 함정에 빠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크윽. 분하다.”
“단장님. 흑산회 파티에서 저희를 쫓아오지 않을까요? 뇌전탄에 더해 교전이 일어난 소리까지 들었을 겁니다.”
이만한 소란이 일었으니 저쪽도 섣불리 접근하지는 않겠지. 미궁의 모험가들은 노골적인 소란을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니까.”
단장은 지극히 상식에 근거한 사고대로 판단을 내렸다.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흑산회 파티원들은 미궁에 들어선 이래로 단 한 번도 몬스터를 마주하지 못했으며, 어떻게든 칼질 한 번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앗! 모험가다!”
“이런 곳에 모험가가...?”
부리나케 달려온 자들은 리나와 쿠로였다.
단장은 망했다며 두 눈을 질끈 감으려다 이를 악물었다.
‘아니,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러.’
사막도적단장은 필사적으로 웃는 낯을 띠며 일반 모험가인 척 연기를 했다.
“오! 신이시여.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겪던 저희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보내주시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응?”
“이런 미궁 깊은 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 아닙니까. 사례는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리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냅다 단검을 던졌다.
퍽!
사막도적단장은 간신히 피했다.
그렇지만 뒤에 있던 단원은 단검을 피하지 못했다.
단원은 꺽꺽 소리를 내며 목을 부여잡다가 그대로 즉사했다.
“아니, 뭘 하는 건가?”
리나의 돌발행동에는 쿠로마저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막도적단장은 간신히 안도했다.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되어 선제공격을 당한 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말은 모름지기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이어지는 쿠로의 말을 듣자 절로 이가 덜덜 떨렸다.
“보스께서는 저놈들을 제물로 바치자고 하지 않았나.”
“힝. 그치만 리나도 오래 참았는걸. 아직 여섯 명이나 남아있는데 두 명쯤 죽어도 별로 상관없지 않아?”
“차라리 보스의 허락을 받고 죽이는 게 낫다고 본다.”
“쳇. 쪼잔하기는.”
“…….”
단장은 다급히 붉은 호루라기를 불었다.
몬스터들을 강제로 버서커 상태에 빠지게 하며 집결시키는 아이템이지만 정작 모여드는 몬스터는 없었다.
인근의 몬스터란 몬스터는 모조리 모아서 몬스터웨이브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빌헬름 마이어의 존재감이 워낙에 거대한지라 몬스터들도 분노조절을 잘할 수 있었다.
“순순히 잡혀줄까보냐!!”
단장이 모래주머니를 풀어헤치며 망토를 크게 펄럭였다.
갑작스레 불어닥치는 강풍.
휘몰아치는 모래바람과 너울거리는 망토자락의 너머에 있어야 할 단장의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와! 정말 빠르네. 이거 몇 시간 수련했어?”
“!?”
기껏 이중으로 시야를 차단하며 위장포까지 동원한 삼중 은신술을 펼친 게 무색하게 곧바로 들켜버렸다. 단장은 기겁하며 벽으로 위장하며 뒤집어쓴 위장포를 벗어던졌다.
휘리릭! 팍!
모래바람을 뚫고 독특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든 수리검들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리나의 양옆으로 지나쳤다.
“그만둬! 너희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롱?”
리나가 장난스레 양 손을 펼치자 빗살처럼 날아든 수리검과 함께 두 번의 비명이 울렸다. 찰나 간에 암기를 피함과 동시에 와이어를 매달고는 적의 암기로 적을 암습한 것이다.
격이 다른 움직임 앞에 사막도적단원들은 순식간에 모두 제압당하고 말았다. 단장은 벌벌 떨기만 할뿐, 저항하려는 의지마저도 사라졌다.
‘이것이 정녕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실력이란 말인가!?’
실력이 뛰어나기에 느끼는 절망도 더욱 컸다.
리나는 독보적인 암살자다.
사막도적단이 동시에 덤벼도 이길 수 없는 강적이었다.
“보스! 리나가 모험가들을 잡았어!”
도적단은 포로라는 원치 않는 상태로 흑산회 파티와 조우하고 말았다.
빌헬름 마이어는 소문대로의 나른한 눈을 지녔으며, 동시에 섬뜩한 위압감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는 도적단을 내려다보며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의 소음은 뭐였지?”
“저희가 터트린 뇌전탄입니다. 나쁜 마음을 품었던 건 알고 있지만 제물이 되어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저희가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 참 희한한 도적단이군. 보통은 살려달라는 애원을 하던데, 자살을 하게 해달라며 애원을 하다니.”
단장은 애가 타는 기분을 느꼈다. 빌헬름 마이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침묵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괜스레 눈을 마주치기가 무서워 시선을 돌렸더니 더 끔찍한 걸 목격했다.
“억! 저, 저 사람은!!”
“내 아내의 유모를 알고 있나?”
“대사막에서 사막도적단을 반파시킨 의문의 여고수 아닙니까.”
“뭐? 아아. 야외훈련을 하던 유모에게 걸렸던 건가.”
“야, 야외훈련!? 사막도적단을 반파시킨 그게 훈련이었다니!”
단장의 경악에도 빌헬름 마이어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가. 모험가가 되어 미궁에 내려오고 끝내 자살을 하게 될 정도로.”
“네…….”
“딱한 녀석들이군. 마주치는 모험가는 전부 제물로 바치려고 했었지만 이건 묘한 책임감마저 느껴지니 원.”
단장은 그저 무서웠다.
그냥 아무것도 안 바라고 자살만 하게 해달라는데 왜 자꾸 말이 길어지는 건가.
나른한 오후의 잠을 깨워줄 커피 한 잔을 홀짝이듯, 빌헬름 마이어는 그런 겁먹은 단장의 반응을 찬찬히 즐기고 만끽하는 것처럼 우산을 까딱거렸다.
“좋다.”
장고 끝에 그가 결론을 내렸다.
“너희는 살려주지.”
“흐끅.”
“아니, 살려준다는데 왜 울어?”
기어이 자신들을 제물로 바칠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는 게 멈추지를 않았다. 능청스레 내뱉는 말에 단장은 엉엉 울며 혀를 질끈 깨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나가 슬쩍 다가와서 목을 콕 찔렀다.
“컥!”
“아하핳. 보스가 살려준다니 혀를 씹을 정도로 기뻤던 거야?”
“어엉.. 흐어엉..”
사막도적단은 곧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처럼 패닉을 일으키며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 * *
리나가 모험가들을 잡아왔는데 상태가 좀 이상하다.
상태가 이상하달까, 좀 불쌍하다.
“저희가 터트린 뇌전탄입니다. 나쁜 마음을 품었던 건 알고 있지만 제물이 되어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저희가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뇌전탄이 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번개탄이잖아.
밀폐된 공간에서 툭 까면 질식해서 죽는 그거.
‘어차피 죽으려고 한 놈들이니 제물로 바치려고 했는데... 이놈들은 자살하려다가 몬스터들이 몰려와서 실패하고, 그걸 건져내서 또 제물로 바치려는 상황인 거잖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보스 플레이를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은 좀 곤란하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쟤네들 너무 불쌍하잖아.
“억! 저, 저 사람은!!”
“내 아내의 유모를 알고 있나?”
“대사막에서 사막도적단을 반파시킨 의문의 여고수 아닙니까.”
심지어 유모가 박살낸 도적단이란다. 아니, 두들겨패지는 않았던가. 비교적 초기에 상대했으니 그 때의 유모는 지금처럼 인외의 형태에 가깝지도 않고, 신체능력도 많이 낮았겠지.
그렇다고 멀쩡한 도적단을 반토막 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강해진 유모가 흑산회 파티에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품고 있겠지.
따지고 보면 얘들이 자살이라는 선택을 내리게 된 것도 내가 유모에게 야외훈련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가. 모험가가 되어 미궁에 내려오고 끝내 자살을 하게 될 정도로.”
“네…….”
“딱한 녀석들이군. 마주치는 모험가는 전부 제물로 바치려고 했었지만 이건 묘한 책임감마저 느껴지니 원.”
나는 고민 끝에 자비를 베풀기로 결정했다.
“좋다. 너희는 살려주지.”
“흐끅.”
“아니, 살려준다는데 왜 울어?”
좀 있으니 혀를 씹고 대성통곡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번개탄을 터트릴 때 가스를 좀 마셨나?
심신미약에 감정과다, 정신이상 증세가 보인다.
“일단 혀를 깨물지 못하게 재갈을 채우고, 멋대로 자살하지 못하도록 사지를 결박해둬라.”
파티원들은 벌벌 떨면서 저항하지도 못하는 도적들을 붙잡아 천으로 재갈을 물리고 사지를 묶었다. 졸지에 사막도적단의 생존자 여섯 명은 흑산회 파티에게 산 채로 포획 당하였다.
“보스. 이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음.”
“미궁탐사를 속행하려면 이들을 버려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사사로운 정에 휘둘려 미궁에 진입한 목적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쿠로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다.
나라고 언제까지고 얘들을 묶어 두지는 않을 거다.
사제들의 치유의 힘으로 정신만 회복시키고 풀어줄 생각이다.
마침 정식파티원도 아니고, 발언권도 없지만.
줄곧 쥐 죽은 듯이 입 꾹 닫고 따라오는 사제가 둘 있다.
바로 톡쏘는엘프와 탕쏘는엘프였다.
“너희들. 이놈들을 치료해라.”
“외상은 포션을 부으면 되지 않습니까?”
“정신이상을 고치란 말이다.”
“정신치유의 주문은 안 배웠는데요.”
“…….”
하여간 쥐뿔만큼도 쓸모없는 새끼들이다. 괜히 줄곧 무시하고 말도 안 걸었던 게 아니라니깐.
결코 도무지 쓸모가 없는 놈들이라서 존재 자체도 잊고 있다가 지금 막 필요한 일이 생각나서 떠올려낸 게 아니다.
“모험가길드 증표를 조작하면 습득 자격을 달성한 직업스킬을 배울 수 있다. 본래는 신전을 방문해서 직접 전수를 받아야 하지만 충분한 자격만 있으면 증표로도 바로 습득할 수 있지.”
스킬포인트를 말하는 거다.
NPC는 스킬포인트의 존재 자체는 모르지만 레벨이 오르면 스킬포인트가 자동분배 되거나 일정량 비축되기도 한다. 습득한 스킬들이 모두 성장한계치에 도달했을 경우의 일이다.
이때, 새로 습득하고 싶은 스킬을 모험가길드 징표 등을 통해 접하게 되면 스킬포인트가 자동분배되며 자동습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 그거.”
두 게이머가 무진장 곤란해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악신의 사제 직업 얻으려고 관련스킬을 왕창 배웠는데요.”
“저희들은 아마 스킬잠재력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스킬포인트를 전부 꼬라박았다는 말이다.
“귀찮은데 그냥 죽여 버릴까...”
“!!”
“1?”
넌지시 중얼거리자 톡쏘는엘프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호오?”
“버스 태워주세요!”
“......뭐?”
“저희들 레벨 좀 올려주세요!”
레벨 올려서 스킬포인트를 만들어달라는 말이다. 살다 살다 흑산회 보스인 나한테 버스를 태워달라는 게이머를 만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귀찮음을 무릅쓸 필요가 있는가. 싹 다 죽이면 되는걸.”
“그, 그래도 저희 레벨이 오르면 교단본부의 위치를 감지하는 능력이 조금이나마 정교해집니다!”
“으음.”
“게다가 저 도적들이 불쌍하기도 하잖아요?”
“어쩔 수 없군.”
애초에 이번 미궁탐사를 시작한 목적도 악신의 교단을 찾아가 악신의 인정을 받는 거였으니까. 두 머저리의 레벨을 올려주는 건 서브퀘스트 정도로 생각하자.
레벨만 올리면 도적들의 심신미약도 금방 치유할 수 있다. 두 사제의 레벨을 올릴 때까지만 도적들을 데리고 다녀야겠다.
심신미약 상태에 빠진 불쌍한 도적들을 버려두고 가는 것보다 다소의 귀찮음을 무릅쓰고 데리고 다니는 게 양심의 가책도 덜 느끼고 좋지 뭐.
흑산회 보스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간만에 착한 일 좀 하는 거잖아?
나쁜 짓 하고 교회에 헌금하는 기분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 작품 후기 ============================
[추천구걸코너]
"추천주세요!"
"뭐?"
"추천 좀 눌러주세요!"
추천을 눌러서 베스트지수와 수입을 올려달라는 말이다. 살다 살다 추천구걸을 하는 작가를 볼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귀찮음을 무릅 쓸 필요가 있는가. 다음 화로 넘어가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추천을 누르면 작가의 기분이 좋아지고 글이 더 재밌어질지도 몰라요!"
"으음."
"게다가 작가가 불쌍하기도 하잖아요?"
"어쩔 수 없군."
이런 마음 약한 태도가 차가운 도시 독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래도 간만에 어장에 갇힌 작가에게 떡밥을 주는 거잖아?
간만에 내 작가에게만 따스한 도시 독자가 되는 기분으로 흔쾌히 추천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