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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64화 (164/224)

00164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14)

지난 3일간 우리 파티는 맹렬한 속도로 전진을 거듭하여 B10층을 돌파하였다. B8층과 B9층, B10층은 워낙에 거대한 플로어였기에 각 층당 약 12시간, 12시간, 이틀이 소요되었다.

계층보스가 토벌되었기에 덤벼드는 몬스터는 딱히 없었다. 유일하게 예외라면 B10층을 지날 무렵, 최종관문 근처에서 석상인 척 하고 있던 골렘들이 막 일어난 거였지.

겁나 놀란 유모가 비명을 지르면서 들고 있던 여도적들을 내려놓고 주먹으로 빡 후려치는데 골렘 세 마리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서 산산이 흩어졌었다.

“…….”

다른 파티원들이 뭔가를 할 여력도 없었다. 분노한 유모는 단숨에 모든 골렘을 때려눕혔고, 사제들은 기여도가 제로였기에 파티경험치도 습득하지 못했다.

“보스. 미궁 속에 왜 사막 같은 게 있는 거야?”

B10층은 사막 플로어였다.

토질 자체가 단단한 암반에서 모래지대로 변하였고, 지하 깊은 곳으로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부터 이따금 바람이 불어 닥쳐 모래바람이 흩날리기도 했다.

인공태양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대한 태양구슬도 천정에 박혀있었기에 시야확보도 가능했으니, 미궁답지 않은 인위적인 구조에 리나가 의문을 표하는 것도 당연했다.

“미궁 깊은 곳에는 지능을 지닌 종족들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정말로?”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종족들도 본래는 지저에 살던 종족들이다. 사악한 위습이나 개구리의 형체로 이족보행을 하는 프루그족처럼 마법을 잘 다루는 놈들도 있지.”

“그럼 사막 천장에 달린 태양구슬도 미궁에 사는 사악한 종족들이 만든 거야?”

“그렇다.”

리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기색이었다.

“걔들은 마기를 먹고 살잖아. 뭐가 좋다고 지상에 올라와서 가끔씩 얼굴을 보여주는 거야?”

“동족간의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마기가 충만하지 않은 곳에서 살 수 있는, 혹은 호기심 많은 개체들이 지상에 올라오는 거다. 애초에 우리가 녀석들을 탓할 입장도 아니지.”

“어째서?”

“우리야말로 지상에 사는 인간이면서 미궁에 오지 않았나.”

“아.”

따지고 보면 녀석들은 마족계의 모험가 같은 존재다.

동업정신을 느끼면 느꼈지, 멍청하다고 욕할 관계는 아니다.

그런 짓을 해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밖에 되지 않는다.

”레이브는 잘도 이런 곳에서 길을 찾네.”

“계층보스가 토벌되어서 상층부 난이도가 쉬워진 덕분이다.”

“플로어가 달라지면 바로 어려워져?”

“그렇다.”

“그건 어떻게 구분해?”

“생태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1개 층씩 플로어를 구분 짓는다.”

그래서 초보 모험가들의 사망확률이 높다.

B3층은 안전해! 하고 고블린 사이를 빨빨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비슷한 환경의 B4층에서 내려온 오크가 크와앙 하고 덤벼들거든.

적어도 아래로 두 개 층은 감당할만한 실력이 있어야 안전하게 파티사냥을 할 수 있다.

“그럼 우리 파티의 실력은 어디까지 통용돼?”

전작 기준으로는 B28층까지는 먹힌다.

미궁은 상층부와 중층부, 하층부가 각각 10층으로 구성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심층지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층은 전부 공략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운만 좋으면 B30층까지도 가뿐하게 돌파 가능할 거다.

다만 그 이후는 얘기가 다르다.

심층지대 이전과 이후는 연옥과 지옥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감부터가 다르고, 난이도는 더욱 극단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미궁은 심층지대부터가 시작이다.

“하층부 초입까지는 먹힐지도 모르겠군.”

“에에? 고작 그것밖에 안 돼?”

“중층부의 계층보스를 이기지 못하면 그조차도 안 된다.”

문제는 그마저도 전작의 기준이라는 거지.

미궁세계는 미궁도시보다 어려워졌다.

세계관은 평화에 찌들었고, 미궁공략은 오래도록 미뤄졌다.

당연히 미궁 안 몬스터들의 생태계는 보다 정교하고 살벌하게 변화했으며, 몬스터들은 양질의 발전을 이루었다.

인간의 지식이 닿지 않는 미지의 탐사지대는 더욱 더 늘어났고, 과거의 기록도 신뢰할 수 없는 오랜 공백도 존재한다.

수많은 불확정요소가 늘어났으니 미궁 중층부라도 방심할 수는 없다.

“못 믿어! 몬스터들은 전혀 덤벼들지 않는 걸!”

“…….”

분명 99에 도달한 카리스마 능력치 때문이다.

“그 사실에 불만을 품기보다 안심하는 게 좋을 거다.”

“어째서? 리나는 전혀 피를 보지 못했는걸! 이런 거 싫다구! 라마단 기간처럼 짜증나잖아!”

“...암살을 하지 못하는 걸 종교적인 금식기간에 빗대지 마라. 재수 없게 밀교의 법승들의 귀에 들렸다간 금강정경에 맞고 호된 꼴을 당하게 될 거다.”

“밀교의 법승들이 그렇게 강해?”

“듣기로는 12성의 금강정경에 직격으로 맞으면 코끼리도 내장이 전부 파열되어서 즉사한다더군.”

리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꽤나 간만에 보는 ‘나 지금 초 감탄했어!!’ 눈빛이다.

“그밖에 주의해야 할 건 또 있어?”

“라마단 기간에 먹는 걸로 놀리지 말고 이성을 가까이 하게 해서도 안 되겠지.”

“이성은 왜? 먹는 것만 안 된다면서.”

“강성 법승들은 다른 의미의 먹는 것도 안 된다면서 금욕생활을 추구하더군.”

“좋았어! 그럼 마구 소문을 내서 법승들을 유인한 다음에 핑크색 로브를 입은 리나가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솜사탕을 맛있게 먹어줘야지!”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괴상한 결론이 나오는 걸까.

나는 진심으로 의문을 피력했다.

“네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생각으로 내린 결론이냐.”

“리나는 강적을 죽이는 게 좋아! 그치만 싸울 마음도 없는 상대를 죽이는 건 시시해! 그러니까 밀승이 싫어하는 짓을 전부 해서 유인한 다음에 싸울 마음이 들 때 암살할 거야!”

“핑크로브를 입고 솜사탕을 먹으며 주변을 얼쩡거린다는 결론은 무슨 이유로 나온 거냐.”

“솜사탕은 맛있잖아? 분명 산나물이나 먹는 멍청하고 야만적인 법승들의 식욕을 자극하겠지! 솜사탕의 맛을 알게 된 법승들은 분명 크게 괴로워할 게 틀림없어!”

“…….”

“게다가 리나는 귀엽잖아? 핑크색로브는 더 귀엽고! 분명 굉장한 미인계가 될 거야! 시골의 못생긴 우중충한 계집들과 달리 귀엽고 아름답고 핑크한 리나는 땡중들의 금욕을 방해하겠지!”

가끔씩 리나의 밑도 끝도 없는 순수함이 부러울 때가 있다.

묘한 부분에서 감수성이 남아있단 말이지.

세상물정 모르고 암살만 하면서 살아서 그런 건가.

“헉…….”

어째서인지 레이브가 얼굴을 붉히면서 침을 흘리고 있다.

일단 이 녀석은 식욕과 성욕을 모두 자극받은 것 같다.

리나는 저거 보라며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중학생 나이의 소년을 유혹했다고 진지하게 기뻐하지 마라, 이 얼간아...’

한 마디 해주려다가 간만에 으쓱거리는 모습을 보니 혼낼 마음도 사그라졌다.

“아무튼 ‘문’을 넘은 다음부터는 중층부에 진입한다.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문을 넘으면 뭐가 달라져?”

“마기의 농도가 다르다. 몬스터들의 흉포함과 진화수준이 다르고, 모든 능력치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때는 위에 있는 놈들이 문을 박차고 내려와? 그럼 부서진 문은 어떻게 다시 달려? 그보다 저거 누가 만드는 거야?”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모른다.”

“...정말로?”

“정말로.”

“뭔가 실망이네...”

“나라고 뭐든지 다 아는 건 아니다.”

대충 게임시스템으로 알아서 만들었겠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설마 드워프들이 망치질 하면서 문짝 달고 있겠냐.

“여기가 진입로에요, 보스!”

레이브의 안내를 따라 피라미드 내부에 진입했다. 계층보스 파라오가 머무르던 거대한 관 뒤쪽이 출입문일 거라며 정확한 길 안내를 받았다.

땅! 땅! 땅!

그런 시큰둥한 느낌으로 진입로에 갔더니 문짝에 대고 망치질을 하는 드워프가 있었다.

‘진짜로 있는 거였냐!?’

리나가 드워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보스! 저걸 봐! 벽돌처럼 납작한 애들이 문을 달고 있어!”

“벽돌이 아니라 드워프다.”

“우왓, 정말? 대단해! 드워프는 내 인생 처음이야!”

저런 못생긴 드워프가 네 인생의 처음이어도 괜찮은 거냐.

엄청나게 기뻐하고 있네.

물론 듣는 드워프는 기분 다 상했겠지만.

“시부럴! 또 인간들이냐!”

드워프는 대뜸 욕설을 내붙으며 망치를 치켜들었다.

“귀찮게 굴지 말고 썩 꺼져! 봉인문을 제대로 붙여두지 않으면 미궁의 마기가 마구잡이로 풀려나간다고!”

“아니 이놈이 어디서 감히 보스에게 욕질이야!”

“억!”

리나의 단검이 드워프의 심장을 관통했다.

[리나가 드워프를 사살했습니다.]

뭐하는 짓이냐아아아아!

“보스? 리나 잘해쪙?”

문답무용으로 죽여 버리면 어쩌자는 건데.

방금 엄청 중요한 말 했잖아.

봉인이 어쩌고 마기가 풀려나고 어쩌고 말했다고.

“보스?”

저거 죽으면 봉인문인지 뭔지는 앞으로 누가 다는 거지.

저거 못 달면 미궁 상층부 난이도가 상승하는 건가.

브람 시의 초보 모험가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건가.

“보오스으?”

대신 달아줄 다른 드워프는 있는 건가. 혹시 저놈이 봉인의 일족 최후의 생존자 같은 컨셉이었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초보 모험가들은 브람 시에 영입되지 않고, 과도하게 높아진 악명 탓에 모험가들의 발길은 점점 끊기고,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금지로 지정되어서 제국처럼 망해버리겠지.

마이어 왕국은 동력을 상실하고, 흑산회는 지리멸절해지며 미궁정복이라는 숙원을 이룰 수 없는 나를 하찮게 여기며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진 끝에 용사에게 토벌을 당하는 결말이...

“얍!”

리나가 장난스레 볼에 뽀뽀를 하자 정신이 확 들었다.

“멋대로 무슨 사고를 저지르는 거냐!”

나는 주먹으로 리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HP가 10 줄어듭니다.]

분노의 일격에 HP가 깎였다.

내 HP가.

리나의 체질은 높고 내 근력은 낮은 탓이었다.

“아하핳!”

솜방망이 체벌에 리나는 해맑게 웃으며 기뻐했다.

내가 방금 장난이라도 한 줄 아나보다.

한순간 정색하며 화낼지 고민했지만 얌전히 단념하였다.

역시 리나는 무섭다. 그보다 싸이코가 무섭다.

‘보스는 좋지만 날 혼내는 보스는 싫어!’라면서 단검으로 푹 찌르면 억 하고 죽어야 되잖아.

싸이코를 혼내는 건 목숨이 몇 개라도 위태로운 미친 짓이다.

특히나 2년 간 파워 업한 이후라면, 심지어 암살금단증세에 시달리는 리나라면 더욱 그렇다.

담배도 금단증세가 일면 엄청나게 미치는데 암살에 금단증세가 일면 인간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

그런 건 당연히 알고 싶지도 않고 겪고 싶지도 않다.

“낭군님. 떨어진 문이 곤란하다면 제가 붙여볼까요?”

“으음. 부탁한다, 도로시.”

“이런 걸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쁠 따름이에요.”

도로시는 망치를 들고 문을 쾅쾅 두들겼다.

구구궁... 쿵!

문은 기울어져서는 바닥에 엎어졌다!

“뭐하는 짓이냐?”

“죄,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 손재주로는 무리인 것 같아요.”

일이 더 늘었다.

“아가씨가 이 문을 올바로 붙이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저주 때문에 남편에게 잘보이고 싶은 행동은 전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생활의 저주보다 후손을 낳을 때까지 생존하는 저주가 더 강해서 회피탱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국이다.

유모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도로시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돕는 거다.

“그러니 이 유모가 아가씨를 대신해서 문을 붙여보겠습니다.”

“으음. 손재주는 있는가?”

“물론입니다.”

“좋다. 그럼 네게 봉인문을 다는 임무를 내리겠다.”

“이런 일쯤은 간단하게 끝내겠습니다.”

유모는 문을 들고는 구멍에 대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손바닥으로 문을 가격하였다.

키이이이잉─

콰직! 콰지지직!

콰장창창!

굉장한 소리를 내며 문 위로 몇 개인가의 마법진이 떠오르다가 박살났다. 덤으로 봉인문은 정 중앙에 커다란 손바닥 자국으로 쇠가 뚫려서 박살나고 말았다.

“…….”

방금 그건 뭐였지. 여래신장인가.

아무튼 유모는 끝내버렸다. 봉인문의 봉인을 끝장내버렸다.

============================ 작품 후기 ============================

받아라, 여래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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