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1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21)
동기화 비율의 봉인을 풀었다.
그 결과, 현재 동기화 비율은 무려 90%에 도달했다.
감각, 감정, 행동.
이 모든 것이 반영됨에 있어서 90%의 가산이 주어진다.
이는 반드시 강점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다. 고통도 90%나 느껴지고, 내 심리를 NPC들이 읽을 수도 있으며, 모든 상태이상으로부터 초연하게 행동할 수도 없다.
마약중독자처럼 멍한 상태로 있는 초보자 모드에서 현실이나 다를 바 없는 리얼 서바이벌 모드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휘하던 카리스마도 이제는 인위적으로 끌어내야 하며, 고통은 정신력으로 참고 감정 또한 직접 드러내거나 참아야만 한다. 이 방면의 시스템의 보조는 이제 사라졌다.
“보스가 리나를 봐줬어! 보스가 리나를 위해줬어! 보스가 리나를 총애한다고 했어!”
그 대신 리나의 충성을 얻었다.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얻은 적이 없었던 절대적인 충성을.
[리나의 충성도가 최대수치(100)에 도달했습니다. 리나의 당신을 향한 충성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충성요소 : 복수심, 야심, 애정, 총애, 총애]
[리나는 세상을 향한 당신의 복수심과 미궁정복이라는 야심, 자신에게 주어지는 애정과 총애가 있을 때에 한해 한계를 넘어선 기량을 발휘합니다.]
[Tip> 충성도 및 호감도가 최대 수치인 100에 도달하면 해당 인물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거나 호감을 품은 상태입니다. 이 수치를 한 번 달성하면 결코 수치가 감소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세계 최초로 한 사람에게서 절대적인 충성을 받아내었습니다. 최초달성 보너스로 절대적인 충성심을 품은 대상이 당신을 위해 하는 모든 행동에 2배의 보정을 제공합니다.]
[리나의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피버 타임(FEVER TIME) 발동!]
[보스가 중대한 위기에 처한 상황으로 인해 리나의 전투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리나가 상태이상 ‘얀데레(Lv Max)’일 때의 각성 전투력을 부여받습니다.]
[상태이상 ‘얀데레(Lv Max)’의 세부효과에 의해 리나가 ‘통각무시’, ‘육감:초직감’, ‘인지단위:플랑크’, ‘사선 감지’, ‘이성적 광폭화’, ‘초인적인 반사신경’ 외 34개의 효과를 부여받습니다.]
지금 리나의 충성도는 최대 수치인 100이다.
충성도 100은 감소하지 않는다.
한 번 달성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안 내려간다.
심지어 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얀데레로 흑화되면 얻는 버프효과를 임의로 끌어낼 수 있다.
종말의 악신이 심어둔 얀데레의 이점만 쏙 빨아먹고 단점은 전부 회피하는 최상의 결과였다.
리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진심이라는 것도 가끔은 드러내는 보람이 있군.’
마냥 계산적으로 굴었다면 절대 이런 결과는 얻지 못했다.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동시에 나와 리나가 서로를 아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궁탐사라는 대업의 성공률을 낮추는 것조차 감수할 정도로.
날 지키겠다는 의지만으로 잠재능력을 개화시킬 정도로.
“보스는 약해졌어! 그만큼 리나가 분발하지 않으면 안 돼!”
리나가 암기를 흩날리자 몬스터들이 수십여 마리씩 쓰러진다.
엄청난 괴력에 의해 살점을 관통하고도 힘이 남은 거다.
통상 암기투척이 광역기나 다름없는 결과를 만든다.
“보스가 맞았어! 리나는 자력으로 광역기를 습득했어! 보스는 리나를 믿었던 거야!”
기쁨에 가득 찬 외침에 양심이 콕콕 찔린다.
그래도 이 정도는 선의의 거짓말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보다 사실을 실토한 뒤에 일어날 결과가 무섭다.
실시간으로 얀데레 파워 쓰고 있잖아.
이건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로 삼고 있어야겠다.
“리나의 잘못으로 보스가 힘을 잃었으니까! 리나가 보스만큼 강해지지 않으면 안 돼!!”
날카로운 와이어가 번뜩인다 싶더니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토막 난 채 우르르 쓰러진다. 손짓 한 번에 수십 마리씩 떼죽음을 당하는 광경은 사뭇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Wave 5. 플로어보스 출현!]
[10m급 거대 타란튤라가 타란튤라 군단과 함께 등장합니다!]
타란튤라를 10m 크기로 확장시킨 거대 타란튤라가 나타났다. 여덟 개의 다리는 기둥보다 굵고, 솜털은 성인남성의 팔다리만한 크기의 흉측한 촉수처럼 뻗어 나와 있다.
큼지막한 턱과 눈알에 이르러서는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하다 못해 인간이 지닌 원초적 공포심을, 선사시대에나 느낄법한 생존본능과 종족본능을 자극한다.
“보스라면 이깟 거미쯤은 두려워하지 않아!”
쾅! 쾅!
대지를 짓밟는 거대한 여덟 개의 다리를 피하며 리나가 홀연히 사라졌다. 아니, 육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기민하게 거대거미의 몸을 타고 오르는 거다!
거미의 발아래에서 시작해서 첫 번째 마디, 두 번째 마디, 몸통 옆, 몸통 위, 머리 위로 얼핏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보스라면! 이깟 거미는 일격에 해치워!”
파가가가각!
거대 타란튤라의 몸체가 잘게 썰린 두부처럼 무너진다.
무자비한 와이어 액션이 펼쳐낸 결과였다.
“역시 보스는 대단하시네. 힘을 잃기 전에는 일격에 저 거미를 해치울 수 있었던 건가...”
“보스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리나 누나의 역량도 놀라워요.”
“아직 멀었습니다. 보스라면 저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1초 만에 살해했을 겁니다.”
모자이크녀와 레이브, 유모가 저마다의 감정을 담은 시선으로 나와 리나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좋게 봐주는 건 고마운데 날 도대체 무슨 인체병기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카이사르의 추억보정 받은 가토보다 몇 배는 더 심하잖아. 저딴 거 인간이 1초 만에 살해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데챠아아앗!”
“구아악!”
“갸아아악!”
타란튤라들이 학살당하자 다음 웨이브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저것들 앞이 아니라 뒤로 달리는데요!?”
“버서커로 생긴 분노가 강제로 조절된 것 같습니다만!?”
“겁먹었군요.”
세 사람의 말대로 몬스터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나는 멈추지 않았다.
“보스라면 이럴 때 멈춰 서지 않아! 한 번 이를 드러낸 적은 반드시 몰살시켜야 해!!”
“잠까아아안!! 네 보스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고. 뭘 학살 스위치가 켜져서 카이사르처럼 미쳐 날뛰려고 하는 거냐!”
“보스... 힘이 약해졌으니 예전처럼 냉혈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리나가 무리하지 않도록 신경 써주려는 거지? 그치만 그런 약한 모습이 리나는 더 보기 괴로워!”
아, 이건 틀렸다.
리나는 완전히 마이페이스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보스가 리나 때문에 냉혈한 성미를 죽이지 않고 자신 넘치게 살 수 있도록 해줄게! 보스가 죽이고 싶은 놈들은 리나가 다 죽여줄게! 그러니까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어야해?”
“전혀 안심되지 않는다! 몬스터를 때려죽이는 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의 목표는 전원 무사히 미궁에서 탈출하는 것. 도망치는 놈들은 외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말해도 리나는 전혀 위안이 안 된다고! 보스의 본심은 리나가 제일 잘 알아!”
“내 마음을 어째서 네놈이 가장 잘 안다는 거냐!?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난 지금 여기서 나가고 싶다!”
“틀렸어! 보스는 힘이 없어서 무기력해지니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거야! 리나가 적을 모조리 쳐 죽여서 피바다를 만들어줄게! 그걸 보면 보스도 본심을 깨달을 거야!”
리나가 기운을 되찾은 건 좋지만 이건 100%를 아득히 넘어서 5000%쯤 기운을 찾아버렸다. 어찌나 혈기가 왕성한지 피바다를 만든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안쪽의 피만 넘치는 게 아니라 바깥쪽의 피까지 넘쳐흐르게 할 마음으로 만땅이잖아.
[Wave 6. 몬스터 군단(도주)]
[중층부 몬스터들이 전체 퇴각을 실행합니다.]
리나는 기거이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쫓아나갔다.
벌써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어디까지 쫓아가서 살육을 벌일지 상상조차도 안 된다.
“유모. 미안하지만 리나를 쫓아가줬으면 한다. 저 녀석, 뭔가를 죽이는 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머저리라서 저대로는 분명 큰 곤란에 처하게 될 거다.”
“목표는 구출입니까?”
“그렇다. 가급적이면 사지 멀쩡하게 무사히 구출했으면 한다. 괜히 나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서 수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는 꼴을 봤다간 속이 뒤집힐 것 같으니까.”
유모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변하셨군요.”
“내가?”
“예전의 보스라면 그런 약한 말은 하지 않으셨겠지요.”
“자신의 마음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을 뿐이다.”
“그럼 저도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좋다. 부담 없이 말해라.”
“도로시 아가씨도 리나 아가씨처럼 아껴주셨으면 합니다.”
“그녀에게는 아직 저주가 남아있다.”
“불행한 결혼생활이 될 거라는 저주 때문에 부부 사이가 긴밀해지지 못한다면, 아내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겁니다.”
“으음...”
유모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보스는 제가 본 남자들 중에서 가장 강한 남자입니다.”
인류최강자일지도 모르는 여자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서 그런지 엄청난 박력이 느껴진다. 잠깐이지만 나도 모르게 무심코 내가 그렇게 강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라면 분명 저주로 인해 닥쳐올 위험정도는 간단히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이지스 가에 남겨진 저주는 저주를 이겨낼 정도의 배우자를 만나면 해결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런가. 그녀에게는 나름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 기껏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하고 도로시를 외면한다면 남자이기를 자처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겠다.”
“그 말씀만 믿겠습니다.”
우리는 훈훈한 대화를 마쳤다.
유모는 리나를 구하고, 나는 도로시를 구한다.
리나를 구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도로시를 구하는 건 그리 간단히 끝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리나는 내게 있어서 두 번째로 총애하는 부하.
그런 리나를 구하는 것과 맞바꾸어 하는 일이다. 수지타산으로 따지자면 결코 손해라고 여길 수 없다.
나는 결의를 다졌다.
“…….”
“…….”
“……?”
근데 유모가 멀뚱멀뚱 서있다.
왜 안 가는건데.
“리나 아가씨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유모도 길치였었냐!
“야외수련장까지 가고자 행성을 한 바퀴 횡단하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히 길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만!?”
“그건 지상이지 않습니까. 미궁 안에는 때려서 지도를 뱉는 도적도 없고, 습격할 잡화점도 없고, 폭력으로 길 안내를 시킬 짐승도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서 세계 일주를 했던 거냐!?”
전 세계에 혈선 하나 긋고 온 수준이잖아.
가는 길마다 피가 흘러넘쳤다고.
미궁을 피바다로 만든 놈을 말리라고 세계에 혈선 하나 그은 놈을 보내도 괜찮은 거냐.
“으음. 일단 리나가 향한 곳은 시체가 많은 곳만 따라다니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실시간으로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니 문제없겠지.”
“그거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은 뒤에 지상으로 돌아오는 게 문제겠지만, 그건 이쪽에서 어떻게든 구해내도록 하겠다. 그러니 사고만 치지 마라.”
“알겠습니다.”
“정말로 알겠는 거 맞지?”
“네.”
쥐뿔도 신용이 가지 않아.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겨도 이렇게까지 불안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