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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73화 (173/224)

00173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 =========================

#7 - 악신이여 나를 인정하라(23)

터무니없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나는 지금 꿈이라도 꾸는 건 아닐까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미친.”

리나와 유모를 쫓아 내려가기를 얼마간.

B20층에서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계층보스마저 비참한 꼴로 즉사한 모습을 발견했다.

“이 녀석들, 완전히 브레이크가 풀려버렸잖아.”

리나를 말리라고 보낸 유모는 아예 계층보스에게 결정적인 타격까지 입혀놓았다. 잔뜩 신이 난 둘은 한 차례 학살극을 펼치고도 여력이 남아있을 게 틀림없었다.

레이브가 찾은 비밀문으로 진입하면서 내심 긴장했다.

만일 이 미친년들이 하층부의 계층보스까지 조지고 심층지대로 가는 길을 열어버렸으면 어쩌지?

설마 기세를 타서 심층지대까지 덜컥 들어가 버린 건 아니겠지? 보스라면 쇠뿔도 단김에 빼니까 미궁정복을 하고 와야 해! 같은 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피로 범벅이 된 끔찍한 통로가 펼쳐질 것을 예상했는데 대뜸 팡파르가 울리며 환호성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미궁 하층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축하합니다, 보스!”

모르는 몬스터들이 날 환영해주고 있다. 덤으로 그놈들의 앞에는 리나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내밀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서 뭔 짓을 한 거냐.”

“위층에서 학살한 소리를 들었다며 대뜸 항복하지 뭐야? 혹시 먹힐까 싶어서 조련 스킬을 사용해봤는데 성공했어!”

조련(물리)스킬의 결과였었냐.

그보다 넌 대체 뭘 조련시키고 다니는 거냐.

“이거 빅 마우스잖아.”

“응.”

“큼지막한 살덩어리에 입만 달린 아귀 같은 거라고.”

“응.”

“이런 녀석들로 괜찮은 거냐. 정말로 이런 걸 조련시키고 만족할 수 있는 거냐.”

“보스를 찬양하는 데에는 입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이런 기분 나쁘게 생긴 녀석들에게 찬양 따위를 받아도 조금도 기쁜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학살극을 중지하고 제동이 걸린 건 좋다만 결과물이 하도 끔찍하다보니 정말 깜짝 놀랐다. 빅 마우스는 전작에서도 종종 등장했던 하층부의 이형 몬스터다.

막대한 마기에 노출된 여린 몬스터들이 변형을 일으키며, 그 과정에서 식욕만이 남을 경우에 빅 마우스가 된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식욕만 앞서고, 인간 모험가가 보이면 산 채로 물어뜯겠다며 달려드는 놈들이다. 입에 피칠갑을 하고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는 꼴을 보면 심장폭행을 당한다.

물론 반한다는 의미의 심장폭행이 아니다.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무섭다는 의미에서의 심장폭행이다.

“힝.. 강한 부하들이 생겨서 보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하아. 그보다 팡파르는 대체 어디서 난 거냐.”

“리나가 입으로 소리 내게 조련시켰어.”

그 조련스킬, 정말 쓸데없는 부분에서 쓸모가 있구나.

“이거 봐라? 이렇게 막 때리면 아카펠라도 한다?”

리나가 빅 마우스를 단검 손잡이로 쿡쿡 찔렀다. 그러자 빅 마우스들이 온몸으로 경기를 일으키며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화음을 넣었다.

그거 아카펠라 이전에 절규잖아. 비명으로 합주곡 같은 거 만들지 말라고.

“그래도 보스라면 단번에 심층지대까지 공략하는 게 정상이지? 빅 마우스들을 조련시켜서 흑산회의 첨병으로 삼아 진군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개새끼야.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유모.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동행을 부탁했을 텐데. 넌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빅 마우스 군단을 위한 무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뭐? 무기? 입 밖에 없는 놈들한테 무기가 왜 필요하고, 도대체 대장간도 없는 곳에서 무슨 무기를 만든다는 거냐.”

유모는 빅 마우스의 입을 벌려 이빨을 모조리 뽑았다.

그리고는 악력으로 이빨들을 겹쳐 잡아 녹였다.

촤아아아악!!

엄청난 증기가 분출되며 이빨이 주황빛으로 달아올랐다.

유모는 녹아내린 이빨을 주먹으로 쳐서 형체를 갖추고는 입김으로 서리바람을 불어 냉각시켰다.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이빨보다 날카롭고 무자비하게 생긴 살인틀니가 완성되었다.

딱딱! 딱딱딱!

틀니를 낀 빅 마우스들은 자신들이 강해졌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만족하며 바위를 씹어 먹고 분쇄하였다.

‘미친.’

충격과 혼돈의 도가니다.

여기에 도착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리나와 유모는 빅 마우스 틀니군단을 이끌고 야심차게 심층지대에 돌격했겠지.

그리고 엽기적인 돌연사를 당했을 거다.

“심층지대는 공략하지 않는다.”

“에에에? 어째서? 이렇게나 잔뜩 준비했는데!”

“지금은 공략할 때가 아니다.”

“역시 보스는 힘을 잃고 나약해져서 자신감을 잃은 거야!”

“이딴 허접한 놈들을 이끌고 공략을 할 수 있을까보냐!”

버럭 화를 내니까 리나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더니 볼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보스가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봐... 박력 넘치는 모습도 너무 멋있어...”

이게 콩깍지인지 뭔지 하는 그거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리나의 뒷덜미를 덥썩 잡았다.

“바보 같은 소리 말고 따라와라. 저런 허접한 놈들보다 제대로 된 공략조를 만들어서 다시 내려올 거니까.”

“응...”

역시 리나에게는 약한 소리를 하면 들어먹지를 않는다.

조금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헌데 어째 주변 부하들의 시선이 묘했다.

“힘을 잃어도 보스는 보스다 이건가.”

“저 괴물 같은 리나를 연심을 품은 소녀로 만들어 버리다니.”

“존경합니다, 보스!”

보나마나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얼른 지상에나 돌아가자.

등을 돌린 내게 유모가 넌지시 물었다.

“보스. 가기 전에 여기에 남겨둔 안토니우스 군단은 어떻게 합니까?”

잘도 저 틀니군단에 그런 근사한 이름을 붙일 마음이 들었군.

이놈들의 심미관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상상하기도 무섭다.

“몬스터는 애완동물과는 다르다. 야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며 쓸모 있는 존재가 되도록 방치한다. 살아남아서 보다 강해진다면 그 때는 전력으로 활용하도록 해주지.”

유모와 리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들여 만든 장난감 부대를 폐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모양이었다.

음.

잘 생각해보니 저놈들도 키워두면 조금은 쓸 만한 전력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쟤들 틀니만 다 만들고 돌아가자.

* * *

빌헬름 마이어가 안토니우스 군단(틀니군단)의 무장상태를 완성시킬 즈음, 구출대가 B21층에 진입했다.

곤경에 처했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빌헬름 마이어는 부하들과 함께 몬스터 군단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 기가 막히는 광경에 구출대는 패닉에 빠졌다.

“마이어 폐하. 미궁에서 위기에 처하셨다는 급보를 듣고 서둘러 구원에 나서고자 왔습니다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 거 아니다. 악신의 시련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힘을 잃었고, 그런 본인을 대신하여 부하들이 몬스터들을 학살한 뒤에 조련과 훈련을 겸하여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에에엑!? 악신의 시련에, 폐하가 힘을 잃어... 에에엑!?”

빌헬름 마이어는 구출대의 얼빠진 행동에 일일이 반응해주기도 귀찮았다.

지난 한 달간 지루한 반복작업을 구경하며 백보심공을 연마하며 시간을 때우기는 했다. 하지만 심공을 단련한다고 영양분을 보급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었다.

미궁에서 자라는 독한 맛의 잡초를 먹으며 공복도를 달래 왔기에 지금의 그는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잠깐.”

그런 빌헬름 마이어의 시선을 확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인사냥꾼에 번개사제, 골렘술사, 설인? 너희는 모험가길드에서 파견된 건가?”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희귀클래스가 대거 등장했다. 미궁공략을 희망하는 그에게 있어서 희귀클래스의 등장은 관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부정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는 테켈리 길드장의 반역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반역?”

“예. 그는 독단으로 폐하의 구원요청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저희가 아니었다면 이 소식은 제때에 알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날 위해서 기특한 짓을 했다는 건가.

빌헬름 마이어의 얼굴 위로 그런 표정이 떠올랐다.

파티장들은 점수를 땄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슬며시 물었다.

“저, 저기... 혹시 몬스터웨이브가 발생할 때 도적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도적?”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도적단입니다.”

옆에서 얼쩡거리던 도로시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불쌍한 노예들을 말하나봐요!”

“아. 그런 놈들도 있었지.”

“악신의 제단 때문에 사라졌지만 딱한 분들이었죠.”

도적들은 종말의 악신의 강림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에 휘말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영 다르게 들렸다.

“악신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져!?”

“히이익!”

파티장들은 혼비백산하며 주저앉았다.

도로시가 그들을 보며 난처해하자 유모가 다가왔다.

“도로시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몰라요. 여도적들이 제단에 먹혔다는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다들 쓰러지셨어요.”

“아무래도 그 노예들과 안면이 있던 분들이었던 모양입니다.”

파티장들은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처럼 놀랐다.

이 목소리, 분위기, 생김새.

어째서 진즉에 눈치 채지 못했는지 싶을 정도로 특징적이다.

유모.

대륙을 횡단하던 인류 최강의 여전사가 여기에 있었다.

심지어 도적들을 지칭하는 호칭은 ‘노예’다.

자신들도 노예로 사로잡혀 악신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질지도 모른다. 파티장들은 그런 공포심에 시달렸다.

“이상하군. 아무래도 유모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남자가 여자를 보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음…….”

빌헬름 마이어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생각했다.

적어도 이놈들이 유모를 여자로 보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잘못한 게 있기 때문이겠지.”

“분명 저도 이 사람들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인사냥꾼에 번개사제, 골렘술사, 설인이면 어디서 봤는지는 뻔하다고 생각한다만. 이거 네가 세계일주를 할 때 마주쳤던 녀석들 아니냐.”

빌헬름 마이어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그제야 유모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속의 상대들은 제법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놈들은 너무 약합니다.”

그거야 물론 유모가 강해졌기에 전에 상대하던 호적수들조차 약골로 보이게 된 거다. 인간의 몸으로 아이스드래곤을 해치우고 드래곤하트까지 먹었으니 약하게 여기는 게 당연했다.

“네놈들. 무슨 수작이냐. 어째서 반기를 일으킨 모험가길드장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었지? 유모에게 한 번 당하고도 여기에 온 이유는 또 뭐냐. 설마 날 함정에 빠뜨리려는 건가?”

파티장들은 어버버 거리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나마 신성력을 지닌 번개주교만이 이성을 유지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임기응변을 발휘하였다.

“저희는 그저 평범한 노예상인일 뿐입니다. 그 여도적들은 저희의 노예로 복종하는 걸 거절하며 탈주한 탈주노예였습니다.”

“뭐?”

“모험가길드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여도적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기기를 요청한 게 모험가길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테켈리는 건강한 여도적으로 몸보신을 하려 한 개자식입니다.”

인류 최강자로 손꼽히는 유모의 심기를 거스르느니 차라리 인간쓰레기가 되고 말겠다는 결연한 선택이었다.

“음. 그 정도 쓰레기는 내 주변에도 많이 있지.”

번개주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빌헬름 마이어의 도덕의식은 한없이 희박하다.

경범죄자를 자처하면 살 수 있을 거라 여긴 게 옳았다.

극악무도한 공포군주에게 노예상인 쯤은 별 것도 아니다.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며 안도하는 그때였다.

리나가 손가락을 빨며 말했다.

“하지만 보스는 노예를 부리던 놈과는 한 번도 사이가 좋은 적이 없었잖아?”

“!!”

“수전노 쉔. 고리대금업 및 노예거래, 블랙마켓 운영을 주로 삼던 암흑조직의 수장은 보스가 브람 시에서 최초로 제거한 거물이었고.”

리나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얘네들 리나가 가지고 놀면 안 돼?”

“버릇이 나빠진다.”

“깨끗하게 가지고 놀게!”

“시간 없다. 바로 지상으로 돌아갈 거다.”

“치. 어쩔 수 없네.”

파티장들은 죽다 살아났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뭘 안도하는 거야?”

“예? 그야 방금 살려주신다고...”

“살려준다는 말은 아무도 안했는데?”

리나는 집요했다.

“보스. 안토니우스 군단의 먹이로 삼는 건 괜찮지?”

“먹이로?”

“리나의 버릇이 나빠지지도 않고, 깨끗하게 끝낼 수 있고, 바로 지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잖아. 게다가 모험가를 우대하는 보스의 정책에 방해가 되는 위험한 녀석들인걸.”

빌헬름 마이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해서 좋군. 그렇게 하도록 하라.”

괜히 잔머리를 쓰다가 걸린 파티장들은 괴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모는 그들의 처절한 저항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한 명씩 붙잡아 빅 마우스의 입 안에 던졌다.

비참한 최후에 구출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두려워했다. 앞일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노예상인조차도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멀쩡한 모험가로 몸보신을 하려고 노예상인을 부리고, 심지어 반역까지 꾀했던 모험가길드장은 대체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짐작도 안 됐다.

============================ 작품 후기 ============================

테켈리 길드장 의문의 쓰레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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