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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4)
권도준 이사는 이사진 중에서 선신연합을 추슬러 반격에 나서는 역할을 맡았다. 신앙심 높은 캐릭터로 선신들의 호감을 받으며 빌헬름 마이어에 맞서는 대항마가 될 계획도 세웠다.
예상대로 선신들은 그의 높은 신앙심 수치를 눈여겨보며 자신의 신자가 될 것을 종용했다.
권도준 이사는 자신의 몸값이 가장 높은 이때, 빌헬름 마이어라는 공적을 지목하며 선신들의 힘을 합치는 선신연합의 대두를 제의하였다. 준엄한 신들은 그의 부름을 따라 모여서는...
-지금 나보고 저 풀 뜯어먹는 초식교랑 손을 잡으라 이거냐?
-퉤! 흙냄새 나는 대지교 따위가 징징거리기는.
-으아앙! 내 몸에 침 뱉지 마세요. 물은 다 흡수된단 말예요.
개판 5분전의 혼돈과 카오스를 만들고 있다.
“…….”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그런 면모는 쥐뿔도 없었다.
-애비가 나무인 목재 새끼가 어딜 감히 끼어들어?
-위대하신 어버이 세계수를 욕보이지 마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태양열 쪼가리나 뭉쳐서 태어난 발광다이오드 같은 버러지가 아닌가!
-이 새끼가! 지금 태양교를 우습게 보는 거냐? 네놈의 초목을 불바다로 만들고 백 년 동안 가뭄을 일게 해줄까?
신들은 사이가 나쁘다. 그것도 더럽게 나쁘다. 연합이라고는 카테고리에 묶어두지만 않았으면 진즉에 지들끼리 내란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이분들은 원래부터 이러셨나요?”
권도준은 그나마 호감을 사둔 신인 치유의 신에게 물었다.
치유의 신은 점액질의 몸체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렇다. 각기 다른 분야를 관장하는 신들이 경쟁적으로 신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지.
“뭔가 좀 깨네요.”
-그래도 한동안은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신들의 관계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빌헬름 마이어 때문이지.
“예? 그가 신이 되자마자 뭔가를 저지른 건가요?”
-아니. 그가 인간시절에 저지른 짓 때문이네. 벌써 잊었는가?
종교전쟁. 구체적으로는 태양의 교단을 위시로 한 주류선신들의 세력과 치유의 교단을 위시로 한 비주류선신들의 참혹한 내란이 있었다.
당사자는 별 생각 없이 빈둥거리더니 지들 멋대로 죽어나갔던 걸로 기억하는 시답잖은 전쟁이지만 선신연합에게 있어서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결속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권도준 이사는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종교전쟁을 어찌 잊겠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그 때의 종교전쟁의 여파가 2년 뒤인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2년 뒤를 내다보는 그의 악마적인 지혜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응?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네? 이거 아니에요? 그때 엄청 죽어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정말로요?”
-쯧쯧. 이래서 경험이 일천한 무식한 자들이란.
“…….”
권도준 이사는 패닉에 빠졌다!
-아무래도 자네는 솜사탕의 날을 모르는 것 같군. 앞으로는 세계의 비화를 습득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게. 역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네.
“솜사탕의 날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가요?”
-선신연합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언제나처럼 앞으로도 뒤끝 없이 함께 하자며 평화의 축제를 만끽하고는 했지. 종교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네.
치유의 신의 점액질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그날, 우리는 앞으로 닥칠 끔찍한 사건을 깨닫지 못한 채로 순진하게 축제분위기에 젖어있었지...
“솜사탕이잖아요.”
-어?
“솜사탕의 날이라면서요. 솜사탕이 뭐 어쨌는데요?”
-…….
권도준 이사는 남의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남이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걸 차근차근 들어줄 정도로 침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치유의 신은 욱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그래, 솜사탕이었지. 우리는 신자들을 이끌고 사이좋게 솜사탕을 먹으러 갔었네. 앞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들이 십여 명이나 줄을 서있어서 맛집임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지.
“솜사탕 주제에 맛집도 있어요? 전 육개장이 좋던데.”
-솜사탕은 색이 참 영롱했었지. 빨간 솜사탕. 노란 솜사탕. 하늘색 솜사탕. 동심을 자극하는 색을 보며 많은 신들이 기뻐하고 신자들의 입에 솜사탕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네.
“그거 알아요? 육개장에 들어가는 고기가 해외산이면 맛이 더럽게 구려져서 합성조미료를 잔뜩 넣는다고 해요. 우헤헷. 맞다. 그러고 보니 제가 LA에 있을 때 LA육개장 집에 간 적이..”
치유의 신은 점액질 팔로 권도준 이사의 얼굴을 붙잡았다.
-야.
“네? 육개장 먹으러 가자고요?”
-입 닥쳐. 얼굴 뜯어버리기 전에.
“네…….”
-네놈의 빌어먹을 육개장 이야기 따위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고. 그냥 닥치고 내 얘기를 들어.
치유의 신은 생각보다 다혈질이었다. 권도준 이사가 얌전히 입 닥치고 있자 그는 애써 빡침을 가라앉히며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튼 우리는 얌전히 줄을 서고 기다렸네. 설레이는 마음이 있다면 줄을 기다리는 시간쯤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줄은 변함이 없었다네.
“왜요?”
-우리도 그것이 의아했었지. 그래서 유심히 줄을 살펴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네. 솜사탕을 받고 한 아이가 줄에서 나가도 줄의 길이는 줄어들지 않는 괴이한 사실 말이네.
권도준 이사는 뭐 이런 병신 같은 얘기가 다 있지, 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다가 치유의 신과 눈을 마주쳤다. 점액질의 얼굴 안에 둥둥 떠다니는 눈깔이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만족할만한 리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네놈을 내 점액질 안에서 둥둥 떠다니게 해주겠다는 살의가 담긴 눈깔이었다.
“허억! 그거 정말 충격적이군요! 설마 솜사탕을 받은 아이가 한입에 솜사탕을 전부 먹어치우고 신자들의 앞에 새치기를 했는데 그걸 눈치 채지 못해서 얼타고 있던 얘기는 아니겠죠?”
치유의 신의 동공이 가파르게 떨렸다.
‘진짜냐…….’
권도준 이사는 당황했다. 치유의 신은 보기보다 성깔이 더러워서 심기를 거슬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물며 자기가 하려던 얘기를 먼저 선수 쳐서 말하면 얼마나 빡칠까.
재수 없으면 그놈의 빌어먹을 솜사탕 때문에 어처구니없게 살해당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멋대로 이야기를 추측해서 죄송합니다. 실은 저한테 미약한 예지능력이 있어서 대화를 할 때 몇 초 뒤를 볼 수가 있어서 무심코 짜증이 날 때가 있어서요. 하하.”
-뭐? 지금 내 얘기가 짜증난다는 거냐?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 귓구멍이 짜증난다는 거죠. 하하. 들은 얘기 또 들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솜사탕 소녀 괴담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어휴, 이거 닭살 보이시죠?”
치유의 신은 물끄러미 권도준 이사를 내려다보았다. 쉴 새 없이 지껄이던 권도준 이사도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이내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야.
“죄송합니다.”
-유언 남겨라.
“아니, 저, 솜사탕 가지고 그러시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게 네 묘비에 새겨질 문구가 될 것이다.
치유의 신은 권도준의 육체를 종이처럼 쫙 찢어버렸다.
-후, 내 얘기도 똑바로 안 들어줄 놈이 선신연합의 총의를 대표한답시고 설치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이런 또라이 같은 새끼가 뭘 처먹고 자라서 신앙의 그릇이 된 거야?
치유의 신이 남은 시체를 집어삼키자 점액질의 몸체 안에서 권도준의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선신들은 다들 옥신각신하기 바빠서 그의 범죄를 목격하지 못했다.
치유의 신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짜릿함을 느꼈다. 완전범죄의 성립이었다.
-큰일이다! 지상에서 우리 신자들이 학살당하고 있어!
-마이어 왕국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군!
-어쩌지! 저걸 어쩌지! 역시 그릇한테 힘을 주고 막게 할까?
권도준 이사는 특수한 신앙의 그릇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신들의 권능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성격 나쁜 선신들이 그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였다.
하지만 권도준의 육체는 산 채로 찢기고 남은 시체는 흔적도 없이 전부 먹어치워진 뒤였다.
-신앙의 그릇이 사라졌어!
-도망친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녀석도 우리 힘을 받는 게 이득이라고.
치유의 신은 스리슬쩍 끼어들어 말했다.
-암살당한 건 아닐까.
-암살?
-흑산회의 주특기가 정적암살이잖아. 자의로 사라질 리가 없으면 타의로 사라진 거겠지.
신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우리 모두의 이목을 뚫고 단숨에 목표를 제거한 뒤에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고 시체와 함께 사라졌다니...
-흑산회의 암살이 이 정도로 두려운 수준까지 상승했단 말인가...
-히익.. 뭐야 이거.. 무서워...
치유의 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선신연합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쪽의 의표가 찔렸다는 생각에 선신연합은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렇게 선신연합을 동원한 시간벌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투머치토커 의문의 1패였다.
* * *
“대체 게임 내에서 무슨 일이 일었던 겁니까! 어떻게 작전을 개시한 지 하루 만에 캐릭터가 찢겨버린 겁니까. 예?”
소식을 전해들은 이사들은 어이없음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나 신민혁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혹시 또 주둥아리 단속 못해서 망한 거 아니죠?”
권도준은 펄쩍 뛰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이런 시국에서까지 제멋대로 입을 놀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죠? 그럼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권도준이 그 정도로 병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신민혁은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건...”
“빨리 말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권도준은 회의실 한 편에 떠오른 정보모니터를 보고는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습을 당했습니다.”
“예?”
“선신연합의 신자들이 대거 학살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응을 모색하려던 도중, 마이어 왕국의 암살자가 성역에 침투해서 신들이 보는 앞에서 제 목을 쳐버렸습니다.”
신민혁이 멍하니 입을 벌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권도준이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허. 죄송합니다. 그건 당할 만도 했겠네요.”
“정보가 새어나간 걸까요?”
“이사회의 정보를 게이머 이호연이 어떻게 접수하겠습니까? 대외비는 결코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부사장 쪽에서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면 알파고 사장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민혁 이사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운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없어요?”
“그의 목표가 권도준 이사는 아니었을 겁니다. 빌헬름 마이어는 신성력이 있으니 선신들의 대리인들이 모여 신성력을 잔뜩 뿜어내는 선신연합 회의장의 존재를 감지했을 뿐이겠죠.”
“아!”
“그중에서 권도준 이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깨닫고 단숨에 암살을 해버린 것 같습니다.”
신민혁 이사는 자기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서 정보의 교차검증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실제로 선신들이 권도준이 암살되었다고 말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병신 같은 권도준과 다혈질 치유의 신이 대충 내뱉은 변명이 이사회와 선신연합을 동시에 엿 먹인 사태였지만 당사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멍청한 짓이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뒷일은 데이비드 이사에게 맡기겠습니다. 권도준 이사는 오프라인에서 그를 지원해주세요.”
“오프라인에서요?”
“마이어 왕국에 머무르던 선신교단들이 귀중품들을 배달길드에 맡겼고 이 사실을 마이어 왕국 정보부에서 입수했다고 합니다.”
“저런!”
“마이어 왕국이 npc와 게이머를 총동원해서 배달길드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길드가 망하기 싫으면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간 고스란히 물건을 바칠 상황입니다.”
그제야 권도준도 상황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배달길드를 매수해야겠군요.”
“데이비드 이사와 결탁한 ‘길드’의 핵과금게이머들을 이용하세요. 여차하면 해당 배달길드를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하고요.”
“알겠습니다.”
신민혁은 이만하면 뒤탈은 없겠거니 생각하고 게임에 접속을 재개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예상할 수 없었다. 투머치토커 권도준에게 일을 맡기는 게 어떤 재앙을 일으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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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력이 떨어졌어요!
도와줘요 투머치토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