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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5)
배달의 야만족 길드장은 서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쉬뻘,, 내가 멀 그리 잘못 했다고 이리 다구리여,,,!”
돈도 남고 취미생활도 즐길 겸 가상현실게임에 배달길드를 설립한 게 초대박을 치면서 떼돈을 벌 때까지는 즐거웠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이머와 npc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npc들은 현상금을 노리고 덤벼들고, 게이머들은 퀘스트 보상을 노리고 덤벼든다.
마이어 왕국이 흑산회 진영 전체에 현상금과 퀘스트를 뿌려버리니 모두가 배달원을 보물고블린 취급하며 무차별적인 습격과 제보가 빗발치고 있다.
“더럽게 못해먹겠네 진짜.”
참고로 사투리는 그냥 컨셉이다. 길드장은 지금 컨셉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빡쳤다.
물론 길드장이 빡친다고 숨겨진 저력 같은 게 나올 구석은 없었고, 그냥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씨근덕거리다가 겜 접고 장사 접는 게 전부였다.
그런 불운한 미래를 내다보며 절망하던 도중, 뜻밖의 조력자가 나타났다.
“길드와 손을 잡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네? 미궁세계 제일의 핵과금게이머들이 모인 그 길드요?”
“맞습니다. 제가 길드의 대리인 데이비드 이사입니다.”
길드장은 데이비드를 빤히 쳐다보다가 인상을 구겼다.
“카아악~”
“!?”
“퉤!”
데이비드는 느닷없는 더러운 공격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개 같은 길드 놈들이 마이어 왕국에서 같이 수배령 내린 것도 알고 있는데 어디서 수작질이야? 밑천까지 탈탈 털어먹고 사기 치려고 작정한 더러운 협잡꾼 새끼들 같으니라고!”
“길드가 지금 두 개 파벌로 나눠진 건 아십니까?”
“어?”
“마이어 왕국에 있는 건 쿠로를 주축으로 한 신흥파벌이고 중앙연합국에 있는 길드가 원로게이머들이 모인 원로파벌입니다. 저는 원로파벌 대리인이고요.”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다.
길드장은 조심스레 손수건을 내밀었다.
“저... 이거 받고 닦으시죠.”
“아, 예.”
데이비드는 애써 웃는 낯을 유지하며 빡침을 가라앉혔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다.
‘배달길드는 대국을 전환시킬 막강한 변수지.’
흑산회의 모든 집중이 배달길드에 쏠린 지금, 그들을 지원해서 빌헬름 마이어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면 이사회는 무조건 이득을 보는 상황이다.
미궁 내의 난이도를 급격히 상승시킬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래침 좀 맞았다고 화를 내며 당장의 분을 해소하는 것보다는 웃는 낯을 유지하며 심리적인 부채감을 유발시키고 양보를 이끌어내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저희는 쿠로파벌과 결탁한 마이어 왕국이 성장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선신교단들이 맡긴 배달품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간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될 겁니다.”
“그런가요.”
“물건을 지켜낸다면 저희가 완수비용을 지급하겠습니다. 배달에 필요한 물자와 비용도 전부 지불해드리죠.”
“헉. 정말입니까?”
“그러니 대충 사업 접고 저쪽에 팔아넘길 생각은 마십시오.”
길드장은 움찔했다.
내심 그런 마음도 조금쯤은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당신 사업을 망친 주범입니다. 이 기회에 배달길드가 몰락하면 그 빈자리를 누가 대신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흑산회 진영을 등에 업은 흑산회 진영이 대신할 겁니다.”
“그건 안 되죠.”
길드장은 정색하고 화를 냈다.
“사업을 접는 건 용납할 수 있지만, 남이 내 사업을 망하게 하고 대신 낚아채서 성공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아, 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죠. 자기 걸 뺏기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데이비드는 길드장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이권과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회담을 마치자마자 수정구슬로 길드의 원로들에게 보고하였다.
“배달의 야만족 길드장은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어떤 조건을 걸더라도 물건을 직접 넘길 의향이 없어 보이는군요. 일단 미끼는 걸었습니다.”
“지원품이라는 미끼를 물고 물건이 있는 곳까지 안내한다면 다행이지만 지원품만 들고 나르면 어떡하죠?”
“그 때를 위해서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그쪽에도 이사회의 중진이 활동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특별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드는 길드장이 물건을 끝까지 꿍쳐두었다가 값어치가 최대로 오를 때에 어느 한 쪽에 팔아넘기려고 작정했음을 간파하고 이에 걸맞은 대응책까지 마련했다.
그는 투머치토커 권도준 이사처럼 뻘짓만 하다가 일을 망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권도준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
“인수합병이 실패? 그게 무슨 소립니까? LA육개장이 잘못되었다니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군요. 상황설명 좀 해주시죠. 아니, 육개장집에서 만난 여자는 궁금하지 않고요. 아니, 본론 좀.”
데이비드 이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얼굴에 가래침을 맞을 때도 감정조절을 해낼 수 있었지만 투머치토커의 유체이탈화법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닥쳐 이 새끼야.”
“!?”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쓸데없는 개소리 좀 그만 지껄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해. 인수합병하러 가서도 그딴 개소리만 지껄이고 다녔냐?”
권도준과 이어진 통신구슬을 들고 한참 씨름하던 데이비드가 신경질적으로 교신을 끊었다.
“하. 이런 새끼가 전략운영팀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빌헬름 마이어가 그 따위로 성장해버리지. 벨런스 병신으로 만든 건 죄다 이 새끼 작품이었군.”
기가 막히는 것과는 별개로 뒷수습이 필요하다. 인수합병이 실패로 끝난 이상, 현실에서 배달의 야만족을 압박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길드의 원로분들이 힘 좀 써주셔야겠습니다. 배달의 야만족 주주들의 포섭에 실패한 이상, 경쟁업체를 인수해서 동종업계 배달부들로 야만족 배달부들의 동향을 파악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책임지고 배달 쪽에서 두 번째로 잘 나가는 길드를 매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무능한 권도준과 달리 길드의 원로들은 순식간에 매수를 끝마쳤다.
“젠젠 딜리버리는 이제 저희 길드의 수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정보를 토대로 젠젠 딜리버리의 분석을 받고 인원을 파견하도록 하죠.”
“허허. 배달품 탈환이 머지않았군요.”
현 시점에서 그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마이어 왕국 정보부가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었다. 뛰어난 정보력을 지닌 그들이라면 민감하게 정보의 동향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
같은 시각, 마이어 왕국 정보부.
정보총장 션은 부하들의 보고에 곤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잠깐. 제공되는 허위정보가 뭐 이리 많죠?”
“현상금을 노리고 일단 지르고 보자는 막무가내 식 신고가 많습니다.”
“허. 이거 자충수가 되고 말았군요.”
션은 상급정보상인에게 연락을 취해 대응방법을 물었다.
상급정보상인은 허위신고 시 벌금을 부여한다는 포고령을 새로 내리라고 했다.
과연 그녀의 말을 따르자 신고가 대거 줄었다.
“배달부들의 동향이 밝혀졌습니다.”
“어디로 갔죠?”
“미궁입니다.”
“네?”
“미궁으로 갔습니다.”
기가 막히게도 배달부들은 특단의 대책을 내세웠다.
육지가 막히니 지저를 선택한 것이다.
“모험가들에게 소문을 내서 포획을 유도합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션은 다시금 상급정보상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녀는 간단한 답을 내어주었다.
“보스에게 찾아가 묻거라. 미궁 제일의 전문가는 보스이니. 지저로 타 지역에 진입하는 게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추격방식과 인원은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확인해야 하노라.”
정보요원은 허겁지겁 빌헬름 마이어를 찾아갔다. 그리고 식탁에서 컥컥 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독이다!!”
황급히 다가가려 하자 빌헬름 마이어가 연거푸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정보요원의 외침을 듣고 모여들던 친위대원들이 식겁하며 멈춰 섰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같이 중독되는 독인가봅니다.”
“정보부에서 이럴 때의 대응요령 같은 건 없나요?”
“제발 보스를 구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친위대원들의 말에 정보요원은 막막함을 느꼈다. 대관절 현인신을 중독 시킨 극독을 일개 정보요원이 어찌 대응한단 말인가. 그런 미친 매뉴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주변의 경계를 삼엄히 하고 요리를 만든 주방장과 주방에 출입한 사람들을 모조리 구속하세요. 재료를 배달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
“저는 정보총장님께 후속대응을 여쭙고 오겠습니다.”
정보요원은 다시금 션에게 쫄래쫄래 달려갔다.
“뭐!? 정보를 물으러 갔더니 폐하가 또 다시 독에 중독되어 심각한 위기에 빠지셨다고!?”
“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에이잇, 잠깐만 기다리세요!”
션은 다시금 상급정보상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상급정보상인은 슬슬 짜증이 났다.
“아해야. 오늘따라 연락이 잦구나. 자잘한 일도 혼자 처리하지 못해서야 널 대리인으로 꽂아두는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 정말로 시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빌헬름 마이어 폐하가 또 다시 무형지독에 중독된 듯 싶습니다.”
“뭣이!!”
상급정보상인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경비는 대체 뭘 한건가요!”
“그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션은 정보요원을 갈궈서 경비들이 대체 뭘 했는지 알아내라고 윽박질렀다. 정보요원은 다시 친위대원에게 찾아가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힘껏 삿대질을 해가며 따졌다.
“대체 당신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 뭘 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포커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고!”
정보요원은 다시 있는 힘껏 달려서 션에게 돌아와 보고했다.
션은 보고를 듣고는 몹시 분개하며 상급정보상인에게 말했다.
“포커를 치고 있었답니다.”
“지금 그 말을 하려고 이 몸을 기다리게 한 것이더냐?”
“죄송합니다!!”
“그래서 친위대원 말고 호위를 맡던 암살자들은 어디에 갔느냐. 보통 폐하의 경호는 암살자들도 함께 맡았을 터인데.”
“지금 알아보겠습니다!!”
션의 외침에 정보요원이 입술만 달싹거리며 욕지기를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이 수정구슬 들고 직접 찾아가세요.”
“...알겠습니다.”
정보요원은 가까스로 전령구 셔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션은 빌헬름 마이어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멀쩡한 그의 모습을 보고 황당해졌다.
“설마 독에 중독된 적이 없었던 건가?”
“아닙니다. 보스께서 자력으로 해독을 마치셨습니다.”
“뭐!? 자력으로!?”
친위대원의 말에 황망함은 더욱 커졌다.
그는 조심스레 빌헬름 마이어에게 물었다.
“보스. 대체 무슨 독에 중독되셨던 겁니까? 정말로 해독이 끝나신 것 맞습니까?”
“그렇다.”
그의 표정은 편안해보였지만 션의 예리한 눈에 미미하게 떨리는 왼손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독의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징후였다.
상급정보상인은 무척이나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는 본래 그런 남자이니라. 결코 부하의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하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도 않지. 아무리 힘들어도 홀로 떠안고 나아가려 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네.”
“그럼 어떻게 하죠?”
“리나에게 연락하거라. 엘릭서의 탈환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지금의 보스는 안정적인 방법만을 제시할 터이니, 우리들이 길잡이를 붙여서 미궁공략을 시도해야 하노라.”
리나와 암살단원들은 자신들이 부재중인 사이에 또 다시 보스의 목숨이 노려졌다는 사실에 격분하였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배달부들을 찾아 죽이겠노라 다짐했다.
빌헬름 마이어는 그런 줄도 모르고 속 편하게 신성권능이나 만들고 있었다.
하기야 사정을 모르는 건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그가 컥컥거린 건 바나나쉐이크를 마시다가 바나나 덩어리가 목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동기화 비율 1%일 때에는 이물감 없이 넘어가던 음료가 디테일하게 느껴져서 허둥거렸을 뿐이다.
바나나쉐이크 처마시다가 체했다는 걸 들켰다간 그를 만만하게 여긴 부하한테 살해당핼까 두렵기도 했다. 손의 떨림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일어난 거였다.
물론 언제나 제멋대로인 부하들은 지들끼리 사정을 추측하고 격분하며 미궁에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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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개그감이 흐릿해지고 필력고갈이 느껴지기에 다음화부터는 실전 압축개그로 남은 스토리와 개그의 밀도를 200% 상승시키겠습니다.
200화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