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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7)
[흑산회의 어쌔신마스터 리나에 의해 태양의 신이 암살당했습니다.]
[태양교가 지닌 모든 권능이 소멸합니다.]
[신의 소멸로 인해 선신진영의 태양교단이 멸망하였습니다.]
[선신의 죽음으로 인해 미궁의 영향력이 상승합니다.]
[미궁의 어둠이 지상에 창궐하기 시작합니다.]
[선신의 죽음에 의해 미궁공략 난이도가 250% 상승합니다.]
[흑산교의 신살 위업 달성에 의해 선신진영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천지팔방에 거대한 흑색 기둥이 솟구치며 모든 게이머들의 시야에 보이는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허.”
기가 막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성력을 있는대로 쏟아부어서 리나가 격의 시험을 통과하게 도와주고 단숨에 절정지경 급 암살자로 만들려고 했던 게 본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미친년이 덜컥 태양신을 자력으로 죽이고 신살자가 되었다. 절정지경은 당연히 달성했고 레벨도 폭팔적으로 올라서 단숨에 초월지경 문턱을 넘보고 있다.
지 혼자 허공에 칼질 몇 번 하더니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나 뭐라나 하면서 스펙도 계속 상승한다.
“시발. 더러운 재능충 같으니.”
신에 버금가는 재능을 CP로 구매해주기는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린다. 이제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부하들을 키운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으려고 죽을 고비를 넘나들며 쓰라린 추억들을 쌓아올렸던 과거가 무색하다.
리나는 그냥 단검 들고 ‘보스가 리나를 지켜봐주고 있어!!’ 이러더니 지 혼자 넘사벽인 적을 썰어버리고 200% 500% 성장을 심심할 때마다 막 해댄다.
“이거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선신진영에서 리나가 신을 죽일 수 있는 암살자임을 깨달은 이상, 이제는 모든 신들이 일제히 덤벼든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나 태양교단 근처에 포진한 교단도 한 둘이 아니다.
나는 다급히 시야권능을 발현해서 인근 교단의 동향을 살펴보았다. 리나에게 접근하는 적이 있으면 즉각 시야를 공유해서 이를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운은... 강신의 기운인가!?’
마침 근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대거 느껴졌다. 다급히 해당부근을 살펴보니 거대한 제단 위로 여러 종교의 교주니 성녀니 사도니 하는 놈들이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중 몇 명에게서 느껴지는 농밀한 밀도는 이미 신들이 <그릇>에 내려와 강림을 마쳤음을 알리고 있었다.
태양신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단숨에 포위망을 짜서 리나를 죽이려고 이중의 함정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전력이 동원될 줄은 몰랐기에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도망쳐! 신살자가 떴어!!
-히익!! 저거 뭐야!! 무서워!!
-솜사탕! 솜사탕의 악마다!!
신들은 각자의 교단에서 아우성을 치며 서둘러 그릇과의 모든 교신을 끊어버렸다.
“…….”
막대한 존재감들이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다.
“솜사탕...?”
풀리지 않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리나가 위기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와아! 보스가 사랑의 힘으로 리나를 지켜줬어!”
“…….”
응 아니야.
니 혼자 갑자기 얀데레 엔진 시동 걸고 도륙한 거야.
아무튼 리나와 암살단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 기세로 치유의 교단한테서 엘릭서만 삥뜯으라고 한 뒤에 미궁 아래 쪽을 살펴보았다.
부하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었다.
리나가 위쪽으로 갔다면 아래쪽으로는 도로시와 유모, 레이브가 갔다. 회피력 100%의 회피탱과 최강의 딜러, 최고의 길잡이가 함께 갔으니 파티궤멸의 위기는 없을 거다.
리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도박종목이라면 도로시쪽은 믿고 맡기는 우량종목이다.
쟤들을 들여다보는 건 벌렁벌렁 거렸던 심장이나 가라앉히며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는 행위에 가깝다.
“???”
그런데 주변 광경이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인지 강철틀니를 달아준 빅 마우스 군단이 보인다.
B30층까지 시야를 내려 보냈나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이거 B5층이다. 미궁 상층부라고.
저게 왜 여기에 있어.
“레이브야. 배달부의 흔적은 찾았니?”
“아직이요.”
“도로시 아가씨.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후후. 그러네요. 저희에게는 빅 마우스 군단이 있으니까요.”
“정말 든든한 녀석들입니다.”
대화를 들어도 심란함만 더해진다.
어째서 빅 마우스 군단이 여기에 있는 걸 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데.
아무래도 얘들만 보고 있으면 상황파악이 안될 것 같다.
나는 시야를 돌렸다.
다른 일반신도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신도들의 파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 새끼들도 빅 마우스를 데리고 있다는 거였다.
“???”
심지어 하하호호 웃으면서 빅 마우스를 무슨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고 있다. 빅 마우스들은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약해빠진 모험가들을 잇몸 위에 태우고 전진하고 있다.
심층지대의 온갖 지옥과 절망, 재앙으로 단련된 내 멘탈로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시발. 대체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닌 거야?”
일반 모험가들의 대화를 들어도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빅 마우스는 꽁치를 좋아할까?”
“가시가 있어서 싫어할지도 몰라.”
“나도 이빨에 가시 걸리면 짜증나.”
개 사료로 뭘 줄까 하는 느낌으로 대화하지 마라.
그거 몬스터라고.
이빨로 콱 물면 골렘도 으적으적 씹어 먹는다고.
“그런데 빅 마우스는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우르르 나타난 걸까? 원래 이런 흉악한 몬스터는 없었잖아.”
오. 드디어 모험가들이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눈다.
그거 나도 궁금했다.
하라는 하층정복은 안하고 왜 죄다 위로 온 건데.
“이건 내 사촌의 당숙의 팔촌 친척의 아버지가 친구의 종가댁 할아버지랑 대화하면서 얻은 정보라는데.”
“그거 남 아니야?”
“남이잖아.”
“그보다 족보 어려워.”
“사촌의 당숙의 팔촌 친척 아버지면 무슨 관계인 거야?”
시발놈들아.
그딴 거 안 궁금하니까 빨리 빅 마우스 얘기나 해.
“듣기로는 빅 마우스가 시체를 따라서 올라왔다고 하던데요.”
“시체? 미궁에 시체는 어디에나 널려 있잖아.”
“흑산회 파티가 엄청나게 몬스터를 학살했잖아요. 몬스터 웨이브로 잔뜩 죽어나간 것도 있고.”
아. 시체를 따라서 올라왔다면 납득이 간다.
빅 마우스는 아귀 같은 놈들이다.
워낙에 탐욕이 강하니 하층부에서 힘들게 사냥감을 잡느니 중층부로 올라와서 시체나 잔뜩 퍼먹는 걸 좋아할 거다.
그런데 계층 사이에는 봉인문이 있어서 못 넘어오는 거 아니었던가? 중층부와 상층부 사이의 문은 유모가 부쉈다고 쳐도 하층부와 중층부 사이의 문은 어떻게 넘어올 수 있었지?
그때 분명 문을 나왔던 순서가...
마지막이 유모였네. 응 이해했다. 존나 쌔게 쾅 닫고 봉인 다 박살났을 게 빤히 보인다.
“그럼 1층까지 빅 마우스가 어슬렁거리는 게 시체 때문이었던 거라고 치고, 이놈들이 사람 잘 따르는 건 왜 그런 거야?”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병신아. 저 새끼들은 사람 말도 할 줄 알고 흑산회에 충성을 바쳤다잖아. 모험가들은 흑산회 비전무술을 미궁 입문무술로 습득하고 들어가고 있고.”
“뭐야. 그럼 빅 마우스가 흑산회에서 초보 모험가들을 위해서 보낸 경험치 셔틀용 몬스터인거야?”
모험가는 식겁하며 동료의 머리통에 방패를 집어던졌다.
“악! 뭐하는 짓이야!”
“야이 빡대가리야! 너 같으면 이걸 잡을 수 있겠냐? 딱 봐도 아 이거 여기에 있을 놈이 아닌데. 건드리면 진짜 뒤질 것 같은데. 그런 생각 안 들어?”
“그거야 당연히 들지. 시발 고블린을 한 입에 집어삼키고 오크 몽둥이도 씹어 먹는 괴물을 어떻게 잡아.”
대충 대화를 듣고 보니 빅 마우스의 현재 입지가 슬슬 이해가 간다. 흑산회 파티가 틀니를 달아준 것에 호의를 품고 흑산회 말단으로 취급되는 일반 모험가에게도 순종적으로 구는 거다.
물론 모든 게 납득된 건 아니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약해빠진 개체를 혐오하고 약자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부분은 어떻게 된 걸까 싶었는데 금세 답이 나왔다.
“아무튼 다행이야. 격투가 말고 꿀 빨 수 있는 직업이 새로 생겨서.”
“그러게. 나도 테이머가 안 됐으면 지금쯤 B1층에서 빅 마우스 눈치 보면서 고블린이나 잡고 있었겠지?”
“양치질 한 번 시켜주고 무지막지하게 강한 몬스터를 테이밍할 수 있으니 솔직히 너무 편한 것 같아. 냄새가 지독한 건 민트초코를 들이부으면 되니까 참을만하고.”
거울을 안 봐도 알 것 같다. 지금 내 표정이 존나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도 테이밍 할 게 많아서 다행이다. 그치?”
“인정.”
그래도 빅 마우스가 갑자기 미궁 상층부에서 황소개구리마냥 벨런스 다 쳐부수고 날뛰는 줄 알았더니 테이머 호황에 슬쩍 끼어든 수준이었나 보다.
“그린 빅 마우스랑 레드 빅 마우스랑 블랙 빅 마우스 세 종류나 있으니까 테이밍 하는 폭도 넓어서 좋긴 해.”
“속성 데미지가 다르니까 개꿀인 듯.”
그냥 도색된 황소개구리 세트였었네.
미궁 상층부는 이미 빅 마우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시발. 이러면 안 되는데...”
모험가들이 빅 마우스를 테이밍하고 부려먹는 데에 중독되어서 전투력이 바닥을 치면 나만 손해 본다. 천편일륜적인 성장빌드는 곧 특출한 인재의 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변수가 적으니 뛰어난 모험가가 나타날 가능성은 줄어들고 점점 범용한 모험가만 공장에서 찍은 것처럼 늘어난다.
아마 이 추세대로라면 한 달 뒤에는 테이머들만 모아서 빅 마우스 기마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빅 마우스보다 약한 몬스터들은 학살하는데 강한 놈이 뜨면 당나라 군대가 된다.
“…….”
근데 이거 잘 생각해보니까 마냥 나쁘지만도 않다.
빅 마우스는 미궁 하층부의 몬스터.
이걸 양산해서 테이머들이 끌고 다니면 하층부까지 얼씬거리지도 못했을 허접들이 하층부에서 싸울 수 있다.
-태양신은 죽고 미궁의 기운은 강성해졌다.
-빅 마우스 군단의 효용은 상승한다.
-군단을 조성하라. 진격의 날이 머지않았다.
내친김에 광역 신언까지 선포하자 모험가들이 빅 마우스 포획에 한층 열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적어도 심층지대에서 끝없이 밀어닥치는 잡졸들을 상대하는 건 문제없을 것 같다.
“뭐, 배달부를 찾는 건 저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뒷일은 부하들에게 맡기고 신언을 발동한 후유증으로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 * *
빌헬름 마이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가 지닌 카리스마 능력치는 신언선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신언선포의 영역을 늘리는 효과가 있음을 말이다.
그의 선포는 남부지대의 모든 지저에 존재하는 미궁으로 드넓게 확산되었다.
모험가들은 모두 태양신이 죽었다는 말과 빅 마우스 군단이라는 말, 군단을 조성하고 진격을 준비하라는 말을 기억했다. 그건 테이머가 아닌 모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격투가인데?”
“병신아! 현인신이 테이밍 하라고 했잖아! 그냥 해!”
“솔직히 저거 하나 테이밍하면 편하기는 하겠더라.”
실력 있는 격투가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직업의 모험가들이 닥치는대로 빅 마우스를 포획하기 시작했다.
태양신이 죽고 미궁의 마기가 증폭되자 미궁의 몬스터들은 대폭 늘어났고, 그중에서도 천적이 없는 빅 마우스의 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였다.
특히나 미궁도시 브람의 경우, 미궁 하층부의 입구를 막은 봉인문이 박살났기에 유독 빅 마우스가 출현하는 빈도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모험가들은 입소문을 따라 빠르게 모여들었다.
1모험가 1 빅 마우스는 대세가 되었다. 심지어 한 명의 테이머가 10 마리의 빅 마우스를 이끄는 현상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력 있는 모험가는 미궁의 깊은 곳까지 진출하며 보다 많은 빅 마우스에게 충분한 먹이를 공급해주었고, 그들이 사냥하며 얻은 경험치는 모험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제기랄! 이 나라는 미쳤어! 지저를 통해서 달아나기는커녕 저 또라이 같은 빅 마우스한테 다 잡아먹히게 생겼다고!”
당연히 흑산교에 소속되지 않은 모험가들은 빅 마우스와 마주치자마자 간식거리로 전락했다.
덤으로 배달부들은 모두 흑산교를 믿지 않았다.
특정 종교에 소속되면 국가를 넘나들며 배달활동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으으, 안 되겠어. 저런 미친놈들한테 물건을 넘길 수는 없지. 그냥 중앙연합국의 원로들에게 넘기는 수밖에.”
배달의 야만족들은 버티다 못해 결국 물건을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위치정보를 제공하고 미궁 안에서 접선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빅 마우스의 위협은 전방에서만 닥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저, 전방에서도 빅 마우스가 온다!!”
“어떻게 된 거야! 저긴 중앙연합국 쪽 지저잖아!”
“잠깐. 저놈들 미묘하게 크기가 작아!”
그들은 덜 자란 빅 마우스를 보고 전율에 휩싸였다. 빅 마우스는 커다란 잇몸에 위협적인 이빨만 달린 병신 같은 생김새를 지닌 주제에 번식도 하는 종족이었다.
============================ 작품 후기 ============================
[아무래도 상관없는 설정모음]
④모험가 신분증의 숨겨진 기능
⑴전투력 측정기
존나 이상하게 생긴 신분증을 퍼즐처럼 잘 끼워맞추면 히든기능이 발동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몬스터의 전투력을 측정해서 알려주는 전투력 측정기 기능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초창기 빌헬름 마이어가 병신같은 약캐라는 사실이 부하들에게 발각되면 스토리를 전개하기가 귀찮아져서 강제로 생략당했다.
⑵위치 추적기능
별 쓸모없는 신분증에 무의미하게 마나를 퍼붓는 잉여들을 위한 숨겨진 기능이 있다. 바로 위치 추적기능이다.
이 추적기능은 모험가신분증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단, 마나를 불어넣지 않은 모험가 신분증은 추적할 수 없고 근방 500m 이내만 수색할 수 있다.
개그소재로 넣었지만 너무 병신같은 기능이라 작가도 개그소재로 써먹기를 포기하고 폐기해버린 비운의 히든기능이다.
⑤조직창의 발전형태
조직창은 작중 전개에 따라 내정관리창(왕)과 신성관리창(신)으로 승급되었다.
필연적으로 관리창에 표기되는 내역도 존나게 늘어나고 말았다.
이게 MMORPG게임인지 문명인지 유로파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작가는 무의미한 항목과 수치를 만지작거리며 설정딸을 쳤다.
그러다가 깊은 빡침을 느끼고 관리창을 던져버렸다.
그렇게 내정관리창과 신성관리창은 귀찮음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필사적인 외면에 의해 등장하지 않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