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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8)
흑산회 파티는 배달부들의 흔적을 쫓아 B6층의 언데드 지대에 도달하였다.
“정말로 이런 곳에 놈들이 있을까요?”
“이보다 위층은 추적을 당하기 쉽고, 아래층은 모험가킬러들이 잔뜩 포진해있어요. 흔적도 정확하게 여기로 남아있으니 겁먹지 말고 전진하면 되요.”
레이브의 확신어린 주장에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외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레이브는 흑산회의 세 번째 멤버이기도 했다.
레이브는 그녀보다 고참이며 어린 나이부터 보스에게 직접 지식을 전수받은 엘리트 영재였다. 믿을 이유는 충분했다.
몰려드는 언데드는 그들의 실력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고, 이내 순조롭게 흔적을 쫓아 배달부들이 머무른 야영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빅 마우스가 먼저 왔었네요.”
“놈들은 어디로 도망쳤지?”
“다 먹혔어요.”
레이브는 바닥에 떨어진 신발이나 벽에 튄 핏자국, 반만 남은 채 잔뜩 파헤쳐진 침낭 등을 가리켰다.
흑산회 파티원들은 싸늘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귀중품도 같이 먹힌 것 같은데요?”
“안 돼. 보스를 위해서라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바로 녹지는 않았을 거예요.”
도로시가 의외의 부분에서 귀족상식을 발휘했다.
“성유물이나 귀중품을 담은 보관함은 신성한 힘으로 보호를 받아요. 빅 마우스의 소화액에 닿아도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럼 제가 빅 마우스들의 흔적을 쫓아 추적해볼게요!”
레이브는 의기양양하게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신속하게 한 무리의 빅 마우스와 조우했다.
“이 빅 마우스가 그 빅 마우스니?”
“모르겠어요. 입 안을 확인해야 해요.”
파티원들은 빅 마우스에게 다가갔다.
“인간 맛있다”
“흑산회다”
“공격 안 한다”
도로시는 흠칫 놀랐다.
“빅 마우스가 사람 말도 했던가?”
“원래는 안 했는데 그 사이에 언어를 습득한 것 같습니다.”
“히익..”
유모의 말에 도로시는 울상을 지었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습득했다는 게 썩 긍정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은 쥐뿔도 모르는 채 빅 마우스들은 저들 좋을 대로 지껄였다.
“흑산회 착하다”
“틀니 달았다”
“포식 시켜줬다”
빅 마우스들이 혐오스러운 잇몸으로 바닥을 구르며 다가와 이빨을 들이밀었다.
“테이밍 원하다”
“사육당하다”
“우리 키우다”
도로시가 질색하자 유모가 빅 마우스들을 손가락으로 밀쳤다.
“아가씨는 너희들을 펫으로 키울 생각이 없다. 귀찮게 굴지 말고 입이나 벌려라.”
“먹이 뺏긴다?”
“아가씨는 돼지나 소, 닭, 오리, 거위 같은 동물들을 감금해서 강제로 살찌우고 토막 내 부위별로 잡아먹는 잔혹한 식습관이 있지만 인간과 몬스터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안심해라.”
빅 마우스들은 유모의 말에 안심했지만 인간들은 달랐다.
레이브는 대놓고 식겁하며 도로시의 곁에서 물러났다.
도로시는 울상을 지으며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 참! 그런 짓궂은 표현 좀 쓰지 마세요, 유모. 그렇게 말하면 제가 괴물처럼 여겨지잖아요.”
“보다시피 아가씨는 양심도 없는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인간이다.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네놈들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서 세공하고는 식사에 사용할 식기로 만들 것이다.”
유모의 위협적인 언사에 빅 마우스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빨 뽑히다 싫다”
“협조하다”
도로시는 유모를 흘겨보았지만 결국 이게 조사를 시작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임을 인정하였다. 파티는 빅 마우스의 입 안을 체크하였고 실망에 빠졌다.
“얘들은 아니네요.”
빅 마우스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찾는 먹이 있다?”
“흑산회 돕는다”
도로시는 이거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녀는 빅 마우스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면 수색이 한결 쉬워지리라고 예상했다.
“동료 부른다”
“큰 것 부른다”
“작은 것 부른다”
처음 열 마리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도로시와 레이브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수색도 금방 끝나겠네요.”
“의외로 사람을 잘 따라줘서 살았어요.”
빅 마우스들의 입 안을 점검하는 도중이었다.
“작은 것 부른다”
“부른다 부른다 부른다”
“흑산회 있다”
“틀니 달아준다”
“스케일링 받는다”
통로 저편에서 북적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웃는 낯이 곤혹스러움으로 변했다. 기껏해야 대여섯 마리나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열댓 마리가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에 줄 좀 서있을래?”
“금방 봐줄게요.”
우르르 몰려든 빅 마우스들을 나란히 줄 세우고 있는데 또 한 무더기의 기척이 맞은편 통로에서 몰려왔다. 언데드 몬스터인가 싶어서 전투태세를 취했는데 빅 마우스들이 나타났다.
“어휴. 깜짝이야.”
“아오. 어디서 이렇게 잔뜩 몰려오는 거람.”
도로시와 레이브는 안도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물러서십시오.”
갑자기 유모가 두 사람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강적이 접근하는 걸까?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낯으로 유모의 지시를 따랐다.
쾅! 쾅! 쾅!
통로 전체가 진동하고 있다.
정면도 후면도 아니다.
바로 머리 위, 통로의 천장으로 뭔가가 접근한다!
쾅─!
와르르르르!
무너진 돌벽 너머로 거대한 몬스터들이 잔뜩 쏟아졌다.
“엄마야!”
“으아악!”
도로시와 레이브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자 개떼거지로 들이닥친 몬스터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윗층에 서식하던 빅 마우스들이었다.
“이거, 설마...”
도로시와 레이브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빅 마우스는 지금 미궁 상층부의 외래종으로 미친 듯이 번식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그 숫자도 엄청나게 불어났고, 작정하고 모여들면 밑도 끝도 없이 개떼거지로 모여들 수 있었다.
“부름 받았다”
“밥 주다?”
“오크 맛없다”
“강철틀니 원하다”
“암반 맛없다”
빅 마우스들이 한 마디씩만 지껄여도 전쟁터에 나선 것처럼 엄청난 소음이 일었다. 물경 그 숫자만 수백에 이르는데 진동은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 아래.
미궁 전역에 퍼져있는 빅 마우스들이 죄다 몰려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파티는 절망에 빠졌다.
* * *
같은 시각, 중앙연합국의 길드 원로들은 배달길드 서열 2위의 배달부들을 내세우며 미궁 안으로 진입했다. 배달부들은 뛰어난 길 찾기 능력과 정찰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행군속도도 빨랐다.
그들은 야영지에서 빠져나오는 빅 마우스들을 발견하고는 한 차례 처절한 결전을 벌였고 간신히 승리했다.
결전 과정에서 길드 소속 게이머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살아남은 건 젠젠 딜리버리 배달부들뿐이었다. 전리품이라도 건지려던 그들이 빅 마우스를 뒤지다가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어. 저거 주둥이에 물린 거 보물 아니야?”
“보관함이다!”
“저 새끼들이 배달의 야만족 배달부들을 먹었나봐.”
젠젠 딜리버리 배달부들은 빅 마우스의 입 안에서 배달품들을 회수해내었다. 흑산회 파티가 개고생을 하고도 물건을 찾지 못한 이유는 이미 이들이 물건을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레이브의 추적능력도 빅 마우스가 개떼거지로 들이닥쳐서 발휘될 수 없다. 앞으로 12시간은 허탕을 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젠젠 딜리버리 배달부들이 유유히 미궁을 올라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나마 소득이 있어서 다행이네.”
“이걸 길드에 갖다 주면 흑산회도 제대로 엿 먹겠군.”
원래부터 딱히 필요 없던 게 넘어가는 거라서 그렇게 큰 손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워낙에 벌인 일의 규모가 커서 모두들 귀중품과 성유물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이 여겼다.
그건 젠젠 딜리버리의 배달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 대장격인 인물이 넌지시 제안했다.
“근데 이걸 그대로 길드에 갖다 줄 이유가 있을까?”
“대장? 무슨 미친 소리야. 안 갖다 주면 어쩌려고.”
“어차피 길드 쪽 게이머들은 우리보다 먼저 뒤졌잖아. 아무것도 못 건진 척 먹고 나르자.”
배달부들은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길드는 업계 2위니까 당연히 일을 잘하겠거니 여기고 그들을 인수했지만, 젠젠 딜리버리는 사실 업계에서도 악명 높은 블랙기업이었다.
대량의 배달품을 배달하며 실적을 올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배송이나 책임감 따위는 당연히 없다.
가끔 괜찮다 싶은 물건은 배달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가장하여 배달부들이 낼름 빼돌리기도 한다. 하물며 사망자까지 발생한 미궁 속에서 제대로 된 배달을 할 리가 없었다.
배달부들은 숫제 해적이나 산적 무리마냥 물건을 약탈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유의 시간을 한껏 만끽한 다음에는 안전한 곳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캡슐에서 나온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길드의 원로 게이머를 찾아갔다.
“뭐? 아무것도 건져내지를 못했다고?”
“저희 다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피해보상금이나 주세요.”
“좋아. 그럼 새 캐릭터 파서 광장으로 집결해.”
배달부들의 얼굴이 싹 굳어버렸다. 설마 새 캐릭터 시트지를 만들라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저희 이제 미궁세계 안할 건데요. 돈으로 주세요.”
“자꾸 뒤로 빼는 거 보니 수상한데. 정말로 죽은 거 맞아?”
“아, 정말로 죽었다니까 왜 이러세요! 댁들도 미궁에서 빅 마우스한테 죽었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요!”
길드의 원로급 게이머가 품에서 권총을 뽑았다.
배달부들은 오싹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당신들은 미쳤어. 이건 게임이라고.”
“정확히는 우리 갑부들의 게임이지. 너희는 겁도 없이 갑부들의 유흥을 방해한 버러지고.”
“…….”
그는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고. 물건은 제대로 확보했나?”
“했습니다...”
“좋아. 그럼 수작부리지 말고 게임 속에서 가져와.”
배달부들은 죽을상을 지으며 게임에 접속했다.
그리고 물품을 확인했다.
“저기, 대장.”
배달부 한 명이 손을 덜덜 떨었다.
“아까 접속 해제하기 전에 기억해?”
“해제하기 전에 뭐.”
“크게 한 탕 저질렀다고 물건 가지고 한 짓 있었잖아.”
직접 운반하기에는 짐이 너무 많아서 몇 개는 잘게 쪼개가려고 망치로 내리치기도 했고, 더러는 그 단단함을 눈여겨보며 무기 대용으로 휘두르기도 했다.
안에 든 내용물이 무슨 꼴이 되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배달부들은 애써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야 한다고 기도하며 보관함을 열었다.
보관함의 안에 든 내용물들은 죄다 산산조각 나거나 박살 나 있었다.
“시발! 귀중품이면 좀 더 단단해야지! 왜 다 박살난 건데!”
신전의 귀중품이니 성유물이니 하는 건 죄다 고대의 물건이다. 당연히 내구도가 낮고 쉽게 박살나는 것들이다.
최선을 다해서 취급주의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무기대용으로 휘두르기까지 했으니 내용물이 죄다 박살나는 게 당연했다.
“대, 대장. 이제 우리 어떡합니까?”
“접속 해제하면 총 든 새끼들이 찾아올 거잖아요.”
젠젠 딜리버리 배달부 대장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끝에 실낱같은 생존의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길드의 파벌은 두 개가 있다고 했었지.”
“네.”
“흑산회 진영에 붙고 구조를 요청한다.”
“물건이 이 따위로 깨졌는데 저희를 받아줄까요?”
“그럼 물건이 멀쩡한 척을 해야지.”
대장은 당당하게 주장했다.
“물건을 건네줄 때까지는 멀쩡했지만 물건을 수령한 뒤에 문제가 생기는 건 우리 알 바가 아니잖아.”
“불의의 사고를 가장해서 물건이 전부 박살났다고 여겨지면 되는 거군요!”
“바로 그거다.”
배달부들은 의기양양하게 사기를 칠 계획을 세운 다음에 쿠로를 찾아갔다. 이제야 살았다며 희색을 띄던 이들은 막상 쿠로를 눈앞에 두자 입도 뻥끗 못하고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렸다.
가뜩이나 험악한 얼굴을 지닌 쿠로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시가를 입에 물고 있자니 마피아 보스가 따로 없었다.
빌헬름 마이어 앞에서는 그냥 병신같은 부하 A에 불과했지만 쿠로는 핵과금게이머들을 통솔하는 거대조직 파벌보스이자 랭킹 1000위권의 실력파 게이머다. 혼자 있을 땐 제법 무섭다.
“물건이 무사하면 살려주지.”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쿠로가 손을 까닥거리자 부하 한 명이 석궁을 발사했다.
배달부 한 명이 머리에 볼트가 꽂힌 채 즉사했다.
쿠로는 피를 철철 쏟아내는 시체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남자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히익!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쿠로가 윽박지르자 배달부들은 혼비백산하며 뒤로 주저앉았다. 배달부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춰둔 물건을 꺼냈다. 쿠로는 물건을 열어보고는 산산조각 난 엘릭서를 발견했다.
“…….”
“…….”
“이거 뭐냐. 왜 깨져있냐.”
배달부 대장은 허겁지겁 나서서 말했다.
“원로파벌 녀석들이 가지지 못할 바에야 전부 부숴버리겠다며 기습을 가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지키려고 했지만 레벨이 너무 딸려서 그만..”
쿠로는 배달부 대장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징후를 다섯 개도 넘게 발견했다. 그는 가차 없이 칼을 뽑아서 배달부 대장의 목을 쳤다.
“다 죽여.”
일이 수틀리면 브람 시 최고권력자인 브람베르크도 암살할 정도로 배짱이 있는 쿠로였다. 일개 배달부 대장 따위에게 휘둘리며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주며 호구짓을 당할 리가 없었다.
“보스한테는 뭐라고 보고합니까?”
쿠로는 배달부 대장의 목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 * *
“불량배송입니다.”
쿠로 새끼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자새끼 수급 하나랑 개박살이 난 엘릭서와 잡동사니들을 들이밀며 한 말이었다.
나는 침상에서 일어나 멍하니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새벽 3시였다.
“꺼져.”
이런 카이사르 같은 새끼를 봤나.
내 부하들은 왜 이리 하나같이 또라이들인지 모르겠다.
============================ 작품 후기 ============================
[추천구걸코너]
쾅쾅쾅
현관문을 열자 낯선 사람이 불쑥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추천주세요!"
작가 새끼가 엉망진창으로 휘갈겨쓴 오늘치 연재분을 들이밀며 한 말이었다.
나는 집안으로 고개를 돌려 멍하니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오전 00시 07분이었다.
"꺼져."
쾅
문을 닫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런 카이사르 같은 작가를 봤나.
할로윈도 아닌데 왜 이리 공손한 또라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
쾅 닫은 현관문 뒤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불쌍하니까 추천은 눌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