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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89화 (18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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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13)

빅 마우스들이 한차례 떼죽음을 당한 뒤, 낙하속도를 줄일 방법을 전력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마법사 전력은 지상을 지키느라 바쁘기에 이곳까지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 플라이(Fly, 비행)나 레비테이션(Levitation, 자가부양)주문은 당연히 못 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황금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안전 착지를 원하세요?

“원한다.”

-그럼 그렇게 해드릴게요.

너무나도 태연스러운 말에 나는 잠시 혼란이 생겼다.

“저 많은 빅 마우스를 죽지 않게 내려 보낼 수 있다고?”

-네

“그럼 방금 전에는 왜 안전 착지를 하지 않았지?

-해달라고 안하셨잖아요.

“…….”

그럼 그렇지. 내 부하들은 하나같이 졸라 이기적이고 띠꺼운 싸이코패스들이라 생명존중사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황금공도 일단은 내가 쓰는 마도구이니 띠껍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해라.”

-네.

다시금 암반층을 수납하자 땅이 훅 꺼지면서 부유감이 들었다. 허나 낙하속도는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느려졌다.

[B7층의 모든 몬스터들이 대거 사망했습니다.]

[몰살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확장능력치 ‘학살’이 개방됩니다.]

[S급 업적 ‘플로어 초토화’ 달성!]

[당신은 세계최초로 일개 플로어 내의 모든 몬스터들을 한 순간에 말살하였습니다. 무자비한 학살에 대한 보상으로 학살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상한수치를 돌파한 활약으로 인해 여분의 정산포인트가 백만CP로 지급됩니다.]

막대한 보상을 봐도 이제는 별 감흥이 없다. 워낙에 괴물 같은 스펙을 이룬지라 작정하고 뭐만 하면 업적이요, CP보상이 쏟아진다.

그래도 이런 보상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신진영이나 중립연합국 왕궁에서의 결전에서 리나에게 적지 않은 CP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모된 CP를 총원할 기회가 있다면 되도록 충원해두는 게 좋다.

‘이렇게 쓸만한 놈을 왜 지금껏 방치했었지?’

무사히 B8층 바닥에 안착하자마자 드는 의문이었다.

-흐흥. 이제 제 진가를 아시겠나요?

“훌륭하군.”

-좀 더 칭찬하도록 하세요! 후후후!

황금마법사 테라치의 에고가 웃음을 흘리자 번쩍번쩍하면서 빛이 장내를 뒤덮었다.

“악! 내눈!”

“으악! 뭐야 방금 그거!”

“적습인가!? 적은 어디에!?”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눈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지근거리에 있던 나야말로 최대의 피해자다.

돌발적인 타이밍에 당한 눈뽕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발.”

이제 알겠다. 이 새끼를 왜 허리띠에 채워놓고 잊었는지.

조금만 기가 살면 존나 번쩍거린다.

눈이 부셔서 어디서 함부로 꺼내기가 무서운 새끼다.

-아,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닥쳐. 넌 평생 허리띠행이다.”

-번쩍거리지 않을게요! 그러니 제발 용서해주세요!

나는 의혹에 가득 찬 눈으로 황금공을 내려다보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게 간단히 되리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만 해도 사람 죽이는 건 자제하겠다면서 주먹으로 줘패고 다녔고, 리나만 해도 사람 죽이는 건 자제하겠다면서 10명 죽일 걸 3명만 죽이고 다니는 식이다.

발광하는 걸 자제하더라도 낮은 빈도로 눈뽕을 당하는 일이 계속될 건 경험적으로 확정된 사실이다.

-으으으! 조용히 빛날게요! 제발 절 가두지 말아주세요!

테라치가 애처롭게 애원하면서 빛을 분출했다.

반짝반짝

무슨 반딧불이 슬쩍 나타난 것 같은 미약한 밝기다.

졸라 소심하게 빛난다.

방금 전까지 속으로 마구 까대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하지.”

-저만 믿고 맡겨주세요.

“그래.”

B8층으로 향하는 암반층을 뚫고 연이어 B9층으로 향하는 암반층도 뚫어내었다. 미궁탐사는 순조롭게 초고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B10층에는 비장한 표정으로 천여 명의 사람들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대로 빌헬름 마이어가 심층지대에 들어간다면 복수의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프로스트 공작.

그는 일찍이 전선에서 빌헬름 마이어의 책략에 맞선 철혈공작으로 한때는 명성에서 그와 비할 자가 없었다.

운영진의 안배로 한 때는 대륙을 세 개의 진영으로 나눈 뒤, 대륙 북부지대를 집어삼키고 흑산회와 몬스터 진영의 공멸을 꾀할 정도의 뛰어난 지력마저 지닌 자였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지저분한 몰골로 지저에 숨어들었다.

이유는 명백했다.

진격의 카이사르에 의해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를 저지하고자 대륙 중앙지대에 이끌고 온 제국군은 본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몬스터 웨이브 및 계층보스의 출현으로 인해 대륙 북부일대는 몬스터 진영에 집어삼켜졌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모두 망국의 후예들이다.

“빌헬름 마이어의 지략은 대륙의 패권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막강하다. 어떤 지략가도 그의 계획을 막을 수 없고, 어떤 야심가도 그의 패도를 막을 수 없다.”

강대한 빌헬름 마이어에게 맞섰다는 이유만으로 구차한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상실하였다. 돌아갈 고향도, 함께 할 가족도, 껴안을 애인조차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밖에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인신의 경지에 도달한 악마에게 맞설 자들은, 망국의 명예를 되찾을 자들은 우리밖에 없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를 마치겠다고 다짐하였다.

“놈들의 진형은 실로 보잘 것 없다. 전방에 빌헬름 마이어를 비롯한 친위대가 돌출되어 선발대 역할을 겸하고 있지. 선두만 분단시킬 수 있다면 백만대군 모두와 맞설 필요는 없다.”

그는 당당하게 봉인문 주변을 가리켰다.

“미궁 밖으로 소집령이 떨어진 사이, 우리는 이 봉인문에 모든 대마법방어진을 설치했다. 빌헬름 마이어가 입장하자마자 차단벽을 내리고 10분간 외부와 격리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

친위대와 맞서는 것 또한 문제없다.

“우리에게는 국보급 아티펙트들을 비롯하여 온갖 진귀한 장비들도 있다. 값비싼 마법스크롤과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시약도 모두 사용할 것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기에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여력을 남겨두지도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사용하고 철저하게 박살낸다.

“놈들이 온다. 두려워하지 마라.”

대군이 다가오는 소리에 대지가 진동해도 그들은 두려움에 질려 물러서지 않았다.

‘계획대로 잘 되었군.’

미궁세계 이사진 중 한 명인 네드 이사는 프로스트 공작이 제국의 잔당과 망국의 후예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라면 빌헬름 마이어와 그를 따르는 주요간부들에게 최소한의 피해는 입히고도 남는다.

치유의 사제들마저 그들의 곁을 떠난 지금, 주 전력에 손실이 발새하면 진군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벌이는 충분할 것이다. 네드 이사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상층부에서 중층부로 향하는 B10층 암반층도 탐욕의 자루에 집어넣으려던 순간, 이상한 알림이 떴다.

[높은 통찰력이 위험을 경고합니다. 탐욕의 자루에 수납하려는 대상에서 대마법방어진이 감지되었습니다.]

[정말로 이 물건을 수납하시겠습니까?]

냉정하게 고민해보니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미궁의 상층과 중층, 하층, 심층을 나누는 경계는 보다 아래층의 농밀한 마기가 위로 올라오는 걸 막고 있다.

봉인문이 마기를 막아도 암반을 뚫고 침투하는 마기 또한 적지 않을 터. 층계 사이에 마기를 차단하는 대마법방어진이 설치되어져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다.

그래도 미궁을 정복하고 중추에서 생성되는 마기의 총량을 줄이면 대마법방어진이 없어도 감당할 수 있다.

‘수납한다.’

[암반층이 수납됩니다.]

수납은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근데 그 다음의 문구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졌다.

[B10층 봉인문 뒤에 새겨진 대마법방어진이 폭주합니다.]

[국소적으로 시공의 틈이 붕괴합니다.]

[매복 중이던 적들이 시공의 틈에 휩쓸려 사라졌습니다.]

[제국의 유령기사단이 전멸합니다.]

[망국의 후예들이 몰살당했습니다.]

[S급 업적 ‘한 놈도 남김없이’ 달성!]

[당신은 1000명 이상의 대군을 한 순간에 모조리 몰살시키고 제거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업적에...]

뭐가 죽어?

어안이 벙벙해서 다음 층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시체들을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조금 낡기는 해도 제국군 장교복도 입었다.

“거참 찝찝한 녀석들이군.”

어차피 죽어버렸고.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나는 다음 층으로 이어지는 암반층을 수납하였다.

* * *

“그래서 1초 컷을 당했다고?”

“어쩔 수 없었다. 암반이 통째로 증발하면서 대마법방어진이 폭주하고 시공의 틈이 벌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다는 거냐.”

“그건 그렇지만... 정말 골치 아프게 되었군.”

신민혁 이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조금의 시간벌이조차도 되지 못하다니.

이대로는 심층지대 난이도 상승이 충분히 이뤄질 수 없다.

“남은 시간벌이용 패는 최철준 이사와 용사들 쪽인가.”

“그쪽은 모험가들 사이에 스며들었다고 들었다.”

“쌍방에서 호응하기도 전에 몰락했으니 고립된 처지로군.”

네드이사는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었다.

“암반도 단 번에 뜯어내는 괴물 같은 게이머를 상대로 시간벌이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가능성이야 희박하겠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겠지. 리나와 유모, 그 둘 중 한 명만이라도 떼어낸다면 빌헬름 마이어에게 아무리 못해도 중상 정도는 입힐 수 있을 테니까.”

“그런가.. 분명 녀석은 제 곁에 숨어있는 <첫 번째 용사>가 누구인지 눈치 채지 못한 기색이었지.”

그나마 걸어볼만한 구석이 있다면 <첫 번째 용사>뿐이다. 운영진이 일찍이 흑산회에 심어둔 복병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운영진의 마지막 시간벌이의 성공유무가 결정된다.

신민혁 이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뭔가.”

“그 첫 번째 용사가 누구였지?”

네드는 그것도 모르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민혁은 울컥했다.

그는 바쁜 몸이어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도 모른다.”

신민혁은 주머니에 숨겨둔 총으로 향하는 손을 막는데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당장 총을 꺼내서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네드 이사는 용병출신이다.

병신처럼 보이더라도 순순히 당할 작자가 아니었다.

“관련자료는?”

“대외비로 모두 파기했다.”

“그럼 용사의 정체는 누가 알고 있는 거냐.”

네드 이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원래 운영을 전담하던 녀석이 알고 있겠지.”

“아.”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

신민혁은 이를 갈았다.

정보를 알고 있던 건 투머치토커 권도준 이사였다.

그는 얼마 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총살했다.

“알겠다. 뒷일은 데이비드 이사와 상의해서 처리하지.”

신민혁은 데이비드를 호출하였다.

“권도준 밑에서 일하던 놈들에게 흑산회에 숨어있는 용사가 누군지 알아오라고 해라.”

“어... 정말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째서 불가능하다는 거지.”

“너무 무능해서 해고했어요. 나가서 치킨이나 튀기라고요.”

“…….”

데이비드 이사는 슬며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략운영팀 팀장은 되어야 정보에 접근이 가능했을 텐데, 그 팀장은 퇴사하기 전에 자료 다 파기하고 나갔습니다. 나가서는 치킨 튀기느니 죽고 말겠다며 유서 쓰고 자살했고요.”

용사의 정체는 미궁에 빠졌다.

============================ 작품 후기 ============================

헬조선식 헬피엔딩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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