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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91화 (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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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

#8 - 내가 바로 세계의 적이다(15)

신민혁 이사는 미궁의 심층지대를 관장하는 거악, 악신들과 대면하여 교섭하였다.

“미궁을 위협하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카리스마를 지닌 모험가, 빌헬름 마이어. 그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지상을 온전히 미궁의 소유로 만들 대계를 알려주겠다.”

“그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가.”

“선신들이 떠나고 인류의 모든 왕들이 몰락한 이후, 무주공산이 된 지상에서의 통치권.”

악신들은 크게 웃었다.

“동족을 가축으로 격하시키면서까지 그들의 머리 위에 올라서고 싶은가?”

“내가 지배할 수 없는 인류 따위는 필요 없다.”

신민혁의 발언에는 한줌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악신들은 감탄했다.

비인간적인 비정함이 그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훌륭하군. 이처럼 광오하고도 어리석은 인간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 마음에 들었다. 오만의 악신의 이름으로 이 인간을 지지하겠다.”

“무절제의 악신 또한 그를 지원해주지.”

“짙은 비극은 신조차도 감동시키는 법. 비극의 신으로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고 말고. 내 기꺼이 그를 지원해주리라.”

오만의 악신을 필두로 수많은 악신들이 신민혁을 지지했다.

“빌헬름 마이어를 쓰러뜨릴 대계. 그것은 무엇인가.”

“그가 거느린 모든 권세, 모든 역량을 심층지대로 끌어들여 파멸시키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인가?”

“심층지대의 세 가지 구성요소는 모두 알고 있다. 오픈 필드. 스테이지 필드. 성역. 이 세 가지를 이용해서 함정을 판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인간이군. 지상에서 온 인간이 심층지대의 구성요소를 꿰뚫어보고 있으며, 심지어 그 지혜를 인간이 아닌 악신들을 위해 사용하다니.”

신민혁은 굴욕감을 느꼈다.

기껏해야 프로그래밍 된 존재들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심지어 이들과의 연계에 현실의 목숨도 걸렸다.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삶만이 익숙했기에 이런 약자의 입장에 처하는 상황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처치해야만 하는 강적도 있는 법. 살면서 모든 시련을 피해가기만 할 수는 없다.

“빌헬름 마이어는 심층지대를 알고 있다. 침입자에 대한 통상의 대응체제가 어떠한지도 말이다.”

“호오. 그거 놀랍군.”

“오픈필드는 심층지대에 사로잡힌 자들이 비참하게 연명하면서 악마들과 사투를 벌이고 붙잡혀 처형당하는 장소. 강대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일단 스테이지 필드로 향하려고 하겠지.”

“그래서 계획은 뭐지?”

“스테이지 필드를 클리어하고 보다 강한 힘을 얻으려는 시도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오픈필드의 입구에 기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끌고 와서 초전부터 몰살시킨다.”

악신들은 멍청하니 두 눈만 끔뻑거렸다.

“이봐. 인간”

“뭐냐.”

“그동안은 우리가 그걸 몰라서 안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은 신씩이나 됐는데 지능이 저능아처럼 낮을 리가 없었다. 악신들도 당연히 입구에서부터 우르르 몰려가서 조지는 게 가장 확실한 계책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최고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언제나 특수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이라는 걸 해보라고. 미궁의 심층지대까지 모험가 파티가 내려오는 건 일 년에 한 번도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 일단 여기까지는 인정하지?”

“인정한다.”

“그럼 우리는 몇 년에 한 번 끽해야 10명도 안 되는 인간들이 들어오는 걸로 최대한 알차고 재밌게 즐겨야 한다고. 그것도 한 명도 아닌 수백 명의 악신들이.”

“…….”

“모처럼 즐길 거리가 잔뜩 들어왔는데 입구에서부터 다 죽여버리면 앞으로는 무슨 재미로 살라는 거야? 지상도 미궁의 일부가 되었으니 심층지대 공략은 이제 영원히 불가능하잖아.”

생각보다 시답잖은 이유였다.

“정말로 그딴 이유로 괜찮은 건가?”

“그딴 이유라니! 우리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유희라고!”

“그 남자를 상대로 방심했다간 죽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인간, 너를 지지하는 거지.”

“속 편한 소리만 해대는군.”

악신들의 유희에 대한 집착은 독보적이다. 무리해서 큰 소리를 내어봤자 반발만 사고 최악의 경우에는 악신들의 손에 먼저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양보도 필요한 법.

신민혁은 두 번째 책략을 내놓았다.

“어차피 상대의 주력은 평범한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백만대군이다. 악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하면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있지.”

“그건 좀 흥미롭군.”

“압도적인 무력으로 공포심을 선사하여 놈들이 달아날 때, 예상되는 도주경로에 사전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대거 깔아두면 빌헬름 마이어의 파멸과 악신들의 유희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어디로 이어지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말하는 거지?”

“악신들의 성역에.”

악신들은 귀 밑까지 찢어지는 흉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

“각자 방향과 영역을 정해야겠어.”

“다른 놈만 가지만 억울하니 최대 전송횟수 상한선도 정해두자고.”

사악한 악신들답게 이런 방면으로는 금세 두뇌가 돌아갔다.

“주류 12악신이 가장 가까운 방위를 점하고 할당량 5만 명을 지니고, 나머지가 각자의 교세에 따라 천 명에서 5천 명 사이의 할당량을 지니면 되겠군.”

“마법진을 복수의 영역에 전개할 수 없게 하고 주류 12악신 중 한 명을 선택해 해당 방위에 영역을 전개해야겠어.”

“파벌전과 동시에 동일 파벌 내에서 얼마나 인간들을 효과적으로 공포에 빠뜨려 마법진 위에 진입하게 할지 겨누는 흥미로운 유희가 되겠군. 이거 아주 마음에 들어.”

뼈대만 제공했건만 어느새 구체적인 내용이 모두 완성되었다.

악신들은 정말로 유희거리를 완성시켰다.

백만 대군조차도 간만에 제 발로 찾아온 장난감으로 여기는 모습에 신민혁은 조금이나마 소름이 돋았다.

‘악신들의 AI는 추후 현실세계의 전쟁에 도입될 통합사념체의 중추 AI로 활용된다고 들었건만. 저런 흉험한 존재들로 치르는 전쟁은 정말로 끔찍하겠군.’

인류에게 있어서는 재앙과도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인간들도 악신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다.

최고권력자들은 저 악신들조차 유희거리로 쓰는 자들이다.

악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다.

하물며 미궁세계의 부회장은 그런 권력자들과 대등한 높이에 선 자.

빌헬름 마이어를 제거하지 못하면 부회장에게 찍힌다.

뒤는 비참한 처분만이 기다릴 뿐.

신민혁은 계획의 미진한 부분을 직접 보완하였다.

“크하하! 이거 걸작이군.”

“인간들은 틀림없이 비참하게 파멸해버리겠어.”

“다가올 유희의 날이 기대되는구나.”

신민혁도 그리 생각하였다.

‘빌헬름 마이어의 사고는 전부 예측하였다.’

심층지대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져 있다.

오픈 필드.

스테이지 필드.

성역.

오픈 필드는 심층지대 내의 무수한 공간을 포함한 광대한 영역이다.

평범한 인간은 그저 한 호흡의 숨결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미쳐버리며 영웅이라 칭송 받는 자들도 그 흉험함에 질려한다. 대부분의 심층지대 공략 모험가들은 이곳에서 사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픈 필드는 다른 모든 필드와 연결된 장소. 필드의 구속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절대자들이 내키는 대로 마구 속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방비하게 절대자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면 심층지대 공략파티는 전멸을 피할 수 없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스테이지 필드로 달아나고, 그곳에서 해당 필드의 주인을 쓰러뜨리고 힘을 얻는다면 공략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은 있다.

‘그런 희망이 순순히 이루어질 리가 없지.’

스테이지 필드의 무서움은 절대자들의 출현보다 무서운 환경 그 자체에 있다.

스테이지 필드란 애당초 악신들에 의해 파멸한 공간이다.

악신들조차 발을 들이기 꺼려하는 재앙과 종말이 살아 숨쉬는, 심층지대의 진정한 지배자 <고대신격>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공략할 틈이 있다.

적어도 신격을 상대로 하지는 않는다.

종말을 견딜 수만 있다면 모험가들은 비약적으로 강해진다.

유희를 즐기기 위해 나섰던 악신들도 긴장할 정도의 힘을 지니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악신들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게 된다.

강력해진 모험가들이 성역에 침투하여 성역을 파괴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신살의 업적을 이루기도 하니까.

빌헬름 마이어의 계획 또한 스테이지 필드의 클리어 이후, 자신의 군세를 제거하고자 쫓아오는 악신들을 하나 둘 제거하며 성역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강해질 기회 자체를 원천봉쇄한다.’

오픈필드의 입구에 인접한 성역의 지배자들은 실력과 교세가 뒤떨어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번 <유희의 날>에 참전하지도 못하게 했다.

당연히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빌헬름 마이어가 바라던 스테이지 필드에서 힘을 얻을 시간조차도 주지 않고 곧바로 스테이지 필드에 뛰어들 거다. 계획대로라면 빌헬름 마이어는, 흑산교는 틀림없이 전멸한다.

“게이머 이호연. 유감스럽게도 수읽기는 내가 한 수 위였군.”

빌헬름 마이어의 캐릭터가 찢기는 순간, 그는 부회장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뒤는 승승장구하는 인생의 시작이다.

향후 다가올 거대한 세계의 흐름에서 보다 중심부에 가까운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

그리하면 그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의 쓸 만한 충견이 아닌 개를 부리는 주인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며 유희를 만끽할 수도 있다.

비정하다고는 해도 22세기란 그런 세상이다. 거기에 불만 따위는 조금도 없다.

“내 게임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유희의 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날의 데이터를 모두 습득해 최고권력자들에게 제공한다면 미궁세계 악신들의 AI의 잔혹함과 유용함은 충분히 입증된다.

빌헬름 마이어, 게이머 이호연의 파멸이 그에게 있어서는 찬란한 미래를 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안 오네.”

“전혀 안 오는데.”

“뭐가 이렇게 느리지?”

악신들은 불만을 피력했다.

신민혁은 애써 덤덤함을 가장하였다.

“신중을 기해서 진격하는 거다. 저들도 자신들이 심층지대에 진입하는 최후의 공략군이 될 것임을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악신들은 납득하였다.

“늦게 오는 게 딱히 문제될 건 없지. 전력을 온존한 채 진입하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더 많아지잖아.”

“흐흐흐. 장난감을 가지고 놀 방법이나 궁리해야겠군.”

사악한 계획이 연이어 세워지며 악의의 칼날을 가다듬었다.

악신들의 준비는 만전을 다해 갖추어졌다.

“…….”

“…….”

“…….”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전혀 안 오잖아!”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제길, 더 이상은 못 기다려!”

성난 악신 한 명이 거울을 꺼내 탐지권능을 발휘했다.

인간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악신은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눈을 껌뻑거렸다.

“응? 뭐지? 고장 났나??”

악신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모인 다른 악신들이 성화를 부렸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인데!”

“예상치 못한 사고라도 당한 건가?”

“누가 장난감들을 선점하려고 사고를 친 거야?”

악신은 입구가 아닌 오픈필드 안쪽을 가리켰다.

“얘네 전부 안쪽에 있는데.”

“뭐?”

“여기에 없는 소악신들의 성역을 박살내놨다고.”

악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민혁에게 향했다.

강한 불신과 분노가 담긴 시선이다.

신민혁은 상황이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악신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주 전력이 입구에 있는 사이에 안쪽으로 침투했고, 소신격들이 성역에서 살해당했다면...”

“흑산교의 저력은 말도 안 되게 올라갔겠군.”

“덤으로 그 뒤에 있는 우리들의 성역은 텅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고.”

신민혁은 강제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제기랄! 이건 있을 수 없어. 내 계략이 완전히 간파되어 역이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게이머 이호연의 지략이 그 정도로 뛰어났단 말인가!?’

일이 꼬였다. 이렇게 된 이상 한 시도 미궁세계 안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로그아웃을 마치고 미궁세계 본사에서 도주를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되었다.

[히든코드 <죽음의 관>이 발동합니다.]

[강제 로그아웃이 차단되었습니다.]

[빌헬름 마이어가 사망하기 전까지 당신은 게임 밖으로 탈출할 수 없습니다.]

신민혁의 전신을 휘감았던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로그아웃이 실패했다.

신민혁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두려움에 떠는 그를 향해 성난 악신들의 천벌이 내려졌다. 그렇게 게이머 이호연의 최악의 적수는 기껏 세운 대계를 미처 발동하지도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 작품 후기 ============================

좀 더 길게 쓰면 현실파트와도 엮어서 개그를 칠 예정이었는데 필력이 조루가 되었기에 스킵되었습니다.

고로 현실파트 중간보스인 신민혁은 이쯤에서 은퇴(...)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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