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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06화 (20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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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05. 대현자 모자이크녀

#Epilogue 05. 대현자 모자이크녀

모자이크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힘들게 용병 일을 하면서 구르지도 않고, 흑산회의 터무니없는 소동에 휘말려서 고생을 하지도 안았다.

요즘은 모략의 신이라는 소신격을 얻은 이후로 음모와 귀계, 모략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그녀를 찾아와 신도가 되고, 신자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만 대응하는 게 전부다.

주주구먹식으로 상대하기 귀찮아서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대신 처리할 주교도 만들었다. 주교는 밑으로 상급사제들을 부리며 알아서 교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상 그녀가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신성력이 주기적으로 수급된다.

대놓고 말하자면 건물주 위의 조물주가 된 기분이다.

“음. 딸기 맛 쿠키도 먹을 만하네. 윽, 이건 뭐야?”

모자이크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호화스러운 신전 안에서 민트초코 맛 쿠키를 집어던지며 빈둥거렸다.

[흑산교의 대신격 빌헬름 마이어가 사망했습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떠오른 알림이 무슨 악질적인 농담인가 싶었던 것도.

“하?”

시스템 로그가 고장이라도 났나 생각하는데 대뜸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리나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언니, 나 어떡해?”

“무슨 일이니?”

“리나가 보스를 죽였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스템 알림이 마구 쏟아졌다.

[흑산진영의 소신격 암살의 신 리나가 대신격을 암살했습니다. 세계의 질서가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리나는 당신을 잠재적인 공범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녀를 도와 수습에 나설지, 리나의 범행을 밝혀 그녀를 심판받게 할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흑산진영의 소신격 학살의 신 카이사르가 빌헬름 마이어의 사망소식을 듣고 격분합니다. 카이사르가 도착하기 전까지 결단을 내리십시오.]

농담도 에러도 아니다.

모자이크녀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말했잖아! 보스의 행동에는 숨은 동기가 있을 거라고. 리나는 보스가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아도 되도록 저주를 파훼하려고 했는데... 파훼에 실패했어!!”

“아니, 무슨, 하.”

터무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 사건의 중심에 깊숙이 연루되었음은 두 말할 여지도 없었다.

‘주인님은 엄청나게 열 받았겠지.’

카이사르의 성정 상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들지도 않을 거다. 보스를 죽인 리나는 즉결처형 대상이고 모자이크 녀는 그런 리나를 부추긴 흑막처럼 여겨질 상황이다.

오해를 풀 여지도 없다. 마주치는 순간 즉시 목이 떨어지고도 남는다. 높은 통찰력 또한 이 사실을 경고하였다.

[카이사르는 당신이 <모략의 신>이라는 사실만을 주목하고 당신의 항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카이사르에게 보스 암살사건이 어처구니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임을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죽고 죽이는 생사투만이 남았습니다.]

[1시간 내로 지저도시에서 탈출하지 못할 시, 당신은 카이사르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모자이크녀는 모처럼 손에 들어온 부와 권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통찰 능력치에 의존할 것도 없이 영민한 그녀의 머릿속에 빠르게 대응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가자.”

“어어...?”

“오해는 나중에 풀어도 돼. 지금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이대로 단 둘이 달아나봤자 미궁을 모두 벗어나기도 전에 추격대에게 붙잡혀 살해당한다.

“리나는 암살단을 모아서 심층지대 입구까지 도망쳐. 협력자를 데리고 금방 거기까지 갈게.”

“하, 하지만...”

“이대로는 보스를 살해한 대역죄인이 될 뿐이야. 오해를 풀고 싶으면 일단 목숨부터 부지해야 해.”

“아, 알았어...”

모자이크녀의 머릿속에서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빠르게 분류되었다.

카이사르와 도로시 이지스, 유모는 빌헬름 마이어에 대한 충성도가 말도 안 되게 높다. 충성도가 높지 않으면서 적당한 무력도 지닌 자들을 자신과 엮이게 만들어야만 했다.

계산을 마친 뒤, 그녀는 곧장 역하렘의 신전에 찾아갔다.

“쿠로.”

“모자이크? 너도 방금 알림은 보았는가? 보스가 살해당했다는 말도 안 되는 알림이 떴는데.”

“그거 사실이에요. 리나가 죽였고 지금은 도피를 시켰어요.”

쿠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너... 뭐야. 네가 저지른 짓이었어?”

“그건 아닌데... 휴. 설명하기가 복잡해요. 아무튼 움직이려면 지금밖에 없어요.”

“움직이다니, 날 엮이게 만들 셈이라면 그만 둬.”

“이대로 여기에 있어봤자 당신도 죽게 될 뿐이에요. 카이사르가 냉정하게 범인을 가려가며 사람을 죽일 것 같아요? 수상한 사람은 닥치는 대로 전부 죽이겠죠.”

“난 수상하지 않아. 알리바이도 있다고.”

“게이머. 보스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게이머 종족임을 밝혔어요. 카이사르는 다른 게이머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가 게이머라는 정보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거고요.”

쿠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요. 당장 기용 가능한 전력 다 데리고 심층지대 입구로 나와요.”

“대체 뭘 어쩌자고?”

“지상에 올라가서 선신진영에 붙어요. 이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아니, 아무래도 그건 좀...”

“하아. 좋게 말로 하니까 좀처럼 알아먹지를 못하네. 당신, 눈 뒤집어진 싸이코 새끼한테서 살아남을 자신은 있어? 누가 의혹만 던져도 목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야.”

모자이크녀는 컨셉 플레이에 걸맞은 온화한 말투를 그만두고 용병왕 시절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TOP 100위 안에 들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의 진면목에 쿠로는 위축되었다.

“마음대로 해. 여기 남아서 죽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자, 잠깐. 같이 가자.”

“흥. 미적거리면 먼저 가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요.”

모자이크녀는 곧장 신언을 발동해 자신의 밑에 소속된 신자들에게 지상으로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쿠로 또한 즉각 신언을 발동해 신자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자들의 대대적인 움직임에 사람들이 수상한 낌새를 느끼는 사이, 모자이크녀는 마지막 조력자를 찾아갔다.

바로 만능의 신 레이브였다.

“모자이크 누나! 큰일 났어요! 보스가,”

“알아. 내가 시켰어.”

“네에에!?”

“쿠로도 같이 했고. 너도 같이 한 걸로 알려질 거야.”

“아니, 저한테 왜 이러세요!?”

레이브는 소신격을 얻고도 소심한 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모자이크녀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략하였다.

“역하렘의 신... 아니, 쇼타의 신인 쿠로 때문에 네가 여자들에게 시달리는 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어.”

“그게 뭐 어떻다구요! 전 피해자에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현역 쇼타인 네게 여자들이 꼬인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쿠로 덕분에 꽁으로 인기를 얻었으니 쿠로의 긴밀한 협력자라고 생각할 거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거야.”

레이브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맞은 것처럼 극심하게 흔들렸다. 영민한 레이브는 모자이크 녀가 작정하고 자신을 공범자로 만들려고 하면 엄청난 낙인이 찍힐 것임을 직감했다.

눈 뒤집어진 카이사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그가 공범자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보스가 죽었으니 카이사르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맨손으로 사지를 찢고 엘릭서에 몸을 담근 뒤, 억겁토록 고문을 하고도 남았다. 고삐 풀린 미치광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따라와. 살고 싶으면 당장 도망쳐야 해.”

모자이크녀는 쿠로와 레이브, 리나와 함께 심층지대 입구에서 합류했다.

“문 열어. 당장 지상으로 넘어가야 해.”

“신자들은 미궁을 올라가고 있어요.”

“걔들 따라서 같이 움직이다간 주인님.. 아니, 카이사르가 조종하는 몬스터에 발목이 잡혀. 카이사르는 마왕이고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는 거 잊었어?”

“!!”

“시간 없어. 꾸물거리지 마.”

레이브가 절대감지의 힘으로 지상으로 직행하는 차원문을 찾아내었다.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각 지상으로 탈출했다.

지상 역시 빌헬름 마이어의 사망소식에 발칵 뒤집어지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몬스터들이 광기를 드러내며 미쳐 날뛰는 꼴을 보니 카이사르가 단단히 폭주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발 앞서 미궁을 빠져나갔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다면 미궁 속의 모든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발목이 잡혀 붙잡혔으리라.

“이제 어떡하죠?”

“인간진영의 왕실을 찾아가야지.”

“망명을 받아줄까요?”

“망명이 아니야. 우리는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거야.”

“네에에!?”

모자이크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잘 생각해봐. 우리가 덜덜 떨면서 보스를 죽였어요. 살려주세요. 그런 소리를 하면 인간진영의 인간들이 얘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우리 받아주면 다 같이 죽겠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렇겠네요.”

“반면에 우리가 인간들을 위해서 최악의 난적 빌헬름 마이어를 죽이고 인간진영에 합류한다고 하면 물귀신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한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겠지.”

겁 많은 레이브도 그녀의 의견에는 납득하였다.

일행은 인간진영의 왕궁을 찾아갔다.

“헉! 다, 당신들은 누구이고 어디서 오셨소.”

인간진영의 왕은 느닷없이 엄청난 신성을 지닌 존재들이 셋에 막강한 추종자들이 대거 들이닥치자 제대로 식겁했다.

“인류를 구원한 신들이다. 우리는 빌헬름 마이어를 죽였고, 너희들의 미래를 열기 위해 지상에 돌아온 신격이다.”

“돌아가시오! 우리는 흑산진영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소.”

“허.”

모자이크 녀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인간진영의 수장이라는 녀석이 이리 심약해서야 주어진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빌헬름 마이어가 죽은 지금,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 절호의 기회임을 모르는 얼간이다.

이런 녀석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다간 다 같이 죽을 뿐이다.

“리나.”

“으, 응... 언니...”

“너 연기는 좀 하지?”

“암살에 필요한 연기라면 곁가지로 조금은...”

“곁가지가 어느 정도야?”

“천변만화가 가능한 정도밖에 안 돼...”

겁나 잘하잖아.

모자이크는 리나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멍청한 왕은 아무 쓸모가 없어. 선신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지도 못할 거야. 그러니까 누군가가 인간진영을 휘어잡고 선신진영과 교섭할 수 있는 위치를 대신해야 해.”

“그, 그걸 왜 나한테...”

“누군가가 보스의 자리를 대신해야 해. 인간들을 휘어잡고 신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으며, 그들과 당당하게 교섭에 나설 자격과 무력과 연기력을 갖춘 사람이.”

일동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필생의 순발력을 발휘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리나밖에 없군.”

“리나 누나네요.”

“리나, 너밖에 없어.”

리나는 펄쩍 뛰었다.

“리나가 왕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어!”

“왕이 아니야. 보스가 되는 거야.”

“리나가 보스라니... 그런 불경한 짓을...”

“보스가 되지 않으면 카이사르와 대등하게 외교의 장에서 만날 기회도 없을 거야. 인간들은 멍청해서 리나를 사로잡아 제물로 바치려고 할 거고.”

“그런 건 싫어!”

“오해를 풀고 싶다면 권력을 움켜쥐는 수밖에 없어. 마침 인간진영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 이 앞에 있고.”

리나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깐! 원하는 건 뭐든지 해드리겠소.”

“리나가 원하는 건 아저씨가 죽는 거야.”

뒤늦게 돌아가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왕이 목숨을 구걸했지만 리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인간진영의 왕이 사망했습니다.]

[리나가 인간진영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을 천명합니다.]

모자이크 녀는 즉각 선전공세에 나섰다.

“인류를 배신한 반역자 빌헬름 마이어는 리나의 손에 죽었다! 그녀야말로 인류를 지배하기에 마땅한 자! 꺼져가는 희망의 불시를 지핀 그녀를 찬양하라!”

“와아아!”

인간들은 순식간에 리나를 왕으로 받아들였다.

다음은 선신진영이었다.

-우리는 엮이고 싶지 않다.

-빌헬름 마이어가 없어도 카이사르라는 신은 무섭다.

-너희끼리 그냥 알아서 해결해라.

모자이크 녀는 대놓고 단언했다.

“우리가 다 죽으면 그 다음은 선신진영이야. 보스를 잃은 카이사르라면 천계의 문도 뚫고 천상에 올라가서 너희들을 한 명씩 찢어죽일걸.”

선신진영은 순식간에 태세변환을 했다.

-직접 받아들이는 건 부담스럽지만 인류진영의 새로운 신으로 등극한다면 동맹관계는 체결해주지.

그렇게 리나는 인류를 구원한 인간진영의 대신격이 되었고, 모자이크녀는 리나에게 용기와 지혜를 불어넣어준 조언자 겸 대현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세상은 흑산진영에 안주하지 않고 리나에게 대의를 이루도록 만들어준 모자이크녀의 용기와 지혜를 높이 받들었다.

“하... 난 그냥 쿠키만 먹고 있었을 뿐인데...”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일이 요 지경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미궁세계의 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의문의 출세를 당한 리나.txt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에 걸맞은 에필로그였네요.

물론 에필로그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빌헬름 마이어에요!

다음 에필로그 주역 후보군은 날벼락을 맞은 카이사르나 부단주 이질을 꼽아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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