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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06. 마왕 카이사르의 각성 이벤트
#Epilogue 06. 마왕 카이사르의 각성 이벤트
리나의 손에 빌헬름 마이어가 살해당한 이후, 카이사르는 극심한 격노에 사로잡혔다.
암살에 관련되었다고 예상되는 인물들은 닥치는 대로 살해했으며, 몬스터들을 있는 대로 총동원하여 지상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세에도 나섰다.
허나 인간진영과 선신진영이라는 두 개의 진영에 보호받는 인간들을 몰살시키기란 너무나도 힘들었다.
“분명 오해가 있을 거예요.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저와 유모는 움직이지 않겠어요.”
도로시 이지스와 유모가 카이사르의 폭주에 제동을 걸고 온건파들을 영입하자 카이사르 또한 무턱대고 혼자서 폭주를 할 수는 없었다. 힘과 공포, 권력으로도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일주일에 걸친 사투 끝에 자신과 유모가 대등한 강자이며 힘으로 상대의 의지를 관철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지상을 파멸시키겠다.”
“몬스터들도 엄청나게 죽어나갔어요. 선신들이 아껴둔 신성력을 뭉텅이로 쏟아내고 있으니 더 이상의 병력투입은 무의미한 행동이에요.”
“놈들의 신성력이 고갈되면 그 때야말로 끝이다.”
“이대로는 몬스터들의 씨가 먼저 말라버릴 걸요. 선신들은 수천수만 년도 넘게 신성력을 모아왔는걸요.”
“나 혼자서라도 놈들을 몰살하겠다.”
“현인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건 리나도 마찬가지에요. 보스를 죽이고 한층 더 강해진 리나라면 당신 혼자서 가봤자 개죽음을 당할 뿐이에요.”
도로시 이지스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분하기는 해도 복수를 이루려면 방법을 달리 모색해야 했다.
“마왕군의 정비와 양산은 너희에게 맡기겠다.”
“당신은요?”
“수련을 시작하겠다.”
혼자서 세상을 부숴버릴 수 없으면 세상을 부술 수 있을 때까지 강해지면 된다. 카이사르는 유모나 리나도 압살할 수 있는 인류최강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도로시 이지스도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그를 응원해주었다. 미친놈처럼 날뛰며 아군을 학살하는 편보다야 얌전히 수련이나 해주는 편이 백배는 더 나았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게 된 카이사르였지만 막상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부딪혔다.
“수련할 방법이 없군.”
카이사르가 강해지는 방법은 자신보다 더욱 강한 강적들과 싸우는 것이다. 뒷골목의 파락호로 살아갈 무렵부터 그는 사투를 벌이며 조금씩 강해져왔다.
허나 시스템에 의해 생성된 인과 프로그램은 그런 그의 사고에 한 가지 제동을 걸어놓았다.
「대단한 실력이군. 허나 어설프다. 십년도 못 버티고 죽을 미래가 보이는구나.」
「이 내가 어설프다고?」
「네놈은 힘을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를 따라와라. 그러면 보다 의미 있게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지. 귀족도 왕도 두려워하지 않을 절대강자의 길을 열어주마.」
바로 보스와의 거짓된 추억이었다.
“보스는 말했었지. 무분별한 힘의 행사는 죽음을 자처할 뿐이라고. 지상으로 올라가 무턱대고 싸우기만 해서는 지금까지처럼 강해질 수는 없겠지.”
무언가 지키거나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보스의 빈자리를 대신할만한 소중한 무언가가 말이다.
폭력을 쓰는 법밖에 모르는 그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같은 폭력으로도 최대의 이득을 선사할 수 있는 이정표가 필요했다. 빌헬름 마이어가 살아생전에 그러했듯이 말이다.
도로시 이지스나 유모는 이정표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주장은 그릇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울림이 없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라...”
보스가 없는 세상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남아있을까?
「너는 훌륭한 격투가로군. 내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제일 먼저 추억보정을 받은 가토가 떠올랐다. 하지만 추억보정을 받아도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가토가 살아있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텐데...”
딱히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가토는 이류무사였다.
「바보 학살광!」
그래도 하나쯤은 더 있었다.
그를 격노하게 만드는 말이지만 어쨌든 마음은 움직였다.
허나 리나는 더 이상 아군이 아닌 적이다.
한때 아군이었던 적에게 마음을 열 수는 없다.
카이사르의 눈이 깊이 침전하였다.
“고독하군.”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보스가 없는 세상에서 그가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대상 따위는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보스의 두 번째 부하이자 오랜 라이벌로 여겨온 리나나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인 모자이크마저 그를 배신한 마당이다. 이제 와서 낯선 사람을 믿는 일 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마왕이라는 말에 걸맞은 고독한 강자가 되어가려던 카이사르의 머릿속에 문득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아주 없지는 않았군.”
카이사르는 부하를 통해 어떤 사람을 데려오도록 명령했다.
가토만큼 강하지도 않고, 리나만큼 오래 된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위에 있던 사람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군. 바지사장.”
마초카페의 바지사장 설화였다.
“칫! 이제는 바지사장 아니거든요! 제대로 경영해서 돈 벌고 10배 더 비싸게 인수했잖아요!”
“수제커피전문점 마초카페의 영업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흑산회 분들을 종업원으로 채용한 덕분에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지저의 손님들은 의외로 마초스러운 면모도 강해서 제공되는 커피도 한층 더 위험하게 강화시키고 있구요.”
커피를 위엄하게 강화시키는 시점에서 일단 평범한 커피전문점은 아득히 지나쳤다. 그러나 카이사르도 설화도 그런 사실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래간만에 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부르셨나요?”
“음. 생각난 김에 한 잔 마시고 싶군.”
“후후. 이럴 줄 알고 지옥마철로 만든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왔지요.”
설화는 보온병을 열고 커피를 따라주었다.
“기체흡수는 할 줄 아시나요?”
“모른다.”
“마왕이 됐으니 피부흡수는 가능하겠죠?”
“못한다.”
“에에... 마왕도 의외로 별 거 아니네요.”
카이사르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이런 깔보는 취급은 마왕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요즘 손님들은 기체흡수와 피부흡수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남자가 된 건가.”
“네! 용암골렘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특S 부식액 코스에요! 원래는 소화기에 담아서 뿌려야 되는데 들고 오기가 무거워서 보온병으로 참았어요!”
“…….”
손님들이 악마나 골렘 같은 제정신이 아닌 것들이 되다보니 설화도 자연스럽게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카이사르는 그 사실에 분노하거나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너를 부른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도 모처럼 가져왔는데 일단 마셔주세요!”
“…….”
마치 자신은 이만큼 발전했으니 너도 그간 발전한 상남자력을 발휘해보라는 것 같은 발언이었다.
카이사르의 시야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이나 집중력이 최고조로 상승할 때에만 돌입할 수 있는 <인지단위:플랑크>의 찰나간의 순간에 돌입한 것이다.
그는 이 커피를 어떻게 마셔야 기체흡수나 피부흡수를 하는 골렘 손님들보다 더 상남자처럼 보일 수 있는지 고민했다. 잿빛 시야 속에서 카이사르의 손이 느릿하게 보온병으로 향했다.
“!”
설화의 눈이 아주 느릿하게 커지는 사이에 카이사르는 보온병과 보온병 뚜껑을 양손으로 모두 뺏어들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양손에 든 보온병과 보온병 뚜껑을 집어삼켰다.
지옥마철로 만든 보온병을 씹어먹고 삼키면 최강의 상남자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으드득
“…….”
너무 단단하다.
평범한 지옥마철이 아닌 초합금 지옥마철이라도 되는지 금강석도 씹어 먹는 이빨이 역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심지어 보온병에서 새어나오는 액체가 혀에 닿자마자 144종류의 상태이상과 1024종의 저주를 인체에 걸기 시작했다. 그를 독살하려고 왔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의 현상이었다.
카이사르는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믿었던 설화에게마저 배신을 당한 걸까?
혹여나 이런 날이 다시금 찾아올까봐 연마한 진위판별 기술을 발동하였다. 허나 설화의 마음에는 어떠한 악의도 존재하지 않았고, 천진난만한 마음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이 커피라면 카이사르님도 인정해주시겠지!
-미궁 최고의 커피전문점 주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겠어!
-못 마시고 뱉으면 내 승리야!
무거운 기대였다.
덤으로 승부욕까지 생겨버렸다.
‘반드시 해치워 보이겠다!’
카이사르는 전신마력을 동원하였다.
상호작용을 하며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144종의 상태이상과 1024종의 저주를 모조리 마력으로 휘어잡았다.
신체의 벨런스를 망가뜨리고 목숨마저 앗아가려는 흉악한 기운을 강제로 끄집어내고 뜯어낸 뒤에 하나로 응축하고는 지옥마철에 주입시켰다.
마력의 성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인해 카이사르의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또한 다양한 상태이상과 저주에 대한 내성 및 파훼법이 자동적으로 정립되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히며 해결하는 행동이 급진적인 성장을 불러왔다.
커피 한 잔 조차 상남자처럼 먹어치우지 못해서야 보스의 원수를 갚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그런 집념이 불가능을 뚫고 마력의 힘으로 입 안에서 지옥마철을 증발시켰다.
“!!”
설화의 눈이 비로소 경악의 기색을 완전히 드러내었을 무렵, 카이사르는 새로운 난관을 맞이하였다.
기화된 지옥마철의 독성은 대기를 압축하고 짓뭉개며 한 방울의 극독으로 뭉쳤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가 뭉친 것만 같은 <지옥의 정수>를 마셨다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거다.
허나 보스라면 이 <지옥의 정수>를 마시더라도 눈 한번 꿈쩍하지 않고 가볍게 말했을 거다.
-밍밍하군. 벤티(Venti, 600ml) 사이즈로 내놔라.
물론 빌헬름 마이어는 애초에 이딴 극독을 마실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카이사르의 착각이 만들어낸 가공의 빌헬름 마이어나 취할 법한 행동이다.
‘힘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이런 극독을 상대로 최강의 무술을 발휘해봤자 한줌의 핏물조차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려 죽는다. 보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설화는 강함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보스가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설화는 힘으로 맞설 수 없는 위협을 제시하였다.
신들의 신성력과 권능이 이와 같았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무의미하다. 카이사르가 섣불리 지상으로 뛰쳐나가 리나와 생사투를 벌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군. 설화는 처음부터 내 의도를 알고 있었어.’
권능방어술을 연마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읽고 이를 연마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련을 제시했다. 설화는 커피 한 잔으로 그가 맞이한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심지어 답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 설화는 커피전문점 주인으로서의 자신의 역량이 마왕을 뛰어넘는 수준임을 증명하고, 그는 설화의 밑거름이 되어 사라진다.
마왕의 권위와 저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 용맹함을 리나나 모자이크녀의 비겁한 배신과 동일선상에 놓는 행위는 설화를 향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성장했는가.’
설화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 1년 간 그녀가 이룩한 발전은 실로 눈부시게 빛났다.
허나 카이사르는 위기에 강한 남자다.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서야 할 시련이라면 기꺼이 맞이할 자신이 있었다.
‘몸으로 견딜 수 없다면 소멸시킨다!’
카이사르가 지닌 전신공력이 마력과 신성력과 결합하여 국소적인 공간과 공명현상을 일으켰다.
온갖 상태이상과 저주의 마력, 지옥마철이 뭉쳐진 <지옥의 정수>는 끔찍한 중량을 지니고 있다. 허나 카이사르의 의지력은 공간 그 자체를 지탱할 정도로 뛰어났다.
나아가 그는 <지옥의 정수>를 담은 공간을 다시금 압축하고는 공간을 왜곡시켜 소멸하는 대 권능 방어술인 공간왜곡의 기술을 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근사한 한 잔이었다.”
“와아! 대단해요! 역시 카이사르님은 당해낼 수 없네요.”
“내가 원래 좀 대단하다.”
“마약술사 파난은 이 특제커피는 어떤 생물체도 감당할 수 없는 우주적 악의가 담긴 커피라고 했지만 카이사르님이라면 틀림없이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마약술사 파난이 공언하거나 커피를 해치운다는 표현을 붙이는 시점에서 이미 뭔가가 심각하게 글러먹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을 지적하는 건 상남자답지 않은 행동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또라이 같은 논리에 사로잡혀 부당한 커피폭력을 순응하였다.
“그래서 절 부른 이유가 뭐였나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딴 커피를 다시 마시고 싶은 건 아니다.
카이사르에게도 이 커피는 너무 힘들었다.
같은 시련은 한 번만 넘어서면 족하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널 보니 모든 근심걱정이 해결되었다. 이제 돌아가도 좋다.”
“잘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잘 가라.”
“그럼 내일 또 놀러올게요!”
“뭐?”
카이사르는 흠칫 놀랐다.
설화는 무척이나 분해하며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내일은 카이사르님도 무찌를 수 있는 대단한 커피를 타서 인정받을 거예요!”
“난 이미 너를 인정했다.”
“에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땀이 흐르고 미간이 찡그려질 정도로 맛없는 커피였다는 거잖아요.”
아니 이 새끼가. 이딴 걸 어떻게 마셔야 맛있게 마시는데.
카이사르는 욱하려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수련에 방해가 된다.”
“상남자답지 않게 도전을 회피하는 건가요?”
“...수련에 방해되지 않는 스몰 사이즈로만 가져와라.”
곧 죽어도 벤티 사이즈를 달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설화는 환히 웃으며 기뻐하였다.
그날부로 카이사르는 권능방어술을 각성하고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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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두꺼비 같은 생태계교란종 카이사르에게도 천적은 있었군요!
이독제독이라는 말처럼 또라이는 저 큰 또라이로 상대해야 제맛이죠!
에필로그에 써먹지 않은 흑산회 조연도 이제 몇 남지 않았군요.
레이브, 유모, 이질.
세 편을 모두 쓰고 최종편에 돌입할지, 깔끔하게 한 편만 쓸지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