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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08화 (208/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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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07. 암살단 부단주 이질

#Epilogue 07. 암살단 부단주 이질

이질은 고아로 자랐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녀의 생애에 유일한 전환점이 있다면 흑산회에 참여한 거다.

“이런 비리비리한 꼬맹이가 뭘 할 수 있다고?”

“훠이 훠이. 암흑조직은 애들이 올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애 돌보기는 질색이니까 어딘가 다른데로 가버려.”

흑산회 조직원들은 그녀의 가입을 반기지 않았다. 아이는 이런 곳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귀찮은 일이 늘어나는 게 싫었을 뿐이다.

“아닌데? 어릴수록 좋은 건데?”

“헉! 꼬맹이간부!”

“이 자식들이! 확 찔러버리기 전에 꺼져!”

조직원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리나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살인기술을 연마한 암살자였다.

“흑산회에 들어오고 싶다고?”

“네.”

“좋아. 그럼 넌 내 부하 1호다!”

집도 없고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질에게 흑산회에 들어오고 리나의 눈에 띄어 암살단에 들어온 것은 일종의 출세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해 굶어죽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폭력으로 지배하며 돈을 쓸어 담는 파락호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으니까.

“분명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작은 욕심이 생겼다.

“움직이면 들킬지도 모르는데?”

“시험해보셔도 좋습니다.”

“흠.”

망토 안에 은신했다고 대뜸 탭댄스를 추는 짓궂은 면모는 있지만 그만큼 물심양면으로 자신들을 챙겨주는 빌헬름 마이어. 그는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두 번째 인간이었다.

“우으! 보스으, 리나 넘어졌어!”

“이리 와라.”

“응!”

“이러면 아프지는 않겠지.”

“...다친 건 무릎인데 왜 턱을 쓰다듬는 거야.”

그런 리나와 빌헬름 마이어가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따스해지던 마음이 점차 괴로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이 감정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깨달았다.

“사랑...”

리나가 받는 애정을 자신도 받고 싶다. 저 자리에 자신이 대신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망이 커져갈수록 고통 또한 더욱 커졌다.

적이라면 죽일 수 있지만 은인이나 다름없는 리나 단주를 죽일 수는 없었다.

“흐흥. 유능한 부단주를 두니 일이 편해서 좋은걸!”

“…….”

“부단주. 뭔가 고민이라도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중에라도 좋으니까 말하고 싶으면 꼭 말하라고! 부하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도 단주의 의무이니까!”

리나가 호의를 보이고 친밀한 태도를 취할수록 이질은 더욱 더 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점점 모르겠어. 보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리나가 약한 모습을 보이며 보스를 향한 의혹을 내비칠 때, 그걸 기회라고 받아들인 것은.

“리나 대장은 보스의 단 한 명뿐인 이해자입니다.”

“그렇지?”

“보스는 그저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위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안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니. 혹시 리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봐 부끄러워서? 꺄~!”

“보스의 대업은 미궁정복입니다. 지상에는 뜻이 없다는 것도 이번 대담으로 확고히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미궁을 정복한다면 그 이후는 어떨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리나의 얼굴 위로 피어나던 웃음꽃이 급격히 시들었다.

이질은 달랐다.

그녀의 안에는 어두운 욕망이 꿈틀거리며 자라났다.

“없어. 보스는 단 한 번도 정복 후를 언급하지 않았어.”

“분명 그렇기 때문일 겁니다.”

“모르겠어. 리나는 전혀 모르겠다고.”

이질은 무표정한 얼굴로 리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알고 싶지 않기에 어리광을 부리는 거다.

“보스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미궁에서 최후를 맞이할 작정이실 겁니다.”

“거짓말! 그런 건 거짓말이야!”

“보스는 리나 대장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리나 대장을 아끼기에 더욱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미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결단이 흐려지지 않도록.”

강철보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보스의 의지를 보며 이질은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만일 리나가 보스의 의지를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면 그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래도 남자인 이상 욕망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보스의 식사에 미약을 타서 관계를 맺게 하고 리나 대장이 아이를 낳는다면 어쩔 수 없이 미궁공략은 미뤄지게 됩니다.”

“무, 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미약으로 성관계라니 그런 짓을 리나가 할 리가 없잖아!”

“보스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리는 내역이 카이사르 대장의 친위대원들이나 저희 암살단, 리나 대장에게 제공하는 품위유지비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구!”

“보스는 감정을 죽이는 데 능숙한 분이시지만 관심마저 없앨 수는 없습니다. 품위유지비는 보스가 저희에게 품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리나가 없을 때, 그녀의 빈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질은 보스의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이사르와 리나가 모두 없을 때의 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이 움직일 이유는 남지 않은 것처럼.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그 두 사람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없는 지금은 리나가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들어갈 틈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암살단의 부단주일 뿐이다.

“그건... 맞을지도...”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감정을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스는 아직 모든 감정을 죽이지는 못한 겁니다. 그리고 분명 보스가 리나 대장에게 품은 감정은 보통 감정이 아닙니다.”

“보, 보통 감정이 아니야...?”

“리나 대장이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보스는 반드시 유혹에 넘어올 겁니다. 적어도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되는 그 날까지만 함께 하자고 한다면 넘어올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

만약 리나 단주가 보스의 미움을 받고 밀려난다면.

홀로 남은 보스에게 자신이 접근한다면.

그때라면 실낱같은 가능성이나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리나가 번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질의 기분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은인이나 다름없는 리나를 괴롭히는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만이 커졌다.

아무리 괴롭고 쓰라려도 이 선만큼은 넘을 수 없었다. 리나와의 유대의 깊이가 마지막 선을 넘지 못했다.

“역시 리나 대장은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질은 미약 대신 단검을 꺼내들었다.

“같은 남자에게 반한 여자끼리 캣파이트, 아니 대련은 어떠십니까.”

“그걸 정정한다고 앞에 한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리나는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도 설핏 미소 지으며 마주 단검을 꺼내들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억지로 벌릴 수 없다면 차라리 응원이라도 해주자.

분명 이게 옳은 선택이리라.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 * *

중앙연합국의 주요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암살하며 선신교단의 씨를 말리던 도중, 이질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기도가 무겁다.

낌새를 눈치 챈 그녀가 발을 뒤로 물렸지만, 술집을 가득 메운 검사들이 일제히 좌석에서 일어났다.

“당했군...”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중앙연합국의 내로라하는 검의 고수들을 모두 모은 것처럼 엄청난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이 함정은 벗어날 수 없다.

검사들의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은발의 남성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한층 더 깊어졌다. 허름한 망토 아래로 드러나는 은빛 갑주는 <검주(Sword Master)>의 표식이 새겨졌다.

“흑산회 직속 암살단 부단주 이질이라. 목숨을 걸고 판 함정에 걸린 게 단주가 아닌 건 아쉽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볼 수 있겠어.”

“용사 지켈. 듣던 것과 달리 주도면밀하군.”

“당연하지. 나는 지켈이 아니니까.”

지켈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일그러지더니 놀라울 정도로 청초한 음성이 되었다.

“어때. 이 목소리는?”

“가짜 모자이크...!”

“역시 뛰어나구나. 네게는 점점 탐이 나는걸.”

지켈의 외형이 변화하더니 절세가인의 모습이 되었다.

저주에서 해방된 모자이크녀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대체 뭐지?”

“미의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 용사 라헬.”

“설마 같은 용사를 죽여서까지 기회를 만들어낼 줄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치밀함과 악의는 그녀가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음은 내 모습을 취할 셈인가.”

“그래.”

“그 전에 자결한다면?”

라헬은 비웃음을 지었다.

“상관없어.”

그녀의 외향이 이질의 것과 완벽히 동일하게 변했다.

“너희들의 모습은 2년 전에도 지켜봤으니까.”

“2년 전부터.. 이 날을 기다려온 거였군.”

“그래. 바질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2년은 그리 길지도 않지.”

라헬. 그녀 또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며 자라왔다.

해적왕 바질.

해적군도에서 마주한 소드마스터 호크와 대마법사 기간트.

세 사람의 희생이 그녀를 살아남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모두 형편없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멋대로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죽었다.

바질의 해적선이 마이어 왕국의 추격대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적에 느낀 비애는 아직도 그녀의 가슴 속 깊은 곳에 크나큰 상실감을 남겼다.

“나는 네가 될 거야. 언젠가 기회가 다가온다면 반드시 빌헬름 마이어를 죽이겠어.”

구질구질한 뒷골목 인생으로 시작한 건 라헬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만나온 사람이 달랐을 뿐.

그녀도 빌헬름 마이어를 먼저 만났다면 이질처럼 될 수 있었다.

그건 이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해적왕 바질과 만났다면 라헬처럼 될 수 있었다.

라헬의 슬픔에 젖은 눈을 보며 이질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죽기 전에 유언을 들어줬으면 한다.”

“마지막 자비로 들어주지.”

“단주를 지켜줘.”

라헬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네가 죽으면 단주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텐데. 정말로 그런 걸로 괜찮은 건가?”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야. 뒷골목에서 보잘 것 없이 끝났을 운명을 바꿔준 은인이기도 하지.”

“보스가 죽는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될 텐데.”

이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어.”

“진심인가?”

“단주라면 언젠가 네가 가짜라는 걸 깨달을 테니까.”

라헬은 조소를 지었다.

“내 연기는 완벽해. 진짜보다 진짜 같은 연기를 할 수 있지. 리나를 통해 복수를 하겠다는 심산이라면 평생 동안 실패할 거라고 확신해주지.”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어.”

“뭐?”

“단주와 나의 유대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면 평생 동안 보스를 죽인 원흉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고통이라도 느꼈으면 하니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어.”

“…….”

라헬은 이질의 두 눈에서 과거의 자신을 엿보았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주었던 세 남자가 모두 죽은 뒤 맛보았던 상실감과 복수심, 무거운 짐을 남긴 그들을 향한 원망이 보였다.

“다행이군. 너라면 연기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

“좋아. 유언은 반드시 들어주지.”

라헬의 목적은 빌헬름 마이어의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자신을 닮은 여자의 유언을 들어주는 것쯤은 어렵지도 않다.

“잘 가라. 이질. 네가 사랑했던 보스도 곧 곁으로 보내주지.”

“…….”

라헬의 검이 일순간에 이질의 목을 베었다.

조용히 감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뒤에야 천천히 실선이 그어지더니 수급이 떨어졌다.

“시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둬.”

“괜찮겠습니까?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라헬은 물끄러미 수급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런 표정으로 죽은 놈을 태울 수는 없잖아.”

한없이 슬픔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미소가 지어진 얼굴이었다.

아, 이거 꿈에서 나오겠는데.

라헬은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라헬의 감정, 라헬의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묘비에는 지켈의 이름이라도 적어두라고.”

오늘부터는 그녀가 암살단 부단주 이질이니까.

============================ 작품 후기 ============================

필력이 온전히 유지되었다면 2부 본편의 막바지에서 드러났을 반전입니다.

귀여운 이질은 용사 라헬의 함정에 빠져 살해당했군요. ㅠㅠ

바로 몇화 전에 리나를 부추겼던 이질은 부단주의 탈을 쓴 용사 라헬이었습니다.

과연 리나는 라헬의 정체를 눈치 챌 수 있을까요?

결말은 바로 다음 화, 최종 에필로그 빌헬름 마이어 편에서 공개됩니다.

아. 레이브랑 유모 외전은 어쨌냐구요?

스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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