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외전 2. 브람 시 공포괴담
(※본편과는 관련 없는 사이드 스토리를 가정한 시점)
(※작중에서는 챕터 3과 4 사이의 무렵입니다.)
브람 시는 마이어 왕국의 유일무이한 미궁도시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압니까? 이 나라에서 가장 기괴한 일들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위험지대라는 말입니다.”
어두컴컴한 아지트 안에서 복면을 쓴 괴한과 안면을 뒤덮을 정도로 장발을 드리운 여자,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무기를 든 남자가 촛대 아래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궁 7대 금기를 말하는 건가.”
“다릅니다. 브람 시에는 브람 시만의 7대 불가사의가 있지. 그것도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불가사의입니다.”
“어떤 괴담이지?”
“어떤 계단에서 숨겨진 44번째 계단에 발을 디디면 사신을 만나 죽는다거나, 빨간 솜사탕을 먹으면 운이 나빠진다거나, 23시 59분 59초에 시계를 보면 존재하지 않는 허수세계에서 한 시간을 생존해야 합니다.”
“뭐가 무섭다는 건지 모르겠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마력등을 키며 어두컴컴한 실내를 환히 밝혔다.
“아악! 눈이, 눈이이이!”
“적습인가!?”
“유령이라면 단칼에 죽여주겠…!”
눈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복면괴한과 달리, 장발의 여자와 칼 든 남자는 순식간에 비도와 칼을 날렸다. 거친 금속음과 함께 비도와 칼이 맞부딪히며 내 양옆으로 벽에 깊이 박혔다.
“…….”
머리에 박히면 즉사였다.
“뭐하는 짓이냐.”
“헉! 보, 보스. 죄송합니다.”
장발의 여자가 대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자 머리에 뒤집어쓴 가발이 훌러덩 벗겨졌다.
여자의 정체는 카이사르의 부하인 격투가 데이고르였다.
복면의 괴한은 복면을 벗으니 모략가 사이토였고.
칼을 던진 남자는 당연히 진성 싸이코패스 카이사르다.
“제가 아니었으면 보스는 죽을 뻔했습니다.”
“기도 안 차는군.”
시답잖은 소리에는 관심 없다.
“대낮부터 방에 틀어박혀서 커튼이나 치고 뭐하는 짓이냐.”
“커튼을 친 건 아닙니다. 밖의 날씨가 험해서 수금이나 순찰을 나가기가 힘들어서 무서운 이야기나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의 불가사의 말인가.”
“예. 보스도 관심 있으십니까?”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한 또라이 카이사르를 두고 무슨 불가사의를 또 찾으려는 거냐. 나한테는 이 녀석들의 정신머리가 더 불가사의하다.
“무례한 놈!”
카이사르가 대뜸 사이토에게 역정을 내질렀다.
겁먹은 사이토의 목이 거북이처럼 쏙 움츠러들었다.
“보스는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한 전대의 은거고수다. 지금 그건 피로 물든 역사의 비화를 고백하라는 참회요청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아앗…! 그런 문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보스.”
“그러니 보스에게 제대로 돈을 지불하란 말이다. 1쿠퍼로.”
그딴 비화 없어. 백 원짜리 푼돈 같은 거 준다고 얘기 안 해.
주머니 뒤적거리지 마라.
은행에서도 민폐라서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가 아니면 동전 안 받는다고.
“사내자식들이 음침한 곳에 박혀있지 말고 밖이나 나가라.”
“…이 날씨에 말입니까?”
쏴아아아아.
먹구름이 가득 낀 창밖은 새카만 암흑천지에 쏟아지는 빗발로 다른 소리마저 모두 집어삼켜졌다.
흡사 인세에 강림한 종말적인 광경이었다.
“암흑시야 특성을 개발하기에 좋은 날씨군.”
“!?”
미궁 들어가면 더 새카만데 뭐가 문제야.
그보다 너희가 아지트에 처박혀있으면 뭔가 그림이 이상해.
부엌으로 갈 때마다 눈에 띄어서 엄청나게 무섭다고.
“특훈입니까.”
카이사르만이 위협적으로 눈을 번뜩였다.
뭔가 위험한 스위치가 켜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다.”
“습득과제는 무엇입니까.”
“어둠과 공포심을 뚫고 암흑시야 특성을 습득하는 것이다.”
불가사의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놈을 구슬리기에는 딱 좋은 핑계다. 아니나 다를까, 카이사르는 열정적으로 불가사의의 진상을 규명할 겸 특훈을 하겠다며 제 발로 아지트를 나갔다.
“저희는 왜 따라가는 건가요.”
“흑산회 주요 조직원의 자리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데이고르는 격투가이기라도 하지 저는 모략가인데요.”
“대세는 힘법사다. 머리 쓰는 놈도 몸을 움직여서 근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
저 멍청한 사이토는 그렇다고 치고 나는 왜 끌려 나온 거냐. 악천우를 틈타서 무능한 보스를 살해하고 빈자리를 대신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기라도 하는 건가.
“보스는 심사를 부탁드립니다.”
“뭐?”
“저희가 올바르게 불가사의를 극복하며 암흑시야 특성을 얻었는지 평가해주십시오.”
“귀찮은데.”
“저희는 보스에게 귀찮은 존재입니까?”
카이사르의 눈매가 위협적으로 번들거렸다.
네놈이 살아있는 걸 귀찮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당장 심판 노릇을 하라는 눈빛이었다.
“그런 귀찮음을 무릅쓸 정도로 내가 너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유능한 제가 받을만한 기대입니다.”
“…….”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공갈쳐서 칭찬받기냐.
내 부하지만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다.
쏴아아아아.
“불가사의 탐색은 맨몸으로 진행해야 합니까?”
원래는 대충 내보내려고 했는데.
나까지 같이 나오고 말았으니 그건 좀 곤란하지.
“미궁은 만전의 준비를 갖춘 뒤에 탐사를 진행한다. 당연히 맨몸이 아닌 중무장을 해야 한다.”
“지금 저희는 무장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장을 갖추러 가야지.”
아지트에 가서 우산이라도 꺼내자고.
그런 에둘러 말하는 설득에 카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현지에서 물자조달을 실시하겠습니다.”
“…….”
카이사르는 기어이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잡고 때리더니 우산과 우비를 조달해왔다.
“어떻습니까.”
“잘했다.”
“좀 더 칭찬하셔도 좋습니다.”
이 새끼 재수 없어.
“사이토. 네놈은 모략가인 주제에 어째서 전략 입안이 없지?”
“어어… 죄, 죄송합니다. 큰형님.”
“빨리 불가사의를 찾아서 때려죽일 방법을 찾아라.”
응?
내가 지금 환각을 들은 건가?
“아, 알겠습니다.”
불쌍한 사이토는 느닷없이 남들은 피해 다니는 불가사의를 찾아서 길안내에 나서기 시작했다. 작전 입안 하라고 시켰더니 몸소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니 절로 안쓰러워진다.
이런 게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하는 건가 싶다.
“이런다고 뭐가 나오기는 하나.”
데이고르는 헛고생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나도 동의한다.
그래도 카이사르의 똥고집은 말릴 수가 없어서 그냥 걸었다.
드르륵─ 쿵!
드르르르륵─ 쿵!
“…지금 이거 사슬 소리인가요?”
“뭔가 무거운 걸 끌고 다니는 소리 같은데.”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비 오는 거리 어디선가 기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히이익! 불가사의입니다! 비 오는 날마다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사슬맨 괴담이 틀림없습니다!”
“뭐냐, 그 허접하게 들리는 괴담은.”
“먼 옛날 브람 시가 항구도시였을 시절에 물이 빠지며 갈 곳을 잃은 선박이 해체된 무렵, 실직한 선장이 사슬에 몸을 감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모르십니까?”
“모른다.”
“비가 오는 날마다 자살한 선장의 원령이 아무도 없는 거리를 홀로 배회하며 유령선에 탑승할 선원을 모집한다는 괴담입니다. 배에 탄 승객은 비가 그치면 모두 실종된다는 괴담으로…….”
사이토가 허겁지겁 설명충 노릇을 하는 사이, 카이사르가 미친 듯이 빗속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어?”
“네놈이구나! 죽어라! 그리고 암흑시야를 내놔라!”
별안간 노호성과 함께 대검과 사슬이 부딪히는 격렬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황급히 소리를 따라 쫓아갔을 때에는 부러진 쇠사슬을 손에 든 카이사르만이 남아있었다.
“…카이사르. 일단은 묻겠다만, 유령선장은?”
“성불시켰습니다.”
“…….”
일단 검에 묻은 피부터 없애고 성불타령해라.
[카이사르가 브람 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폭우 속의 유령선장’을 제거했습니다.]
확인사살까지 떠버렸네. 그보다 진짜로 있는 거였냐…….
밑도 끝도 없이 심란해진 우리들의 심정은 뒷전으로 한 채, 카이사르는 사이토를 재촉했다.
“다음.”
“이, 이쪽의 폐쇄된 공장지구에 유명한 심령스팟이 있습니다.”
심령스팟에 도착하자 노란 우비를 쓴 한 무리의 인간들이 보였다.
“황천의 왕이시여, 우리들의 부름에 답하소서…!”
“약속된 제물을 여기 바치나이다.”
“들쥐 세 마리와 들개 두 마리, 산양의 피로 그린 마법진을… 아앗! 물이 들어오잖아! 빨리 물 빼!”
한눈에 봐도 수상해 보이는 인간들이 삽자루로 제단 위의 물을 퍼다 나르고 있다.
“다행히도 제가 나설 차례가 된 것 같군요. 여기서는 일단 원활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 비슷한 색상의 우비를 뒤집어쓰고 일원인 척 접근을…….”
사이토가 주섬주섬 행인에게 강탈한 여분의 우비를 뒤적거리는 사이, 카이사르는 문답무용으로 뛰쳐나갔다.
“죽어라! 불가사의들아!”
“크아악!”
“왜, 왜 이러세요! 저희 연극 중비중인데… 꺄아악!”
몇 번의 칼부림이 오가더니 순식간에 수어구의 시체가 늘어섰다. 시체에서 나온 피가 제단에 스며들더니 짙은 폭우와 어둠 속에서 핏빛 광채가 번뜩였다.
[핏빛 재단의 오망성이 제물의 피를 받아들이며 소환을…]
“암흑시야를 내놔라!”
콰앙!
카이사르의 난폭한 강격이 제단을 내리찍었다.
쩌저적!
금 간 제단을 걷어차자 제단이 퍽 떨어졌다.
[재단의 소환의식이 중지되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브람 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황천의 핏빛부름’을 분쇄했습니다.]
데이고르가 멀뚱멀뚱 눈을 껌뻑거리다가 물었다.
“이거 저희 필요한 건가요?”
“아니.”
그냥 저 새끼가 혼자서 뭔가 저지르고 있는데.
벙찐 사이토에게 다가온 카이사르는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다음.”
“어… 계단이나 찾아볼게요. 44계단의 불가사의는 브람 시 내에서 계단이 43개 있는 장소가 한 곳 알려져서 그곳을 중점적으로 찾아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불가사의 탐험대인지 미치광이 싸이코의 광기어린 살인여정인지 모르겠다.
“불가사의라는 건 때려서 죽일 수도 있는 거였군요.”
“그렇군.”
“보스도 죽여 보셨습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려는데 카이사르가 어둠 속에서 시뻘건 눈동자를 번뜩이는 모습이 보였다. 살기 충만한 눈빛을 보니 본능적으로 살아남으려고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젊은 시절에는 불가사의 사냥도 다니고 그랬지. 진정한 모험가는 모름지기 불가사의 하나쯤은 부숴봐야 하는 법이다.”
“그렇군요. 상식이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역시 암흑가의 상식은 무시무시하군요.”
그딴 상식 없어.
납득하지 마.
“여기입니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카이사르를 향한 공포심을 애써 떨쳐내는 와중에 계단에 도착했다. 우리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계단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속으로 수를 헤아렸다.
41… 42… 43.
계단이 끝났다.
“아무것도 없군.”
“없네요.”
“역시 괴담은 괴담일 뿐이죠. 지금까지가 이상했습니다.”
사이토와 데이고르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된 반면에 카이사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물끄러미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그러더니 대뜸 바닥에 칼을 쑤셔 박았다.
쾅! 덜그럭!
계단이 부서지며 큼지막한 파편이 튀었다.
“이렇게 하면 44번째 계단이 생기는군.”
카이사르는 파편을 주워 바닥에 올려놓고는 올라갔다.
“…….”
실로 카이사르다운 짓이다. 멍하니 감탄하며 바라보는데 대뜸 옆에 있는 건물 벽이 드드득 거리며 열렸다.
“어… 고객님?”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상급정보상인의 비밀통로 개방 트리거였었냐… 괴담에 나온 사신의 정체가 밝혀졌군. 아무런 연도 없이 저기에 발을 들인 사람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불가사의는 존재했지만 암흑시야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우린 도대체 뭐하러 나온 걸까. 멍하니 돌아가는 길에 빨간 솜사탕을 든 금발 여자아이가 보였다.
“저건! 먹으면 운이 나빠지는 불가사의 ‘빨간 솜사탕’입니다!”
“아앗! 보스, 리나를 마중 나온 거야?”
일동의 표정이 뭐라 형언하기 힘들게 변했다.
카이사르는 대뜸 리나에게 다가섰다.
“뭐, 뭐야?”
“솜사탕을 내놔라.”
“싫어! 리나가 돈 주고 산 거야!”
사이토는 리나를 어르고 달래고자 시도했다.
“그 솜사탕은 위험합니다. 꼬맹이간부님. 세상에는 불가사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위험한 건 저 바보 학살광이라고!”
데이고르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딱히 상관없지 않나. 운이 나빠지는 정도는.”
“…….”
리나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대뜸 솜사탕을 먹으면 운이 나빠진다니 찝찝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뭔가 북풍과 태양의 전법을 보는 기분이 든다.
“왠지 기분 나쁜 소릴 들으니까 먹기 싫어졌어.”
리나는 솜사탕을 툭 던졌다.
아지트에 돌아온 우리는 리나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리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보스. 정말 고마워.”
“음?”
“보스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운이 나빠졌을지도 몰라.”
리나는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잘 생각해보니 그 솜사탕, 우산도 없이 들고 있었는데 전혀 녹지 않았었잖아.”
“……!”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오싹함에 사로잡혔다.
불가사의가 실제로 존재함을 깨달은 그 날 이후, 우리는 공포괴담을 농담처럼 흘려들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나 괴담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리나는 한 가지 기이한 습관마저 생겼다.
“퉤.”
“…….”
“다행이야! 이 솜사탕은 제대로 녹네!”
솜사탕을 먹기 전에 침을 뱉어서 녹여보는 습관이었다.
이걸 웃어야할지 귀여워해야할지 모르겠네.
아무튼 침 뱉은 솜사탕을 나한테 들이밀지만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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