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13화 (213/224)

[212] 외전 4. 검은 왕관 간부출신 조직원 잭

(※검은 왕관 간부출신 조직원 잭의 아무래도 상관없는 외전)

(※작중에서는 챕터 4와 5 사이의 무렵입니다.)

잭 더 리바우어(Jack the Libauer).

그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브람 시의 거대 암흑조직인 <검은 왕관>의 호위병단 단장으로 취임한, 조직 내에서도 수위권에 드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간부였다.

"도시의 밤은 깊다. 사람 한 명의 비명쯤은 가뿐히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이런 미친! 가스트롱 검문을 적으로 돌리고도 네놈이 정녕 무사할 성 싶더냐!”

“검문.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무인들의 전당이지.”

짙은 구름을 뚫고 스며드는 달빛이 잭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가에 어린 칼자국이 스산하게 드러났다.

“검문의 위세를 앞두고 건방지게 굴 조직은 그리 많지 않지.”

“알고 있다면 얌전히 비키고 물러나! 이 영역은 우리들의 도시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테니까!”

“유감이지만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잭은 단숨에 자세를 낮추며 달려들었다.

“안ㄷ─!”

서걱.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음험한 검격이 목을 쳤다.

두고 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민첩한 접근을 막지 못하고 간격을 허락한 검객의 말로였다.

“후우…….”

잭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담배를 물었다.

“검은 왕관의 서열 3위이자 차기 부두목 내정자였던 이 몸이 일개 간부조차도 못한 존재로 영락하다니…….”

한때 흑산회의 첫 번째 강적으로 손꼽혔던 <검은 왕관>은 이제는 뒷골목에서 이름만이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검은 왕관은 몰락했다. 그토록 거대한 세력이 이렇게나 단기간에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시원스럽게, 그것도 철저하게 박살 나버렸다.

흑산회에 몸을 의탁하지 않았다면 잭 자신 또한 지난 번 <블랙마켓 급습전>에서 목숨을 잃었을 건 마찬가지였다.

“잭 형님. 그래도 흑산회 생활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납치해서 팔아넘기는 짓은 솔직히 맨 정신으로는 못해먹을 쓰레기 짓 아니었습니까.”

“뚱보의 말이 맞습니다. 역겨운 고위층들의 암시장 거래를 돕고자 경호임무나 맡던 게 저희 신세 아니었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잭 역시 동의하였다.

“더러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건 누구든 마찬가지겠지. 당연히 그 방면으로는 불만은 없다.”

“그럼 잭 형님은 뭐가 신경 쓰이시는 겁니까?”

“피가 부족하다.”

잭의 개 뜬금없는 살벌한 발언에 직속부하들이 흠칫했다.

“예?”

“흑산회는 너무 화려한 데뷔를 마쳤다. 일존육강 중 5강의 세력을 송두리째 박살냈으니 감히 그 아성에 도전하려 드는 조직조차도 나타나지 않지.”

“저희들의 새로운 보스 빌헬름 마이어님과 조직의 서열 2위인 카이사르 큰형님의 카리스마가 널리 인정받은 거 아닙니까?”

“그게 문제다. 암흑조직이라면 응당 나타나야 할 적이 나타날 요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철없는 약소검문의 찌꺼기들을 부숴버리는 정도로는 내 유혈본능을 채울 수가 없다.”

“…….”

위쪽의 인간들이 워낙이 또라이가 많아서 티가 안 났을 뿐이지, 잭도 알고 보면 똘기로는 어디 가서 뒤처지지 않는 무자비한 싸이코패스였다.

“정식조직원은 간부회의에 참석할 수는 없어도 간부에게 작전을 제의할 수는 위치 아닙니까? 형님이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는 대량살인을 제시하면 살인허가가 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암흑조직이란 모름지기 실력이 첫 번째로 손꼽히는 세계. 불순하고 흉흉한 목적이기는 하나 그것이 조직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형편 좋은 건수가 어디에 있다는 거냐.”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실없기는. 감히 흑산회에 반기를 들 적이 있을 리가 없지.”

잭은 직속부하들과의 대화를 가볍게 넘겼다.

때로는 살면서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라는 것도 생기기 마련.

피에 굶주린 승냥이가 되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허나 직속부하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황급히 모여 긴급회의를 가졌다.

“잭 형님이 또 밤마다 칼 들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다니면 어쩌지? 가끔 중2병 같은 소리를 들으면 일주일은 팔에 닭살이 돋는다고.”

“청소조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잖아. 매번 시체를 미궁에 유기하는 것도 힘들다고.”

“차라리 언제 한 번 날 잡고 제대로 한 건 저질러버리면 잭 형님도 한동안 살인충동을 느끼지 않고 얌전하게 지내지 않을까? 간부님에게 상담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직속부하들은 고민 끝에 그나마 만만한 간부를 골랐다.

“안녕! 대머리들아!”

리나였다.

“대머리가 아닙니다. 임시조직원입니다.”

“귀여운 리나는 왜 찾았어? 너무 귀여워서 솜사탕 사주려고?”

“저희들의 직속상관인 잭님에 대해 상담을 원합니다.”

조직원들은 솔직하게 고민을 밝혔다.

“그러니까… 잭이라는 칼잡이가 사람을 못 죽여서 안달이 나있으니 적당한 건수 좀 주면 안 되겠냐는 거지?”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잘됐네! 그럼 내 일감을 조금 덜어줄게. 보스의 경호시간을 늘리고 싶어서 안 그래도 암살일은 조금 줄이려고 했거든. 그 정도로 열의가 넘치면 일을 맡겨볼만하겠어.”

부하들은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암살은 좀 힘들지 않을까요. 저희 호위병단은 호위 역할을 맡아와서 암살자를 막는 역할이라면 수행했지만 암살행에 직접 나서본 경험은 없다시피 해서요.”

“괜찮아! 목격자가 전부 죽으면 암살 성립이니까!”

“아, 예…….”

리나는 환히 웃으며 수리검을 손가락에 끼우고 빙빙 돌렸다.

“게다가 혼자서 하는 거니까 표적도 잔뜩 있잖아.”

“예? 혼자서요?”

“대량살인 하고 싶다면서? 표적만 찍어줄 테니까 잭한테 다 해치우라고 해.”

부하들의 보고에 잭은 그러려니 했다.

“꼬맹이간부가 혼자 암살행을 계속해왔다는 건 의외지만 기껏해야 열 명 내외의 작은 철부지들이나 제거해왔겠지. 가볍게 몸풀기나 한다고 생각해야겠군.”

“저… 그게 열 명 내외가 아닌데요.”

“스무 명이라도 되는가.”

“백 명이요.”

“…뭐?”

부하들은 대뜸 두툼한 서류철을 건네주었다.

“이게 다 뭐야.”

“표적리스트인데요.”

표적에는 브람 시 공무 기관 산하 경비원부터 음식점 직원, 모험가 파티, 소규모 암흑조직까지 가리지 않고 온갖 인간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이걸 다 죽이라고?”

“오늘 밤에 싹 다 해치우라는데요.”

“피곤한 밤이 되겠군. 모두들 연장 챙겨라.”

“그게… 저희는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그거 전부 다 혼자 하시라는데요.”

“…….”

리나는 겉보기와 달리 암살실력이 대단히 출중했다.

백인암살조차도 일일과제나 다름없었다.

“크아악! 살려ㅈ… 으아악!”

“저리 가! 경비대를… 아악!”

잭은 발에 땀이 나도록 거리를 누비며 암살행을 펼쳤다.

표적의 이동 경로와 거주지까지 사전조사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정보도 없이 돌아다녔다면 표적을 찾는 시간만 일주일이 넘게 걸릴 지경이었다.

그마저도 기이하게도 암살대상들의 무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표적이 뛰어난 무력을 지닌 적들이었다면 암살을 하다가 잭이 먼저 쓰러졌을 것이다.

“너네 뭐냐.”

“예, 예…?”

“뭔데 흑산회 암살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왔냐고.”

잭은 암살 도중에 표적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표적들은 무척이나 억울해하였다.

“모릅니다! 흑산회에 해가 갈 짓 따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요!”

“할 말이 없다면 지금 바로 저승에 보내주지.”

“잠시만요! 술집에서 동료들과 흑산회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학살자 간부와 가슴이 절벽인 꼬맹이 간부가 있다는 정도의 가벼운 잡담을 나눈 적이 있지만…….”

표적이 멍하니 되물었다.

“정말 그것 때문에 암살대상이 된 겁니까?”

“…….”

리나는 의외로 대범한 성격은 아니었다.

“죽어라.”

“컥!”

긴 밤이 지나고 잭은 가까스로 암살행을 마칠 수 있었다.

피에 절은 몸을 욕조에 쑤셔 넣다시피 하며 한시름을 돌렸다.

“과연 악명높은 흑산회의 간부는 간부라는 건가…….”

실력 이전에 표적이 하도 많아서 절로 몸이 피로를 호소했다.

그래도 나름 충만하고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잭은 만족스레 유혈본능을 잠재웠다.

쾅쾅쾅

쾅쾅쾅쾅쾅

잭은 눈을 부릅 떴다.

하도 지친 나머지 그도 모르게 욕조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옷을 차려입고 숙소를 나서자 카이사르가 보였다.

“네놈. 유혈본능을 잠재우지 못해서 리나에게 암살행을 대행받았다고 들었는데.”

“마, 맞습니다.”

카이사르는 여타의 또라이들과는 격이 다른 또라이로 조직 내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잭은 잔뜩 긴장했다.

간밤에 저지른 암살에서 뭔가 실수를 저질러서 책망하러 온 걸지도 모른다.

“훌륭한 일처리였다. 느닷없이 남녀노소 직업군과 활동구역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사람 백 명을 살해한 흑산회의 활동에 암흑가에서 흑산회를 두려워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유혈본능을 잠재우기 위해 하룻밤에 백 명을 죽여야 할 정도의 살인광이라면 내 의뢰를 해결하기에도 부족함이 없겠군. 오늘부터는 내게도 리스트를 받아서 살인행을 거듭해라.”

카이사르는 대뜸 큼지막한 판자 세 개를 건넸다.

“이건 뭡니까?”

“백보도장의 도장무술을 우습게 여기는 도장들의 간판이다. 간판을 떼면서 도전장도 던지고 왔으니 자정 이후에 세 도장을 방문해서 닥치는 대로 학살을 저지르고 와라.”

“…….”

“뭐냐, 그 표정은. 리나의 의뢰는 받으면서 내 의뢰는 받을 수 없다 이거냐.”

“그러려던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 수가 너무…….”

“적게 느껴지는 하겠지. 피에 굶주린 학살자는 하루에 천 명을 베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테니까. 같은 학살자로서 네놈의 마음은 이해한다.”

카이사르는 이상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잭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저, 그래도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천 명은 무리이겠지. 그래도 삼백 명은 될 테니까 그리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카이사르는 내심 자신을 큰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조직원들에게 큰형님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자각을 지니고 있었다.

덤으로 그는 학살을 좋아한다.

그는 자연스레 부하들에게 자신의 학살행을 양보하는 행위가 모범적인 큰형님의 역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잭의 어깨를 큼지막한 손으로 팡팡 두들겨주었다.

“네게는 기대가 크다.”

잭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득이한 사고로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카이사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에 전날치 할당량까지 합쳐서 달성하면 된다. 삼백 명으로는 간에 기별이 가지 않으면 삼일가량 할당량을 누적시켜서 한 번에 천인 베기를 해도 되겠군.”

“…….”

“과연 듣던 대로 유혈본능이 충만하군. 이번 일을 마치면 보스에게 특별히 네 이름을 언급해주지.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많은 적들을 죽일 수 있게 해주마.”

잭은 미친 듯이 살인행을 거듭하다가 몸져누웠다.

그날 이후로 그의 유혈본능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몸이 안 좋아서 의뢰수행은 당분간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쯧. 병약한 녀석이군.”

카이사르는 한심한 뜨내기를 보는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독언을 내뱉었다.

“네놈 같은 나약한 녀석에게 천인 베기는 과분하다. 앞으로는 하루에 백 명 밖에 못 죽이는 신뢰받지 못하는 몸이 되어서 유혈본능도 잠재우지 못하는 고통을 맛보기나 해라.”

“…….”

조금이라도 존재감을 발휘했다간 건강을 되찾고 신용을 되찾고자 힘을 내고 있다며 착각을 사, 엄청난 수의 암살행과 살인행을 거듭할 미래가 훤히 보였다.

잭은 쥐 죽은 듯이 얌전해졌다.

뭔가 있어 보이는 등장과 달리, 이후 브람 시에서 발생한 온갖 굵직한 사건들에서 잭의 존재감이 흐릿해진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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