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외전 5. 솜사탕 장인이 사라지는 이유
(※흑산회 암살단에게 솜사탕을 공급하는 솜사탕셔틀의 시점)
(※작중에서는 챕터 5와 6 사이의 무렵입니다.)
헥토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미궁에 내려가 몬스터를 해치울 용기도 없고, 특수한 기술이나 지식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나갈 재주도 없었다. 배운 것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차 몰기, 추수 돕기, 짐꾼, 인형 눈깔 붙이기 등의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아아… 싫다…….”
헥토는 주점에 틀어박혀서 우울하게 맥주를 들이마셨다.
“나 같은 놈은 평생 거리를 떠돌며 빈곤한 하류인생이나 살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겠지…….”
울적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도중, 옆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가 그의 귀를 곤두세웠다.
“요즘 솜사탕 장인들이 자꾸 도시를 뜬다면서?”
“거 이상한 일이군. 장사가 안 되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던데. 뭔가 위험하다나봐.”
모험가들은 피식 웃었다.
“솜사탕이 위험해봤자 뭐 얼마나 위험하다고.”
“초기 자본금도 별로 안 들잖아.”
“나도 용병일 때려 치면 솜사탕이나 만들까봐. 광장에서 보니 아이들이 솜사탕을 잔뜩 사먹기도 하던데. 노점상에서는 꼬치 다음으로 잘 팔리는 메뉴 아닌가?”
헥토는 귀를 쫑긋 세웠다.
돈 되는 일.
심지어 어렵지도 않고, 초기 자본금도 적은 일이라니.
“그거다!”
헥토는 다음 날부터 광장에 나가 솜사탕 노점상을 찾아갔다.
“어서오십쇼. 어떤 솜사탕을 드릴까요?”
“솜사탕 만드는 법을 알려주십시오!”
“쳇. 동업자였어? 장사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헥토는 대로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절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솜사탕도 팔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죽느니 인생역전의 꿈을 품고 솜사탕 장사를 하고 싶습니다. 제발 솜사탕 장사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지나가던 모험가들이 흥미롭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 좀 봐. 솜사탕 도제인가봐.”
“솜사탕도 도제가 있어?”
헥토는 내심 생각했다. 다 큰 청년이 이 정도로 주목을 받고 수치를 무릅쓴다면 아무리 냉혈한 노점상 주인이라도 그를 받아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안 된다!”
안타깝게도 노점상 주인은 그의 생각 이상으로 비정했다.
“어째서입니까! 일이라면 무보수로 배울 각오도 되었습니다. 부디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를 놈한테 히든클래스를 전수해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예!? 솜사탕 장인이 히든클래스였어요!?”
노점상 주인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다. 히든클래스는 숨겨진 직업. 남들이 하지 않는 직업을 의미하지. 너 같으면 검사나 마법사를 하지, 솜사탕이나 만드는 걸 직업으로 삼겠냐?”
“네.”
“직업에 대한 편견 없는 자세가 마음에 드는군! 좋아. 널 히든클래스 솜사탕 장인의 도제로 받아주지!”
헥토는 열심히 솜사탕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히든클래스라니.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기연과 마주친 걸지도 모른다.
“자. 이 마력 송출구에 막대를 대고 생성버튼을 누르면…….”
“오오…!”
“이렇게 솜사탕이 나온다. 이걸 회전하면서 슬슬 뭉치면…….”
“오오…!”
“솜사탕이 완성된다!”
헥토는 박수를 쳤다.
“그리고요?”
“끝이다.”
“정말로요?”
“솜사탕 장인이 솜사탕이나 만들지 뭘 더 바래.”
“…….”
히든클래스고 뭐고 별 거 없었다.
꿈과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솜사탕 살래!”
그러던 어느 날, 회색로브를 뒤집어 쓴 꼬맹이 손님이 왔다.
헥토는 별 생각 없이 솜사탕을 만들어줬다.
“으음…! 마시쪄!”
“그래 그래.”
꼬맹이 손님은 무척이나 행복해하며 솜사탕을 물고 돌아갔다. 헥토는 약간의 보람을 느꼈다. 헌데 일을 떠맡기고 멀리서 농땡이를 부리던 노점상 주인이 식겁하며 달려왔다.
“너…!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솜사탕 만들었는데요. 그보다 슬슬 알바비 주시면 안 되나요.”
“무보수로 일한다며!”
“일은 기계가 대신하잖아요. 딱히 배울 기술도 없구먼.”
“월급으로 줄 건 솜사탕 열 개 밖에 없다! 이런 괘씸한…!”
평소처럼 버럭 화를 내려던 노점상 주인이 갑자기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크흠.”
노점상 주인은 갑자기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네가 이 일을 시작한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
“삼일 지났는데요.”
“너는 고된 시련을 넘어서며 마침내 솜사탕 장인의 도제의 시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한 사람의 솜사탕 장인이 되었구나.”
헥토의 귓가에 웅장한 알림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장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히든클래스 <솜사탕 장인의 도제>가 <솜사탕 장인>으로 승급합니다.]
[직업스킬 <솜사탕 만들기>를 습득합니다.]
노점상 장인은 넌지시 제안을 했다.
“지금이라면 제자 할인으로 노점상을 10% 저렴한 가격에 팔아주마. 어떠냐.”
“…너무 갑작스럽게 판다니까 뭔가 수상한데요.”
“그럼 20% 할인을 해주마!”
“어차피 사려고는 했는데… 장사 그만두시려고요?”
“에이잇! 30% 할인! 이 이상은 양보 못해! 관청에 팔 거야!”
막무가내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헥토는 결국 30% 저렴한 가격에 노점상을 인계받았다.
노점상 주인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돈을 챙기자마자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쯧쯧. 가엾은 청년이 제대로 당했구먼.”
“붕어빵 아저씨?”
근처 노점상에서 붕어빵을 굽던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굉장히 측은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자네. 솜사탕 괴담 모르지?”
“빨간 솜사탕을 먹으면 운이 나빠진다는 거요?”
“그거 말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회색로브를 입은 꼬맹이에게 솜사탕을 판 장인은 갑작스레 실종된다는 괴담. 기껏 임대한 기기도 버리고 홀연히 사라져서 소문만 무성했었지.”
“에이. 겁주지 마세요.”
“지난달에도 두 명이나 사라졌었지 아마. 저 인간도 주인 없는 노점상을 이어받아서 솜사탕을 팔고 있었고. 흑색로브를 입은 꼬맹이한테는 필사적으로 안 팔았는데 결국 저리 되었군.”
헥토는 붕어빵 아저씨의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들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괴담 타령인가.
노점상을 물려받은 이후로 솜사탕 장사는 더욱 잘 풀렸다.
“마시쪙.”
“솜사탕 좋아.”
“하나 더.”
왠지 모르게 무뚝뚝한 꼬맹이들이 잔뜩 늘어났다.
부모님을 따라서 온 것도 아닌데 다들 돈도 잔뜩 있다.
“포장주문.”
“오, 꼬마 아가씨. 몇 개 만들어줄까?”
“백 개.”
“…그걸 다 들고 가게?”
“괜찮아.”
백 개의 솜사탕은 꼬마 아가씨의 손에 잔뜩 뭉쳐진 채로 봉지에 가득 담겼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모양이 잔뜩 압축되었는데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보니 저게 솜사탕을 먹으려고 주문한 건지, 설탕을 먹으려고 주문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헥토는 솜사탕만 많이 팔고 돈이나 벌면 그만이었다.
“음? 이런 야심한 시간에 웬 꼬마 손님들이… 헉!”
“움직이지 마.”
“얌전히 따라오면 해치지는 않겠어.”
단검을 든 꼬맹이들이 검손잡이로 등을 쿡쿡 찔렀다.
헥토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꼬마들을 따라갔다.
회색로브 꼬마에게 솜사탕을 팔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괴담은 사실이었다.
헥토는 다가올 미래가 점점 더 두려워졌다.
깊은 골목길을 헤매다 못해 지하수로까지 발을 들였다.
이대로 싸늘한 시체가 되는 걸까.
두려움이 극에 달할 무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삭막한 방에 도착하였다.
“여기는…?”
“흑산회 암살단 휴게실.”
“허억! 흐, 흑산회! 날 악마에게 산제물로 바치려는 건가!”
암살단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높다란 찬장 너머를 향해 암살단원 한 명이 말을 건넸다.
“마족 아저씨. 저 사람 제물가치 있어?”
찬장 너머에서 시큰둥한 표정의 그레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없다.”
마족 그레이는 시답잖다는 눈으로 헥토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흑산회 아지트가 브람 시 내성으로 옮겨진 뒤, 인적 드문 곳으로 거처를 옮기다보니 이런 곳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제물가치 없대.”
“…거 알려줘서 고맙군.”
헥토는 놀란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마족이라 불린 존재도 그를 헤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꼬마들도 자세히 보니 꽤나 귀엽게 생긴 편이었다.
“그럼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뭐냐.”
“솜사탕 만들어줘.”
“…….”
암살단의 평균연령은 15세.
담배보다 솜사탕에 먼저 중독된 자들의 모임이었다.
“대신 제대로 보수는 지불해줬으면 좋겠어.”
“좋아. 대신 우리들을 위해서 언제 어느 때나 솜사탕을 만들어야 해.”
계약은 성립되었다. 암살단원들은 장비구매 및 정비 외에는 개인지출이라고 할 만한 게 솜사탕 구매밖에 없었기에 돈을 지불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헥토는 빠르게 거금을 쌓아올릴 수 있었다. 나날이 돈이 발치에 쌓여갔다. 문제는 쌓이기만 했다는 거였다.
“돈을 쓸 수가 없어! 외출 좀 시켜줘!”
“안 돼. 저번 장인 도망쳤어.”
한몫 단단히 챙긴 전임 솜사탕 전속장인은 빤스런을 했다.
자연히 암살단의 경계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럼 돈을 줄 테니까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줘.”
“불가. 임무 수행 최우선. 여가 시간 짧음.”
“으으. 그럼 솜사탕 살 때 돈 대신 음식을 들고 오든지!”
암살단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식을 주고 솜사탕을 구매?”
“솜사탕을 팔고 음식을 구매?”
아무튼 본인이 그걸로 좋다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암살단원들은 1솜사탕에 1끼 식사를 들고 왔다.
헥토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졌다.
“그래. 돈은 맛있는 거나 사먹으려고 버는 거지!”
그런 기쁨은 정확히 이틀 만에 박살 났다.
“추어탕 한 그릇. 솜사탕 교환.”
“타꼬야키 3인분. 솜사탕 3개 교환.”
“돼지고기 10인분. 솜사탕 10개 교환.”
하루에 판매되는 솜사탕의 개수는 무려 천 개.
인간은 당연히 하루에 천 끼를 먹을 수 없는 생물이었다.
“그만! 이건 너무 많아!”
“휴식시간을 쪼개 산 음식, 무용지물로 만들 셈?”
암살단원들이 스산하게 눈을 치켜떴다.
헥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입을 닫았다.
그렇게 먹지도 않는 식량이 막 쌓였다.
“으으. 이대로는 썩은 음식에 파묻혀서 죽을지도 몰라.”
위기에 처한 헥토에게 마족 그레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인간. 계약을 하자.”
“영혼은 싫어!”
“네 맛없는 영혼 따위는 필요 없다. 그보다는 음식을 내놔라.”
“음식을?”
“건빵이나 솜사탕만 처먹는 열악한 나날에는 질렸다. 나도 고급요리를 먹고 싶다. 마족은 인간보다 우수한 신체를 지녔으며 월등히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도 남아도는 음식을 짬 처리 할 방법이 생겼다.
“계약을 하면 이쪽이 받는 대가는?”
“널 때리지 않겠다.”
“계약을 안하면?”
“널 때리겠다.”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헥토는 그레이에게 맞지 않는 대가로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산해진미를 그레이에게 전부 떠넘겼다.
적당한 양의 골드를 쌓고, 삼시세끼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으며 생계의 걱정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막상 적응하고 나니 제법 괜찮은 삶이 아닌가.
두려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또한 이런 나날을 즐기기 시작했다.
“파인애플피자 1판. 솜사탕 교환.”
“민트초코맛 아이스크림 3개. 솜사탕 3개 교환.”
평소처럼 음식을 들고 온 암살단원들은 매너리즘에 젖은 대답과 건성으로 기기를 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당황했다. 자세히 보니 헥토는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었다.
“…죽었어.”
암살단원들은 마족 그레이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어떤 끔찍한 존재가 암살단 휴게실에 쳐들어와서 그들의 소중한 솜사탕 전속장인을 암살했단 말인가!
“범인이라면 짐작 가는 구석은 있다.”
“범인은 누구?”
“당뇨와 고혈압이다.”
그레이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먹는 재미가 들려서 그렇게 처먹어댔는데 급성당뇨로 쓰러져 죽지 않는 게 이상했지.”
“그런…!”
“당뇨가 오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죽었을 게 틀림없어. 파인애플피자나 민트초코 같은 쓰레기를 음식이랍시고 당당하게 가져오는 악마의 자식들 같으니.”
암살단원들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단주를 찾아갔다.
위기에 대처하는 건 대장의 몫이다.
“그레이의 말이 맞아! 민트초코는 갖다버리고 다음부터는 당뇨에 걸리지 않을 풀 쪼가리만 먹여!”
“…….”
암살자들의 대장은 멍청한 리나였다. 다음 번 솜사탕장인의 사망원인으로 쇠약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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