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외전 7. 절대복종의 반지
(※착용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반지가 만들어진 시점)
(※작중에서는 챕터 6과 7 사이의 무렵입니다.)
대륙 남부일대를 평정하고 짧은 평화가 도래한 어느 날.
연금술사 브루투스가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쳤다.
“보스! 제가 놀라운 발명을 이룩했습니다!”
“뭔데.”
“절대복종의 반지입니다!”
브루투스는 금반지 하나를 들이밀었다.
“이 반지를 착용하면 반지의 마력에 의해 주변사람들이 강제적으로 착용자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것참 무시무시하군.”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절대복종이니 뭐니 해도 약점이 없을 리 없기 때문이다.
미궁세계에는 마냥 편리하기만 한 아이템은 없다.
반드시 반대급부가 존재하고, 공략법이 존재한다.
그런 제약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게 연금술이다.
“이딴 반지는 왜 만든 거냐.”
“물론 심심해서입니다.”
“…….”
사실 발명품의 50% 가량은 이딴 이유로 만들어진다.
더러운 부르주아들 같으니라고.
“보스라면 절대복종의 반지를 이용해서 충분한 즐거움을 만들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제 믿음과 기대에 답해 이 반지를 받아주십시오.”
“싫다.”
“예? 명령만 하면 뭐든지 이루어지는 반지입니다. 정말로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치워라. 이딴 잡기에 의지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다.”
“역시 보스는 대단하시군요. 이만한 유혹을 단번에 뿌리치시다니. 진심으로 보스가 지닌 그릇의 넓음에 감격하였습니다.”
“시답잖은 아부는 관둬라.”
대충 축객령을 내리려는데 반가운 인물이 찾아왔다.
“보스! 출장 마치고 돌아와쪙!”
“리나인가. 오랜만이군.”
“아하핳. 부하들한테 배운 말투인데 어때? 귀여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다.”
“다행이넹! 리나는 귀요미! 귀욤귀욤!”
“…근데 뒤는 좀 돌아봐야겠군.”
천장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리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물론 입을 쩍 벌린 브루투스가 있었다.
“죽어!”
“죽이지만 마라.”
리나가 반사적으로 집어던지는 암기에 회전이 걸렸다.
휘리리리릭! 퍽!
단검의 손잡이에 맞은 브루투스는 그대로 픽 쓰러졌다.
50% 확률로 살아남았군.
악운에 강한 놈이다.
이참에 확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잊었겠지? 전부 잊었겠지!?”
너같으면 그런 충격적인 애교를 잊을 수 있겠냐.
나야 귀여우니 상관없지만.
그보다 나한테 보여주는 건 괜찮은 건가.
“우우. 부끄러워. 이젠 시집도 못 가.”
“엄살 부리기는.”
“칫! 보스는 여심을 너무 몰라!”
리나는 괜스레 애꿎은 브루투스를 퍽퍽 걷어찼다.
겉보기에는 갸녀린 소녀여도 능력치는 어지간한 근육투성이 마초남보다 터프하다.
브루투스는 등이 들썩거릴 정도로 호되게 얻어터졌다.
못해도 전치 20주 확정이군.
갈비뼈도 몇 대 나갔겠어.
“응? 이게 웬 반지야?”
“아. 그건…….”
“보스, 설마 리나를 위해서 반지를 준비해준 거야!?”
아니다 이년아.
빠르게 부정을 하려고 했지만 리나는 암살자.
민첩함으로는 따라갈 자가 손에 꼽는다.
말리기도 전에 반지가 리나의 손에 쏙 들어갔다.
시스템 알림 또한 확인사살을 마쳤다.
[리나가 절대복종의 반지를 착용했습니다.]
[반지의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리나가 절대복종의 반지를 착용하다니.
리나라면 분명 이 반지를 이용해서…
-솜사탕을 사줘! 성을 뒤덮을 만큼 잔뜩!
“…….”
다 먹지도 못할 솜사탕이 썩어가면서 성과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들겠지.
어떻게든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헤헹! 반지 자랑하러 가야지!”
“잠깐!”
내 만류를 듣기도 전에 리나는 홀연히 집무실을 나섰다.
이걸 어쩌지.
망연자실한 내게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난 브루투스가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브루투스의 말에 나는 녀석을 째려보았다.
나도 눈 있어 짜샤.
“저거 어떻게 해제시키냐.”
“착용자가 직접 해제해야 합니다.”
“원격해제 명령어 같은 거 없냐. 안전장치 같은거.”
“네? 당연히 없습니다만.”
“…….”
네가 이 구역의 사우론이냐.
“약점은 있을 텐데.”
“사용할 때마다 점점 기분이 나빠집니다.”
“시답잖은 약점이군. 그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건가.”
“점점 난폭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새끼… 날 폭군으로 만들 작정이었냐.”
안 그래도 스파이 같던 놈이 확정적으로 스파이가 됐다.
책임을 묻는 건 나중이다.
일단 리나가 절대반지를 해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땐 역시 반지를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겠군.”
“예? 그런 방법도 있습니까?”
“소금기 있는 물속에 들어가면 반지를 벗는 경우가 있지.”
“오. 그거 좋군요.”
“당장 리나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우리는 암살단 숙소에 방문했다.
“으윽… 그만 먹고 싶어…….”
“잔인해… 단주님… 어째서…….”
“우걱우걱…….”
암살단 단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솜사탕을 먹고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리나는 어디에 있지?”
솜사탕을 퍼먹는 암살단원들의 위로 잠복중이던 부단주 이질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주님은 바깥의 솜사탕가게에 가셨습니다.”
“…넌 멀쩡하군.”
“단주가 반지를 이용해 행동을 강제하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순발력 하나는 인정해줄만하군.
“잘 들어라. 리나가 착용한 반지는 절대복종의 반지다.”
“……!”
“지금 리나가 하는 말은 절대적인 명령권을 지닌다. 도시가 솜사탕으로 가득 차는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든 리나가 반지를 자신의 의지로 벗게 만들어야 한다.”
이질은 멈칫했다.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너희는 그걸 반 강제로 다 먹게 되겠지.”
“전력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아무리 솜사탕이 좋아도 배 터져 죽을 때까지 솜사탕만 먹다가 죽기는 싫었나보다.
“이질. 리나를 추적해라.”
다행히도 이질의 추적술은 리나보다 뛰어났다.
암살에 전념한 리나와 달리 많은 스킬을 연마한 덕분이었다.
리나는 광장 솜사탕 가게에 있었다.
“더 줘! 물론 공짜로!”
“으으윽! 안 돼! 이대로는 파산이야…!”
“…….”
불쌍한 솜사탕은 파산할 기세로 리나를 비롯한 행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솜사탕을 만들어주고 있다. 행인들은 이게 무슨 연극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너희도 먹어!”
리나의 명령에 반 강제로 솜사탕을 먹기 전까지는.
“싫어어! 이런 단맛 따위 먹고 싶지 않아!”
“안 돼! 솜사탕을 먹지 않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려!”
“살려줘… 으걱으걱… 으음… 조금 맛있을지도… 아니, 그래도 이 양은 무리야. 역시 살려줘…….”
비참한 참극의 한 장면에 용감하게 발을 내딛은 건 이질이었다.
“이질! 솜사탕 먹…….”
“보스의 전언입니다.”
다행히도 이질의 발언이 좀 더 빨랐다.
리나는 절대복종권이라도 발동된 것처럼 귀를 쫑긋세웠다.
“무슨 일인데?”
“보스가 해수욕장 데이트를 원하십니다.”
“데, 데이트으으!?”
일을 이 이상 키우지 마라, 바보야.
원망어린 내 시선을 무시하고 이질은 꿋꿋이 말했다.
“보스의 데이트를 거절하시겠습니까?”
“물론 참가해야지! 갈 거야! 무조건 가!”
그렇게 우리는 느닷없이 해수욕장에 갔다.
“헤헹. 보스! 리나랑 데이트가 그렇게 하고 싶었어?”
“지금은 그렇군.”
“와아! 리나는 정말 기뻐!”
리나를 유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 날씨에 해수욕장은 좀 무리가 아닐까~?”
미궁세계의 계절은 겨울.
바야흐로 북풍과 한파가 몰아닥치는 비수기였다.
“조금 추워 보이는군.”
“리나는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그럼 돌아갈까?”
안 돼.
이대로 허무하게 돌아갈 수는 없어.
“겨울이기에 의미가 있다. 우리는 물속에 들어간다.”
“어째서?”
“차가운 겨울물 아래에서 표적을 암살하고자 대기하는 경우를 상정해라.”
“그냥 정면으로 들어가서 목을 따면 되잖아.”
“…경호원이 많다.”
“목격자를 전부 죽이면 암살 성립이야!”
틀렸어.
리나의 암살논리를 파훼할 수가 없다.
바로 그때, 이질이 놀라운 상황을 가정하였다.
“적이 아주 강합니다. 어비스의 주류 12악신이 얼음물 위에 서성이고 있고, 빈사상태의 보스를 악신들에게서 감추고자 얼음물에 담그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정면으로 암살을 시작했다간 악신들을 모두 죽이는 사이에 보스가 악신들에게 발견되어 죽습니다.”
“안 돼!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어!”
“단주. 그럼 지금 당장 해수욕장 훈련을 실시하십시오.”
이질의 설득 아닌 설득은 직빵으로 성공했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도 생겼지만.
“날 찬물에 담그는 이유가 뭐냐.”
“보스가 물 밑에 잠겨있는 상황을 가정했잖아! 일단 보스가 물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 돼!”
“…….”
빈약한 체력 때문에 HP가 까이기 시작했다.
얼어죽게 생겼다.
그래도 다소의 위험은 감수해볼까.
“일단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반지를 빼라.”
“반지를?”
“소금물은 금속을 부패하게 한다.”
리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돼!”
“어째서 안된다는 거냐.”
“약혼반지는 죽어도 안 빼는 거야!”
너한테 약혼한 적 없다.
그건 약혼반지처럼 귀여운 물건도 아니잖아.
반○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뛰쳐나올 만한 위험한 물건이라고.
부그르르.
내 설득은 실패했다.
1시간 뒤, 나는 얼어 죽을 위기에서 간신히 해방되었다. 해변가에 모닥불을 피운 뒤, 퍼렇게 질린 얼굴로 담요를 덮어쓰며 작전회의를 가졌다.
“단주는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만족감을 누리며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강한 작전이 필요하다.”
“뭔가 생각난 작전이라도 있으십니까?”
“없다.”
“…….”
뭘 봐. 없다고.
“리델라프. 너도 지혜를 발휘해라.”
급조된 반지원정대에는 브루투스와 이질 말고도 친위대장 리델라프 또한 존재했다.
“그냥 잠든 사이에 몰래 손에서 빼내면 안 됩니까?”
“불가능합니다.”
이질이 즉시 반박에 나섰다.
“단주가 잠들 때 접근했다간 잠결에 휘두른 단검에 목이 베일지도 모릅니다.”
“…무서울 정도로 설득력이 넘치는군.”
리델라프가 시름에 잠긴 사이, 브루투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뭐냐.”
“화장실 좀 가도 됩니까?”
“꺼져.”
반지원정대의 원정대원들은 지략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조력자를 모색해야겠군.”
“괜찮은 인선이 있을까요?”
“이럴 땐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관계로 우리는 브람 시 삼대 권력기구 중 하나인 연합기관을 찾아갔다. 막강한 길드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연합기관장, 하인즈 대마법사가 다음 원정대원 후보군이었다.
“왠지 신뢰감이 생기는 외모네요.”
“마법사처럼 생겼군요.”
마법사처럼 생긴 게 아니라 마법사 그 자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또 뭐가 있죠?”
“하인즈는 대마법사일 뿐만 아니라 백발에 흰수염을 길렀다.”
브루투스가 손뼉을 쳤다.
“흰○염 해적단을 말하시는 겁니까?”
간달프다. 이 멍청아.
“흰수염 해적단은 또 어디서 들은 말이냐.”
“이걸 봤습니다.”
원○스 만화책이 왜 여기에 있냐.
NPC한테 해적만화 팔지 마라.
여기선 진짜로 해적이 유행해버린다고.
“노구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반지원정대의 일원이 되어줬으면 한다.”
“예?”
“리나가 절대복종의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 그녀가 반지의 힘을 악용해서 도시를 솜사탕 지옥으로 만들기 전에 어떻게든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반지를 벗게 만들어야 한다.”
리델라프가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혹시 낮술 하셨습니까?”
안 취했어.
좀 또라이처럼 들리긴 해도 100% 팩트라고.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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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반지원정대는 어엿한 구색을 갖추었다.
반지를 회수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나, 빌헬름 마이어.
일행의 무력을 책임지는 친위대장 리델라프.
은밀한 추적과 잠입을 책임지는 암살단 부단주 이질.
일행의 지력을 책임지는 지혜로운 대마법사 하인즈.
사건의 원흉이자 아무 쓸모도 없는 짐짝 브루투스.
오인의 반지원정대가 결성되고 가장 먼저 행동한 일은…
“저희 밥은 언제 먹고 갑니까?”
“배고픕니다.”
식당에 처박히는 거였다.
“…뭔가 위기감이 안 생기는데.”
불만스레 중얼거리자 하인즈가 허허로이 웃으며 제 기다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국왕이시여. 거사를 치르기에 앞서 배를 든든히 채우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오.”
“이러는 와중에도 리나는 이 도시를 솜사탕 지옥으로 만들고 있을 거다.”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솜사탕이 아닌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오.”
무서울 정도의 설득력에 우리는 완전히 납득했다.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오리고기를 먹던 리델라프가 갑자기 왈칵 눈물을 흘렸다.
“크흑. 이게 내 생애에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고기라니.”
“…….”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울음이었다. 평소라면 무슨 X신 같은 소리냐며 타박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행은 무거운 침묵을 유지했다.
맛 좋은 만찬을 숫제 최후의 만찬마냥 먹어치운 반지원정대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미래는 결코 도래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는 솜사탕 이외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노구도 이빨이 썩는 건 싫구려.”
브루투스는 시큰둥하게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우유를 빨대로 쪽 빨아마셨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뭡니까?”
나를 비롯한 원정대원 모두가 브루투스를 노려보았다.
넌 뭔데 태평하냐.
이거 다 네놈 때문에 일어난 소동이잖아.
“이 녀석, 도움도 안 되는데 죽여 버리면 안 됩니까?”
“고통을 주는 고문법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고오얀 것.”
저 하인즈 대마법사까지 이빨을 딱딱거리게 되다니.
반지원정대의 브루투스를 향한 원한은 정말 깊어보였다.
태평한 녀석도 위기감을 느끼기는 했는지 다급히 나섰다.
“너무 그리 노려보지 마십시오. 제게 좋은 작전이 있습니다.”
“말해라.”
“보스가 리나를 차십시오.”
뭐 이 미친놈아.
너 지금 소림축구하냐.
“물리적으로 걷어차라는 게 아니라 연애적으로 차라는 겁니다. 여자는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 반지를 빼지 않습니까. 반지를 약혼반지로 생각하는 리나양에게 직효를 거둘 겁니다.”
이질이 조용히 손을 들어 반박했다.
“분노한 단주가 보스를 죽이려 들면 어떡합니까.”
“…….”
무서운 침묵이 장내에 감돌았다.
야, 리델라프.
너도 침묵을 지키면 안 돼지.
“일단은 친위대장을 직급으로 둔 신분에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말입니다만… 리나 간부의 마수로부터 보스의 안전을 지킬 자신은 없습니다.”
시선을 돌려 이질을 바라보았다.
이질은 말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마지막 기대를 담아 하인즈 대마법사를 돌아보았다.
마법사는 비상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잖아.
도와줘요 하인즈몽!
“노구는 연예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네.”
“아.”
“저런…….”
우리는 늙은 대마법사의 상처를 위로해주었다.
“이 작전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 계획은 폐기하도록 하지.”
나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브루투스가 뒤 돌아서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저 새끼가 하는 제안은 다 무시하는 게 좋겠다.
“이번에는 북풍과 태양의 전략을 사용하겠다.”
“오오. 보스의 작전입니까?”
“리델라프. 너는 북풍과 태양의 전략을 알고 있는가.”
“북풍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봤자 작렬하는 태양빛만도 못하다는 유화계 책략 아닙니까?”
“틀렸다.”
언제 적 낡은 전략이냐 그건.
그 짓 하려다가 얼어 뒤질 뻔했었잖아.
“북풍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열화지옥을 만드는 전략이다.”
“그런 우화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절대반지는 들끓는 용암 속에 집어던져야 사라진다.”
반박은 받지 않겠다.
“이 전략의 핵심은 간단하다. 리나를 밀폐도니 곳에 가두고 죽어라 온도를 올린다.”
“단주를 반지와 함께 녹여죽이시려는 겁니까?”
이질이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른 원정대원들도 세상에 다시없을 악의 군주나 공포의 화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반지가 뜨거워지면 살이 데이기 싫어서라도 빼겠지.”
원정대원들은 몹시 안도하였다.
“역시 보스는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선군이십니다.”
“저는 보스를 믿고 있었습니다. 1% 정도는요. 역시 1%의 확률이라도 방심할 수 없네요.”
“흘흘. 노신 또한 폐하의 현명함을 믿고 있었소.”
거짓말 치지 마라. 방금 전까지 나를 무슨 미궁 심층 지대에 서식하는 드레드 원(Dread One, 공포스러운 자)이라도 보는 것처럼 쳐다보던 놈들은 다 어디 갔냐.
“이것이 나, 빌헬름 마이어 식 북풍과 태양 전략의 실체다.”
“그런데 밀폐된 환경의 고온시설에 단주를 어떻게 가두죠?”
이질의 물음에 나는 쿨하게 대답했다.
“그건 너희가 알아서 생각해야지.”
“…….”
비정하다 욕하지 마라.
원래 계획은 위에서 짜고 일은 밑에서 하는 거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때, 브루투스가 다시금 의견을 개진하였다.
“얼마 전, 동방의 여행자들이 사우나라는 시설을 만들었더군요. 산채로 살을 태우고 고문하는 야만민족의 끔찍한 풍습을 담아낸 시설이라서 전사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
“극악한 고문시설인 사우나까지 리나 양을 유인할 수 있다면 그곳의 가혹한 열기에 의해 반지가 달아오를지도 모릅니다.”
사우나에 대한 인식이 처참하구나.
그보다 한국인이 야만민족이 되어버렸잖아.
“누군가 리나를 유인해야겠군. 전령을 보내라.”
나는 리나에게 사람을 보냈다.
-최근 브람 시에 사우나라는 야만민족의 고문시설이 들어왔다. 전사들의 단련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시설인지 확인하기 위해 브루투스와 함께 시찰을 가주었으면 한다.
답신이 돌아왔다.
-싫어! 그 사람 변태 같아!
브루투스는 눈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부정당한 사람처럼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리델라프는 대놓고 그를 비웃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브루투스는 솔직히 누가 봐도 좋아할 수 없는 비호감스러운 외모와 신분을 지녔습니다. 호감가는 얼굴인 저 리델라프가 기사단장이라는 믿음직스러운 직함을 내밀고 가보겠습니다.”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다음은 리델라프 너로 정했다.
나는 재차 사람을 보냈다.
-그럼 변태를 단속하는 위치에 있는 기사단장 리델라프랑 사우나 시찰을 가는 건 되겠는가.
답신이 돌아왔다.
-싫어! 그 사람 재수 없게 생겼는걸!
땡그랑.
죽는 순간까지 몸에서 떼지 않는다는 기사의 검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리델라프는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뇌하는 석고상마냥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비참하게 몰락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이질이 작게 비웃었다.
“풋. 역시 단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부단주인 저만이 가능합니다. 단주의 경계심을 낮추려면 저런 음험한 변태나 재수없는 샌님보다는 제가 더 나을 겁니다.”
나는 재차 사람을 보냈다.
-부단주인 이질과 함께 사찰을 가는 건 가능하겠지. 이질은 변태도 아니고 재수 없지도 않다. 너와 함께 동거동락한 충직한 직속부하가 아닌가.
답신이 돌아왔다.
-싫어! 이질은 목각인형 같은 걸! 같이 다니기 재미없어!
재미없는 여자가 된 이질이 단검을 뽑아들고 제 복부에 겨누었다.
“할복은 그만둬!”
우리는 반쯤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이질을 뜯어말렸다.
설마하니 부단주 이질까지 거절당하다니… 리나만큼 쉬운 여자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까탈스러운 면모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변태와 샌님과 목각인형들은 나란히 도로 경계석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아.”
“푸우.”
…난 왜 이걸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지?
“껄껄. 현인의 인자함이야말로 경계를 낮추는 지름길이오. 노구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조숙한 소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시찰에 나설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재차 사람을 보냈다.
-하인즈 대마법사는 지혜롭고 재치 있는 노인이다. 변태도 아니고 샌님도 아니며 목각인형처럼 재미없지도 않다. 그라면 함께 시찰하기에 적합한 인선이라고 본다.
답신이 돌아왔다.
-싫어! 이유 없이 비호감이야!
이유조차 없이 비호감이 되어버린 하인즈 대마법사의 손에서 고목나무 지팡이가 뚝 떨어졌다.
“나의 지난 생애는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마법을 연마하면 인기 있는 할아범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정녕 잘못된 것이었단 말인가… 쿨럭! 쿨럭! 크허억!”
하인즈가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다가 쓰러졌다.
주화입마였다.
“…….”
반지원정대의 지혜를 담당하던 대마법사를 무능한 세 사람이 급히 신전으로 데려가는 사이, 나는 다시금 사람을 보냈다.
-나랑 사우나 시찰을 가보자.
-좋아!
리나는 나한테만 쉬운 여자였다.
“사우나는 뭘 하면 되는 거야?”
“우선 온탕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휴게실에서 땀을 빼는 사우나 실에 들어가면 된다.”
“응응! 알았어!”
“…남탕으로 따라오지 마라. 씻는 건 혼욕이 아니다.”
“응응!”
정말로 이해하기는 한 걸까.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몸을 씻고 휴게실로 나왔다.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기를 얼마간.
“얏호~! 몸이 가벼워졌어, 보스!”
“생각보단 멀쩡해보이는군.”
“욕탕 안에서 여전사 언니가 알려줬어! 욕탕에서 다가올 시련에 대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씻고, 열 내성 고통 내성 화상내성을 올리는 주문을 받아야한다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잖아.
무슨 지옥의 용광로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구네.
“사우나에 들어가기 전에 맥반석 계란을 먹어라.”
“응? 뭐야 그건?”
“고온에 삶은 달걀이다.”
“그걸 왜 먹어?”
“야만민족의 전통과 풍습이다.”
리나는 달걀을 먹었다.
“생각보다는 먹을만하네!”
“솜사탕보다?”
“그건 아니고.”
즉답이냐.
조금쯤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라.
“그럼 사우나에 들어갈 차례네!”
“우선은 가볍게 황토사우나를…….”
“그런 거 없는데?”
정말이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사우나 이름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전사의 시련] [격투가의 고뇌] [프리스트의 절망] [특이점이 온 대장장이]
이게 사우나인지 던전인지 모르겠다.
나는 푯말 옆에 자그맣게 쓰인 내부온도를 확인했다.
[전사의 시련][100~200도]
[격투가의 고뇌][200~500도]
[프리스트의 절망][500~1000도]
[특이점이 온 대장장이][1000~3000도]
X발. 이게 뭐가 사우나야.
지옥의 용광로지.
도자기도 3000도에서는 안굽는다.
“어… 그게… 사우나에서는 반지를…….”
“당연히 못가져가지! 녹으니까!”
“그거 이전에 몸이 녹을 것 같은데.”
“괜찮아! 성수랑 방어마법진도 팔거든!”
“…….”
리나는 반지를 벗었지만 더 큰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거 어떻게 들어가.
들어가면 진짜로 죽는 거 아니냐.
‘아니, 성수랑 방어마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내 몸은 동기화 비율 1%.
고통은 없다.
리나는 나보다 체질이 높으니 어느 정도는 더 버티겠지.
하지만 고통은 다르다.
이건 상남자식 인내력 전투나 다름없다.
내 체력이 깎이는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것.
리나의 살벌한 더위로 인한 고통을 참는 것.
그야말로 살인적인 태양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만 같은 난이도의 시련과 고통의 최종결전이다. 승자는 한 명뿐. 어느 쪽이 보다 오래 버티는지를 겨루는 비정한 승자독식의 전투다.
덤벼라, 리나.
내 의지력이 널 뛰어넘음을 증명해주겠다!
“살려줘.”
치이이이익.
1분 만에 뛰쳐나왔다.
아프지는 않은데 HP가 10까지 떨어졌다고.
“헤헹! 보스랑 데이트 했다! 보스를 이겼다!”
리나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저 웃음 하나로 이 모든 고통을 상쇄해야 하는 건가.
조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넘어가주자.
“후우. 힘든 하루였군.”
침상에 누우려는데 천장에서 이질이 스르륵 내려왔다.
반지를 넣은 반지케이스에 손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너 뭐하냐.”
“흠칫.”
“입으로 놀라는 거냐…….”
이질은 쭈뼛쭈뼛 말했다.
“저도 데이트가 하고 싶습니다.”
“입 닥쳐. 손가락 잘라버리기 전에.”
그간의 고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독설이 튀어나왔다.
이질은 엉엉 울었다.
나는 이질을 달래주느라 한참을 진땀을 빼야 했다.
간신히 이질을 달래주고 난 뒤, 베란다에 나왔다.
잠입하려던 암살단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
“…….”
“가라.”
“네.”
역시 이 반지는 위험해.
나는 곧장 사우나에 찾아갔다.
“사악한 절대반지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돼.”
나는 특이점이 온 대장장이 사우나에 절대복종의 반지를 집어던졌다.
반지는 녹아내렸다.
반지원정대는 비로소 목적을 달성하였고, 비로소 세상에 평화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브루투스가 찾아왔다.
“불로불사의 반지를 만들었는데 이거 한 번…….”
“태워.”
“네?”
“반지를 태울 거냐. 아니면 네가 불타 죽을 거냐.”
“…….”
이후, 브루투스의 아티펙트 제작은 법령으로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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