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외전 8. 최강탐정 카이사르
(※탐정 카이사르가 사건을 해결한다고 가정하는 시점)
(※작중 본편과는 완전히 무관계합니다.)
내 이름은 카이사르.
최강의 탐정들이 모인 마이어 탐정사무소의 에이스 탐정이다.
지금껏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정점에 달한 실력.
그렇기에 나는 세간의 시기를 받는다.
누구라도 내 곁에 서면 초라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다.
그런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다.
빌헬름 마이어.
마이어 탐정사무소의 보스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보스는 막 출근한 내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샌드위치.”
“…….”
나는 출근길에 산 샌드위치를 고스란히 바쳤다.
보스는 샌드위치를 먹어치웠다.
최강의 탐정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건 역시 보스밖에 없다.
“보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일을 하고 싶습니다.”
보스가 먹던 샌드위치를 떨어뜨렸다.
“진심이냐.”
“네.”
“가급적이면 사고는 그만 쳤으면 좋겠는데.”
나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 수사방식이 거친 게 아닙니다. 범인들이 약해빠진 잔챙이였을 뿐입니다.”
“도대체 탐정 활동을 하는데 집 한 채를 통째로 박살 내고 집값을 물어주는 건 무슨 경우냐. 강한 건 틀림없지만 네놈은 가성비가 너무 나쁘다.”
“그렇다면 집값을 물어주고도 거금이 남을 정도로 커다란 일감을 주시면 됩니다.”
합리적인 반박이었는지 보스가 손가락으로 의자를 툭툭 두들겼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숫자를 헤아리던 나는 보스의 마음이 기울었음을 확신했다.
보스의 결단은 5초 이상이 걸리지 않는다. 그 이상 뜸을 들이는 이유는 맡길 일감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토 가의 살인사건을 조사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자료를 넘겨받았다.
시시한 내용이었다.
“별 거 없군.”
가토(남, 33세).
그는 영세한 도장을 꾸리던 도장주인이며 자신의 도장에서 등에 칼이 꽂힌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자산수준은 별거 없지만 아내가 한 명 있었고, 최초목격자인 가토의 제자와 함께 경비대에 신고를 했지만 뇌물을 먹일 돈이 부족해서 수사가 중단되고 탐정사무소를 찾았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일은 질색이다.”
이른 시각이지만 우중충한 동쪽 지구의 뒷골목에 자리한 주점을 찾아갔다.
“럼 1잔.”
탐정은 하드보일드한 직업이다. 차갑게 식은,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비정한 직업.
독한 술 한 잔조차도 없어서야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크헤헤. 도장거리에서 뒤진 가토라는 놈 기억해?”
“아아.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지. 도장에 도제라고는 고작해야 둘 밖에 없는 하찮은 도장이라니. 그런 것들은 귀한 땅만 차지하니까 얼른 죽어버리고 땅이나 내놓는 게 좋다고.”
“명색이 무사라는 녀석이 등에 칼이나 박히기는. 분명 대결에서 패배하고 수치스럽게 도망치다가 칼이 꽂힌 게 틀림없어.”
취객들의 대화에 지나가던 종업원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만두세요. 가토는 겁쟁이가 아니에요.”
“껍쨍이가 아뉘에용! 우헤헤헤!”
“그런 겁쟁이는 잊고 우리랑 노는 게 어때. 응?”
취객들이 종업원의 팔을 붙잡고 그녀를 희롱하려 들었다.
진부하고 상투적이군.
퍽! 쨍그랑!
“으악!”
“어떤 미친놈이 술잔을 던졌어!”
“웬 놈이냐!”
나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계최강의 탐정, 카이사르다.”
취객들이 주춤거렸다.
“의뢰인 빼고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는 미친 탐정?”
“마이어 탐정사무소의 괴물…!”
“제기랄. 가토 따위에게 분에 넘치는 탐정이 붙었군.”
취객들은 궁시렁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며 달아났다.
괜히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다.
나는 그런 놈들을 쫓아 술집을 뛰쳐나갔다.
“으아악! 왜 따라오는 거야!”
“저리 가! 가토의 부인은 술집 안에 있잖아!”
“종업원이야! 종업원한테 돌아가!”
취객들의 외침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한 명씩 취객을 붙잡은 다음, 얼굴에 주먹을 먹였다.
가벼운 한방에 얼굴이 함몰되는 게 느껴졌다.
한 놈. 두 놈.
이걸로 마지막 세 놈.
“잠깐! 날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럼 정보를 줄게!”
나는 녀석의 복부를 힘껏 두들겨 팼다.
“커헉!”
“제안하는 방법이 세련되지 못하군. 내가 제안하지.”
떡진 머리칼을 붙잡아 끌어올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죽기 싫으면 아는 거 전부 불어.”
취객은 정신없이 가토와 그의 아내에 대해 아는 사실을 전부 토로했다. 가토는 가난한 도장주인이며 그의 두 제자 중 한 명은 삼류무공에 진저리를 내며 달아났다.
다른 한 명의 제자는 빈 도장을 지키고 있지만 청소나 하는 수준에 불과하고, 가토의 아내는 생활비를 벌고자 술집 여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들어도 이 녀석을 살려둬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아아! 그게 있었어! 가토의 원수!”
“가토의 원수?”
“가토의 아내 도로시는 대단한 미인이지. 그녀를 사모했던 알폰스 남작이 수작을 부린 걸지도 몰라.”
이제야 조금 만족스러운 냄새가 나는군.
나는 취객의 얼굴을 후려갈겨 놈의 이빨을 잔뜩 부쉈다.
“컥! 어, 어째서…….”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건방진 입은 놀리지 못하게 될 거다.”
나는 가토의 부인을 찾아갔다.
“당신… 취객들은 어떻게 했죠?”
“때려눕혔다.”
“허튼 짓 하지 마요!”
가토의 부인, 도로시는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은 이 뒷골목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이지만 저나 놈들은 달라요. 당신이 저지른 폭력 덕분에 저는 앞으로 평생에 걸쳐서 놈들에게 그보다 더한 보복을 당할 거라고요.”
“그렇군. 역시 죽여두는 게 낫겠어.”
“네? 잠ㄲ…….”
나는 남자들을 때려눕힌 거리로 돌아왔다.
기절한 놈들이 막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고 있었다.
근처에서 주운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자 그대로 즉사했다.
“애 이어으 어아! 아어우아어!(왜 이러는 거야! 살려준다며!)”
“뭐라는 거야, 이 X신이.”
퍽
취객은 벽돌에 맞고 쓰러져 죽었다.
나는 술집으로 돌아왔다.
“어비스를 거슬러 오지 않는 한, 놈들은 보복을 할 수 없다.”
“죽였다고요!?”
“나는 카이사르. 가토 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온 탐정이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러 와서 사람을 셋이나 죽였잖아요!”
“그거 이상하군. 내가 죽인 건 싸구려 술에 찌든 개였었는데.”
도로시는 두 손을 들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손을 내리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 상남자시네요. 그건 잊도록 하죠.”
“가토의 제자 둘을 만나고 싶다.”
“그들을 의심하시나요?”
“보면 안다.”
“지금은 근무 중이라 일을 마친 뒤에…….”
쩔그럭.
“요즘은 개들이 사람 돈도 가지고 다니더군.”
“사장님. 퇴근이요.”
우리는 가토의 도장으로 향했다.
도장은 더럽게 외지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있었다.
나라도 이딴 곳에 찾아오고 싶지 않을 정도다.
“입지조건이 쓰레기로군.”
“그이가 도장무술을 배우려는 자들은 이 정도 수고스러움은 감수해야 한다면서 이런 곳의 땅을 사버렸네요.”
“전성기 때 문하생은 몇 명이었지.”
“세 명이요.”
“듣던 것보다는 한 명이 더 많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때려 치고, 한 명만 남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이어졌다.
도로시가 어이없어하면서 물었다.
“죽은 문하생에 대해서는 안 물어보세요?”
“무술을 배우면서 죽는 건 심심찮게 있는 일이지.”
“…어디서 살인무술이라도 배우셨어요?”
정답이다.
이 여자, 통찰력이 범상치 않군.
“레이브! 탐정님이 널 보고자 하셔.”
“안녕하세요, 탐정님.”
도장의 마지막 남은 제자는 비리비리한 꼬맹이였다.
근육은 거의 없다시피 하군.
“흥이 식었다. 죽일 가치도 없군.”
“죽이려던 계획이었나요!?”
“물론이다. 사부의 복수도 할 수 없는 제자라니. 외인인 나로서도 수치스러워질 지경이군. 가토류 무술은 고작해야 이 정도에 불과했는가.”
레이브는 작은 주먹을 움켜쥐며 씨근덕거렸다.
“노려보는 것으로 끝인가.”
“이이익!”
“레이브! 그만둬!”
도로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레이브는 주먹을 쥐고 덤볐다.
퍽.
가렵지도 않은 주먹이 튼실한 내 허벅지에 부딪혔다.
“아악!”
어째서인지 공격을 한 레이브가 손목을 쥐고 비명을 질렀다.
이딴 게 남자라니.
여자 옷이나 입히고 여자로 살게 해야 될 것 같군.
“사부를 모욕하지 마! 약한 건 가토류 무술이 아니야. 내가 약했을 뿐이라고!”
“호오. 내가 두렵지도 않은가.”
“사부라면 물러서지 않았어!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정의로운 마음은 꺾이지 않아!”
나는 레이브의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놀란 레이브가 히익 소리를 내며 뒤로 자빠졌다.
겁에 질려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눈은 제대로 노려본다.
“그런가.”
나는 손을 들었다.
잔뜩 움츠러든 녀석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악!”
“네놈에게는 땅바닥이 어울린다. 거기서 나자빠져있어라.”
“나쁜 놈! 비열한 놈!”
“꼬맹이들의 시간은 끝났다. 이 뒤는 어른들의 시간이다.”
“……!”
도장 주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무리의 검객들.
날카롭게 곤두선 칼은 틀림없는 진검이다.
“도로시 부인. 놈들의 정체는?”
“청학무장의 무인들이에요! 가토의 땅을 노리고 덤벼드는 비열한 무리들이죠. 설마 아녀자와 아이밖에 없는 도장을 습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건만…….”
“부인. 나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다.”
나는 부인의 착각을 정정해주었다.
“저건 죽여도 되는 건가. 죽이면 안 되는 건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에요. 하지만 저들을 죽이는 건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힘든…….”
“그딴 건 내 알바 아니야.”
사방에서 달려드는 푸른 청포를 입은 무인들.
적의 검이 내 간격에 들어서자마자 전신의 감각을 일깨웠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보인다.
네놈들의 검로가.
두 자루의 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패도적인 힘으로 짧게 끊어쳤다. 흔들리는 두 개의 검로가 뒤따른 네 개의 검로와 뒤엉켜 엉망진창이 되었다.
무질서한 한 개의 덩어리가 된 적들의 검은 더할 나위 없는 최약이 되었다.
나는 다르다. 이해를 초월한 괴력으로 검로를 뒤틀어 일점으로 한데 뭉친 그들의 검을 내리쳤다.
쾅!
카아아아앙!
여섯 자루의 검이 모조리 가루가 되어 분질러졌다.
경악한 검객들을 향해 우수검을 휘둘러 하나를 베고, 그대로 몸을 틀어 다시 또 한 명을 베었다. 이어지는 회전에 세 번째 검객이 베어질 때야 비로소 적들이 움직였다.
그래도, 내 차례는 끝나지 않았다. 호흡의 끝자락을 부여잡으며 왼손으로 떨어지는 검날을 붙잡았다.
촤아악!
날카로운 검날에 네 번째 검객의 목이 베였다. 분수처럼 비산하는 피 너머로 두 검객이 각자의 허리춤까지 손을 뻗었다.
온다.
하얗게 일어나는 두 자루의 섬광. 검의 간격은 닿지 않지만, 검은 휘두르기만 하는 무기가 아니다.
퍽!
손목의 힘을 이용해 던진 투검이 한 놈의 몸통을 관통했다.
남은 한 놈은 검을 틀어 검날을 받아쳤다.
그래도 아직, 이쪽이 한 수 위에 올라서있다고.
카앙!
질풍 같은 발차기에 직격당한 검면이 산산이 조각났다. 경악한 놈이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마지막 회전을 건 발차기가 머리에 직격했다.
빠아악!
풀썩!
여섯 명의 검객이 전멸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전투에 레이브가 멍하니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가, 강하다…….”
“강하다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네놈의 사부는 나 이상으로 강하다.”
“그럴 리가 없어요. 가토 사부는 착하지만 무술은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던 걸요…….”
건방진 꼬맹이로군.
“악! 왜 때려요!”
“가토는 근력이나 검술로는 나보다 밑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는 이만한 강적들을 상대로 어떠한 타협도 없이 도장을 지켜왔었다. 그런 그의 용기가 진정으로 약해보이는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거면 된거다.”
“우윽…….”
레이브는 울먹거렸다.
“처음이에요. 사부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준 사람은.”
“그 의지를 관철해나가는 게 제자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검술보다 중요한 게 뭔지 벌써 잊었는가.”
“용기요.”
“그 투지를 잊지 않는다면 너 또한 언젠가 세계최강의 탐정이 될 수 있을 거다.”
레이브는 벌레씹은 표정이 되었다.
“탐정은 되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냐.”
“박봉이잖아요.”
혼란스러운 두 사람의 대화에 도로시가 끼어들었다.
“그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청학도장의 검객들을 죽였으니 도장의 뒤를 봐주는 알폰소 남작이 움직일 거예요. 도시경비대와 남작의 사병이 쳐들어오기 전에 도망쳐요.”
“가토의 도장을 버리고 달아나겠다는 건가.”
“도망치지 않으면 당신은 범죄자로 붙잡힌다고요! 생명의 은인을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어요. 이깟 도장, 지니고 있어봤자 불행을 불러올 뿐이라면 차라리 팔아버리겠어요!”
“알폰소 남작이 가토를 죽인 범인이라도 말인가.”
“……!”
도로시의 눈이 가파르게 흔들렸다.
알고 있다.
고뇌하는 자의 눈빛이다.
흔들리고, 명멸하고.
그 끝에 찾아올 것은 빛이 사그라진 절망뿐이지.
“어쩔 수 없잖아요. 힘으로 맞서는 것도 죄가 되고, 가진 것을 순순히 빼앗기지 않으면 목숨마저 잃게 되는 게 저희들의 삶이잖아요.”
“한심한 것.”
짜악.
뺨을 맞고 쓰러진 도로시가 눈을 껌뻑거렸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누구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세계최강의 탐정, 카이사르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탐정은 범인을 잡기 전까지 일이 끝나지 않지. 알폰소 남작의 수급을 들고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도로시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탐정 일을 하면서 저런 눈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나는 청학무관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딱한 것.
뺨을 너무 세게 때려서 눈이 맛이 가버렸군.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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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가토의 도장을 나선 뒤, 나는 그대로 청학무관에 직행하였다.
“저 녀석은…!”
“멈춰라!”
귀찮은 문지기들이 나타났다.
“크악!”
“아악!”
팔이 꺾인 문지기들을 문 너머로 집어던지며 발을 들였다.
“유감이군. 뒤로 꺼지는 방법은 몰라서.”
쓰러진 놈들을 짓밟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수련 중이던 하급 무인들이 찔끔거렸다. 하나같이 겁먹고 움츠러들며 물러서는 것이 내게 맞서는 걸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래. 역시 이편이 정상이지.
어린 꼬맹이 레이브가 비정상적이었을 뿐이다. 검을 든 자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고,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맹수를 알아본다. 꼬리를 마는 건 비겁하고 어쩌고 할 것 없이 그냥 정상이다.
“마이어 탐정사무소 전속탐정 카이사르.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기물파손 및 살인죄를 저지르는 잔혹한 범죄자가 이리 납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네놈은 누구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청류검의 13대 직전제자이자 청학검술의 시조, 청학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명이 빈약하군.”
“뭬야?”
“알폰스 남작의 뒤를 닦아주는 똥개. 가장 중요한 소개를 빼먹었지 않았는가.”
청학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감히 내게 모욕을 주다니! 용서할 수 없다.”
“덤벼라.”
“정정당당하게 1 대 100으로 해치워주마!”
청학의 명에 내부수련장에서 수련 중이던 중급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적응이 안 되는군.
청학은 뻔뻔하게 소리쳤다.
“세계최강의 탐정의 악명은 익히 들어왔지. 네놈을 상대로 일대일로 비무를 벌이는 만용을 부리지는 않겠다. 허나 백 명의 부하들과의 합격진이라면 전력상으로 대등하겠지!”
체면을 포기한 악당은 강했다. 내심 이런 전개가 기꺼웠다. 이래야 어렵고, 가슴 아프고, 하드보일드(Hard, Heartbroken, Hardboiled)한 3H직종답지.
나는 차갑게 웃으며 품에서 손을 꺼냈다.
“헉! 모두 멈춰!”
“미친! 마법스크롤이라니!”
겁에 질린 놈들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방금 전까지의 자신감은 어디에 갔지.”
“미친놈이! 그거 한 장 가격이 얼마인데 우리한테 들이밀어! 무관운영을 석 달을 해도 스크롤 한 장 가격만도 못하잖아!”
“내 알바는 아니지.”
“가토의 아내에게 보수로 땅값이라도 받기라도 한 건가!?”
잠깐. 문득 머릿속에 보스에게서 배운 멘트가 떠올랐다.
이럴 때 보스는 이런 말을 하라고 했었지.
“보수라면 더 값진 걸 받았지.”
“숨겨진 보물이 있었던 건가!?”
“그녀의 눈물이다.”
멍청하니 입을 쩍 벌린 청학을 향해 말을 이었다.
“여자의 눈물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지.”
청학의 부하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저 탐정 녀석 졸X 멋지잖아. 이대로는 못 싸우겠어. 우리가 너무 쓰레기처럼 보여.”
“저 남자는 여자의 눈물을 보수로 받고 일대 백으로 싸우겠다는데 우리는 돈 내고 도장에서 무술 배우면서 일대 백으로 린치나 하려고 하고 있다고.”
“이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야.”
청학의 부하들은 사기가 곤두박질쳤다.
“순순히 꺼져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으으…….”
“아무래도 선택을 도와줄 힌트가 필요한가보군.”
나는 대뜸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인을 걷어찼다.
“억!”
중급무인이 쓰러지자 그는 쓰러진 무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자빠뜨렸다.
그리고는 허우적거리는 무인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왜, 왜 이러세요. 왜 저만 때리는데요.”
“난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라서.”
“으으으…….”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난 지금 사람 뱃속에 폭탄을 먹여보고 싶은데. 작은 게 좋은가, 큰 게 좋은가?”
“히이익!”
스크롤 두 장을 들이밀자 무인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주변의 다른 무인들도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주춤거리더니 이내 모두가 등을 돌렸다.
“무관주인은 어딜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하시나.”
“제길! 넌 또라이야!”
“잊고 있던 내 정체성을 알려줘서 고맙군.”
청학은 사납게 윽박질렀다.
“날 위협해봤자 소용없다. 내 신상에 위협이 닥치면 다음은 알폰소 남작이 직접 나설 뿐이다.”
“그거 잘됐군. 안 그래도 남작을 부르기 위한 용도로 널 활용하려고 했는데.”
“…….”
청학은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이 되었다.
“탐정. 가토를 죽인 진범을 넘겨주겠다.”
“흥미로운 제안이군.”
“범인이 체포된 시점에서 탐정에게 부여된 면책특권은 회수된다. 더 이상 깽판을 치는 건 불가능할 거다.”
사악한 악당답게 잔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가는 놈이다.
청학은 무인들을 풀어 몇몇 사람을 데려왔다.
레이브와 도로시, 그리고 처음 보는 금발 꼬맹이였다.
“약속이 다르잖아! 이거 놔!”
“닥쳐라! 제 사부를 죽인 배은망덕한 년!”
청학은 금발 꼬맹이를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침을 퉤 뱉었다.
“이 녀석이 가토를 죽인 진범이다.”
“리나…!”
“어허.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도로시 부인. 당신들은 인질의 역할도 겸해서 데려온 거니까.”
도로시가 꼬맹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도 한때는 가토의 두 번째 제자였어요.”
“한때는, 인가.”
“막내 제자가 청학무관의 시비에 얽혀 사망한 뒤로, 무능한 가토류 무술 대신 청학무관에 의탁한 배신자이죠.”
리나는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들이 나쁜 거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도장무술을 배워서 막내가 죽었다고. 그런 쓰레기 같은 무술이나 가르치는 도장주인 따위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
나는 물끄러미 리나라고 불린 꼬맹이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다.
쳐다만 봐도 화가 나고 암이 걸리는 것 같다.
“그래! 내가 범인이다!”
리나는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
“너는 가토를 죽이고 싶지 않았었나보군.”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범죄를 자랑스러워하는 자는 울면서 외치지 않는다.”
리나는 엉엉 울었다. 도로시는 무인들을 뿌리치고 리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목검을 든 레이브가 그녀들의 앞에 서며 열심히 주변을 경계하였다.
가토는 좋은 제자를 두었군.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고 말았다. 고독한 최강의 탐정의 길을 걷는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방식의 삶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청학. 네놈이 살인교사를 저질렀음은 누구라도 간단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법은 네놈들의 편이 아니다. 알폰소 남작이라면 내 무죄를 증명해주겠지. 정말로 내가 무죄인지와는 별개로 말이지. 이것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다! 크하하하하!”
나는 재수 없게 쪼개는 청학을 향해 검을 던졌다.
푹
복부를 검에 관통당한 청학이 쓰러졌다.
“으아악! 무관주인이 당했다!”
“모두 도망쳐!”
참 피라미 같은 녀석이군.
단 한 명의 문하생도 부상 입은 그의 곁을 지켜주지 않는 모습이 가토의 제자들과 대비되었다.
“고마워요, 카이사르. 덕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어요.”
“무슨 헛소리냐!”
나는 도로시의 뺨을 때렸다.
당황한 도로시가 나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너야말로 무슨 망언을 내뱉는 것이냐!”
나는 도로시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가 사랑했던 남자는, 가토는 고작 이딴 피라미의 수작에 죽을 만큼 나약한 남자였는가!”
“그건…….”
도로시는 흐느껴 울었다.
“그는 리나를 믿었던 거예요. 신뢰하는 제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에, 저들에게 협박당한 걸 알고 기꺼이 목숨을 내준 게 틀림없어요. 흐윽…….”
“강요된 살인이었다. 무관주인 청학은 이를 유도한 말단에 불과하다.”
“배후에서 청학을 움직인 알폰소 남작을 체포하려는 건가요?”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런 나약한 녀석이 범인일 리가 없다!”
“네?”
도로시는 곤혹스러워했다.
“알폰소 남작이 아니면 가토와 저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사람은 딱히 없는데요.”
“틀렸다. 너는 단단히 틀렸다. 진정한 범인은 바로 이 사회에 만연한 어둠과 그 어둠을 뿌리는 존재다!”
“네?”
나는 벙찐 도로시를 향해 윽박질렀다.
“네놈은 진범을 잡고 싶지 않은가! 또 한 명의 가토를 만들 작정인가!”
“그, 그런 의도는…….”
“불의에 눈을 감지 마라.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 범인을 죽이는 거다. 청학무관을 이용해 가토의 도장에 패악질을 저지른 알폰소 남작 따위를 귀족으로 인정한 이 사회를 부수는 거다!”
도로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쳤다.
“그럼 이 사회는 어떻게 부술 수 있나요?”
“혁명이다.”
“혁명은 어떻게 하죠?”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을 전부 때려 부수는 거다.”
“피로 물든 복수! 좋아요. 도움만 된다면 기꺼이 하겠어요.”
나는 알폰소 남작의 저택을 습격, 금단의 마도서를 습득했다.
도로시는 마도서를 통해 마녀로 전직했다.
최강탐정인 나와 사악한 마녀 도로시의 연계는 강했다.
어떤 적도 우리에게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우리는 도시의 어둠 속에 숨은 거악들을 찢어발겼다.
“으아악! 미친 탐정이다!”
“무슨 탐정이 기사보다 강해!?”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수많은 암흑조직을 격파하며 밤거리를 피로 물들였다. 하루라도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날이 없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드보일드한 탐정은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우리는 브람 시 암흑가의 모든 암흑조직들과 격전을 벌였다.
“탐정아저씨. 가토는 날 용서해줄까…?”
“분명 그럴 거다.”
리나는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폭탄스크롤을 끌어안았다.
“고마워. 이제 망설임없이 갈 수 있겠어.”
“리나아아아!”
“레이브. 도로시 언니를 부탁할게.”
리나는 폭탄스크롤을 찢었다.
그녀는 귀족가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암흑조직들의 뒤를 봐주던 귀족가를 궤멸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났군.”
“카이사르 씨. 앞으로는 뭘 하고 지내실 건가요?”
“탐정사무소로 돌아가겠지.”
“이렇게나 거한 소동을 벌인 이상, 저와 레이브는 이 도시에서 살 수 없어요. 저희와 함께 떠나지 않으실래요?”
“사건이 있는 한, 탐정에게 휴식은 없다.”
도로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죠?”
“그럴 날은 없었으면 하는군. 탐정과 마주치는 사람은 범인과 피해자, 둘 중 하나뿐이니까.”
“…알겠어요. 그동안 많이 신세졌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도로시를 따라 성문을 나서려던 레이브가 멈칫했다.
“카이사르 형님. 저도 형님처럼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
“우우…….”
“내가 살아있는 한 세계최강의 탐정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라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탐정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형님…! 절 잊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언젠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탐정이 되어서 돌아올 거예요!”
도로시와 레이브는 도시를 떠났다.
수많은 악당들을 제거했지만, 귀족들의 선전공세로 인해 악인으로 낙인찍힌 그들이 도시에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떳떳하게 돌아올 날이 찾아오리라.
“…….”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끝을 맞이하였다.
나는 브람 시 시청에서 받은 명예훈장을 들고 마이어 탐정사무소에 복귀하였다.
“보스.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너.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거냐. 살인사건을 해결하라고 보냈더니 어째서 암흑조직을 궤멸시키고 부패한 귀족들의 목을 따고 돌아다니는 건데.”
“가토의 죽음은 이 사회에 만연한 부패한 악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부패한 악을 처단함으로써 가토를 죽음으로 내몬 진정한 범인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보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무리 보스라도 이번 활약에는 입이 절로 벌어지나보다.
이걸로 승진은 확정이군.
“카이사르.”
“예.”
“너 해고.”
“…….”
내 이름은 카이사르.
차가운 밤거리를 헤매는 하드보일드한 실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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