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18화 (218/224)

[219] 외전 9. 귤 파는 카이사르

(※보스와 카이사르와 리나가 그냥 귤 까먹는 외전)

(※작중 시점은 뒤죽박죽 섞였습니다.)

암흑조직의 주된 수입원은 영업장에서의 수금.

영업장과 암흑조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유착관계이다.

“물러가라! 이 사악한 범죄자들아!”

“주인장.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 겪어보고 싶은가.”

“살려주세요.”

…대략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보스. 오늘 치 영업장 수금을 마쳤습니다.”

“수고했다, 카이사르.”

왠지 카이사르를 해고하고 싶다는 충동을 꾹 눌러 삼키며 수금한 금액을 확인하였다.

“이상하군.”

“무언가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예상금액보다 수금액이 현저하게 낮다.”

나는 회계스킬을 발휘하여 원인을 분석하였다.

답은 신속하게 도출되었다.

“귤농장이 문제로군.”

“피바다를 만들고 오면 됩니까?”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카이사르는 주먹을 휘두르는 일 외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이번만큼은 직접 영업장을 방문해야겠다.

“농장주. 귤 판매대금이 왜 이것밖에 없지?”

“그게… 먹어보면 압니다. 귤 하나만 드셔보십시오.”

나는 귤을 까먹었다.

“귤이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다.”

어째서인지 농장주는 질린 기색이었다.

나는 동행한 카이사르에게 귤을 먹였다.

“맛없습니다.”

아. 동기화 비율 1%는 미각이 없었지.

그냥 맛없어서 안 팔렸나보다.

“어느 정도로 맛 없는 귤이냐.”

“농장주를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맛없는 귤입니다.”

“어지간히도 맛이 없는 모양이군.”

“이딴 싸구려 귤은 치매노인이나 먹을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라서 치매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좋아.

이 영업장은 갖다버리자.

“잠깐!”

농장주가 대뜸 삿대질을 했다.

“당신들, 설마 이 귤을 판매할 자신이 없는 건가!”

“…뭐?”

“정 쫄린다면 어쩔 수 없지. 흑산회 보스는 맛없는 귤도 판매하지 못하는 한심한 자라는 평판이 생기겠군! 내가 흑산회 보스를 너무 과대평가했어!”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이 내가?

감히 나를 멋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려 들다니!

“후회하게 해주지! 이따위 귤, 전량판매해서 네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겠다!”

나는 그리 호언장담하며 조직원들을 시켜서 수확된 귤을 아지트에 가져오도록 했다. 한순간의 호연지기가 답도 없는 폐기용 귤박스 200개로 돌아왔다.

“…보스. 이거 다 어쩔 거야?”

“전부 판매한다.”

“이런 더럽게 맛없는 귤을 누가 사는데.”

리나는 뚱하게 팩트를 날렸다.

대답할 말이 궁하다.

솔직히 막 지르기는 했는데 나도 이거 팔 자신이 없다.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떠넘겼다!?”

“실망스럽군. 너희들의 능력은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됐는가.”

나는 부하들을 차갑게 매도하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응. 무리.”

리나는 시원스레 거절했다.

쳇. 안넘어오는군.

남자가 아니라서 호연지기에 안 당했다.

“감히 이까짓 귤이 제 평판을 깎으려 들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전량 판매로 제 능력을 증명해보이겠습니다.”

“…….”

카이사르는 남자라서 호연지기에 당했다.

아니면 그냥 바보여서 그런 걸지도.

-귤 판매. 한 상자에 5실버.

카이사르는 노점상이 늘어선 거리에서 귤 박스를 잔뜩 쌓아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귤은 더럽게 맛없다는 소문이 돌며 거의 안 팔렸다.

“보스. 귤이 안 팔립니다.”

“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스. 부디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나는 대충 생각나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가격을 조정해보던지. 수익 따지기 이전에 전량 판매만 하면 되니까.”

“역시 보스는 대단하십니다. 실로 명안입니다.”

카이사르는 매직펜을 들고 가판대에 선을 찍찍 그었다.

그리고는 손수 가격을 고쳐썼다.

-귤 판매. 한 상자에 5 골드.

“…….”

거기서 가격을 100배 더 올리면 어쩔 건데.

한 박스도 안 팔리는 게 당연하잖아.

남부 오지대에서 넘어온 파인애플도 그 가격에는 안 팔린다.

“보스. 귤이 안 팔립니다.”

“판매전략을 바꿔라.”

“예시를 들어주십시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귤을 사고 싶게 홍보를 해라.”

“알겠습니다.”

카이사르는 귤 한 박스를 깠다.

그리고는 우적우적 귤을 씹어먹었다.

“으어억! 저 사람 뭐야! 귤을 껍질 채 씹어 먹고 있어!”

“어째서 우릴 노려보는 거지!?”

“엄마, 무서워. 저쪽으로 가기 싫어.”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발길이 뚝 끊겼다.

옆 점포에서 노점상 주인들이 씩씩거리며 쳐들어왔다.

“그 괴로워 보이는 퍼포먼스 당장 그만두지 못해!?”

“이쪽까지 장사가 안 되잖아!”

카이사르는 위협적으로 근육을 부풀렸다.

“지금 내 영업에 불만을 표한 거냐.”

“아, 아니. 귤은 껍질을 까서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요.”

“낮보다 밤에 팔면 더 잘 팔릴 거고요.”

카이사르는 상재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노점상들이 마구 주워섬긴 말을 고스란히 믿었다.

“노점상 주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꼬치구이나 솜사탕을 파는 노점상 옆에서 귤을 파는 건 효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밤에 장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러던지.”

카이사르는 야시장에 참가했다.

꼬치구이나 솜사탕 노점상은 하루 치 야간장사를 때려친다고 생각하고 점포를 접었다.

식품경쟁적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빈자리를 대신하여 들어선 점포들이 문제였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약. 1g 당 1실버.

-장물 팝니다. 선 제시.

어째서인지 암흑상인들이 주변에 가게를 차리기 시작했다.

카이사르의 생김새를 보고 뭔가 착각한 모양이었다.

“어이, 네놈들.”

보다 못한 나는 암흑상인들에게 직접 말을 건넸다.

“귤 장사하는 거 안 보여? 어디서 감히 그딴 불량한 물건을 귤 옆에서 팔아대는 거냐.”

암흑상인들은 진심으로 의아해하였다.

“암시장에서 독이 든 귤을 판매하는 독상점이 열렸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다.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는 건가.”

“저토록 냉혹하고 잔인하게 생긴 귤 사장이 있을 리가 없지. 귤은 관상용이고 실제 영업은 살인청부인 건 짐작하고 있다. 동업자의 정으로 경비대에 고발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해라.”

“…….”

이건 글렀군.

보통으로 귤을 판매한다는 인식 자체도 안 생겼잖아.

그래도 암시장은 구매층이 낮과는 다르다.

낮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던 사람들이 간간이 들렀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얼마면 될까요.”

“5골드다. 덤으로 귤 한 박스도 가져가라.”

냉큼 살인청부 의뢰 받지 마라.

귤 상자를 덤으로 끼워 팔지도 마라.

“카이사르. 살인청부를 받으면 경비대와 얽히게 된다. 귤만 판매해라.”

“보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벌써 포기한 거냐!

“실망이군. 너는 상황이 변하면 약한 소리나 하면서 자신이 내뱉은 말도 책임지지 못하는 허접한 사내였는가.”

“아닙니다. 저는 비정하고 잔인한 상남자입니다.”

“그럼 증명해라.”

카이사르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강제로 입에 귤을 물렸다.

“우웁! 당신 뭐야!”

“귤을 사라.”

“우에엑! 구린내! 이거 뭐야!”

“귤을 사지 않으면 널 죽여 버리겠다.”

“히이익!”

카이사르는 압박영업으로 귤 두 박스를 판매했다.

그리고 경비대에 체포되었다.

“암시장이라고 해도 지나가던 사람에게 유해물질을 먹여서 기절시키는 건 곤란합니다. 적어도 상품을 판매하는 시늉은 하셔야죠. 다음부터는 제대로 저희 사정도 헤아려주십시오.”

“알겠다.”

“보석금 받았고, 부하는 풀어드리겠습니다. 유독물질은 이쪽에서 폐기처분 할까요?”

“…그냥 돌려줘.”

“알겠습니다. 풀어드렸는데 또 강제로 사람들한테 유독물질을 먹인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보석금으로는 안 끝날 겁니다.”

경비대원은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보석금 1 골드가 차감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구금 상태가 해제됩니다.]

[향후 같은 죄목으로 경비대 구금 시, 가중처벌을 받게 됩니다. 범죄행위는 보다 은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십시오.]

귤 네 박스 팔아서 20실버 벌고 보석금으로 1골드 까였다.

마이너스 80실버다.

수익 내려고 시작한 장사인데 마이너스가 됐다.

“엉망진창이군.”

“죄송합니다.”

“네 탓은 아닌…건 아닌데 귤 탓도 있지. 신경 쓰지 마라.”

애초에 경비대원도 귤을 유해물질로 인지하고 있고, 시스템도 이 귤을 판매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이딴 귤을 판매하려고 마음먹은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보스. 경비대원의 조언을 수렴해서 재차 귤 판매에 도전하겠습니다.”

“그만둬라. 이건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보스는 제가 이깟 귤 따위에게 굴복할 저렴한 남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그래 보여.

이미 한 번 패배해서 유치소에 갇혔던 몸이잖아.

돌직구를 날리고 싶은데 한 대 확 쳐버릴 기세라서 말 꺼내기도 무섭다.

“너는 상남자다. 분명 다른 방법을 찾아내겠지.”

“감사합니다. 보스의 신뢰가 헛된 것이 아님을 반드시 증명하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살벌한 눈으로 판매 전략을 모색하는 카이사르를 뒤로한 채, 리나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보스. 저래가지고는 일 년이 지나도 다 안 팔리겠는데.”

“그 전에 전부 썩어버릴 거다.”

“아하핳. 그거 걸작이네. 근데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곤란해지는 건 저 녀석의 자존심뿐이다.

내가 알 게 뭐야.

“자존심에 상처 입은 학살광이 스트레스를 다른 방식으로 풀기 시작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거 뒷감당은 보스랑 귀여운 리나가 해야 되는 거잖아.”

“아.”

“그냥 학살광을 어떻게 잘 어르고 달래서 귤 판매 안 해도 상남자라고 부추겨 세워주면 안 돼?”

사실 흑산회의 서열은 카이사르가 1위, 리나가 2위이고 나는 3위에 불과한 거 아닐까.

무슨 싸이코패스력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 같네.

아무튼 리나의 조언 자체는 검토할 여지가 차고도 넘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파는 건 무리기도 하고.

“카이사르.”

“예, 보스.”

“오해하지 말고 듣도록 해라. 너는 귤을 팔지 않아도 상남자다. 그러니 무리하게 귤을 판매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솔직히 저건 답이 없는 폐기물이다.”

카이사르는 엄청나게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발언의 어느 부분에서 놀란 거냐.

“정말로 이 귤이 폐기물이었습니까?”

거기서부터 놀라는 거냐…

이래서는 대화가 진척이 안 되잖아.

기본적인 대전제부터 단단히 막혀버렸다고.

“그렇다. 이 귤은 상품가치가 없는 쓰레기다. 쓰레기를 돈 주고 파는 행위는 흑산회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행위를 한다고 딱히 상남자가 되는 건 아니다.”

“어째서입니까.”

“너는 돌멩이를 금값에 파는 놈이 있으면 그 놈을 상남자라고 부를 거냐.”

카이사르는 고민의 여지도 없다며 즉답했다.

“아닙니다. 그 녀석을 두들겨 패고 금을 뜯어내어 제가 상남자가 될 겁니다.”

“…….”

강도질이 상남자라는 공식부터 어떻게 좀 해라.

정상인의 사고회로를 가지라고.

뼛속까지 암흑가식 사고방식에 물들었잖아.

“보스.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말해라.”

“밤에 경비대원이 한 말을 궁리한 결과,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카이사르는 숫제 미지의 공식을 발견한 수학자처럼 무척 흥분하였다.

“귤을 강제로 떠넘기고 돈을 뜯어내면서도 상품을 판매하는 시늉을 하면 경비대에 체포되지 않습니다.”

“…….”

틀렸어.

이 녀석은 그냥 머저리다.

“그러니 귤 다단계를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다단계는 물건을 강제로 떠넘기고 돈을 뜯어내면서도 상품을 판매하는 시늉까지 할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그렇게 충격과 공포의 귤 다단계 판매가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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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달빛조차도 흐릿한 야심한 밤.

브람 시의 암흑가에서는 유혈투쟁이 벌어졌다.

“뭐, 뭐야! 흑산회가 왜 우릴 치는 거야!”

“저흰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젠장! 우리가 뭘 어쨌다고 이래!”

다짜고짜 들이닥친 흑산회가 공격을 퍼붓자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던 약소조직들도 거센 저항에 나섰다.

흉기가 서로 맞부딪히고 피와 살점이 튀기며 부상자들의 비명이 처참하게 울려 퍼졌다.

처절한 전투와는 별개로 처음부터 전력의 우위는 명백했다.

“개 같은 귤! 빌어먹을 귤! 찢어죽일 귤!”

“…….”

이쪽에는 격노한 카이사르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

귤에 씨가 있다면 씨 발라먹을 귤이라도 외칠 기세다.

카이사르는 한 무리의 조직원들을 이끌고 암흑가의 약소조직을 닥치는 대로 습격했다. 느닷없이 흉포한 카이사르의 습격을 받은 약소조직 대장들은 억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대체 저희한테 왜 이러십니까!”

“엉엉. 그만 때려요.”

“이유나 알고 맞자, 개자식아!”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 애원하던 대장들도 이유없이 얻어맞다보니 악에 받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저항을 시도했다. 물론 헛된 저항은 더욱 거센 응징만을 불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주검이 된 대장들을 내려다보며 카이사르는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귤 팔아.”

“…네?”

“수익성 좋다.”

놈들의 안면이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문드러졌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느닷없이 폭력배가 들이닥쳐서 두들겨 패더니 쓰레기 같은 귤 박스를 들이대면서 강매하는 거잖아.

[흑산회의 악명이 500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500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000 상승합니다.]

이건 억울하다고 하기도 미안하다.

저런 또라이를 부하로 둔 죄라고 생각해야지.

“크흑… 서럽다 진짜. 있는 놈들이 더하네.”

“진짜 더러워서라도 이 짓 때려 친다.”

“브람 시 암흑조직은 너무 무서워. 그냥 수도로 갈래.”

한숨 섞인 푸념을 들은 카이사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때려치든 도시를 뜨든 귤은 다 팔고 가라.”

“…….”

불쌍한 약소조직 대장들은 의무적으로 귤을 한 상자씩을 넘겨받았다. 수익성 좋은 귤을 대신 판매하는 대가로 각 조직은 반 강제로 5골드의 대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당장 돈이 없는 놈들은 귤만 받고 저걸 5골드에 팔아서 후불로 돈을 지급해야 된다. 저걸로 수익을 내려면 5골드보다 비싼 값에, 그것도 더 많은 피해자들을 모아서 판매해야 할 테지만…

‘그거야 저놈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다단계가 원래 그렇다.

“보스. 단번에 귤 50상자를 판매했습니다.”

“잘했다.”

“내친김에 남은 귤 150상자도 저놈들한테 판매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놈들은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대량의 쓰레기를 떠넘기면 놈들이 쓰레기 판매를 포기하고 경비대에 신고를 넣을 수도 있다.”

경비대 구금 이벤트는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이사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50상자를 팔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기색이었다.

“나머지 150상자는 옆 도시에 가서 똑같이 하면 됩니까.”

“…도시를 건너가는 사이에 다 썩을 거다.”

그건 때려죽여도 아무도 안 받을 거다.

차라리 맞아죽고 말지, 음식물쓰레기를 돈 주고 사서 5골드라는 거액의 빚을 지려는 놈들이 어디 있겠어.

카이사르라면 받을 때까지 정말로 쥐어 팰 것 같지만, 그래서 더욱 다른 도시에는 보낼 수 없다. 거기서 체포되면 흑산회의 영향력도 안 닿아서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보스. 귤을 판매할 방법이 없습니다.”

“역시 이렇게 되는가…….”

다단계 찬스는 1회용이다.

남은 146상자의 물량은 다른 방법으로 처분해야 한다.

카이사르의 악마적인 암흑가 상식으로도 더 이상의 짬 처리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스! 언제까지 귤만 팔고 있을 거야!”

“다 팔 때까지.”

“저놈의 귤 때문에 귀여운 리나랑 전혀 놀아주지 않잖아!”

어쩔 수 없다.

나도 귀엽고 풋풋한 리나랑 놀고 싶지, 저딴 썩어가는 귤을 처분할 방법을 모색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래도 자존심이 걸린 이상,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다.

귤 농장주 주인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강압적으로 영업장으로 삼아서 수금까지 하면서 물량처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흑산회는 제 영역 관리도 못하는 얼뜨기 집단이라는 악의적인 소문이라도 흘리겠지.

농장주 주인을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는 것도 안 된다. 이런 타이밍에 살인을 저질렀다간 더 나쁜 소문만 퍼진다.

“가지고 있는 영업장까지 전부 이탈하는 꼴을 보기 싫으면 무조건 귤을 다 판매해야 한다.”

“우우. 어쩔 수 없네. 귀여운 리나가 조금만 도와줄게.”

리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판매전략을 제시했다.

“귤 판매가 어려운 건 귤이 쓰레기처럼 맛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그럼 귤을 맛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어때?”

카이사르는 코웃음을 쳤다.

“가슴만 절벽인 게 아니라 지능도 절벽이었군. 그게 말처럼 쉽다면 이렇게 고생을 할 이유가 없지.”

“흥! 너 바보 맞거든! 신전 찾아가서 축복 받으면 되잖아!”

“아.”

카이사르는 나라 잃은 유목민처럼 망연자실하였다.

미안.

솔직히 나도 그건 생각 못했어.

우리는 그나마 친분관계가 있는 치유의 교단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쓰레기 귤을 내밀며 말했다.

“축복을 걸어라.”

“…귤에 축복을 걸어달라고요?”

“그렇다.”

하급 사제들은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그거 안 돼요. 그냥 가세요.”

“왜 안 되냐.”

“불량식품에 축복을 걸어도 원판이 불량한 음식은 축복받은 불량식품이 될 뿐이에요. 딱히 맛있어지는 건 아니고요.”

“뭣이…!”

“약간 상하거나 병균이 든 식품을 정화하는 건 가능해도 맛없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건 연금의 영역이에요. 부패와 병균의 신이라도 그건 해결 못해요. 아니면…….”

“아니면?”

“개당 1골드씩 주면 중급 이상의 사제들이 신성력을 대량 쏟아 부어서 변형된 맛을 부여할 수는 있는데. 하실래요?”

미친. 개당 1골드라니 엄청나게 비싸잖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우리만한 양아치 집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단이 더 하네.

“잠깐. 보스. 방금 연금의 영역이라는 말 들었어?”

“들었다.”

“그럼 연금술사를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야?”

리나의 통찰력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연금술사 브루투스.

녀석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귤을 맛있게 만들 수 있으리라.

“가능합니다.”

브루투스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듣던 중 다행이군. 기한은 얼마나 걸릴 것 같지?”

“145상자라… 뭐, 2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상자 개수가 하나 더 줄어든 것 같은데. 어디다 팔았지?”

카이사르는 무척이나 으쓱해하며 대답했다.

“신전의 사제들한테 정화스킬 수련용으로 쓰라고 팔았습니다.”

“…….”

점점 귤 파는 재주가 늘어가는구나.

이걸 대견하게 여겨야할지 딱하게 여겨야할지 모르겠다.

“흐흥. 맛있는 귤이라면 리나도 먹어줄 수 있다고?”

“맛있는 귤이라. 기대되는군.”

우리는 기대감을 간직한 채, 아지트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귤 판매 강행군으로 하루 날밤을 꼬박 새서 너무 지쳤다. 판매한 건 카이사르지만 나랑 리나도 줄곧 곁에 있었잖아.

아무튼 피로도 잔뜩 풀고 신물 나는 귤 대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소진된 원기를 회복했다. 이제 좀 살 맛 나는군.

그렇게 24시간을 보낸 뒤에 브루투스의 공방에 돌아왔다.

“연금은 성공했는가.”

“네. 전량 연금작업을 마쳤습니다.”

귤은 새것처럼 반들반들거렸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색깔이 군청색, 자주색, 검정색이다.

이 이상 수상할 수도 없는 위험해 보이는 색이다.

“브루투스. 연금을 마친 귤은 무슨 맛이 나지?”

“맛있는 맛이 납니다.”

브루투스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게 무슨 맛이냐.”

“잘은 모르겠지만 맛있는 맛입니다.”

왜 만든 놈이 지가 만든 거 맛을 몰라.

이거 수상한데.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에 떠밀려 질문을 던졌다.

“저거 부작용 있지?”

“있습니다.”

“너 이 자식… 사실대로 불어라. 귤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브루투스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며 말했다.

“세 가지 모집단으로 나눠서 세 가지 연금을 성공시켰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구체적으로는?”

“맛있게 먹는 대가로 미각을 잃는 귤, 더 맛있게 먹는 대가로 수명이 줄어드는 귤, 극상의 맛을 주는 대신 수명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잃는 귤입니다.”

개자식아.

그거 하나도 못 먹잖아.

카테고리만 귤이지 저주받은 귤이라고 해도 위화감 없다고.

“저 야매 연금술사를 믿은 게 실수였군.”

“보스, 미안…….”

“네 잘못이 아니다. 브루투스의 엽기적인 실험욕구가 나빴다.”

그건 그렇고, 이래서야 귤 파는 건 절대로 무리다.

당장 클레임 걸려서 소송당할 수준이잖아.

“내가 방법을 모색해보겠다.”

여기까지 온 이상, 최후의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상급 정보상인의 아지트를 찾아갔다.

“끌끌. 요즘 들어 재미난 짓을 벌이고 있더구나.”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군.”

“그 엽기적인 귤을 판매할 방법을 찾고 싶은 게지?”

상급 정보상인을 상대로 정보를 속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간 보거나 뜸 들일 것 없이 솔직하게 수긍했다.

“방법이 없는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네. 재미난 소동을 보면서 이쪽도 여러모로 즐거웠으니 특별히 정보료는 받지 않고 공짜로 알려주도록 하겠네.”

“이봐. 입이 웃고 있는데.”

“기분 탓일세. 기분 탓.”

“…….”

못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다.

“폰지사기를 치게.”

“뭐?”

나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무슨 귤 파는데 폰지사기까지 쳐야해?”

폰지사기는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투자사기방식이다. 귤을 이용해 투자금을 받고, 더 많은 투자자를 모집해 투자금을 지급하라는 거다.

쉽게 말하자면 카드 돌려막기나 다름없다.

카드 돌려막기가 신용을 걸고 하는 짓이라면 귤 폰지사기는 아무 쓸모도 없는 귤을 걸고 하는데다가 손해도 투자금을 지불한 투자자들이 보니 훨씬 더 악질이지만.

“아니면 처분할 방법이 있기나 한가?”

“으음.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 귤에 사기를 당할만큼 어수룩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거야 유해식품을 식품으로 팔려고 하니 그런 걸세. 먹으면 식중독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남에게 강제로 먹인다면 어엿한 무기가 되지 않겠는가.”

정말 획기적으로 미친 발상이었다.

“이참에 독성도 추가하고 던지면 폭발하는 성질도 추가해버리면 좋겠군.”

상급 정보상인은 마약술사 파난과 다리를 놓아주며 귤에 온갖 맹독을 추가하고 마법적 조작을 통해서 폭발기능과 폭발 후 급속성장 기능까지 첨가하였다.

맨 정신으로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귤의 탈을 쓴 극도로 위험한 병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개당 10골드에 구매하겠네!”

“10 받고 10 더!”

귤 폭탄 투자자를 모집하기가 무섭게 암흑상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암흑상인들이 매수한 귤 폭탄은 그들을 통해서 용병과 모험가들에게 소량 유통이 이루어졌고, 판매된 귤 폭탄의 효과를 실감한 구매자들에 의해 입소문이 돌았다.

입소문을 듣고 몰려든 부호들은 희귀품 수집을 목적으로, 일반인들은 가파르게 오르는 귤 폭탄 가격을 투기 목적으로 닥치는대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전부 판매했습니다.”

“허. 이게 다 얼마야.”

몇 십 억에 달하는 골드가 수중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상자 당 5실버에 팔면 10골드나 되었을 귤들이 무려 수억 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마진 거래의 실효성을 새삼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흥청망청 돈을 쓰며 즐거운 휴식기를 가졌다. 그리고 한 달 뒤, 귤 폭탄으로 전염병이 돌아서 긴급패치가 열렸다.

[긴급패치사항]

-세계관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종말병기가 회수되었습니다. 종말병기가 소멸됨에 따라 제작자가 벌어들인 수익금 또한 전액 회수됩니다.

-종말병기 제작에 기여한 퍼센테이지만큼 추후 특수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수십 억 골드의 자산이 증발했다.

즐거웠다 귤 새끼야.

“보스. 수금을 마치고 왔습니다. 왠지 모르게 자금이 적은 것 같습니다만…….”

구제불능의 음식물쓰레기는 억지로 팔려고 개고생 해봤자 엿만 먹는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나는 출하된 귤을 반강제로 넘겨받기 전에 조직원들을 이끌고 귤 농장을 찾아갔다.

“안 돼애애애! 농장에 불이, 불이이이이!”

“닥쳐. 여긴 오늘부터 군고구마농장이다.”

불타는 귤 농장을 뒤로한 채, 나는 비정하게 돌아섰다.

귤 폭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악마의 자식이다.

잿더미가 되어라.

그날 이후, 귤 폭탄의 위력을 잊지 못한 몇몇 게이머들이 비밀리에 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귤은 모든 국가에서 유해식품으로 지정되었다.

이제 농장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소름이 돋는다.

“보스. 군고구마는 팔면 돈이 됩니까?”

“…….”

장사는 상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에둘러 말한 뒤에야 카이사르는 장사에 관심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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