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19화 (219/224)

[221] 외전 10. 구두쇠 빌헬름 마이어

나는 구두쇠다.

전 회차 플레이에서 탑 랭커의 반열에 들 정도의 게임실력은 지녔지만 안타깝게도 게이머로서의 내 활동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

아이템을 팔아서 생계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입은 올렸지만 단지 그뿐. 큰 인기를 끌거나 거금의 돈을 벌어들이지는 못했다. 유명한 2류 게이머보다 못한 수준이다.

“더러운 재능충들 같으니라고.”

이유는 뻔하다. 다른 게이머들은 본연의 실력이나 외모빨로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실력이 처참할 정도로 낮다.

그래서 NPC들을 육성한다.

게이머를 키우는 것보다 부하들을 키우는 것에 흥미를 지니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지만 보는 맛이 다르다나 뭐라나.

“카이사르. 네 근력 능력치가 몇이냐.”

“25입니다.”

다행히도 랭커 특전으로 전 회차의 인계 보너스를 잔뜩 받아두기는 했다. 그걸로 강력한 부하 카이사르를 만들기도 했고, 근력 25면 오우거랑 팔씨름도 가능하다.

다만 문제는 이 녀석의 성정에 있다. 능력치를 너무 높인 탓에 캐릭터 생성과정에서 랜덤 패널티가 부여됐다.

“그 정도면 고블린은 해치울 수 있겠군.”

“…….”

“카이사르?”

“불가능합니다.”

“어째서냐.”

카이사르는 졸X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섭습니다.”

“…….”

힘들게 뽑은 부하가 몬스터공포증에 걸렸다. 미궁에 내려가서 몬스터를 잡고 탐색하면서 보너스를 얻고 남들은 쉽게 사냥 못하는 네임드몬스터를 잡아 인기를 끌어야되는데 사냥을 못한다.

당연히 이딴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있을 리가 없고, 나는 신속하게도 방송을 때려 쳤다.

“카이사르. 참외시세가 올랐다.”

“참외를 부수면 됩니까?”

“…팔아.”

사냥을 못하니 대신 선택한 길이 바로 장사다.

“알겠습니다.”

충직한 부하 카이사르는 참외 한 박스를 짊어지고 시장으로 갔다. 근력 25짜리 상남자를 두고 참외나 팔고 있어야 되는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아무렴 어떠랴. 그래도 돈만 벌면 장땡이다.

“후. 명색이 랭커라는 놈이 참외나 팔고 있다니… 전 회차의 부하들이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군.”

캐릭터 생성 과정에서 카이사르를 제작하는 데 모든 보너스 CP(Character Point)를 사용했기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내 능력으로는 미궁에 내려가서 고블린이랑 싸우다가 죽는다.

동기화 비율 1%.

게임 속 선천적 재능수치나 다름없는 동기화 비율이 최저수치를 찍은 나로서는 민첩 보너스가 없으면 모든 공격이 전부 Miss! 라는 허탈한 알림만 띄우며 빗나간다.

[카이사르가 딸기상인을 폭행했습니다.]

[악명이 15 상승합니다.]

느닷없이 뜬 알람에 나는 입만 쩍 벌렸다.

이 미친놈이 참외 팔러 가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부리나케 시장으로 향하자 한바탕 난동이 벌어지고 있다.

“감히 보스의 참외보다 인기 있는 딸기를 팔다니. 용서할 수 없다.”

“히이익! 사, 사람 살려!”

“…….”

그렇다.

카이사르는 몬스터공포증이 있을 뿐, 사람은 잘 팬다.

자산수준은 낮고 근력만 높은 NPC의 인과프로그램 설정이 폭력에 심취한 양아치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실수였다.

“에잇!”

카이사르가 딸기상인을 쥐어패는 도중, 한 명의 소년이 카이사르의 주머니를 털었다.

“저 새끼가 감히…….”

겁도 없이 소매치기를 저질러?

나는 딸기상인을 쥐어패는 카이사르에게 다가갔다.

“카이사르. 주머니가 털렸다.”

“……!”

“저 소년이다.”

카이사르의 기세가 말도 못하게 흉엄해졌다.

“당장 죽이겠습니다.”

“경비대에 잡히면 벌금을 내야한다.”

“하찮은 딸기상인에게 뜯어낸 자릿세로 대신 내겠습니다.”

“기특하군. 얼마냐.”

“1골드 34실버입니다.”

“살인죄의 보석금은 최소 5골드다.”

카이사르는 멈칫했다.

둔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수박상인의 자릿세도 받아야 합니까?”

“…그냥 소매치기를 죽이지 마.”

우리는 소매치기 소년을 뒤쫓았다.

다행히도 이 도시의 구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지름길을 이용해서 방심한 소년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건방진 애송이가 감히 보스의 돈을 털다니.”

“쳇!”

“일단 손가락부터 잘라주지.”

카이사르가 소년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이익! 이거 놔! 도시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면 너희라고 무사할 것 같아!”

“보스. 이 꼬맹이를 죽이고 싶습니다.”

꼬맹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죽일 테면 죽여! 훔쳐간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는 알려주지 않을 거다!”

우리가 재정적으로 궁핍하다는 사실을 빠르게도 간파한 모양이었다. 영악한 꼬맹이로군.

“노예상단에 팔면 5골드는 뽑아내겠군. 상품가치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신체결손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두들겨패라.”

소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살려주세요.”

“늦었다. 건방진 꼬맹이야.”

카이사르는 소년을 물씬 두들겨 팼다.

[카이사르가 소년의 몸과 마음에 공포를 새겼습니다.]

[소매치기 소년의 비자금 10골드를 습득합니다.]

소년은 엉엉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무자비한 카이사르보다는 내 동정을 사려는 심산이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라고 소매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병든 노모와 어린 동생을 위해서…….”

“노모는 필요 없고, 어린 동생은 팔면 돈이 되겠군.”

깔끔한 결론에 충격 받은 소년이 어버버거렸다.

돈이 걸린 일에서 양보는 없다.

“저, 도적이 될 수 있어요! 5골드보다 비싼 값을 할 테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좋다. 대신 인질로 네 어린 동생과 노모를 붙잡아두지.”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0 상승합니다.]

무자비한 플레이라고 욕하지는 마라.

나라고 정말로 저 아이를 노예로 팔 생각은 없다.

도적 고용비도 비싸서 고민하던 중 잘 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소년의 동생. 너는 신전 앞에서 앵벌이를 해라.”

“네…….”

“노인네. 너는 참외장사나 해라.”

“…….”

소년의 노모는 참외장사꾼으로 전직했다!

압도적인 근력을 지니고도 참외장사꾼이라는 엽기적인 직업을 지닌 카이사르도 가까스로 손이 비게 되었다.

“카이사르. 너는 오늘부터 다른 일을 해라.”

“어떤 일입니까.”

“돈 벌리는 지름길은 장사지. 쓸 만한 상품을 구해라.”

카이사르는 군말 않고 아지트를 나섰다.

3시간 뒤.

카이사르가 두툼한 자루 하나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꽤나 큰 자루로군. 뭘 가져왔냐.”

“사람입니다.”

“…….”

나는 자루를 풀었다.

금발청안의 소녀가 뚱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변태! 치한! 범죄자!”

이 미친 새끼가 상품 가져오랬더니 뭘 가져온 거야.

우리가 노예상인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보스. 상품을 판매하지 않으실 겁니까.”

“물론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야!? 역시 범죄자 맞잖아!”

빽빽거리는 소녀를 무시하고 카이사르에게 지식을 전수했다.

“노예상인 짓은 뒷거리에서 일정수치 이상의 악명을 쌓고 인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알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순순히 대답하고는 아지트를 나섰다.

소녀는 내버려두고 말이다.

“…….”

아니 이 또라이야.

이걸 두고 가면 나보고 뭐 어쩌라고.

“아저씨. 나 안 풀어줘?”

“소녀. 넌 밖에서 뭐하던 놈이냐.”

“암살자인데.”

“농담 실력이 괜찮군.”

“농담 같아?”

소녀가 빠르게 손을 털었다.

투두둑.

로프가 잘려나가며 단검 한 자루가 쐑 날아들었다.

늦지 않게 손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군.

내심 안도하는데 소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미친. 그걸 맞고 표정 하나 안 바뀌다니.”

동기화 비율이 1%라서 그럴 뿐이다.

“암살자. 마침 그 계열 직업도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다, 당신 정체가 뭐야?”

“빌헬름 마이어. 세계 제일의 거물이 될 몸이다.”

모든 게이머의 목표는 미궁의 끝에 도달하는 것. 나 또한 언젠가는 카이사르의 공포증을 치료하고 미궁의 끝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모험가다.

소녀는 내 대담한 목표를 듣고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세계 제일의 거물… 대단해!”

“너. 내 부하가 되어라.”

“좋아! 내 이름은 리나라고 해!”

[암살자 리나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리나는 당신이 전 세계의 암흑가를 거머쥘 최강의 보스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킬수록 충성도는 높아집니다.]

[반면 암흑가 플레이와 거리가 먼 행위를 할수록 충성도는 빠르게 줄어듭니다. 그녀의 배신을 원치 않는다면 악의 길을 정진하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착각하고 있네.

이 꼬맹이 100% 엄청나게 착각하고 있어.

“보스. 저 꼬맹이의 이름은 뭐야?”

꼬맹이가 더 작은 꼬맹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소매치기 소년이 흠칫 놀랐다.

“너. 이름이 뭐냐.”

“아인스타이늄이요.”

“부르기 귀찮군. 너는 노예. 오늘부터 슬레이브 1호다.”

“…….”

리나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불쌍해! 이름이 슬레이브인 건 너무 가엽잖아!”

“그럼 무슨 이름이 좋냐.”

“토끼처럼 연약해 보이는데 토끼남으로 하자!”

그건 그것대로 불쌍하잖아. 우리는 슬레이브의 이름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끝에 극적인 타협을 봐서 어감이 귀여운 약자인 레이브로 부르기로 했다.

[카이사르가 상점가의 상인들을 폭행합니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100 상승합니다.]

…이 미친놈은 밖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다급히 나갈 채비를 갖추는데 카이사르가 돌아왔다.

“보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임무? 뭔 임무.”

“악명을 올리면 저 계집을 노예로 팔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상인들을 폭행해서 악명을 올리고 왔습니다.”

팔지 마!

노예상인 안 할 거라고!

“경비대다! 문 열어!”

“젠장. 기어이 사단이 벌어졌군.”

나는 카이사르를 불러서 경비원을 쫓아내려다가 멈칫했다.

이 녀석,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다.

누가 봐도 현행범에 이 이상 수상한 놈은 있을 수 없다.

여기선 내가 직접 나서서 언변으로 물리쳐볼까.

자신있게 나서려다가 거울을 봤다.

무리하게 카이사르의 근력을 올리느라 캐릭터 생성과정에서 게이머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외모 수치까지 판매했던 탓에 지금 내 외모 능력치는 5다.

참고로 고블린의 외모 능력치는 7.

지금 나는 고블린보다 흉악하게 생긴 몬스터 얼굴이다. 경비대가 몬스터로 오인하고 습격해도 할 말이 없다.

“끄응.”

곤혹스러움을 금치 못하자 리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보스. 부하가 된 기념으로 도와줄까?”

“좋다. 뭐든 해봐라.”

리나는 환히 웃으며 현관으로 나갔다.

저 아이, 얼굴도 반반하고 말솜씨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경비원들을 돌려보내면 평가를 조정해야겠군.

[돌발 이벤트 <경비살인> 발생!]

[암살자 리나가 첫 임무를 받고 의욕이 과다했던 나머지, 성공적으로 경비원을 암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급히 시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 경비대 체포 이벤트가 발동합니다.]

[경비원 살해 죄는 무겁습니다. 이대로 체포당할 시, 당신의 작은 조직은 감옥에서 240개월을 썩게 됩니다.]

좋아, 평가를 조절했다.

저년은 카이사르에 못지않은 또라이라고.

“보스! 경비원을 암살했어!”

“청소부와 접선한다.”

“청소부? 알았어! 리나에게 맡겨줘!”

나는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청소부도 암살하면 안 된다.”

“아하핳! 리나를 뭘로 보는 거야. 그런 바보 짓은 안 한다고.”

설득력 없는 개소리를 하는 암살자가 여기에 있다.

“아와와. 보스. 저희 이제 어떡해요.”

“쫄지 마라, 레이브. 청소부는 시체를 치우는 전문가다. 돈만 주면 이깟 시체는 미궁에 유기할 수 있다.”

“히이익!”

[레이브의 공포심이 10 상승합니다.]

[레이브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달래주려던 게 도리어 겁을 주게 생겼다.

가만.

그보다 청소부를 고용하는 돈이 얼마지?

“…5골드.”

기껏 벌어들인 돈을 다 털리게 생겼다.

이를 악물고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카이사르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보스.”

“묘안이라도 있는가.”

“상인들에게 자릿세로 10골드를 뜯어냈습니다.”

뭘 태연스럽게 자릿세까지 뜯어내고 다닌 거냐!

경비대한테 수배까지 당하게 생겼잖아!

이미 살인을 저지른 시점에서 수배는 확정이지만서도!

“보스! 청소부를 데려왔어!”

“아무튼 여기서는 청소부와 적당히 협상을…….”

청소부가 어리버리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문 앞에 빨간 자루가 있던데 그게 뭡니까? 대형쓰레기는 안 치우는데.”

“…….”

환경미화원 옷 입고 있잖아.

빗자루 들고 있다고.

시체 치우는 청소부가 아니라 길바닥 쓰는 청소부다.

“어이, 청소부.”

“네?”

“1골드를 줄 테니 이 쓰레기를 던전에 유기해라.”

청소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뭔데요?”

“어… 그건…….”

돼지고기라고 할까, 소고기라고 할까.

품목을 두고 고민하는데 카이사르가 성큼 나서서 대답했다.

“시체다.”

청소부가 놀란 나머지 뒤로 자빠졌다.

쓸데없이 박력 넘치게 말해줘서 고맙다, 개X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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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다행히도 청소부는 시체의 유기에 성공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돈을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날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보스! 얘기가 다르잖아!”

암살광 리나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릿세를 받으러 다니는 것도 질렸어! 사람을 죽이고 싶어!”

“…….”

“손 떨리는 거 안보여? 금단증세까지 생기잖아!

그것참 무시무시한 금단증세네.

누가 보면 무슨 마약중독이라도 된 줄 알겠다.

“어쩔 수 없군. 이쯤에서 우리 조직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를 알려주겠다.”

“문제? 무슨 문제?”

“돈이 없다.”

리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금고에 100골드도 넘게 쌓았잖아!”

“카이사르는 병이 있다. 병을 치료하려면 신전에 가야한다.”

몬스터 공포증.

이걸 치료하지 않으면 미궁 탐사는 불가능하다.

리나는 무척이나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좀 정신병자 같더라니. 딱하네.”

“…….”

음… 틀리진 않아.

몬스터공포증도 정신병은 맞으니까 틀리진 않았어.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야?”

“카이사르는 정신병 때문에 돈 되는 몬스터를 잡을 수 없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돈 되는 사람을 잡으면 되잖아.”

기적의 논리학자가 여기에 있다.

“리나에게 맡겨줘! 돈 되는 거물을 쓱싹하고 올게!”

“잠깐.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뭐? 어떤 거?”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선에서 활동해라.”

“아하핳. 리나를 걱정해준 거야? 보스는 역시 상냥해!”

널 걱정한 게 아니다.

너한테 살해당할 피해자를 걱정한 거다.

정확히는 시체를 처분하는 어려움을 걱정한 거지만.

아무튼 리나는 대단한 실력의 암살자.

당연히 잠입도 잘할 거다.

도적의 상위클래스니까 분명 무사히 돌아오겠지.

쾅쾅쾅!

“…경비원?”

아무래도 경비원 트라우마가 생겼나보다.

나는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폭력배가 있었다.

“뭐냐.”

“어… 저… 그게…….”

폭력배는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쭈뼛거렸다.

외모 6짜리 오크보다 흉악하게 생긴 내 안면을 보고 위축된 모양이었다.

이거 좋아해도 되는 거냐.

“실례지만 여기가 흑산회 맞습니까.”

“맞는데. 너 뭐냐.”

“저… 그게, <검은 왕관> 산하 조직에서 나왔는뎁쇼. 고리대금업이라고 아실는지 모르겠네요. 헤헤.”

“왜 왔는데.”

“저, 그게… 말씀드리기 송구한 이야기입니다만, 흑산회의 리나라는 아이가 당당하게 정문으로 쳐들어와서 돈을 훔치러 왔다고 해서 잡았습니다.”

잠입스킬은 어디다 팔아치웠냐 망할 년아!

나는 냉큼 카이사르를 데리고 폭력배를 따라갔다.

“보스, 미안행! 잡혔어!”

“…너 뭐하냐.”

“어딜 쳐도 죽을 것 같아서 공격을 못하다보니 붙잡혔어!”

그것참 엽기적인 실패사유네.

하기야 암살자의 공격력은 근접 직업 중 수준급이다.

평범한 폭력배들은 툭 치면 억 하고 죽는 연약한 새끼 양처럼 보여도 이상할 건 없다.

“잠입은 왜 안했냐.”

“잠입? 그런 거 없는데.”

“…암살자잖아. 하위스킬은 어디다 팔아치웠냐.”

“없어.”

“뭐?”

“암살스킬 하나만 배웠어.”

어쩐지 상위직업군이 간단히 영입이 되더라니.

암살자의 탈을 쓴 망캐를 영입해버렸다.

“어… 음. 흑산회 보스라고 했던가.”

리나가 먹잇감으로 삼았던 조직의 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 의연한 척 말을 건넸다.

“어린 것들은 원래 사고를 치기도 하고, 뭐 그러면서 자라는 거 아니겠나. 이번만은 특별히 관대하게 봐줄 테니 그렇게 알아두라고.”

저 녀석도 내 얼굴을 보고 겁먹은 눈치였다.

속이 쓰리다.

“리나. 집에 가자.”

“잠깐.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려고? 5골드는 주셔야지.”

“뭐?”

“아, 아니… 그게 저희도 체면이 있지 않습니까. 명색이 본부를 털러 온 계집을 돌려보내는 건데 5골드는 몸값으로 받아야하지 않냐 이 말이죠.”

“그렇군. 체면이라. 체면은 중요하지.”

다만 녀석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구두쇠다.

이딴 곳에서 허튼 지출을 할 수는 없다.

“돈은 주지 않는다.”

“……!”

저딴 망캐 암살자 그냥 버리고 갈 거다.

비정한 결단을 내리자 카이사르가 도끼를 꺼냈다.

“알겠습니다.”

“?”

알겠다면서 도끼는 왜 꺼내 드냐.

“보스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을 위해서 지출할 돈은 단 한 푼도 없다고.”

“서, 설마!”

“그렇다. 돈을 지불해야 할 놈들을 전부 죽이면 몸값은 지출하지 않아도 되지.”

스겅

카이사르의 도끼질에 목 하나가 데구루루 굴렀다.

망연자실한 내가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속박을 푼 리나와 카이사르가 신나게 미쳐 날뛰었다.

순식간에 적들의 시체가 바닥을 구르며 아비규환을 만들었다.

[카이사르와 리나가 <검은 왕관>의 하위조직을 궤멸시켰습니다.]

[브람 시 암흑가 6강 중 하나인 검은 왕관과의 대대적인 전쟁이 발발합니다.]

몸값 5골드 아끼려다가 거대조직과 전쟁이 시작됐다.

이거 실화냐.

“와아! 보스, 너무 멋져! 리나를 위해서 암흑가의 거대조직을 완벽하게 적으로 돌리다니!”

“어… 이쯤이야 기본이지.”

“흐흥! 역시 리나는 줄을 잘 선 것 같아! 이 기세로 세계최강의 암흑조직을 일으키자고!”

아. 어디서부터 일이 꼬여버린 걸까.

난 그냥 과일이나 팔고 자릿세나 뜯어가면서 착실하게 카이사르의 저주 치료비를 모으고 싶었을 뿐인데.

“보스. 멍하니 서서 왜 그래?”

“조만간 검은 왕관과 전쟁이 시작되겠군.”

“검은 왕관? 거기 대장은 강해?”

“수전노 쉔. 고리대금업과 노예시장을 거머쥔 강자다.”

카이사르가 부쩍 흥미를 보였다.

“그 녀석은 돈이 많습니까.”

“아주 많지.”

“알겠습니다.”

나 이 패턴 이제 익숙해졌어.

알겠습니다, 하고 가서 다 죽이려는 거지?

“선제공격은 불허한다.”

“어째서입니까.”

“때와 장소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본다. 소모전으로 돌입하면 우리는 파산이다.”

“적들이 덤비면 반격도 못합니까.”

“호구도 아닌데 덤비는 건 다 죽여줘도 무방하다.”

카이사르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했습니다.”

“…정말로 이해한 거 맞냐?”

“이해했습니다.”

불안하기는 해도 전투인력은 카이사르와 리나 뿐.

이 녀석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검은 왕관에서 보낸 자객들은 약했다.

근력에 올인한 카이사르와 암살에 올인한 리나.

두 또라이는 적들이 덤벼드는 족족 모조리 몰살시켰다.

결국 검은 왕관에서 전령이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방금, 카이사르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졌다.

“뭐하는 짓이냐.”

“수상하게 생긴 놈이 다가와서 일단 죽였습니다.”

말을 말자.

일단 전령의 소지품을 뒤져 습득한 편지를 펼쳐봤다.

“암흑가의 신흥 강자를 정상회담에 초대한다, 인가.”

얼마 전까지 참외나 팔던 처지에 신흥 강자씩이나 인정을 받다니, 참으로 감개무량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편지란 모름지기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법.

“거절한다.”

“어째서? 보스도 인정받으면 좋지 않아?”

“참석비가 100골드다.”

“…고작 그런 이유로 무시해도 되는 거야?”

“할 말이 있다면 저쪽에서 직접 찾아오겠지.”

나는 쿨하게 회담에 불참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금을 마치고 온 카이사르가 돈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보스. 호구가 찾아왔습니다.”

“호구?”

“돈 냄새가 물씬 나는 호구입니다.”

나는 반색하며 호구를 맞이하러 나갔다.

확실히 엄청난 갑부로 보이는 노인네가 있었다.

“네놈이 흑산회 보스냐?”

근데 암흑가 6강의 일원, <검은 왕관>의 수장 수전노 쉔이다. 저 정도 캐릭터성이면 돈이 많다는 거 이전에 위험인물이라는 특징을 먼저 밟혀야 되는 거 아니냐.

이 미친놈은 저 거물을 무슨 전기장판이나 건강기구나 사주는 영감처럼 말하고 있네.

“과일이라도 사러 왔는가.”

“턱도 없는 소릴! 네놈이 감히 이몸의 권위를 무시하고 전령까지 죽인 죄를 묻고자 찾아왔다!”

노인네는 지팡이를 들어 땅을 쿵 내리찍었다.

“신경전! 그런 행위는 어디까지나 대등한 관계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 마련. 감히 미천한 외지인 따위가 브람 시에서 나고 자란 이 수전노 쉔과 대등해지려하다니! 어림도 없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카이사르에게 손짓을 했다.

귀찮은 노인네를 치우라는 의미에서였다.

카이사르는 쉔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그대로 목을 쳤다.

뎅강

툭, 툭, 데구르르.

[카이사르가 수전노 쉔을 죽였습니다.]

[흑산회의 악명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

“보스의 명대로 쉔의 목을 쳤습니다.”

아니 미친놈아.

내가 언제 저걸 죽이라고 했는데.

경악한 쉔의 수하들이 발작을 일으키기 전, 나는 빠르게 선수를 쳤다.

“쉔이 죽었다. 이걸로 <검은 왕관>의 수장 자리가 비었군.”

“……!”

“이 사실을 접한 검은 왕관의 간부들이 무능한 호위를 어찌 처분할지는 안 봐도 명백하군. 목까지 달아나기 전에 한몫 챙기고 달아날 기회는 지금뿐일 텐데.”

쉔의 수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부리나케 달아났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군.

“보스. 저대로 보내도 괜찮은 거야?”

“상관없다. 우리가 취급하는 상품은 어디까지나 과일이다.”

“그럼 사과 좀 수확해도 돼?”

“된다.”

“와아! 고마워, 보스!”

리나는 신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 나갔다.

저 년이 미쳤나.

갑자기 왜 하기 싫다던 일을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지.

의문은 며칠 뒤에 해소되었다.

호외를 부르짖으며 신문팔이 소년이 신문지를 건넸다.

“…….”

검은 왕관 간부들이 무차별 암살을 당했단다.

덤으로 비자금은 그대로 실종되었고.

사라진 보물의 행방을 노리고 남은 간부들은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킨다나 뭐라나.

“짜잔! 카이사르의 치료비를 잔뜩 벌어왔어!”

“사과 수확한다며.”

“빨간 머리를 수확하고 돈도 잔뜩 벌고! 일석이조 맞지?”

사과를 수확한다는 건 업계의 은어였나보다.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래. 아무튼 돈만 벌면 장땡인거겠지.”

“보스?”

“벌어들인 돈으로 용병을 고용해라. 돈을 노리고 습격하는 검은 왕관의 잔당들이 있을지 모른다.”

내 발언에 카이사르가 흥미를 보였다.

“죽여도 되는 겁니까?”

이 녀석의 편향된 관심사가 너무 무섭다.

“우리는 과일장사만 할 거다.”

“과일장사입니까.”

“용병은 더 많은 과일을 접수하는 데에만 사용한다.”

이참에 도시 근처의 과수원까지 접수해서 한몫 챙기자.

카이사르는 용병들을 이끌고 나갔다.

과일을 접수하는데 사고를 치고 다니지는 않겠지.

[카이사르가 에라미흐의 황금사과 용병단을 궤멸시켰습니다.]

[카이사르가 체홉의 다섯 체리 정보단을 파멸시켰습니다.]

[카이사르가 레미르의 흑포도 상단을 접수하였습니다.]

엄청난 오산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과일은 보스의 것이다. 건방지게 과일을 조직명으로 삼은 놈들은 모두 우리 흑산회의 산하에 들어오지 않는 한,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과일 접수하라고 보낸 녀석이 닥치는 대로 과일이름이 들어간 조직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흉험한 기세인지 카이사르의 이름이 브람 시에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직감했다.

이 또라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시점에서 내가 뭘 하고 싶든 간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 확정사항이라는 사실을.

“월급주세요.”

“흑산회에 들어오면 돈 많이 준다는 게 사실입니까.”

“저희 용병단은 월 50골드에 싸게 해드립니다.”

덤으로 폭발적으로 유지비마저 늘어났다.

이거 다 필요없어.

그냥 과일값만 벌면 된다고.

울화통이 터진다.

나는 울분을 담아서 카이사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쓸모없는 것들에게 줄 월급은 없다. 당장 데리고 나가서 다 죽여버려라.”

“알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카이사르가 용병단을 이끌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브람 시를 접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카이사르의 무자비한 손속에 살해된 사람의 수가 천 명이 넘었습니다! 기존 권력자들이 흑산회의 무력을 두려워하며 저항의지를 상실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브람 시 시장이 되었습니다!]

“…….”

어째서인지 브람 시 시장이 되어버렸다.

뭘 죽이고 다닌 거야, 이 또라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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