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23화 (222/224)

[223] 외전 11. 뜻밖의 악행

(※빌헬름 마이어가 선행을 하고 싶은 경우)

(※작중에서는 챕터 3과 4 사이의 무렵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착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마음에 여유를 되찾았거나, 과거의 선행이 떠올라 보은을 한다고 생각할 때가 그러하다.

“선행을 하겠다.”

돈도 많이 벌고 과거에 선행을 받은 기억도 떠올랐으니 지금의 내가 선행을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그런 내 발언에 대해 카이사르는 짧게 평가했다.

“보스. 미치셨습니까?”

“…난 멀쩡하다.”

가장 충직한 부하의 반응만 봐도 그간의 행보가 얼마나 악행에 치우쳤는지는 알 수 있었다. 솔직히 하고 싶어서 한 악행도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을 이용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카이사르. 인간은 때때로 과거를 돌아봐야 하는 생물이다.”

“그렇습니까.”

“네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네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던 기억은 있는가.”

“있습니다.”

“만일 이번에는 네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입장에 처해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카이사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저 역시 똑같이 할 것입니다.”

“훌륭하군.”

근본부터 썩어빠진 양아치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인간의 마음마저 저버리지는 않았나보다.

“외출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모험가 길드로 간다.”

모험가 길드는 내게도 연이 깊은 장소이다.

“모험가 길드에서 수혜를 입은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

미궁세계 이전, 가상현실게임이 아직 미궁도시이던 시절. 나 또한 초보자였던 입문 시기는 있다.

첫 미궁 탐사에서 쫄딱 망하고 울적하게 의뢰게시판이나 뒤적거리던 무렵, 한 실력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새삼 감회에 사로잡혀 길드 플로어를 배회하는 초보자들을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헬렌. 모험가가 되면 뒷골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비열한 녀석들! 너희들의 수작에는 두 번 다시 넘어가지 않아. 구질구질한 밑바닥 생활은 청산하고 모험가가 되어서 성공하겠어. 네놈들한테 진 빚도 머지않아 전부 청산할거야!”

“크흐흐. 쉽지 않을 거야. 밑바닥 인생은 결국 밑바닥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창관은 아직 열려있으니 언제라도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한 무리의 남자들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모험가를 비웃다가 물러났다. 여자는 애써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금 의뢰게시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스. 저 여자를 도와주려는 겁니까.”

“그렇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통찰력을 발휘하면 저 여자를 도와줄 이유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남자들의 발언에서 여자의 현재 처지는 간단히 짐작할 수 있다. 불리한 처지를 역이용해 빚을 지게 한 뒤, 이를 빌미로 창관에 묶어두게 하려는 수작질이다.”

“그뿐이라면 무시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여자의 대응방법이다. 무기력하게 자신의 운명이라며 순응하지 않고, 공권력에 기대지도 않으며 모험가길드의 문을 두드렸다. 이 행위의 의미를 알겠는가.”

이놈도 무식하게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모험가 길드는 모험가의 탐사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간섭행위에 길드 차원에서의 대응에 나섭니다. 여자가 모험가이기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저 무뢰배들도 행동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정답이다.”

“마음에 드는군요. 자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정신을 지닌 자들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뼈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보스와 만나기 전, 고향에 두고 온 패배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지는 않겠다.

당장 브람 시의 뒷골목만 해도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한 NPC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럼 저 여자에게 백만 골드를 주는 겁니까?”

“…그런 미친 짓은 안 한다.”

선행한다고 했지 호구 짓 한다고 한 적 없다.

“잠자코 따라와라.”

나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헉! 빌헬름 마이어다!”

“암흑가의 초신성!?”

“악마와 계약한 마인 카이사르까지 있어!”

모험가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도시 전역에 파다하게 퍼진 악명의 영향이었다.

헬렌이라는 모험가 또한 소스라치게 놀랐다.

꼭 자동차와 마주친 사슴 같은 표정이다.

아니면 천재지변과 마주한 무기력한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으읏… 어째서 저런 거물이 여기에 있는 거야…….”

헬렌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우리가 게시판을 보러 온다고 생각했나보다.

당연히 목적은 그녀였기에 방향을 틀어 그녀에게 향했다.

“우우.”

헬렌은 울상을 지었다.

주변에 도움이라도 요청하고 싶은 기색이지만 그녀 옆의 모험가들은 진즉에 멀찍이 떨어진 뒤였다.

“저, 저한테 무슨 용무이신가요.”

“헬렌. 네 이야기는 들었다.”

“설마… 절 납치하러 온 건가요!?”

헬렌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구경꾼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아니다, 이년아.

날 뒷골목의 무뢰배들이랑 동급 취급하지 마라.

“오늘 하루, 너는 우리와 한 파티로 활동한다.”

“네에에!?”

느닷없는 내 폭탄선언에 헬렌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넙죽!

헬렌은 바닥에 엎어져서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전 노예가 되기 싫어요! 살려주세요!”

“…그런 게 아니다.”

“절 악마소환의 제물로 삼으려는 거죠? 싫어요! 안돼요!”

다짜고짜 애원부터 하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얼마 전에 딴 칭호 때문이다.

[칭호 명 : 슈퍼빌런]

[칭호 효과 : 당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사람들에게 슈퍼빌런의 행동으로 각인됩니다. 착한 짓도 나쁘게 보이고 나쁜 짓은 끔찍하게 보이며 끔찍한 짓은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선의가 악의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업보라고 생각해야지.

그래도 진심은 전해진다.

나는 침착하게 악의가 없음을 해명하였다.

“제물이 필요하다면 너보다 건장하고 강한 모험가들을 미궁 속에서 납치했을 거다. 정말로 네가 악마에게 제물로 바쳐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그렇지만요…….”

“방금 전, 뒷골목의 무뢰배들을 상대로 네가 보였던 자력으로 뒷골목 생활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했을 뿐이다. 다른 의도는 없음을 받아들여라.”

헬렌은 막막한 심정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럼 전 뭘 하면 되나요?”

“그렇군. 여기서는 모험가로서의 네 역량을 가늠해볼 필요가 있겠지.”

나는 다시금 폭탄발언을 내던졌다.

“네가 파티장이고 나와 카이사르가 파티원이다.”

“네에에에에!?”

“의뢰를 골라라. 그리고 미궁에 내려간다.”

구경꾼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아가씨! 당장 그만둬! 말도 안 되는 함정이 틀림없어!”

“저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조직의 보스라고!”

“미궁의 중층부까지 내려가서 여자를 버리려는 건가!?”

아, 이거 좀 빡치네.

성가신 방해꾼들의 입을 다물게 할 심산으로 카이사르에게 눈짓을 했다.

카이사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나는 탱커다.”

“…….”

포지션 설명하라고 한 거 아니다, 이 멍청아.

“저, 저… 그럼 보스는 어떤 포지션인가요?”

“도적.”

리나는 장기출장을 보냈기에 도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레이브는 아직 만능도적이 되기 위한 교본공부 중이다.

고로 통찰력이 높은 내가 도적 역할을 수행하기에 걸맞다.

“어,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제가 공격수 역할을 수행할게요.”

그렇게 우리들의 3인조 급조파티 미궁 탐사가 시작되었다.

“이, 이번 임무는 B1 층에 서식하는 미궁쥐 30마리를 토벌하고 징표로 꼬리 30개를 가져오는 거예요.”

헬렌의 말에 카이사르가 역정을 부렸다.

“네놈! 감히 보스에게 그딴 허접한 의뢰를 가져오다니. 죽고 싶냐!”

“히이익! 그럼 어쩌라고요!”

“당장 모험가길드 특급의뢰 게시판에 가서 유령도시의 엘더리치 섬멸전이나 기간티스의 일곱 기둥 정도 되는 극악무도하며 무자비한 난이도의 의뢰들을 가져와라!”

죽어.

그딴 거 하면 나 죽는다고.

“이걸로 되었다.”

“보스!”

“이 파티의 파티장은 우리가 아닌 헬렌이다. 파티원이 파티장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해서야 어쩌겠다는 거냐.”

카이사르는 차갑게 냉소하였다.

“파티장이 흔들리는 파티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이유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시정잡배들의 지껄임 따위에 눈이 먼 애송이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라. 이 녀석 봐라.

싫은 티 팍팍 낼 때는 언제고 꽤나 본격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기색이 뚜렷하다.

고향에 두고 왔다던 옛 인연들이 생각난 걸지도 모르겠다.

“저, 저는 제대로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렸어요!”

“그럼 말해라. 보스에게 이딴 무례한 임무를 수행하게 만든 이유를.”

헬렌은 두 눈을 꼭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내 눈을 부릅뜨며 카이사르의 위협적인 눈초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내심을 밝혔다.

“당장 상층부 밑으로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두거나 중층부의 전투법을 배우더라도 결국 혼자가 되면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미궁 상층부에요. 제게 필요한 상층부의 지식을 배우고 싶어요.”

역시 내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미궁쥐 토벌을 시작하였고…

“빨라!?”

헬렌의 비명대로 쥐가 너무 빨라서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으으! 카이사르님. 여기서는 탱커의 어그로 스킬을 활용해서 미궁쥐를 유인해주세요!”

“알겠다.”

카이사르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대뜸 어마어마한 목청으로 사자후(獅子吼)를 부르짖었다.

“덤벼라아아! 쥐새끼들아아아아아!”

찌이잉.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에 미궁쥐 한 마리가 혼비백산하며 쥐구멍 옆에 있는 벽에 잇따라 머리를 부딪쳤다. 일시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할 정도의 혼란에 빠진 모양이다.

“에이잇!”

헬렌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꽈당

그리고 자빠져 넘어졌다.

[헬렌(혼란 중)]

너도 걸린 거냐…

“으으, 죄송해요. 이렇게 된 이상 파티에서 가장 균형감각과 민첩성이 뛰어난 도적이 미궁쥐를 잡아주세요.”

“문제없다.”

나는 자신 있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

아니, 안 되겠는데.

몸이 기울었잖아.

이거 100% 혼란 걸렸다고.

“여기서는 투척으로 잡아주지.”

걸음을 내딛다가 넘어지는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공격이 빗나가는 편이 낫다.

휙! 퍽!

힘껏 던진 단검이 어디론가 날아가 박혔다.

물론 동굴쥐의 머리통은 아니다.

“저, 빗나갔는데요.”

“동굴쥐를 노리고 날린 게 아니다.”

대충 뒤편에 매복한 적을 쫓아낸 거라고 말하려던 순간.

“커헉!”

[당신은 지나가던 모험가A를 죽였습니다!]

불운한 모험가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어… 이건… 그러니까…….”

카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모험가를 노린 것이군요.”

“그렇다.”

“그럼 저 모험가는 어째서 노린 겁니까.”

그런 거 묻지 마.

나도 몰라.

“역시 어울리지 않는 선행을 하느라 뒤틀린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무고한 모험가를 살해한 것입니까.”

“아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반박이군요. 걱정 마십시오, 보스. 제 입은 무겁습니다. 그리고 파티장 또한…….”

헬렌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피에 미친 살인귀를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입은 무거워 보입니다.”

“…….”

난 지금 쟤 눈에 얼마나 나쁜 새끼로 보이고 있을까.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50 상승합니다.]

악명 50만큼 나쁜 새끼로 보였다고 알려줘서 겁나 고맙다.

망할 시스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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