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불쌍한 초보모험가를 돕겠다는 선의로 비롯된 미궁 탐사는 예상치 못한 실수로 사망자를 만들고 말았다. 더 이상 미궁쥐의 꼬리 따위는 우리들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어떡합니까?”
카이사르는 재차 물었다.
“다행히도 시체를 유기하기 좋은 미궁에서 저지른 살인입니다만, 이 살인에 뭔가 의미라도 있는 겁니까?”
없어.
그냥 상태이상 혼란 때문에 공격이 빗나간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사자후는 왜 내지른 거냐.”
“탐사가 지루해서 돌발 사태를 만들어봤습니다.”
이거다.
나는 냉큼 그 말을 받아들였다.
“과연 내 부하답군. 같은 목적으로 다른 사태를 만들다니.”
적당히 묻어가려는 시도였지만 헬렌의 표정이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다니, 역시 흑산회 보스… 조금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무슨 이유로 살해당할지도 몰라…….”
딴에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작게 중얼거려도 다 들린다.
그보다 나 완전 쓰레기로 낙인 됐네.
카이사르는 괜찮은데 난 왜 안 괜찮냐고 따지기에는 일으킨 사고의 크기가 달랐다.
“자, 파티장.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모험가가 죽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돌발상황에서 너는 어찌할 테냐.”
여기까지 일이 꼬인 이상, 뻔뻔하게 나설 수밖에 없다. 나는 이판사판으로 당당하게 헬렌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모, 모르겠어요.”
“그럼 네 미래의 파티원은 돌발 사태에서 네 공격명령만 믿고 공격을 시도했다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 모험가의 길을 걷지도 못하겠군.”
“아아아! 그러려던 의도가 아니었어요!”
“네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불쌍한 파티원이 평생 모험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암흑가의 밑자락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지.”
“그런 건 안 돼요!”
나는 새파랗게 질린 헬렌을 향해 나직이 선언했다.
“그렇다면 네 능력으로 운명을 바꾸어보아라.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헬렌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비장한 어조로 선언했다.
“시체를 은닉하고 도망치죠.”
“필요하다면 범죄행위라도 저지르겠다는 건가?”
“물론이죠. 저 모험가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죠. 밑바닥 생활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고 있는 이상, 제 사람들을 그런 곳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훌륭한 각오다.”
미궁쥐나 잡는 화목한 의뢰는 어느덧 시체를 은닉하는 음험하고도 위험천만한 임무로 돌변했다. 다행히도 우리들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아니, 뭘 이런 걸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미궁에서는 언제나 원치 않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잘못된 명령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것,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게 대처하면 된다는 것…….”
“어… 뭐… 그거 잘됐군.”
“이런 처참한 실패는 어디 가서도 배우지 못할 소중한 교훈을 남겨주겠죠. 보스의 깊은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헬렌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오늘 하루,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무슨 소리냐.”
나는 뚱한 어조로 대답했다.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 하지만 파티는 오늘 하루만이라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법만을 배웠을 뿐. 네게는 아직 가르침이 필요하다. 마침 하루가 모두 가기까지는 앞으로 12시간은 더 남은 모양이군.”
“보스…!”
“밤은 길다. 졸음에 굴하지만 않기를 바라지.”
헬렌은 무척이나 감격에 겨워하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게 고마운 마음을 품은 건 틀림없다.
간만에 선행을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 나 또한 마음이 훈훈해졌다.
“지상에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실 건가요?”
“위기에 대처하는 법은 배웠으니 이제 위기를 일으키는 쪽의 방법을 배워야겠지.”
“네에?”
나는 무뚝뚝하게 선언했다.
“안내해라. 낮의 파락호들이 있는 장소로.”
본래 헬렌이 자력으로 미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자 했으나 이에 실패했으니, 대안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문제의 근원인 파락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헬렌은 불안함과 기대가 반반 뒤섞인 눈으로 우리들을 안내해주었다.
“늠름한 장부님, 저희 가게에서 여흥을 푸시는 건 어떤가요?”
“싸게 해드릴게요.”
차가운 밤거리에서 살색조차 감추지 못할 얇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카이사르와 나는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창관에 얽매여 원치 않는 웃음을 파는 저들의 눈에는 웃음이 아닌 공허만이 가득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암흑가를 지배하는 1존6강의 일원.
4강, 색마의 영역이다.
“라일라 창관. 그들은 이곳의 포주의 명을 받아 하층민들을 억압하여 강제로 빚을 지게 하는 방식으로 기녀를 모으고 있어요. 저도 조금만 잘못되었다면 지금쯤…….”
“그렇다면 네가 해야 할 일도 알고 있겠군.”
“복수를 원해요. 하지만 창관의 배후에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두려움에 굴해서는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다.”
“정말로… 가능한가요?”
“결단을 내리는 건 파티장의 몫이다. 말해라. 너는 이곳에서 무얼 하기를 원하는가.”
헬렌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빚을 없애주세요. 또 가능하다면 그들이 다시는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나는 흔쾌히 그 부탁을 이루어주기로 결심했다.
“카이사르. 파티장의 명령이다. 창관에 쳐들어간다.”
“경비대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이곳은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장소. 우리는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여 힘의 논리로 응할 뿐이다.”
카이사르는 살벌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명령만을 기다렸습니다.”
콰앙!
정문을 박차고 난입하자 경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이냐!”
“미친놈. 당장 붙잡아!”
카이사르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크아악!”
무자비한 괴력에 경비원 수어 명이 잇따라 쓰러졌다. 창관 내 숙소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어느 누구도 카이사르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힘이 없기에 당했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모든 적을 무찌를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만한 힘을 지닌 자를 끌어들여라.”
“아아… 저렇게나, 저렇게나 간단히…….”
“이것이 암흑가의 생리이자 위기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법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만 가능한 유일무이한 대응책이다.”
삽시간에 이십 명도 넘는 장정들이 죽어나갔다. 기녀들과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지만 카이사르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배인실을 향해 전진하였다.
“웬놈들이냐! 이곳이 색마님의 영역임을 알고도 감히 살겁을 펼치려 드는 것이냐!”
“닥쳐라. 내가 따를 남자는 오직 보스뿐이다.”
콰앙!
카이사르의 도끼가 지배인을 스쳐지나가 벽에 틀어박혔다.
폭음과 함께 벽이 산산이 부서졌다.
드드드드드.
어찌나 강맹한 공격이었는지 건물 전체가 미미하게 떨렸다.
지배인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미, 미친…….”
“기녀들의 빚을 기재한 장부와 차용증을 내놔라.”
“안돼! 그런 짓을 했다간 위에서 보복을…….”
콰아앙!
드드드드드…
순식간에 얼굴이 반쪽으로 줄어든 것처럼 핼쑥해진 지배인이 장부를 들고 왔다.
“여, 여깄습니다.”
카이사르는 장부와 차용증을 모조리 불태웠다.
불은 단숨에 창관 내부로 번졌다.
“아아아! 불을 꺼야해. 불을… 컥!”
지배인이 투척용 도끼에 맞고 죽자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눈에 익은 무뢰배들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으아아아아!”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더냐.”
카이사르가 촛대를 들고 있는 힘껏 내던졌다.
콰앙!
무뢰배들은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줄줄이 촛대에 꿰뚫려 벽에 처박혔다.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이 따로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맛보기라고 생각해라.”
이딴 짓이 가능한 초보모험가가 있을 리가 없지.
그런 놈이 있으면 당장 내가 영입할 거다.
[라일라 창관이 파괴되었습니다.]
[흑산회의 악명이 1000 상승합니다.]
불타는 창관을 올려다보며 헬렌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만 같아요.”
“꿈이 아니다.”
“제가 두 분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아니, 솔직히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이 타이밍에 그걸 대놓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죽을 각오로 노력만 한다면.”
“저, 힘내볼게요!”
환히 웃는 얼굴이 지금까지는 몰라보도록 아름답다.
역시 여자는 웃는 얼굴이 제일이다.
저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같은 짓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꺄악! 불이야!”
“어떡해! 불이 번졌어!”
옆 창관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달아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훈훈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안 돼! 불길이 너무 거세!”
“이쪽 거리는 포기해! 불길을 잡기에는 너무 늦었어!”
“무슨 소리야! 이대로는 뒷골목이 전부 불타 사라진다고!”
뒷골목의 인간들 중에 그나마 똑똑해 보이는 자가 말했다.
“거리의 간격을 보라고. 바람의 흐름이 북서풍인 이상, 인접한 거리까지 불탈 일은 절대로 없어.”
“으으.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남자의 발언에 주변인들이 한숨을 내쉬던 도중이었다.
휘이이이잉!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불길이 인접거리를 덮쳤다.
“으아악! 동남풍이다!”
“이런 바보 같은! 이 계절에 동남풍이라니, 말도 안 돼!”
“개X끼야! 바람 안 분다며!”
“함정이다! 엄청난 지략가가 벌인 함정이 틀림없어!”
“도망쳐! 여긴 틀렸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헬렌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저… 이것도 보스의 활약인가요?”
“어… 뭐, 그렇다.”
“대단하세요! 보스는 천문지리에도 통달하셨군요!”
선망어린 표정을 보니 양심이 찔린다.
내가 무슨 제갈공명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저, 보스.”
“뭐냐.”
“이제 슬슬 멈춰주시면 안 될까요. 저거 더 번지면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거리까지 덮치는데요.”
아차. 나는 뒤늦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분위기를 타서 무심코 허세를 부린 것이 실수였다.
방금 전에 내가 일으킨 바람의 변화라고 말한 탓에 이 화재는 전적으로 내가 유도한 소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화제를 통제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
“예!? 안돼요! 무고한 사람들의 집이 불타 없어져요!”
“그래도 안 된다.”
헬렌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절 도우려는 게 아니었던 건가요?”
바로 그때, 화염병을 든 카이사르가 내 곁에 서며 말했다.
“어리석은 년. 아직도 깨닫지 못했는가. 넌 그저 보스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것을.”
“네에에!?”
“보스의 무자비한 심성에 선행은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선행은 더 큰 악행을 저지르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믿어서는 안 될 자를 믿은 어리석음을 탓하며 후회해라.”
야이 싸이코패스 자식아.
내가 너 같은 진성 또라이인줄 아냐.
“훌륭한 속임수였습니다, 보스.”
“아니, 이건.”
“보스의 모략에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헛된 희망을 품은 여자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드는 순간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안배는 단언컨대 보스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헬렌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더니 뒤돌아 달렸다.
“아아아! 암흑조직을 믿은 내가 어리석었어! 역시 흑산회는 최악의 조직이었어! 내가 어리석었던 거야!”
“…….”
조직에 돌아오자 부하들이 팡파레를 울리며 환영해주었다.
“역시 보스는 대단하십니다. 색마의 영역에서 화공을 펼치다니, 생각지도 못한 작전이었습니다.”
“이걸로 저희 조직의 악명도 천정부지로 솟구칠 겁니다.”
“암흑가의 방화범들이 잇달아 흑산회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전부 보스의 활약 덕분입니다.”
선행 한번 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악명이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냥 다 때려 치고 아지트에 처박혀있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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