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구성했던 흑마법이 가우디움을 관통했다.
본디 가우디움 하나 죽이는 데 그 정도로 복잡한 흑마법은 필요 없었다.
완벽한 제압 하나를 위해.
머릿속을 태워버릴 정도의 연산과 막대한 마기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모든 마법적, 물리적 수단이 봉인된 가우디움이다.
그가 만약 비상탈출을 할 수 있는 유물이나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어도, 그조차 봉인되리라.
예상은 틀리지 않은 건지, 그는 품속에 물건 하나를 꺼내 쉼 없이 작동을 시켜봤지만, 먹통이었다.
“너, 너는 무엇이냐.”
그에게 다가간다.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가우디움은 일부로 온전하게 놔두고 싶어서 딱히 외상을 입히지 않았기에, 내 손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일게 당연했다.
욱신거리는 왼손을 감싸 쥐며, 가우디움 앞에서 앉았다.
나는 무엇인가.
죽지 않는 불사자, 초월에 이른 흑마법사, 과거에서 돌아온 망령.
여러 가지 정체성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른다.
“복수자.”
마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리고 너에게 복수하기 위해.
“...과거에 나와 만난 적이 있던가?”
“있다.”
“내 지은 죄는 크지만…. 나와 같은 흑마법사 아닌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부디 용서해주게, 아직 내 염원을 이루지 못했어. 단 한 달의 말미라도…!”
“그 염원은 이미 이루어졌네.”
“...뭐?”
가우디움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줄 필요성은 못 느꼈다.
굳이 구태여 너로 인하여 불사자가 되었고, 수많은 죄를 지었으며, 용사에 의하여 회귀했다는 이야기를 풀어주기에는.
우리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
“감정은 다 털어낸 줄 알았더니.”
한 번 죽인 걸로 충분할 줄 알았건만.
그 늙은 얼굴을 다시 보니 분노와 증오가 끝없이 샘솟았다.
흑마법을 조작한다.
톱니를 이루어 순환성을 만든다.
대상자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이 톱니는 무한히 회전할 거다.
이 흑마법 하나에 남아있는 마기까지 몽땅 다 쏟아버렸다.
쉽게 죽어선 안 될 인간이다.
그러니 단 하나의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그 혼자만을 위한 죽음을 선사해 줄 생각이다.
“....그만.”
가우디움 조차 이 흑마법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장로 직위는 아무나 얻겠는가.
흑마법의 과정만 보더라도, 어떤 결과와 의미를 지닐지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는 두뇌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우디움은, 절망 앞에 선 미천한 벌레와도 같은 꿈틀거림을 보여주었다.
마기를 폭주시켜, 제 뇌를 터트릴 작정으로 보였다.
“...그만, 그만! 차라리 죽여라, 끄으으으으으으악!”
저 고통을 맛볼 바에야, 차라리 지금 죽겠다는 발버둥을 보며, 나는 무심히 마법을 완성했다.
톱니가 천천히 굴러간다.
쏟아놓은 마기가 전부 소진될 때까지.
마법이 작동하자 가우디움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하하.
그걸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웃어본다.
“잘 가거라 가우디움.”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가 구현 해 놓은 지옥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을 거다.
여기에 시간 가속을 더 했으니, 계산해 보자면 고작 하루의 시간 동안 그는 100년의 기간 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개념의 흑마법은 써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잘 되겠지.
가우디움을 뒤에 놔두고, 나머지 뒷수습이나 하기로 했다.
정리가 안 되어 있긴 해도, 나름 흑마탑의 장로인 가우디움이 모은 보물이다.
어느 하나를 줍더라도 탐을 낼 법한 보물이 있다는 소리.
몇 가지 주워 모은 다음에 베시아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쓰러진 김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 몇 번 흔들었지만, 돌아오는 건 헛소리였다.
“라베가 주교님…. 조금만 더 잘 거예요….”
자는 사제를 주교가 깨워준다?
대체 무슨 직위에 있길래 그런가 싶긴 한데, 어쨌건 일어나야만 했다.
쿵-!
“악! 깨어난다고 했잖아!”
“족쇄를 풀어주겠다.”
틱-
단검으로 손끝을 그어서 아주 약간의 마기만 얻어왔다.
그 마기로 베시아가 차고 있는 족쇄에 향하자, 자연스럽게 달그락하고 풀려났다.
“어, 어? 진짜 풀린 거야?”
“그럼 가짜겠어?”
덜컥-
추가로 내 족쇄까지 풀어낸다.
봉인된 성력을 되찾은 그녀는, 다시 활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외관은 진짜 살아 움직이는 시체인데, 활력이 넘친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 더러운 마기 사이에서 너무 오랫동안 버텨왔어. 이게 사람 사는 거 아니면 뭐겠어?”
“그러냐.”
“드디어 신님의 은총이 느껴져, 그러고 보니 너 손을 다쳤네, 치료해줄게!”
베시아는 다짜고짜 내 왼손에 성력을 쏟아부었다.
밝은 빛을 보니, 보통 수준의 사제라 볼 수 없는 성력.
동시에 베시아는 잊어버린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아 맞다. 마기랑 성력은 상극인데…!”
흑마법사나 마물같이 마기를 몸에 품고 다니는 족속들은 성력에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방금까지만 해도 흑마법을 썼던 몸.
잘 못 하면, 성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뻔했겠지만.
“....치료가 돼?”
내 손은 멀쩡히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실로 기이한 이유였다.
보통의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당연하게도 마기를 몸속에 품어야만 했고, 그렇게 해야만 흑마법에 숙련된다.
그러나 나는 이미 흑마법을 정점까지 익힌 흑마법사.
마기를 다루기 위해 몸에다 마기를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는 동시에 아무런 마기가 없는 신체를 얻었기에, 특정 기물에 마기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면, 흑마법사이면서도 성력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직자들에게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안 들키지 않을까.
마침 앞에 사제가 있으니 테스트를 해 본다.
“나에게 흑마법사의 흔적이 느껴지나?”
“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직접 만져보면 어느 정도 의심스러운 정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에서 나가자고 손짓을 했다.
베시아는 저 뒤에 잠자듯이 쓰러져 있는 가우디움을 슬쩍 보더니, 내 뒤를 따라 창고에서 나왔다.
“가우디움님, 드디어 나오셨….”
서걱-
창고에서 나온 우리를 착각한 관리자의 목을 잘려 나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일반적인 수준의 흑마법사라면, 날 이길 수 없다.
피 묻은 단검을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베시아는 냉혹한 표정으로 관리자를 바라보더니 내 뒤를 따른다.
성직자답게 흑마법사가 어찌 죽건, 오히려 좋다는 모습이다.
“베시아.”
“왜?”
혼자라면 모를까, 한 명을 끼고 나가는 건 어느 정도 변수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더없이 허약한 상태.
성력을 되찾으면서 활기를 얻긴 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언제라도 쓰러져서 멈출 수 있는 게 그녀의 상태다.
의지가 어떠한지 물어본다.
“버틸 수 있는가?”
“응.”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더 없이 희망찬.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얻은 자의 미소였다.
“죽어서라도 버티겠어.”
“좋아.”
푹-
단검이 다시 내 손을 헤집는다.
막대한 마기가 다시 단검 속으로 모여들었다.
그걸 본 베시아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더더욱 의지를 다진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료해줄까?”
“아껴, 지금 네가 서 있는 건 성력 덕분이다.”
반 송장에게 받을 도움이 있겠는가.
마기를 그려 모으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지하에서.
드높은 지상으로.
**
견습 흑마법사 하라짐은 오늘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스승에게 가서 수업을 듣고, 흑마법을 연구하고, 다시 개인 방으로 돌아가 흑마법을 공부하는 쳇바퀴 같은 삶.
그런데도 흑마탑 소속이 아닌 흑마법사들의 생활을 본다면, 그는 나름 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교회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맘 편히 공부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조금 전에 있었던 수업을 떠올렸다.
‘흑마법은 오직 마기 하나를 모으기 위한 학문이다. 인신 공양, 악마와의 계약, 사람을 살육하는 등, 이러한 악독한 방법을 쓰는 이유는 가장 마기가 잘 모이기 때문이지.’
‘그럼, 마기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이론적으로 무한정한 마기가 있다면, 나라를 하나 태워 먹고도 남는다. 너희와 같은 수습조차도. 그러나 불가능하니 효율적인 활용과 효율적인 마기 수급 방법을 통하여 강력한 흑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흑마법사는 다양한 분파로 나뉘었다.
마기만 넘치면 만능이다!
그래서 각종 극악한 인신 공양으로 척살의 대상이 되는 분파.
마기의 활용법 또한, 마나의 활용법과 비슷하다!
그래서 학문을 구하여 복잡하고도 효율적인 흑마법을 활용하는 분파.
‘마기만 있어도 충분히 강해진다면, 마기 수급을 잘하는 분파가 강한 게 아닙니까?’
‘만약 이 세상에 강력한 힘을 쥔 존재가 흑마법사뿐이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교회가 있고, 검사가 있으며, 마법사도 있다.’
스승이 답 한 건 단순한 이론이었다.
“살아남는 게 강한 자다.”
암만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금방 죽어버린다면 무슨 의미인가.
조용히 연구하며 마기를 모으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강한 흑마법사가 되어 있는 거다.
하라짐은 이런 스승의 뜻을 마음속 깊이 새겨놓았다.
마기의 폭풍우가 가장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도 마찬가지.
그는 몸을 잔뜩 숙이고 고개만 내밀어서 저 너머를 슬쩍 확인했다.
“어느 선배님이 폭주라도 한 건가…?”
그리 생각했건만 정작 그 길을 지나가고 있던 건 두 명의 노예였다.
전형적인 실험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어지간한 흑마법사도 다루기 힘들 정도의 마기가 집중되었다는 것.
여기에 더해서….
“너희들 뭐냐?”
겁 없는 흑마법사가 노예에게 다가간다.
목에는 족쇄도 없지, 한 명은 손에 단검을 쥐고 있지.
실로 이상한 점이 많았기에 지적을 할 법도 하다.
그렇지만, 그 흑마법사에게는 더 없는 불행이었다.
서걱-
“흐이이이익…!”
하라짐은 고개를 더더욱 푹 숙였다.
순식간에 한 사람의 목이 날아갔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단검이 움직이더니 목을 그대로 잘라버린 것이다.
저, 저 괴물은 대체 뭐지?
그대로 숨어서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저벅- 저벅-
한 걸음 한 걸음이 소름을 돋게 하는 소리.
다행인 점이 있다면, 저들은 하라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던 건지, 그를 넘어서서 흑마탑을 올라가고 있었다.
숨을 거듭 쉬던 하라짐은 저 노예들이 향하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목이 잘린 수십의 시체들이.
“헉, 허억.”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의 학우들이 장난스럽게 하던 말들을 떠올렸다.
암만 이렇게 커다란 흑마탑이라도, 교회가 작정하고 쳐들어가면 도망칠 준비부터 해야 한다고.
그런데 교회가 아니었다.
단둘이었다.
그것도 노예의 모습을 한 이들.
“설마 초, 초월자가?”
흑마탑을 쓸어버리겠다고,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노예를 위장하고 들어간 것이 아닐까?
저렇게 마기를 풍기고 있다는 게 이상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맞서는 커다란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수십에 달하는 흑마법사들이 모여들었다.
저 노예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강대한 기운.
그제야 하라짐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래, 노예가 좀 강할 순 있어도, 저분들을 이길 순 없지.”
스승하고 편히 담화를 나누던 흑마법사들.
여기에 장로급도 몇몇 보였다.
검은 로브에 금각이 박힌, 흑마탑의 지배층.
실력이 있기에, 막대한 권위와 권력을 쥐고 있는 강자다.
하라짐의 목표이자 동경의 대상.
그들을 바라보며, 평온했던 흑마탑의 침입자를 퇴치해주길 기원하고 있던 때에.
이 땅을 뒤흔드는 폭음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