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거 같에.”
“얼마 안 남았어.”
고문 마법에도 죽겠다는 소리 안 하던 베시아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가 됐다면, 정말 죽기 직전이라는 소리 아닌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가깝다는 점이다.
암브로시아가 자리한 흑마탑의 위치는 수도와 무척 가까웠다.
아무리 왕가가 비호하고 있더라도, 발각되는 순간 교회가 발작할 텐데, 참 대단한 배짱이다.
덕분에 걸어가더라도 충분히 수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반나절 정도면.
상태가 상태인지라, 속도는 전혀 나지 못해서 더 걸리기야 하겠지만, 눈에 익은 길이라 괜찮다.
베시아는 수도에 있는 교회에 넘기고, 나는 영지로 돌아갈 생각이다.
영지와 수도하고의 거리를 생각해 본다면 두 달은 꼬박 걸리겠지만, 하루 이틀 만에 돌아갈 방법이 있기는 하다.
수도에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
물론 아무나 쓸 수 없는 오직 고위 관료와 귀족, 왕족을 위한 것이지만, 그거야 습격을 해서 억지로 쓰면 될 일이다.
다그닥, 다그닥-
한참은 걷다 보니 말발굽이 바닥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베시아는 걸음을 멈추고 위험을 느끼며 경계를 했지만, 난 별걱정이 없었다.
저 어딘가에서 성력이 느껴지니까.
성력에 민감한 건 성직자인 베시아도 마찬가지임으로 그녀 또한 긴장을 풀었다.
전신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눈에 띄었고, 그들 또한 마찬가지.
“저기 사람이 있다!”
아마 둘 다 거지꼴이라서 바로 베시아를 알아보지는 못한 듯하지만, 베시아는 여기서 교회의 사람들과 마주한 게 무척 감격스러운 건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본질은 같은 법.
똑같은 사제이며 성기사, 성직자.
몇 걸음 정도 뒤에서 경계하고 있던 성기사는 그녀의 몸속에서 내재한 성력을 알아봤다.
“혹시…. 베시아 사제님?”
“....나, 맞아.”
그녀의 한 마디가 물꼬를 텄다.
성기사 하나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베시아 사제님을 찾았다!”
“사제님을 찾았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말을 타고 달려왔던 모든 성기사들이, 베시아를 찾았다는 것에 기뻐하고, 환호했다.
베시아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다, 시끄럽고 일단 물 좀 줘….”
이 말에 성기사 하나가 급하게 물통 하나를 꺼내왔다.
그녀가 물통 하나를 싹 마셔버리고 고개를 내렸을 때, 그 앞에 선 중년의 남자를 보곤, 물통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풀려버렸다.
“...주교님.”
“베시아.”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더없는 기쁨에 찬 얼굴로 그녀를 꽉 안았다.
“다행이다. 돌아왔구나.”
“레베가 주교님….”
베시아는 두 입술을 벌리며 뭘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주교마저도 잘 안 들리는 모양.
“응? 뭐라 하였느냐?”
“저 진짜 뒤질 것 같….”
“사제님!”
“베시아!”
추우욱-
그러곤 그녀는 몸을 늘어뜨리며 기절해 버렸다.
애초에 한계에 닿은 지 오래였다.
이 악물고 버틴 거지, 교회가 온 순간 그녀는 기절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지경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수십이 넘는 성기사와 사제 사이에 껴 있는 나?
과거 인류의 주적이었던 몸으로서 조금 가혹한 환경이다.
성기사가 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그대는 누굽니까?”
“부디 정확히 말씀하시길.”
이런 성기사들의 겁박이 있었다.
말은 정중한데 내 앞에서 칼질이라니.
죽으려고 진짜.
자기네 교인이라면 한없이 무한신뢰를 주면서, 외부인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 봐라.
어찌 설명할까 고민하던 와중 다행히 베시아가 할 건 해 줬다.
“저거, 내 은인이니까, 건들면 뒤진다 진짜….”
그걸 마지막으로 진짜 기절했다.
성기사들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검을 거두었고, 나는 주교에게 다가갔다.
왜 내가 저자의 얼굴을 모르는 건가 싶다.
수도에 보직을 가진 주교.
실권도, 미래도 막대한 자일 텐데 왜 모르고 있는가?
“베시아를 구해주신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대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주교는 두 손을 모아 진정 감사를 표현했다.
목숨을 걸고 구해주긴 했다.
과정이야 베시아가 알아서 설명해 줄 테고.
나는 주교에게 얻어낼 건 얻어내야겠지.
“혹시 단둘이서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가져온 마차가 있습니다. 거기서 하지요.”
주교는 별 의문 없이 수긍했다.
다른 사제들은 베시아를 열심히 치료 중이고, 단둘이서 마차에 들어갔다.
물론 밖에는 그를 호위하는 성기사의 기운이 날 짓누를 작정이었지만, 용사의 압박도 이겨낸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아이를 구해주신 걸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런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하여 원하는 걸 들어드릴 생각입니다.”
주교의 속 깊은 눈이 나에게로 향한다.
주교는 베시아를 무척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다.
이 관계를 노리고 구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건 내게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주교는 내가 뭘 원하건 주교의 전권을 활용해서라도 대가를 치를 각오를 보였다.
“곧 아카데미 입학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요. 한 해가 지나고, 추운 겨울이 끝나가는 시기입니다.”
“거기서 절 보증하시지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군요.”
고작 보증 하나로 되겠냐는 물음이다.
주교인 그가 원한다면 아카데미에 어떤 학생이든 꽂아 넣을 순 있었다.
어떤 시험도 없이, 원하는 곳에다가.
하지만 내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최고 성적을 기록한 학생조차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반.
아카데미 제1반.
왕족, 고위 귀족, 용사, 신원이 보증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최 주요 인물들이 모여있기에, 고작 남작가 신분에다가, 마기까지 활용하는 내가 들어가기 힘든 곳이다.
하다못해 아무것도 없는 평민이라면 요식 맞추기로 넣어주기라도 하지, 애매한 귀족은 1반에 들어가기 오히려 불리했다.
그 자리는 이미 고위 귀족들이 차지했으니까.
여기에 가장 큰 건 마기.
몸 안에 마기를 담지 않았으니 겉모습 상으로는 의심스럽지 않다고 하여도, 흑마법사나 마족을 거르는 과정에 걸릴 수도 있었다.
분명 베시아도 이상하다 느꼈으니까.
이러면 1반은커녕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주교의 보증이 있다면?
이런 걱정이 불필요했다.
설마 주교가 흑마법사를 보증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압도적인 성적과 주교의 보증이라면 제1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제 호의를 얻기 위해서 별 볼 일 없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큰 의미를 지닌 부탁입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주교로서 흑마법사를 보증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어차피 베시아를 통해서 주교도 나름의 사정을 파악할 테니까.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대의 말대로 하지요. 그래서 이름이?”
“아르갈 브리텐.”
주교는 기억해 둔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내 상태를 살피더니 말한다.
“베시아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몰랐지만, 그대도 보통은 아니군요. 여기서 편히 쉬시지요.”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슬슬 지치기도 하고, 게다가 성기사단은 수도 내부로 복귀할 것 같다.
교회의 힘을 빌려, 수도에 편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이점인가.
마차 내부에 배치된 침대에서 눕자마자, 피곤함에 찌든 몸이 반응했는지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
다시 깨어났던 건 마차 내부가 아닌, 교회의 방 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그 과정에서 내 몸을 씻기고 옷도 갈아입혔는지 몸이 뽀송뽀송했다.
세상에 몸을 씻기는 와중에도 깨어나지 못하다니.
“좀 이상한데.”
분명 불사인 건 마찬가지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잠을 잘 잤던가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깨어났으니 움직여야지.
흑마법사가 교회 내부.
그것도 최심부 숙소까지 들어가다니 참 기묘한 일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어디부터 불태울까 고민하겠지만, 지금이야 그럴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 돌아다니려는 생각이었건만….
“어허, 환자가 어딜 기어 나오려고. 빠닥빠닥 다시 안 들어가요?”
감시를 하는 사제에 막혀서 다시 방 안으로 갇혔다.
...뭐지?
“내 옷이 환자복은 맞는 듯한데.”
내가 환자라?
몸 상태가 그렇게까지 안 좋았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구분은 안 된다.
죽지 않는 사람이 상태를 구분해봐야 무슨 의미인가.
“잘 모르겠네.”
수도까지 들어갔고, 여기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활용해서 가문으로 되돌아가는 게 내 계획이다.
아무래도 캐론과의 약속도 있었으니.
그런데 교회에서 못 벗어나면 무슨 의미인가.
게다가 단검도 내 수중에 없었다.
이것도 다시 돌려받아야겠고.
“저기요.”
방문을 열고 말을 하니까 저 건너편에서 사제 한 명이 아주 친절히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맛있는 미음이라도 드릴까요? 치유라도 해 드릴까요? 아니면 책이라도 구해드려요?”
...아까 어딜 기어 나오냐며 다시 방 안으로 처박았던 불친절의 끝장 판을 보여준 사제 맞는 건가?
다 됐고 본론부터 꺼냈다.
“제가 별로 아픈 건 아닌데.”
“자, 됐고.”
갑자기 사제는 태도를 바꾸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 줘봐요.”
“예?”
“줘 보라고.”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에 성력을 흘려 넣었다.
“전신 근육, 반쯤 개박살, 솔직히 말하면 서 있는 것도 이상함.”
그리고 내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여긴 더 심각했는지 사제는 얼굴을 제대로 찌푸렸다.
“생명력, 거의 바닥을 기고 있음, 무리하면 심장마비 올 법함.”
“저, 그게….”
“그러고 환자가 아니라고요? 뒤질래요?”
조금 억울한 게 몇 개 있자면.
하도 죽고 부활한 직후에 몸을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아서, 근육이 박살 나도 움직이는 기술이 있었고.
그리고 부활한 직후에 고갈된 생명력이 바로 복구되겠는가.
어느 정도 후유증이 있는 게 당연하다.
물론, 사제의 눈으로 보기에 걸어 다니는 시체이겠지만.
...이렇게 말하다 보니 환자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자, 얌전히 처박혀 있어요. 읽기 좋은 책 가져다드릴 테니까 심심하면 읽으시고.”
그렇게 강제 집행이 된 체 방 안에 처박힌 나는 기이한 무력감을 느꼈다.
단검도 없고, 물리적으로도 저 사제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박살이 난 근육은 최소한 움직일 수는 있지, 없던 힘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대안이 필요하긴 하네.”
진짜 단검이 없으면 너무 무능력자가 되어버린다.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누워있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손님이 있으니.
“베시아가 그댈 찾습니다.”
주교가 날 찾아왔다.
그는 한 층 더 늙어있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은 듯싶었다.
사제는 환자인 내가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에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지만, 주교만큼은 어떻게 해 볼 순 없는 모양이다.
주교를 따라서 복도를 걸어가니 조금 분위기가 다른 곳이 나왔다.
그 방 안에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있는 베시아가 보인다.
그녀와 함께 흑마탑에서 탈출할 시기에는 잘 몰랐지만, 깔끔히 씻겨진 그녀의 외모가 제대로 드러났다.
지금은 너무 말라서 그조차도 덜해 보일 지경.
만약 살집이 다시 올라온다면 그 누구도 예쁘다고 칭찬할 모습이 되겠지.
주교가 베시아를 바라보더니 나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베시아에게 가 보라는 눈치.
별생각 없이 그녀의 근처로 다가가자.
“손 내밀어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내 손을 붙잡더니 성력을 흘려놓고선, 조용히 그녀는 중얼거렸다.
“...미안해.”
“뭐가.”
뜬금없었다.
뭣 하려 사과를 하는가.
“...수명을 거의 다 썼잖아. 되살리긴 했어도 이 정도의 생명력이라면…. 넌 오래 못 살아.”
부활해서 바닥을 기고 있는 생명력.
이것 때문에 착각하는 중인가?
어차피 곧 돌아온다.
개의치 않고 말했다.
“상관없어.”
“...상관없기는! 나 때문에, 수명을 거의 전부를 갈아냈으면서…!”
좋지 못한 결과에 실망하는 듯한 그런 모습.
뭘 잘 못 알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죽었다 되살아났을 뿐이지만.
기막힌 우연으로 그녀는 성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직자로서 할 만한 오해였다.
그녀는 날 부활시켰다고 생각했고.
부활을 시켰지만 돌아오지 않은 수명을 보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거다.
“너 때문이 아니라, 네 덕분에, 다시 살아났지.”
베시아의 두 눈이 흔들렸다.
역시.
네 힘으로 날 살렸다는 그런 착각을 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여라.
“그것만으로 충분히 고맙다.”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고맙다.
죽음에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숨겨주었으니.
불사자가 가장 숨겨야 할 사실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가장 중요한 약점을 가려주었다.
그것이 위로되었을까.
아니면 더없는 슬픔으로 되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베시아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