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15화 (15/69)

부활 후유증이 끝나고 신체가 빨리 회복되는 걸, 베시아는 목걸이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그거 목걸이 사기 아니야? 벌써 그렇게 멀쩡히 걸어 다닌다고? 나도 며칠만 차고 있으면 금방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가져갈래?”

“...장난이라도 그런 말 하지마.”

그녀는 내가 차고 있는 별의 근본을 나의 목숨줄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나에겐 좋은 유물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쩌다가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그래도 불사자 인 게 들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별의 근본이, 단검을 대신 할 만한 강력한 유물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느 정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베시아에게 말했다.

“이제 난 돌아가겠다.”

“무, 뭐?”

케이크를 야무지게 먹고 있었던 베시아가 당황한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입에 크림을 다 묻혀놓았을까.

“놀랄 것 없지, 애초에 여기가 내 집도 아니고 평생 살 건 아니잖은가.”

“그래도 그렇지, 벌써 간다고?”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이곳에 머문 지 삼 일밖에 안 됐으니.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보름은 더 머물 줄 알았나 보다.

“나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다. 여기서 오랫동안 머물 이유는 없지.”

“몸이 다 나은 건 아니잖아.”

“본가에서 치료하면 되지, 무엇 하러.”

아쉬워하는 베시아를 보며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쉽다라.

그런 감정을 느낀 지가 언제인가.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내 가족도 걱정하는 중일 거다.”

“그, 그렇겠지 레베가 주교님처럼.”

가족 이야기를 꺼내니 그녀도 한발 뒤로 물러났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정을 맞추기 위함이다.

곧, 아카데미 입학시험이 시작될 시기이니.

“...아카데미에 간다고 했지?”

내가 주교에게 아카데미 추천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던 만큼, 베시아에게 귀띔이라도 해준 모양이다.

“그래.”

“나도 아카데미에 갈 테니까, 거기서 다시 보자.”

“...네 상태로?”

베시아는 발끈했다.

“당연히 나는 내가 잘 알지! 중간에 편입할 테니까,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기만 해봐.”

“중간 편입? 이거 주교님을 통해서 편법으로 입학하는 거 아닌가?”

“편법은 무슨, 정정당당하게 시험치고 들어갈 거니까 알아둬!”

그리 장담하는데 뭐….

그냥 이 정도 한마디는 해주었다.

“무리는 하지 마.”

“...알겠어.”

성녀에 가까운 성력.

레베가 주교와의 관계.

내가 받은 별의 근원.

이걸 계산한다면 베시아가 무리를 하다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손해였다.

그걸 생각해서 해준 말인데,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 아무튼! 아카데미에서 다시 보는 거야!”

“그러지.”

“거기서 같이 카페도 가고, 엉? 맛있는 것도 먹고.”

“그걸 원한다면.”

그리고 때가 되었다.

교회에서 편히 지냈지만, 결국 돌아가야 할 때.

고맙게도, 주교는 텔레포트 마법진 예약까지 잡아주었다.

이별의 순간이다.

평소엔 환자복을 입던 베시아가, 제대로 사제복을 차려입고 깔끔한 모습으로 배웅을 나섰다.

그 곁에는 레베가 주교가 있었다.

내 옷이야 납치를 당한 시점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새롭게 사서 입어야 했다.

그것도 레베가 주교가 맞춰주었다.

나름 잘 맞는 귀족의 복장.

...레베가 주교의 정성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 하나 정도는 약속해 줄 수 있겠지.

베시아가 한 번 더 위기에 처한다면.

구해주겠다고.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전히 레베가 주교는 내 기억에서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주요 인물 중에서 모르는 자가 있다는 건 둘 중 하나.

내가 노예에서 벗어나기 전에 죽었거나, 너무나 낮은 위치로 강등당했거나.

어찌 되건 둘 다 최악의 경우.

일단 지켜보긴 해야지.

교회의 입구에 선 내 모습을 본 베시아가 피식 웃었다.

“흐응~ 그래도 차려입으니까 때깔 나네.”

“그런가?”

“나중에 보자, 혹시 아카데미 시험에 떨어졌다고 좌절하진 말고.”

그런 악담이나 다름없는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과연 떨어질 수 있을까?

아이들 싸움에 낀, 거인이었으면 거인이지.

레베가 주교는 단검을 꺼내주었다.

어찌 보면, 당장 교회에 봉인되어야 할 물건이었지만, 내 소유였기에 잠시 보관하는 형태로 그가 가지고 있었다.

이 또한 주교의 배려였다.

“...부디 위급할 때만 쓰길.”

“그러겠습니다.”

그걸 마지막으로.

잠깐의 이별을 이른다.

과거와 비슷하게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비어있던 것이, 어느 정도 채워졌으니.

조금은 덜 공허했다.

**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이동하니, 브리텐 남작가와 가까운 도시에 이동했다.

암만 그래도 한미한 시골구석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좌표를 찍어둘 리가 없으니, 거기에 가까운 도시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전부 다 올 줄은 몰랐는데.

“오빠아아아아아아아!!!!”

시작부터 폭탄이 투하됐다.

아리엘이 나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으아앙, 괜찮은 거지? 괜찮은 거야?”

“괜찮으니 진정해라.”

“깜짝 놀랐잖아, 으아앙!”

그 뒤에는 형이 다가왔다.

“다행이구나.”

한마디 뒤에, 내 어깨를 두들겼다.

과거 아르델은 사라졌던 날 찾기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황금기사단에 들어갔었다.

수도를 지키는 수호단.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요직이었으니, 이걸로 날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단 한 마디, 한 번의 행동뿐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걱정하고, 또 힘들게 뛰어다녔는지 알고 있다.

그 뒤에는 아버지와 캐론이 있었다.

캐론은 아예 그 자리에서 울고 있었다.

진짜 여자는 눈물이 많은 건가?

이쯤 되면 고정관념이 생기겠다.

“흑, 도련, 니임…. 다행이에요. 흐윽.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돌아오겠다는 걸, 믿어주었다면 될 일이다.”

많은 위로는 필요 없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아버지.

“돌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미안하신 것이 있습니까.”

“...주범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상대는 집행부.

왕족의 손과 발.

고작 한미한 남작가가 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잘하셨습니다.”

반항을 했다면, 오히려 더 난처했을 거다.

압도적인 힘 아래에 가문은 짓밟혔을 테니까.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좋은 판단일 때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가족들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진정 내가 되돌아왔음을 느끼게 된 순간.

비어있는 것이 거의 다 채워지고 있다 생각이 드는 순간.

두려움 또한 느껴졌다.

모든 감정을 되찾는 때가.

내가 기쁨과 슬픔과 웃음과 즐거움을 다 알게 되었을 때.

광증에 저며져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했던 과거가.

끔찍한 악몽이 될 테니.

그렇기에 잠시 접어두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그래, 마왕을 죽이고.

저주의 종지점을 찍는 것이다.

평생을 지배한 광증의 끝을.

그리 장식하는 거다.

**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

부활의 후유증에 완전히 벗어나 몸이 완벽한 컨디션으로 되돌아왔고.

별의 근원으로 다양한 마법들을 활용하고 있었을 시기에.

아카데미로 출발할 마차만 남기고 있었다.

“정말, 갈 생각이더냐?”

“그렇습니다.”

가주실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였다.

아버지는 염려하고 있었다.

“왕국의 정세가 너무 좋지 못한다. 위로는 마왕군이, 국내에서는 왕족조차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때, 게다가 아카데미에는 이번 대 용사가 입학하는 시기.”

난국 중의 난국.

이러한 때에 아카데미를 다니는 건, 꽤 위험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마찬가지.

용사가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아카데미는 역대급으로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러다가 아카데미가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들을 정도로.

...생각 해 보니 입학시험부터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쩌겠는가.

가야지, 가야 용사를 돕고 마왕을 죽이곤 하지.

내 손으로 마왕을 죽이기 힘들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갈 생각입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아버지는 결국 수긍했다.

내가 걱정되긴 해도, 귀족이 아카데미를 가는 건 필연적인 것.

보통 가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귀족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갈 수밖에 없다.

가주실에 나오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리엘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만 있었다.

내가 나온 걸 보자마자 땅속에서 솟아나는 두더지 마냥 그 아이는 튀어나왔다.

“오빠! 아카데미 안 가는 거지?!”

“아니, 간다.”

“안 돼! 아빠는 분명 안 보내겠다고 나랑 약속했단 말이야!”

...아버지는 언제 또 그런 약속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도 자식의 앞길을 막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더 앞서서 허락해 주었을 테다.

물론, 막는다면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가지마아아….”

질질질...

내 옷에 매달려 질질질 끌려가는 아리엘을 보고 있던 아르델이 한숨을 푹 쉬며 나에게 말했다.

“아카데미, 뭐 별거 없다. 좋은 친구 사귀고, 시키는 대로 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금방 모든 게 끝나 있을 거다.”

“그래?”

“제1반 같이 특수한 곳을 제외한다면야 굳이 귀족이 죽음을 무릅쓸 위험은 없겠지. 애초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거긴.”

속으로 뜨끔했다.

제1반으로 들어갈 생각이 넘쳐났지만, 어차피 위험 해봐야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죽지도 않는데.

그 외에도 형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회귀를 했다 하더라도 아카데미를 다닌 적 없기에, 귀담아들을 만했다.

기숙사부터 시작해서,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되는 파벌 싸움.

귀족 자제들이 모여드는 곳이었기에 정치질은 아주 당연하다시피 했다.

공후백의 고위 귀족들에게 모여드는 줄타기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괴롭힘 같은 다양한 문제.

“너무 당해주지만 않으면 괴롭힘당할 일은 없을 거다. 예전에는 걱정이긴 했지만, 지금의 네가 당할 일은 없을 테고.”

유약한 과거의 나라면 확실히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할 거다.

반대로 광증에 걸린 시기엔 사지를 찢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죽이진 않겠지.

죽이지만 않을 거다.

“...적당히만 해라, 많은 걱정은 하지 않겠다.”

“나중에 보자.”

“그래, 방학쯤에 꼭 본가로 내려와라.”

그리고 여전히 울상인 아리엘이 칭얼거렸다.

“으아앙, 가지마아아아.”

“누가 보면 내가 죽으러 가는 줄 알겠다.”

내 옷에 들러붙은 아리엘을 겨우겨우 때어네며, 아카데미로 출발하는 마차에 도착했다.

그 앞에는 캐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속 메이드로서 동행하지만, 아카데미에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인을 쓸 수 있는 학생은, 고위 귀족, 왕족으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시험에 합격한다면, 돌아가야 하는 건 캐론 혼자다.

그런데도 캐론은 기쁘게 날 모셨다.

“출발하겠습니다.”

캐론은 이번에도 나와 같이 마차에 탑승했다.

아직도 미련을 놓지 못한 아리엘이 저 뒤편에서 저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험에서 떨어져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 버려라!”

“푸흡.”

“...이해가 안 되네.”

캐론은 저 모습에 못 참겠다는 듯, 웃고야 말았다.

나는 다소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갈 수밖에 없는데, 저리 막아봐야 무슨 의미인가.

게다가 시험에 떨어질 일도 없고.

캐론이 내 심정이라도 읽었는지, 마치 아리엘을 변호하듯 말해주었다.

“아가씨가 도련님을 정말로 좋아하니까 그런 거죠.”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잠시나마 떨어지는 건 맞으니까요.”

“...그래.”

다른 이들의 심정이야 차차 이해하면 될 일이다.

아카데미로 가는 건 멀지 않았다.

마차는 굴러갔다.

매일같이 야영하고, 맛없는 식사를 하며, 쳇바퀴 굴러가듯 비슷한 일상들이 지나간다.

그런데도 마차는 나아갔다.

흙바닥에서 돌길이 생겨났고,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상단이나 사람들이 보였다.

도시에서 하루 잠을 자기도 했으며, 다시 여정에 필요한 물건을 매입한 뒤에 더 달려가다 보면, 여태껏 보았던 도시 중에서 수도 다음으로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여정의 끝이자,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아카데미.”

도시의 중심에 세워진 웅장한 건물.

아카데미에 입학하려 타국에서도 넘어올 정도의 교육시설.

기다란 줄이 아카데미 앞에 서 있었고, 그 중심에는 입학시험 신청을 받는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