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 루란키스는 이번 시험의 만점자가 되겠다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보다는 확신이었다.
그녀와 같은 천재는 없을 테니까.
보통이라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들어가는 마탑 출신.
그것도 마탑에서 애지중지하는 유망주다.
최연소 장로를 기대받고 있을 정도로.
남들은 마법사로서 아카데미에서 첫걸음을 뗐을 때, 그녀는 이미 마탑에서 달리고 있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쯤이야.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 바로 앞에 앉아있는 소년.
다소 허약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은 그녀와 비슷한 속도로 문제를 풀어내고 있었다.
...인상만 본다면 공부 참 잘하게 생긴 건 맞다.
‘하지만 절 뛰어넘을 순 없죠!’
그런 각오 아래에 순식간에 열두 종류가 넘는 시험을 풀어내고 있었다.
저 소년 또한 비슷한 속도로 시험지를 풀어냈다.
마음만 같아서는 대체 누구인지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필기시험이 끝날 때까지 수험자끼리의 대화는 엄금.
그러는 사이에 호기심과 답답함만 커져 왔다.
“마지막으로 마법학 시험입니다.”
지옥과도 같은 릴레이의 끝이 보였다.
마법사, 그것도 마탑의 마법사였던 프랑이 가장 자신 있을 수밖에 없는 시험이다.
그녀는 앞에 있는 소년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이거만큼은 당신이 이길 수 없어요!’
저 소년이 마법사면 모를까, 아무런 마나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조금 똑똑한 사람일 뿐.
그래도 마법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지, 소년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마구잡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보다도 더 빠르게 풀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시험지를 받아든 프랑은 첫 번째 문제를 보자마자 헛숨을 쉬었다.
‘4대 원소의 혼합 기초학? 세상에 어떤 아카데미가 이걸 입학시험으로 내놔요?!’
혹시나 하고 다른 문제들을 살필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혀온다.
마탑의 장로님들도 출제자가 누구냐며 쌍욕을 내뱉을 만한 고난도 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깔려 있던 것이다.
만점이 여태껏 없었던 건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미친 듯이 어렵게 내서 그랬을 뿐.
프랑은 손을 벌벌 떨며 첫 번째 문제부터 풀어나갔다.
암만 그래도 마법사로서 자부심을 가진 그녀이기에, 머리가 깨져가는 걸 느껴가며 억지로 꼬아놓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주변의 소리가 한 줌도 들리지 않는 초집중 상태.
마지막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마지막 단 한 개의 문제만을 남겨두고 프랑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건 풀 수도 없는 문제잖아요.”
마법의 극의에 대한 서술.
그야말로, 표현이라도 할 수 있다면 고위의 마법사로 인정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또한 이 서술을 완성이라도 시킬 수 있다면, 그건 곧 초월자를 의미했다.
극의에 이른 건 대륙에 몇 없는 대마법사뿐.
그녀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거의 막바지까지 다가가고 있지만, 소년은 여전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래도 마법 분야는 제가 앞서네요.’
그리 생각하며 콧대를 세우던 프랑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소년이 하는 건 정답을 체크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마법학 시험의 유일한 서술형은, 마법의 극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마지막 문제 하나뿐.
“...말도 안 돼요.”
“거기 수험생, 조용히 하세요.”
프랑은 시험관에게 지적을 받았지만, 벌어지는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저 소년이 딱 펜을 내리자, 시험관들이 시험지를 걷으러 왔다.
한 장씩 걷으며, 소년의 것을 걷어가고, 마지막으로 프랑의 것을 걷어갈 때.
“잠, 잠시만요!”
촤악-!
프랑은 자기 시험지에 체크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 척하면서, 그 밑에 있는 소년의 시험지를 시험관에게서 가져왔다.
시험지에는 프랑이 생각했던 정답이 모두 쓰여 있었다.
이것도 말이 안 됐지만, 이보다 불가능한 것이 눈에 보였다.
가장 마지막.
마법의 극의에 대한 서술.
알기만 한다면 대마법사가 되는 궁극의 마법.
“아….”
그것을 보자 프랑은 경외를 느꼈다.
그 어떤 장로도.
하다못해 탑주마저도 알려주지 못하는 것.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여태껏 봐왔던 것 중에서 극의에 가까운 술식이었다.
펄럭-
“시험 종료된 이후에 시험지 정답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시험관이 다시 시험지를 거둬 갔지만, 프랑은 도무지 방금 보았던 술식을 잊을 수 없었다.
멍하니 있던 그녀는 바로 앞에서, 소년이 시선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알아봤네.”
프랑은 충격에 도무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
마법의 극의.
용사파티의 대마법사랑 목숨 걸고 싸우면서 여러 번 보았던 것.
그거 덕분에 흑마법이 상당히 발전했다.
어지간한 흑마법을 무영창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상 공상의 영역을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것도.
극의를 보았던 덕분.
“그걸 알아본다고.”
솔직히 평범한 사람, 아니 상당한 재능의 마법사조차 보고도 모른다.
나야 이걸 수 십 번은 처맞아가면서 죽었기에 겨우 깨우친 거지.
이걸 단 한 번에 보고 극의임을 알아보려면, 말도 안 되는 천재야만 성립된다.
“그런 녀석을 내가 모른다고?”
최소 마탑주, 최대 대마법사.
그러한 괴물을 모르기도 힘들다.
역시 이 또한 두 가지의 경우의 수.
죽거나, 평범한 삶을 살았거나.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한 국가가 무너지고 마왕에게 세상이 멸망하는 시대에서, 힘을 가지고도 조용히 은둔 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로 죽었다는 소리.
너무나 일찍이.
“어째서 죽은 걸까.”
이 또한 차근차근 알아봐야 할 문제다.
물론, 워낙 이번 대 아카데미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중에서 저 소녀 또한 휩쓸렸을 수도 있고.
시험을 끝마치고 나오자 기다리던 캐론이 날 모셨다.
“도련님, 시험 잘 보셨나요?”
“글쎄다.”
“기운 내세요. 아카데미 필기시험은 워낙 어렵기로 유명하니까요. 따로 준비 안 하면 보통 귀족 반에 들어가는 게 정상이죠.”
전부 다 커닝했기에 좋은 성적이야 나오겠지만, ‘잘’ 보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 잘 본건 딱 하나 있었다.
마법학 시험.
이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만점을 받을 것 같다.
게다가 캐론은 내가 실기도 치른다는 걸 몰랐다.
알았다면 실기에서 만회할 수 있다고 위로했겠지.
“시험 끝날 때까지 어디로 놀러 갈지 전부 짜 놓았습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쭉 돌면 시험 딱 끝나고 입학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로 실기도 신청했어.”
“네? 안 됩니다, 실기는 위험하잖아요!”
위험하다고 말릴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본디 마법사도, 검사도 아닌 평범한 귀족에 불과하니 그렇다.
그런 이가 대뜸 실기를 보기에는 위험하겠지.
“걱정 마라, 위험할 일은 없으니까, 그러면 언제든 도중에 포기할 생각이다.”
물론 그럴 생각 없다.
실기 최상위권 성적을 받아야지 앞으로의 일이 편했다.
“으으…. 알겠습니다.”
“남은 생활금은 알아서 쓰고 돌아가, 먼 길이니 여독을 잘 풀어야지.”
“영지에서 뵙겠습니다.”
캐론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몸을 뒤로했다.
아쉬움과 걱정이 잔뜩 남아있는 표정이나, 내가 하겠다는 걸 막을 순 없었는지, 캐론은 조용히 물러났다.
“실기 시험 응시자분들! 모여주세요!!”
필기가 끝나자마자 실기 시험이 바로 뒤잇는다.
필기의 경우 아카데미 외부 건물에서 했다면, 실기는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확실히 이전하고 다르게 인원수가 줄어들었다.
머리가 똑똑한 자는 많아도, 강력한 무력을 지닌 개인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 중 절대다수는 귀족이었다.
보장되어있는 환경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건 오직 귀족뿐이니까.
혹은 돈이 많은 부유한 평민이거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훤칠한 미모에 카리스마까지 있어 보이는 검성(劍星)부터 시작해서.
시험 접수 때 보았던 창성.
내가 커닝했던 대상인 큰 고깔모자의 소녀.
그리고 저 너머에 가장 앞서서 나아가는 고귀한 자.
용사.
회귀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
아직 소녀 시절의 용사를 여기서 보다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토록 견고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았던 자의 풋풋한 시절이었기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용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시선을 느낀 건지 용사는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뜻 보더라도, 나를 향한 용사의 감정은….
상당한 적의였다.
“...내가 뭘 잘 못 했나?”
회귀 전에 잘못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걸 용사가 기억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저런 적의를 가지기도 힘들었기에.
의문에 들던 참에, 나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아르갈!”
활발한 분홍빛의 머리. 더 없이 타오르듯 붉은 두 눈.
그녀는 날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라엘리 카리스.
꽤 오랜만인 것 같다.
“반갑다.”
“영지로 돌아가다가 납치되고, 엄청나게 다치기도 했다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거짓말은, 그랬으면서 무슨 실기를 봐?”
그러면서 라엘리는 내 손을 확인했다.
최근 단검으로 찌를 일도 없었고, 치료가 잘 돼서 뽀송뽀송한 피부만 보이는 왼손.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 나았네.”
“시간이 지났으면 나을 법하지.”
“다 나은 건 나은 거고, 너, 실기를 볼 수 있겠어?”
라엘리의 질문은 단순했다.
그러니까, 실기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를 잡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냐는 질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도무지 못 믿겠는데?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지켜줄게.”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냐, 무조건.”
그녀의 시선에 기이한 집착이 느껴졌다.
“내가 지켜줄게.”
“아니, 필요 없….”
“지켜준다고.”
“그래.”
여기서 거절을 한다면, 끝없는 씨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수긍했다.
라엘리는 그제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수험생분들은 절 따라와 주세요!”
“가자!”
시험관은 우릴 통제하며 아카데미 내부의 체력 측정실로 데려간다.
라엘리는 내 손을 붙잡고 앞으로 끌고 갔다.
손까지 잡을 필요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녀가 원하는 데로 끌려가 주었다.
그러던 때였다.
**
프랑은 실기 시험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소년을 찾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조금이라도 단서를 얻기 위해서.
원래라면 필기 시험장에서 잡아야 했는데, 그녀가 멍을 때리는 사이에 소년은 바로 시험장에서 나가 버렸다.
그렇지만 밖을 나도는데도 결국 찾지 못했고, 여기에 이어서 실기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프랑은 세상 억울해서 아예 시험까지 포기할 생각을 할 지경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극의’의 단서를 놓친 셈이니까.
“아, 아니에요. 그래도 원래 목적을 잊어선 안 되겠죠.”
두 번째 방법이 있었다.
용사파티의 대마법사가 되는 것.
이 또한 자연스럽게 극의를 습득하고 초월자가 되는 길이다.
“아니면 그 소년도 실기 시험장에 있을 수도 있죠!”
애초에 필기를 봤다는 건, 실기도 볼 수 있다는 소리.
그렇기에 프랑은 아주 열심히 실기 시험장을 들어선 순간부터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이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건 아닌지 금방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머리의 검은 눈.
몸이 안 좋은 건지 얼굴이 약간 창백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프랑은 발견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붙잡으려 했으나, 먼저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아르갈!”
분홍 머리의 어느 귀족 소녀.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어 기사 지망생으로 보였으나, 프랑에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말을 걸 기회를 빼앗겨 버렸으니.
“이러면 안 되는데요….”
그래도 근처에서 저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 들리는 건 아니지만, 드문드문 듣고 있던 프랑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가 아르갈을 지키겠다고?
고로,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왔다.
“누가, 누굴 지켜요?”
대놓고 꺼내었던 말이었기에 라엘리는 고개를 돌려 프랑과 마주했다.
“뭐라고?”
“누가, 누굴 지키냐고요?”
프랑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극의를 알고 있는 마법사가 누구에게 지킴 받을 급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욕적일 지경.
그러나 라엘리에게는 저 말이 달리 들려왔다.
그녀는 아르갈을 지키지 못했고.
그걸로 아르갈은 크게 다쳐버렸다.
오히려 아르갈에게 지킴 받았다.
그런 불명예를 가진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게 된 것이다.
라엘리의 두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