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18화 (18/69)

나는 생각했다.

얘네, 왜 싸우는 거지.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 시험장으로 가야 한다.

싸우려 해 봐야 제지당한다.

여기까지 와서 시험을 안 치르고 1대1을 할 수도 없는 법이고.

“내가 아르갈을 지키겠다는데, 넌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아무것도 모르네요. 당신이 지키겠다는 사람은….”

“그만.”

내가 중재하려던 순간 라엘리와 저 소녀가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라엘리는 날 존중하겠다는 느낌이고, 저 소녀는 무엇보다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향했다.

둘이서 작정하고 싸울 분위기까지 만들더니, 내가 한마디 했다고 바로 접어버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온도 차에 나는 잠시 황당했으나, 일단 해야 할 건 했다.

“네 이름이 뭐지?”

“프랑 루란키스에요.”

“그래 프랑, 라엘리에게 사과해라.”

저 소녀의 이름이 프랑인가?

아무튼, 일단 갈등을 시작했던 건, 프랑이었으니. 사과하라고 했고, 프랑은 더없이 깔끔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라엘리, 제가 실례를 했어요.”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너무 깔끔히 사과를 해 버리니 라엘리도 팍 식어버렸다는 눈치다.

엄연히 따지자면 프랑이 뭐 그리 심한 말을 한 건 아니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과하게 화를 냈다.

그리고 프랑이 저러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극의를 알고 있는 마법사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프랑에게 짧게 말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이야기 좀 나누지.”

“알겠어요.”

프랑은 어떻게든 대화를 할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하는 눈치다.

그만큼 마법사에게 극의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기에.

말다툼 때문에 잠시 시선이 몰리긴 했지만, 도중에 말린 덕분에 큰 사고는 생기지 않았다.

“후우, 뭐 저런 년이 다 있어.”

라엘리는 아직 분을 식히지 못한 모양인 듯하다.

그래서 손을 잡아 주었더니,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도 꽉 잡았다.

...내 손 뭉개지겠다.

괜히 잡아 준 건가.

시험관의 안내에 따라서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왔다.

“여러분들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커다란 무대와도 같은 장치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 번에 낼 수 있는 근력이나, 마력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곳.

시험관의 지시에 따라서 한 명씩 단상위에 올라가자, 기초적인 사항에 대해서 측정이 시작됐다.

“힘 C, 체력 B, 민첩성 C, 마력 D."

F부터 시작해서 S급이라는 단계가 존재했고, 저 장치는 대상의 상태를 파악해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듯싶었다.

대부분은 D에서 B정도의 선을 오갔다.

수험생이 많다 보니, 다소 지루하고 기다란 과정.

그런 와중에 터져 나오는 탄성이 들려온다.

“와.“

“S급은 처음이지?“

단상 위에 서 있던 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검성.

마치 쏟아지는 폭포와 같은 파란색의 머리, 두 개의 녹안.

세상을 제 잘난 맛으로 사는 녀석.

생각해보면 칭호에 성(星)이 달라붙는 이들은 성격이 밥맛이었다.

창성이나 검성이나.

둘 다 비슷하다.

검성은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니 창성에 비하면 인기가 많았지만, 그 속내는 더 더럽다고 할 수 있었다.

“힘 A, 체력 A, 민첩성 S, 마력 B."

“흠.”

마치 저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놈 봐라.

사람들은 대부분 잘난 놈을 보면 질투나 시기를 하겠지만, 검성은 얼굴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월등했기에 오히려 경외를 느꼈다.

게다가 검성의 가장 무서운 점은 검술 실력이었으니.

소드마스터에 이르는 별이, 고작 스텟 좋은 것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었다.

뒤이어서 좋은 스텟이 나온 이들은 대표적으로 창성과 프랑.

창성은 모든 스텟이 A, 프랑은 마력 S급을 받아냈다.

다음으로 라엘리도 나섰다.

“나, 갈게?”

“그래.”

라엘리는 약간 긴장한 듯싶으나, 단상 위에서 심호흡하고는 화면에 나오는 스텟을 살폈다.

뒤이어서 시험관이 읽는다.

“힘 B, 체력 B, 민첩 A, 마력 C.”

충분히 좋은 스텟.

그렇지만 라엘리는 무언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S급 하나라도 나오길 기대한 건가?

그건 좀 과도한 욕심으로 보이는데.

미래에 용사파티에 들어가 활약할 괴물들만이 받는 등급이다.

단상에서 내려온 라엘리가 말했다.

“으응, 좀 아쉽네.”

“충분히 높게 나왔는데?”

“그거야 그렇지….”

잠시 아쉬워하던 라엘리는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날 바라보며 말한다.

“근데 아르갈, 너는 걱정 안 돼?”

“뭐가?”

“스텟 측정을 하면, 좋게 나올 건덕지가 없잖아.”

확실히 내가 다양한 무력 수단을 활용할 수는 있어도, 실질적으로 겉으로 드러내는 건 거의 없었다.

마기야 단검에 보관하며, 새롭게 얻은 유물인 별의 근본은 당연히 신체 측정에서 포함될 리 없었다.

예상컨대 전 스텟 F 가 나오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네가 그런다면 다행이지만, 걱정 되는 게….”

“다음 수험생!”

라엘리는 무언가 말을 더하려 했지만, 날 부르는 시험관의 목소리에 끊겼다.

몸을 일으켜, 단상 위에 선다.

당연히도 짧은 시간 내로 측정한 결과가 나타났고, 시험관은 제 눈을 의심했는지 몇 번 살피다가 말했다.

“힘 F, 체력 F, 민첩 F, 마력 F.”

웅성- 웅성-

시험관이 기계 오류라도 났나 장치를 조정할 정도로 낮은 스텟이었다.

수험생들도 나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전 스텟 F? 대체 왜 실기 신청을 한 거야? 여기서 죽으려고?”

“최저 스텟인데 이 정도면.”

“저러다 시험 중에 민폐 끼치는 거 아냐?”

이 정도로 허약한 몸.

마나도, 마기도 존재하지 않는 무능력한 몸의 단점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우습게 보인다.

혐오, 동정,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단상에서 내려갔다.

라엘리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르갈, 그…. 괜찮아?”

“안 괜찮을 게 있나.”

저런 시선이야 의미 없었다.

어차피 내 진짜 실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강한 혐오.

증오, 적의, 비난을 경험해 왔으니까.

마왕군 간부이자, 불사자 아르갈이었을 시절에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시선도 잠시였다.

더욱 밝은 빛이.

어둠을 가려버렸으니.

“힘 S, 체력 S, 민첩 S, 마력 S.”

밝은 금발.

따분한 청색의 두 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단상 위에 가만히 서서 최고점을 받아냈다.

수험생들은 환호했다.

“역시 용사!”

“우리들의 구원자답다.”

“저 정도 돼야 마왕을 물리치지!”

그녀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마치 짧게 불어다 온 폭풍우처럼.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곧바로 용사에게 쏠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라엘리는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래?”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이건 너무.”

그녀가 보기에는 조금 가혹한 상황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전 등급 F로 조롱을 받았더니, 그 뒤에 용사가 나타나서 전 등급 S를 받았으니.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 아닌가.

내가 심적으로 상처 입었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에 상처 입을 이유도, 걱정시킬 필요도 없으니.

라엘리는 입을 몇 번 열다가 닫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앙다물었다.

이렇게 머리에 손을 얹으니 다른 이와 비교가 된다.

베시아는 약간 푹신푹신한 곱슬머리라면, 라엘리는 뻣뻣한 생머리인가?

“다음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테스트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스텟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도 어떨지 검증을 해야 한다.

시험관은 장소를 옮기면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이번에는 몬스터와 1대1로 직접 싸우게 될 겁니다.”

투명한 막 내부에는 커다란 마법진 하나가 깔려있었다.

본능적으로 저게 몬스터를 소환하는 마법진인 걸 알 수 있다.

어딘가 텔레포트 마법진과 유사했으니.

“몬스터? 많이 잡아봤지.”

“나는 사냥대회 매번 1등이었다고.”

몬스터를 몇 번 잡아봤다며 자신만만하게 구는 귀족들에게 시험관은 경고하듯 말했다.

“여기서 소환되는 몬스터는 고블린, 오크 수준이 아님을 알아두십시오.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몬스터의 척살이 아닌, 생존입니다.“

저런 살벌한 말을 하니 자신 있는 이들도 어느 정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먼저 나가라고 눈치를 보다가 순서 상 가장 앞에 있던 수험생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 내 앞에 있던 사람이다.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예, 들어가세요.”

투명한 막 내부로 몸을 들이밀자, 커다란 마법진이 빛을 내며 몬스터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의 괴물.

흉측한 근육, 머리에 달린 커다란 뿔.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마족이었다.

“어…?”

먼저 나선 수험생조차 저런 괴물이 튀어나올 줄 몰랐는지, 당황스러운 첫 마디를 남겼다.

-구어어어어어어어!!

장 내에는 의문과 경악으로 가득 찬다.

암만 아카데미 실기가 가혹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시험관은 이렇게 말한다.

“북부에서는 지금 끝없이 마물과 마족이 쏟아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소드마스터 께서 막아주고 계시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북부에 투입되어 적들과 싸워야 하는 운명.”

마물과 마족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고로, 우리들의 상대는 마족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건 총력전이 다가오기 전, 여러분들은 아카데미 생활 내내 마족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배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왕국에 위기가 찾아올 테니 너희들을 철저히 훈련된 병사로 만들겠다는 소리.

대부분 수험생들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고, 고위 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묵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왕국의 안정을 위해서 북부의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모양.

-구우어어어어어!

그렇다 해서 저기에 나타난 마족이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다.

이미 들어간 수험생은 날쌘 몸놀림으로 마족과 싸우기보다는 생존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도무지 버틸 수 없었을 때 보호막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1분 4초, 마족에게 끼친 피해 전무, 마족에게 입은 피해 전무.”

결코 좋아 보이는 평가는 아니었다.

얼마나 버티느냐, 버티면서도 마족에게 공격을 가했느냐, 또한 마족에게 어떤 손해를 입었느냐.

그러한 세 가지 항목을 종합하여 나온 결과.

“종합등급 F.”

“이건 말이 안 돼요! 다시 한 번만 더….”

“가장 처음으로 시도했으니 한 번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냉혹하게 쳐내지는 않는 모양이다.

수험생은 아까는 당황해서 그랬다는 듯, 그는 조금 더 좋은 점수를 받아낼 수 있었다.

당당히 어깨를 끌어올리며 보호막 바깥으로 나간다.

다소 상처를 입긴 했으나, 마족과 당당히 맞섰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종합등급 C.”

일반적인 학생 수준이라 할 수 없는 마족을 이기기는 힘든 게 당연했다.

이런 지형지물도 없는 환경에서 버티려면 최소한 검을 맞대야 하는데, 그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아마 이번 테스트는 마족 앞에서 얼마나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모양.

아무리 기초스텟이 좋고, 힘이 강하더라도 겁쟁이라면 결코 마족을 이길 수 없다.

내부의 분위기는 어둡게 가라앉았다.

암만 그래도 마족 앞에서 용기를 내는 이는 많지 않다.

약한 것도 아닌, 엄청나게 강하기도 하니.

어차피 순서상 내가 다음 차례였으니 나오려 했으나.

나를 제치고 다음으로 나선 사람이 있다.

“저 마족, 죽이면 얼마의 점수를 받는가?”

검성이 몸을 일으켰다.

용사 다음으로 가장 좋은 스텟을 받은 남자.

그런 이가 마족을 잡아 죽이겠다고 말한다.

“세세한 수치 따지지 않고 종합등급 S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스릉-

검을 뽑아 든 검성이 천천히 마법진 이내로 걸음을 옮겼다.

“1분 내로 잡아 주지.”

그러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는 기이한 미소를 짓더니 날 향한다.

“아니, 그래도 순서는 양보하는 게 좋겠지.”

원래 테스트는 앉은 순서대로 치르는 게 정석.

그래서 원래 내가 먼저 하려고 하긴 했다.

검성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

용사가 전 등급 F를 받는 나 다음에 등장했기에 더욱 대비됐듯이, 검성도 그런 효과를 누리고 싶었던 거다.

“네가 먼저 하는 게 어떤가?”

...하여간 이름에 별 들어간 놈들이 하나같이 개차반이다.

그러나 검성, 네 생각은 꽤 잘못됐구나.

저 마족 하나 찢어 죽이는데.

10초면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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