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19화 (19/69)

“잠깐,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라엘리는 검성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대충 추측했는지, 심히 기분 나빠 했다.

자신이 돋보이려고 남을 이용하겠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뭐가 안 되는 거지?”

오히려 검성은 자신이 뭘 그렇게 이상한 짓을 했느냐며 되묻는다.

다른 수험생들은 검성이 괴물을 죽이는 모습을 기대해서인지, 나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부추겼다.

“어차피 금방 떨어질 텐데 지금 떨어지는 게 낫지 않아?”

“빨리 들어가고 빨리 나와, 저 잘난 놈이 마족을 어떻게 때려잡을지 궁금하니까.”

“모든 수치 F급이면 한 대 맞으면 뻗는 거 아니야? 푸흡.”

직전에 있었던 스텟 측정의 영향이 무척 컸다.

나보다 스텟이 낮으면 나의 아래.

높으면 나의 위.

이러면서 서로 간의 등급을 나눠버리고 있었으니까.

그중 올 F를 받은 나는 최하급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이때.

이런 인식을 뒤집을 수 있었으니까.

검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지.”

“야, 너!”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나는 라엘리에게 목에 걸려있는 별의 근본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별의 근본은 모르더라도, 적어도 강력한 한 수는 가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겠지.

내가 장담하니 라엘리도 믿음을 가지고 참았다.

“다치면, 안 돼.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그래.”

보호막 내부로 나아갔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이는 없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는 프랑.

잘 못 되는 순간 당장이라도 뛰쳐나오려고, 검집의 검을 꽉 잡은 라엘리.

그렇다면 아주 자그마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 될 일이다.

보호막을 통과한다.

통과했을 때, 사람의 냄새를 맡은 괴물이 고개를 쳐들며 머리를 나에게 향했다.

엄연히 따지면 하급 마족.

그래, 회귀 전이었다면 나한테 머리를 처박으려 안달 난 녀석이다.

하다못해 고위 마족쯤 되어야 나와 맞먹으려 들겠지.

-그우어어어어어어!

조금 전에 사냥감을 놓친 탓인지, 저 마족은 더욱더 흉포해졌다.

검은 피부 위로 올라오는 핏줄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날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모양.

내 마음만은 편안했으나, 이걸 지켜보는 이들은 아닌 듯싶다.

“야, 야 저러다 죽는 거 아냐?”

“뭐해 안 나오고!”

마족이 달려들었지만,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별의 근원을 이용하기 위함이지.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은다.

“근원이여.”

한 마디에 시작한다.

목걸이가 강력한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근원 중심에 있는 별이 뱅글뱅글 돌더니 어느덧 보이지 않을 속도로 회전했다.

위이이잉-

별의 근원이 지닌 사기적인 능력.

바로 마나 증폭.

10초마다 두 배, 네 배, 여덟 배, 열여섯 배.

100초만 있어도 무려 기존의 마력이 1,024배로 늘어나는 기적을 창출하는 유물.

그러니 안 그래도 많은 마나량을 가진 대마법사가 이걸 쥐고 있으면 개사기인 거다.

한 40초만 증폭해도 도시를 때려 부술 수 있는 메테오를 떨굴 수 있으니.

주변에 퍼져나가는 빛줄기에 따라 마법진이 그려진다.

마법진은 강렬한 푸른빛을 내었다.

마나가 가진 성질이었다.

“이것만큼은 익숙하지 않아.”

맨날 검은색 마법진을 그려서 그런가?

푸른빛의 마법진이라니.

만약 흑마법을 왼손에, 마법을 오른손에 전개한다면 그 꼴이 제법 볼만할 것 같았다.

한쪽은 검은색의 마법진이, 다른 한쪽은 푸른빛의 마법진이 그려질 테니.

-그어어어어어!

어쨌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저 앞에 있는 하급 마족 따위를 죽이는 거지.

손가락이 움직인다.

거기에 맞추어 마법이 쏟아진다.

밝은 빛이 마족을 뒤덮었고, 아주 짧게 마족의 비명과 살 더미가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마족은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치이이익-

남은 건 오직 깊게 파여있는 바닥뿐.

한 줌의 숨소리 없는 정적이 주변을 뒤덮었다.

**

프랑은 기분이 무척이나 나빴다.

아르갈에 대한 모욕이, 곧 자신에 대한 모욕처럼 들려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극의는 모든 마법사가 바라는 것.

고로 아르갈이 도달한 지점은 곧 프랑이 지향하고 있는 종착점이었다.

이른바 롤모델.

그런 롤모델이 남들에게 모욕당하고 저평가 당하고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가.

신체스펙 전부 F?

고작 그것으로 저 남자를 폄훼하는가?

저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너희 모두 매달려도 발끝조차 닿지 못할 경지인데?

“일단, 참아야죠.”

그녀가 본 아르갈은 소란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오히려 나서다가 미움을 받긴 싫었으니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프랑의 명석한 두뇌는 아무런 마나도 보유하지 못한 아르갈의 상태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다.

“대마법사가 마나를 잃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요….”

최대한 가능성을 넓혀보면, 마나를 대가로 지식을 얻는 마법사도 있기는 했다.

그리고 마법사는 바보가 아니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사라져버린 마나를 케어할 방법을 마련 했을 거다.

그것은 프랑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르갈의 목걸이.

미미하지만, 지속해서 목걸이에서 마나가 흘러나왔다.

신체 측정은 일단락됐다.

문제가 생긴 건, 시험관이 수험생들을 이끌고 또 다른 측정실로 왔을 때.

푸른색 머리의 남자가, 아르갈에게 시비를 건 것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시비보다도 더 고약했다.

내 돋보임을 위해, 발판이 되라는 소리였으니.

“이건 저도 못 참아요.”

그녀는 가감 없이 나서려 했다.

일어서고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프랑이 뭘 하기도 전에, 아르갈은 내부로 들어가 직접 마족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프랑은 아르갈이 무언가 보여 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건 곧 경악으로 이어졌다.

끝없이 증폭되는 마나.

말도 안 되는 마법진 설계 능력.

뒤이은 무영창까지.

“도, 도대체 단 한 번의 마법에 얼마나 다양한 수단을 쓴 건가요?”

다중영창, 무영창, 입체마법진, 마법설계, 마법가속, 마나장악.

하나하나 몇 년을 소모하여 겨우 활용할 법한 수단들이, 아르갈은 단 10초 만에 구사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마법은 어떠한 실패도 없이 그대로 마족을 녹여버렸다.

우우웅-

커다란 빛과 함께 잔존하는 소음.

잠시나마 찾아온 고요 뒤에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웅성- 웅성-

“말도 안 돼.”

“한 번에 녹여버렸어.”

마법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건 엄청난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펼쳐진 마법진과 숨 한 번 쉴 법한 속도로 쏘아진 라이트닝빔.

그것을 아르갈에게 기대한 수험생은 아무도 없었기에.

오히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인지부조화였다.

“방, 방금 저 녀석이 찬 목걸이에서 빛이 났잖아?”

“그치, 그럼 유물로 강한 공격을 쏘아낸 거 아냐?”

“그럼 설명이 되네, 아무런 마나도 없는 녀석이 어떻게 저런 마법을 구사하겠어?”

프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마나만 빌려온 것이다.

감당 못 할 대량의 마나로, 저런 불가해에 가까운 짓은 우리 마탑주님도 못한다!

너무나도 멍청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들에 탄식하면서, 한숨을 쉬었으나.

“부정행위다.”

여기서 더 한 걸음을 내딛는 멍청이가 있었다.

**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무엇이?”

“네 목걸이에서 흘러나온 마나, 시험에 유물을 활용하는 건 너 자신의 힘이 아니다.”

검성은 자기가 시험관이 아니면서도.

당당히 말했다.

“그러니 부정행위다.”

그의 말이 주변에도 호응을 받았다.

나름 마력치도 높은 검성이 저런 분석을 했으니, 여기에 동조하는 거다.

“기물에 의존하는 게 어디 정정당당한 거야?”

“반칙이지 완전.”

나는 천천히 고민했다.

아니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가.

한 번 참아주었고.

두 번째는 나로선 좀 과한 편이지.

검성이 무슨 말을 이으려고 입을 벌리던 참이었지만.

틱-

그의 한쪽 뺨에 아주 얕은 자상이 생겼다.

“다시 한번 더 말해 보아라.”

검성의 시선은 어느 순간 생겨난 나의 단검에 향했다.

검의 달인답게, 내가 방금 한 것은 유물에 의존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동시에 별의 근본이 마나를 증폭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검성을 짓누른다.

아마 이 시점의 검성은 이러한 압박 자체가 처음이겠지.

마왕군 간부는커녕, 중급 마족조차 만나 본 적 없으니.

어떤 대응을 보여줄까 기대를 하고 있던 참에.

과거 마왕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검성이.

지금 내 앞에서는 강한 압박에 허리를 숙였다.

...역시 이때는 애송이긴 하구나.

“....미안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검성의 뜬금없는 사과에 장 내의 사람들이 당황했다.

대부분은 내가 뭘 했는지도 목격하지 못했으니까.

짜증 나는 것은 검성이 상황 파악은 잘한다는 것.

창성이야 얼씨구 좋다고 하고 맞다이를 깐다면, 그는 위험한 상대를 앞두었을 때 몸을 사릴 줄 알았으며.

“내가 한 잘못을 사과하겠다.”

그 어떤 굴복도 수용했다.

“널 우습게 보았으며, 네 실력을 보지 못하고 부정행위라 했다.”

그렇게 꾸벅 고개를 숙인 검성이, 몸을 돌려 시험장 내부로 들어갔다.

...아직 용서 하지도 않았건만, 자기가 저렇게 굴복을 보여주었으니 용서해줄 것이라 제멋대로 생각한 모양이다.

역시 제 잘난 맛으로 사는 놈답다.

“수험생, 다시 안 돌아갑니까?”

내가 자리에 앉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시험관은 의아하다는 듯 날 바라보며 지적했다.

어차피 저놈, 나오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시험관이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 경고도 하기 전에, 검성은 마족을 잡았다.

여기까지 고작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그를 불렀다.

“라인하르트.”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모를 리가.”

너의 검에 내 목이 열다섯 번은 떨어졌으며.

내 단검은 너의 발끝에도 닿지 못했으니.

그런 상대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건 불사자가 아닌 뇌가 없는 언데드겠지.

그리고.

어딜 내빼려고.

쿵!

“컼!”

털썩-

단검의 손잡이로 라인하르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대로 얻어맞고 쓰러져버린다.

이제 좀 시원하네.

무적의 검술을 구가한다면서 내 흑마법을 다 막아버린 탓에, 그에게 한 방 먹인 적이 없었다.

회귀해서야 이렇게 한 번이라도 때려본다니.

나름 소원 성취인 건가.

라인하르트는 금방 일어나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잠시나마 일격에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한 웃음.

그는 말없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나 또한 내 위치로 돌아갔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아냥거렸던 수험생들은, 깜짝 놀라며 서로 작은 목소리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뭐야, 조금 전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저 목걸이의 힘만 있다는 건 아닌 건가?”

라엘리는 복귀한 날 보며 감탄했다.

그나마 그녀는 마법을 쓴 걸 어느 정도 알아 본 모양이다.

“확실히 자신감 있었던 이유가 있었어! 근데, 아르갈 너 마법 쓸 줄 알았어?”

"아니, 그냥 목걸이의 힘이다."

"그래? 그 목걸이 대단하네."

아직은 그녀에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혼담 상대였던 그녀가 보기에는 나는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목걸이의 힘이라 하니, 저렇게 쉽게 납득을 하는 거지.

딱히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온 공자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당장은 부정했다.

다행히 목걸이로 이를 변명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까지 숨길 생각은 없고, 나중에 알려주면 되겠지.

상황이 일단락되었으니 다시 테스트는 진행되었다.

마족과 싸우는 테스트에서 F급을 받는다면 낙제였다.

그 즉시 여기서 짐을 싸고 떠나야만 한다.

물론 필기를 잘 봤다면 다시 종합반에 들 기회가 있겠지만, 실기를 치르는 수험생 중에서 필기를 신경 쓴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퍼걱!

-끄어어어억!

“....1초, 마족에게 끼친 피해 압살, 마족에게 입은 피해 전무.”

그런 와중에도 용사는 1초 만에 마족을 죽여버렸다.

...검성은 몰라도 용사는 별의 근본만으로는 못 이길 거 같은데.

어찌하든 그 많던 수험생 중 절반이 날아갔다.

그 중 라엘리는 나름 분전해서 B등급을 받아냈다.

그녀의 실력이 생각보다도 좋아졌다.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마기가 깃든 고블린 하나 제대로 상대 못 하던 소녀가, 마족과 분전하는 건 대단한 성취였다.

내가 알아보지 못한 재능이라도 있던 건가?

시험관은 남은 이들을 모아서 실기 시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실기는 실제 마족이 숨어있는 숲으로 가는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동요했다.

S급을 받은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마족은 수험생에게는 하나의 벽이나 다름없는 괴물이었다.

그런 마족을 아무런 제한 환경 없이 싸우라?

누가 보더라도 자살 행위 아닌가.

여기에 시험관은 단호히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분은 그만두십시오. 여러분들의 목숨은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 말씀드리겠지만, 북부의 상황은 좋지 않으며, 왕국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시행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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