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20화 (20/69)

떠나는 수험생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자기 목숨을 걸어가며 아카데미에 합격하고 싶은 수험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험관은 정말 마지막까지 남은 수험생들을 보며 그들에게 격려와 앞으로의 보상을 이야기했다.

“이번 아카데미 과정이 여태껏 있었던 역사와는 다른 만큼, 졸업자에게는 남다른 특혜를 받을 것이라 보장해 드립니다. 평민은 북부에 올라가 활약을 약속한 순간 귀족이 될 것이며, 귀족 여러분 또한 가문 전체가 승작 될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보상을 약속한 것이다.

북부에만 올라가도 귀족이 될 것이며, 귀족은 승작한다?

500년의 역사를 살피더라도 전례가 없었다.

정말 대단한 공을 세워야만 귀족이 될 수 있으며, 승작 역시 비슷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고민하던 수험생조차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정말로 승작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던 이들도 있다.

“정말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북부로 가면 승작할 수 있나요?”

“왕태자께서 보장하신 내용입니다. 여기에 관련하여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내뱉은 말을 뒤집지 못하는 왕의 핏줄이 하는 보장.

수험생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전말을 알고 있던 나는 왕태자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덫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말 달콤한 보상이 약속되어있기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덫.

도대체 어떠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기에, 이런 덫까지 준비해 둔 걸까?

이러다가 또.

누굴 구하기 위해 죽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선, 오늘은 하루 쉬도록 하지요. 자세한 일정은 내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험관은 아카데미 내부의 기숙사로 들어가 잠을 잘 수 있도록 열쇠를 나눠주었다.

여기에 S등급을 받은 이는 혜택으로 1인실을 받았다.

S급은 해 봐야 다섯.

나, 프랑, 용사, 검성, 창성.

고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4인실이라는 소리.

라엘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1인실 열쇠를 보고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부럽다. 룸메이트 없이 혼자 잔다니, 진짜 편하겠네.”

“그렇긴 해.”

혼자서 방을 쓰는 게 나쁠 리가.

그야말로 특별 대우를 해 주는 거다.

S등급을 받은 수험생은 다섯뿐이니까.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라엘리는 내가 지닌 목걸이에 관해서 물어봤다.

“그리고 그 목걸이, 어떻게 얻은 거야?”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이미 준비해 놓았다.

라엘리는 내가 납치되고 교회가 구해주었다는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점을 이용해서 말해 주면 되겠지.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고.

“주교님이 주신 거야.”

“아…! 확실히 교회의 물건일 테니 마족을 잘 잡겠다.”

그녀는 마법은 물론이고 신성력에도 문외한이라 그런지, 별의 근본이 마족을 잘 잡을 거라는 착각을 했다.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은.

혼담 상대이기도 한 라엘리가 알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니까.

기물의 힘이라고 착각하는 게 더 나았다.

내가 가야 할 기숙사의 방향과 라엘리가 머무는 기숙사의 방향은 달랐다.

그녀는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조금은 허름한 건물로 방향을 틀었다.

“내일 보자~!”

“그래.”

나도 손을 흔들어 주며 그녀와 헤어졌고, 1인실 열쇠에 맞는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등 뒤를 따라오는 이가 있었다.

“프랑.”

“네!”

그녀는 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을 잡았기에, 언제 오나 했더니 라엘리와의 충돌을 고려해서 일부로 늦게 온 모양.

확실히 머리 돌리는 게 빠릿빠릿했다.

여기에 프랑도 S등급을 받고 1인실을 얻은 마법사.

1인실은 남녀 구분이 없었기에 같은 방향이었다.

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누면 됐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뭐지?”

“그…. 극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예상한 질문이다.

극의를 알아볼 수 있는 마법사는 거기에 대한 갈망도 엄청났다.

그녀 정도로 똑똑한 두뇌를 지닌 마법사조차도, 무언가 계획을 짜기보다는 다짜고짜 물어보고 마는 것이다.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으니 프랑은 애가 탔는지 안절부절못한다.

“아니, 티끌만이라도, 작은 단서 하나라도, 알려주세요!”

닿을 수 없는 염원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느껴진다.

내가 이런 마법사를 얼마나 보았던가.

과연 보여줘도 되는가.

약간의 의문 끝에 결정했다.

“알고 싶나?”

“네, 네 앱!”

알고 싶다는데 보여줘야지.

별의 근원에서 마나를 뽑아온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점 하나하나를 이으며 아주 작은 편린을 형성한다.

“와아….”

프랑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이루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극의를 알아볼 수 있는 마법사이기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기에.

그렇기에 느끼는 감격이다.

딱-

“아앗.”

그러나 손가락을 튕기는 동시에 천천히 전개되던 마법진들이 일소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것이, 사라졌기에 아쉬움과 탄식이 가득했다.

“여기까지.”

“아아아….”

술에 취한 것처럼,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휘청거린 소녀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다시 날 바라봤다.

어차피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 한, 대단한 의미가 있긴 어려웠다.

조금 더 보여줄 순 있겠지.

“...다른 건 다음에 보여주지.”

“다음에도요?!”

“그럼 이게 마지막인 줄 알았나?”

다시 얻을 수 없는 기연을 또 마주할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인 프랑.

그러는 동시에 그녀는 이성적인 마법사로서 의문을 느꼈다.

“말, 말이 안 되니까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정말 보여준다고요?”

“네가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그, 그….”

프랑은 열심히 눈알을 굴렸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무턱대고 내놓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귀하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는 건가?

“있기는 한데….”

“됐다. 받을 생각 없어.”

“정말로요?”

차라리 다른 게 나았다.

저런 재능에도 일찍 급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

가능한 한 살린다면 마왕을 죽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신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된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어떤 거라도 괜찮아요.”

“이번 시험에 나와 동행해라.”

“그 정도야 언제든 가능하죠!”

동료 영입 겸,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을 보호할 겸으로 한 제안이다.

어째 프랑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문득 라엘리가 떠올랐다.

내 옆에 프랑이 있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강한 마법사를 영입했으니 좋아하려나?

이미 한 번 싸운 걸 보니까, 서로 사이가 안 좋을 듯싶은데.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어느덧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다.

라엘리가 들어갔던 기숙사하고는 다르게 새 건물에다가 호화스럽기까지 했다.

어디 호텔이라도 온 심정.

“그럼 아르갈, 내일 뵈어요.”

프랑은 평소에도 풍족한 삶을 살아서 그런 건지, 이런 호화스러운 곳에서도 익숙하게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도 열쇠로 방문을 열자, 그 특유의 고급 목제에서 나오는 향기가 콧속을 침범했다.

침대도 가문에 있던 것보다도 좋았다.

아니 그냥 내 방보다 더 좋아 보인다.

더 크고, 더 좋게 장식되어 있고, 화장실에다가 식탁까지 있었으며, 짐을 정리할 장롱도 놓여 있다.

“...오늘 밤은 아주 편안하겠는데?”

이거, 한미한 시골구석 본가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밤이었다.

**

아침이 되었고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정확히는 방 내부가 아니라 아래에서.

두 눈을 문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살짝 뇌 정지가 오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프랑, 용사, 검성, 창성.

저 네 명이 각자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식사하고 있었다.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다.

“왔나요?”

프랑이 반갑게 인사를 했고, 별 두 개짜리 개차반들은 본체만체하며 음식이나 섭취했다.

용사는…. 말을 말자. 이젠 날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내가 알던 용사가 맞나?

그녀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나, 어차피 지금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용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국 적대하는 건 마왕.

마왕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존재.

나아갈 길만 잘 인도하면 됐지, 그녀와 굳이 많은 호감을 쌓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 일단 식사하기 위해 그릇을 들고, 음식을 담으려 했다.

프랑은 다 먹고 빈 그릇을 들고선, 내 뒤를 따른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른 지역의 음식이라 그런지 다소 생소한 게 많았지만, 이를 프랑이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박식한 요리 지식을 뽐내었다.

“콩피 드 까나르라고 오리 기름에 오랫동안 담가서 튀긴 요리에요. 많이 먹기에는 물리지만 딱 한입에 천하 진미를 느낄 수 있어요.”

“다양한 해산물을 한 번에 끓인 요리로 이른바 부야베스, 이국의 말로는 해물잡탕이라 하지만 나름 고급요리에요. 비싸디 비싼 해물을 다 때려 넣어서 그렇죠.”

아주 자세하고 수준 높았기에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그리 잘 알지?”

“책을 많이 읽어봤으니까요. 수학, 사회, 문화, 역사…. 그러다가 요리책까지.”

필기시험에서 그리 자신 있게 풀이를 한 이유가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프랑이 추천해 준 음식들을 하나씩 담았다.

그녀의 요리 설명에 궁금증이 생겨서 담다 보니 내 그릇 위에는 금방 산처럼 음식이 쌓여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로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음식으로 가득한 그릇을 식탁으로 옮기려 했던 참이다.

그걸 무심히 건드리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면 말이지.

툭-

식사를 다 마치고 옆을 지나가는 창성이 내 손에 들려있던 그릇을 건드렸다.

그때 접시 그릇이 빙그르르 허공을 맴돌며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음식물이 허공을 비산한다.

철푸덕- 툭, 투두둑.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옷에 튄 건 없다는 건데.

창성은 자신의 인성을 자랑하는 건지 아무 말도 없이 쭉 나아갔다.

나야 한두 번 봤던 게 아니니 그러려니 했지만, 프랑은 당연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거기 당신, 사과도 안 해요?”

“...사과?”

창성은 왜 그런 걸 해야 하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는 너희는 길을 막아놓고 나한테 사과를 요구하는가?”

“많은 음식을 들고 있어서 길을 비키기 힘드니까 당신이 양보해야죠!”

“그럴 필요성을 도무지 못 느끼겠는데?”

역시 꼴통답다.

창성의 억지 논리에 프랑은 화를 도무지 못 참겠다는 건지 등을 획 돌리며 말했다.

“개념 없는 인간 상대 안 할래요!”

그것이 창성의 트리거를 건드렸다.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인가?”

한 손에 생겨난 묵빛의 창.

창의 끝부터 창대 끝까지 전부 통철로 이루어진 기이한 유물.

주인이 원하는 때에 형상화하여 나타난다.

나는 그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차라리 나중에 이런 일이 더 생기기 전에 인성교육을 해야겠다.

서로 전투하게 될 분위기가 됐지만, 프랑은 자신이 없던 건 아니다.

S등급을 받은 최고의 마법사이기도 했으니.

“하, 막무가내로 군다고 해서 제가 접어줄 거라….”

“아셀 몬트로즈.”

내가 앞으로 나서자 프랑은 말을 멈췄다.

창성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향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내기를 하자.”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별의 근본이 마나를 증폭시키기 시작한다.

이전과 마찬가지지만, 뒤에 용사가 지켜보고 있으니 단검의 마기를 쓰는 건 금물.

“내가 진다면 모욕에 대해 사과를 하지.”

창성의 유별난 특징이 하나 있다.

싸우기 전에 내기하면, 나온 결과를 무조건 지킨다.

그걸로 창성에게 특별한 걸 요구할 필요는 없었다.

창성이 되묻는다.

“그럼 내가 패배한다면?”

“앞으로 남들과 처음 마주했을 때 인사하도록.”

항상 무표정이었던 창성이 내 말을 듣고선 해괴한 얼굴을 했다.

뒤에 있던 검성의 풉, 하고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마력이 날 감싼다.

예절 교육의 시간이다. 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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