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움직인다.
아니, 움직이는 게 아니라 창이 점멸했다.
눈 깜박할 시간에 내 목을 향하여 창이 나아갔다.
마법사를 공략하는 방법.
바로 영창을 할 시간조차 안 주는 것.
그녀의 성격이 아무리 더럽더라도, 전투에는 초월에 이르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탕-!
창과 단검이 맞부딪친다.
창성의 두 눈이 커졌다.
그래, 마법을 시전 할 시간이 없다면 마법사가 약하긴 하다.
마법사들이 근접전을 못 하는 건 하나의 고정관념이 아닌 확립되어있는 사실.
마법사 또한 인지하고 있어서 먼 거리에서 마법을 쏘는 것을 원했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더더욱 근접전을 못 한다.
겁을 먹었기에, 경험조차 없기에.
캉- 캉-
그렇지만 죽지 않는 마법사가 여기에 있다.
칼부림이 나도는 전장에서도 겁먹을 이유가 없으며.
목이 날아가도, 팔이 잘려도, 심장이 파괴되더라도 끝까지 마법을 활용해 적을 쳐 죽였다.
이미 초월에 이른 검성, 창성을 쉼 없이 상대했으니.
나의 근접전은 이미 달인에 이르렀다고 보면 된다.
단검을 움직이는 동시에, 그녀를 향해 마법이 쏟아진다.
카가가가가각-!
쉼 없이 단검과 마법, 그리고 창이 부딪쳤다.
마나로 강화된 신체와 시야가 있기에.
정해진 근력을 뛰어넘어서, 그녀가 쏘아내는 창을 막고, 튕기고, 흘려냈다.
단검만이라면 창성을 이길 수 없었을 거다.
아무리 풋풋한 시절의 창성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냉병기를 다루는 실력은 월등했으니까.
하지만 단검으로 받아내기만 하는 동시에 허점을 찌르는 마법들은 창성을 버겁게 했다.
“후읍!”
휘익-!
오히려 근접전에 창성이 밀릴 지경이었다.
창성은 창을 크게 돌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날 더는 우습게 보지 않고 전력을 다 하려 했다.
두 눈은 또렷이 적을.
다리의 근육은 완벽히 몸을 지탱하며.
상체는 흐르는 물처럼 정해진 형태가 존재하지 않으니.
팔을 깊게 당기고.
앞으로 뻗는다.
일 점을.
꿰뚫는다.
푸악-!
창성이 쏘아낸 것은 그 자리를 완연히 관통하여, 저 뒤에 있는 식탁부터 시작하여 벽까지 모든 걸 꿰뚫었다.
반응했어도 스치긴 했는지 목에 작은 상흔이 남아 피가 흘렀다.
...저년 내가 안 죽는 거 알고 있는 거지?
용사, 검성이 아니었으면 절대 반응하지도 못할 일격이었다.
그걸 작정하고 나한테 쏘아낸 거다.
“후윽, 후윽.”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의 창성은 이 일격을 한 번 이상 쏘아낼 체력이 없는 모양.
회귀 전에는 연사로 갈기던데, 그때와 비교하면 덜 악랄하다고 할지.
이제 승패를 가르면 된다.
“네가 졌다 아셀.”
“....인정한다.”
창성이 꼴통이긴 해도 승부가 갈렸으면 그 부분 만큼은 잘 인정했다.
그렇다면, 요구했던 걸 실천해야지.
“내기는 잊지 않았겠지?”
“...”
창성은 시선을 돌렸다.
그것만큼은 싫다 이건가?
그녀의 내기는 마치 신념과도 같은 것.
내가 보았던 창성은 내기를 어긴 적 없었다.
그게 틀린 건 아닌지.
조용히 창성은 말했다.
“다. 다음에 보자.”
그리고 그녀는 체력이 다 빠진 몸을 이끌고 비척거리며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저것도 인사는 인사인 건가?
생각해보니 창성은 작별인사도 제대로 안 하긴 했다.
“아, 잠깐.”
그건 그거고 내 음식 그릇 뒤집은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단검의 손잡이를 들어 올리며 천천히 다가가자 창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싫, 싫다.”
-빠각!
털썩!
그녀가 뭐라 하건 힘차게 두개골을 쪼개 주었다.
게다가 잘못에 대한 사과도 안 했으니 좀 더 강하게 후렸다.
이미 힘이 다 빠진 창성이 저항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인지 금방 일어나던 검성하고는 다르게 창성은 바닥에 처박혀서 일어나질 못했다.
손을 탁탁 털며 뒤를 돌아본다.
널브러진 창성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검성.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 프랑.
그리고 조용히 날 지켜보는 용사.
검성은 내 실력을 이미 예상했다는 건지, 전혀 놀랄 것 없다는 표정으로,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하여간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놈.
그러려니 하며 남은 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프랑은 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극의를 깨우치면 그런 기술까지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얘는 또 뭐라는 건가.
그냥 극의는 정점에 이른 마법일 뿐이지, 그런 만능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대마법사가 마왕을 때려잡았겠지.
대답을 해 주지 않자, 프랑은 제멋대로 해석한 것인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날 따라왔다.
“가요. 시험을 치르러.”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까지.
용사는 날 바라보며, 무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
기숙사에서 잠을 자고 식사까지 마친 라엘리도 나와 같이 합류했다.
그녀를 신경질 나게 만든 것이 있다면, 내 곁에 있는 프랑이겠지.
“저 여자 왜 여기에 있어?”
“아니, 저 여자라뇨 너무하잖아요.”
프랑은 불만스러워했지만, 이전처럼 라엘리와 크게 말싸움을 하려고 들진 않았다.
그녀와 너무 사이가 안 좋아진다면, 괜히 나하고 떨어질 수도 있어서 그러는 모양.
나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해 주었다.
“도움이 되는 마법사다.”
“끄응, 그래도 네 유물로도 충분하잖아.”
“뭐든 충분함은 없어, 라엘리.”
저 한 마디에 라엘리는 무언가 생각이 떠오른 듯, 잠시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게 맞아 보여.”
“그렇죠? 그럼 전 조용히 갈 테니까 서로 편히 지내요.”
“알겠어 프랑.”
특히나 프랑이 친근하게 굴었기에, 라엘리는 이전의 감정을 접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이 극적인 봉합의 현장은.
싸울 거라고 걱정했지만, 조금 다행이라고 할지.
그리고 그건 기우였다는 건지 둘 사이의 눈싸움이 번개가 튀는 마냥 살벌했다.
궁금한 건데.
진짜 둘이 서로 싫어할 이유가 있어?
어제 만났는데 말이야.
복잡한 감정은 그냥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겉으로는 봉합이 됐으니까.
그리하여 셋이서 꾸려진 파티는 시험관이 모이라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점차 기숙사에서 나온 수험생들이 모여든 공간.
어제 서로 이야기가 된 사람들끼리 모이기라도 했는지, 수험생끼리 하나씩 무리를 이르렀다.
시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됐으니까.
숲속을 살피는데 도저히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겠지.
서로 신뢰를 하는 사람끼리 모이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특급 영입 대상은 바로 S등급을 받은 수험생.
검성은 이미 많은 사람 사이에서 둘러싸여 있는 상태고, 창성은 조금…. 기묘했다.
“너, 혹시 우리 파티에 같이 함께할….”
“안녕.”
“전위 후위 척후병 다 있는데 너만 오면….”
“응, 안녕.”
“아셀 몬트로즈, 여기 최소 후작 이상 가문 출신의 공자들이 모인 곳이다. 네가 참여만 한다면 가문에서 따로 보상을….”
“그래, 안녕.”
나한테는 ‘꺼져.’ ‘응, 꺼져’ ‘그래, 꺼져.’로 들려왔다.
내기 때문에 꺼져를 안녕으로 바꾼 게 아닐까….
그래도 의미가 없던 건 아닌지, 창성의 말은 나름 예의를 차리고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묘하게 흡족한 기분까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되는 꼴통이 저렇게 발전을 하다니.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온 건 용사.
용사는 별말 없이 걸어갔을 뿐인데, 소외된 이들이 용사 뒤로 몰려들었다.
F는 안 받아서 낙제는 면했지만, D와 같이 애매한 점수로 자신감이 없는 수험생들.
이미 파티를 따로 짠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비난했다.
“용사한테 의존해서 시험을 쳐봐야 얼마나 점수를 많이 받겠어?”
“저러면 분명 낙제할 텐데.”
“자기의 실력과 남의 도움을 구분해야지.”
그러면서 저런 말을 하던 수험생들은 은근슬쩍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직도 내가 기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
이상한 착각은 아니다. 내 실력을 눈치챈 프랑, 검성, 창성은 그 정도의 눈이 있지만, 저들에게는 없었으니까.
라엘리 마저도 내가 기물을 통하여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오해하는 마당에.
모두가 모였을 때, 여기에 맞춰 시험관이 나타났다.
“여러분들에게 정확한 목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시험관이 가져온 지도에는 커다란 숲이 보였다.
얼마나 커다란 숲이었으면,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거의 일주일은 걸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도에는 출발과 도착이 쓰여 있었다.
...여기 시험관들 미친 거 아니냐.
나만 그런 생각이 아닌지, 수험생들도 전원 어이없어하는 얼굴이다.
누가 손을 들고 말한다.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거죠?”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시험관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질문을 했던 수험생은 정말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는지, 질문만 하고 가만히 있었다.
“어쨌건, 여러분들은 이 숲을 가로질러서, 아니면 어떤 우회 루트를 걸어가건 상관없이 저 반대편까지 도착하면 시험에 합격하는 겁니다.”
“와….”
“진짜 가다가 죽지 않을까?”
설마 저 숲을 가로질러야 하는 짓을 할까 했더니 그게 진짜였다.
가혹함을 넘어선 수험생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느껴질 정도의 악랄한 시험이지만, 여기서 발을 빼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승작과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기회는 엄청난 혜택이었으니까.
“분명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여러분들에게 마족을 사냥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마물과 약간의 마족이 존재하도록 인공적으로 조성한 이 숲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여러분들의 목표라 보시면 됩니다.”
시험관이 말을 전부 끝마친 다음에는 번잡한 혼란만이 남았다.
숲속에 들어가 마족을 잡는 것이 목표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한 둘이겠는가?
검사나 마법사 위주로 구성한 파티는 황급히 정찰에 능한 수험생을 찾기 시작했다.
용사에 합류하던 수험생을 비난하던 이들조차도, 용사에게 황급히 달라붙었다.
“혹시 나도 들어갈 수 있어?”
“옆에서 조용히 따라만 갈게.”
용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다 보니 가장 큰 파티 규모를 가진 건 용사였다.
반대로 단 세 명에 불과한 우리는 기이할 정도로 적다고 볼 수 있었다.
라엘리는 제안했다.
“우리도 용사한테 붙는 게 낫지 않아?”
“글쎄.”
저게 마냥 좋은 건 아닐 거다.
용사야 믿음직스럽지만, 고작 혼자.
만약 저 규모의 행렬을 여러 방면에서 마물과 마족이 습격하는 순간, 무조건 사상자가 생길 거다.
오히려 숫자가 너무 많아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런 방식의 시험이라면, 세 명에서 조용히 이동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시험을 시작하기 전 작전을 짜고 파티를 맺는 기간은 지나갔다.
시험관은 커다란 가방을 가득 쌓은 수레를 끌고 왔다.
“여러분들이 5일 동안 생존하는 데 써야 할 식료품과 필수적인 도구가 담긴 가방입니다.”
그리고 시험관은 신호탄을 꺼낸다.
“도중에 시험을 포기하고 싶다면 이 신호탄을 쏘세요. 그럼 외부에 있는 저희가 즉각 달려가 구조해드릴 겁니다.”
줄을 서서 수험생들은 가방을 하나씩 받았다.
나도 가방을 하나 받았더니만, 손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닥으로 내려앉는 가방을 볼 수 있었다.
...나 이것도 못 들어?
이 쓸모없는 몸뚱이에 대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참에, 라엘리가 내 가방을 대신 들어줬다.
“읏차, 너는 마족하고 마물만 처리해줘.”
“...고맙다.”
“끄으으읏, 이거 진짜 무겁네요!”
나만 무거웠던 건 아니었는지 프랑도 간신히 가방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근데 프랑은 들고는 있네.
좀 더 강한 자괴감이 날 열심히 두들겨 팼다.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해야겠다.
최소한 평균치까지는 가야지.
암만 그래도 프랑보다 근력이 약한 건 좀 그랬다.
그런 해프닝도 잠시.
수험생들은 마족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가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 입구 앞에서 부터 커다란 규모를 느낀다.
나무가 너무나도 빼곡했기에, 달빛으로는 바닥까지 닿지도 못할 것 같다.
울창한 숲 앞에서 시험관은 엄숙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포기할 사람 있습니까?”
그런데도 없었다.
왕태자가 보증해준 귀족과 승작의 가치가 그렇기에.
누구도 엄두 하지 못할 공을 세워야 가능한 것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북부에 가기만 해도 주어지기에.
시험관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비켰다.
말은 안 했지만, 이제 시작하라는 신호.
그리고 어느 경계선을 밟았을 때.
아주 지독한 마기의 냄새가 내 코를 훑었다.
마기의 향이야 당연히 마물과 마족이 풀려있는 숲속이기에 안 나는 게 이상했다.
그러나 초월에 이른 흑마법사가 분석하기에.
이건 마족이나 마물이 가진 마기가 아닌 정밀히 조각된 흑마법의 마기였다.
“...시작부터 아수라장이구나.”
수험생들은 힘차게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그 모습이, 입을 쩍 벌린 아귀에 입속에 뛰어드는 물고기 마냥.
죽으러 달려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