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마물의 흔적 열 개, 혹은 마족의 귀 하나당, 추가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안 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아카데미는 성적으로 돌아가는 곳.
제1반 같은 특수반이 존재하기에, 성적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암만 나중에 큰 위기가 닥쳐와도, 할 건 해야지.
특히나 프랑이 의욕을 냈다.
“다 같이 마족을 쓸어버려요!”
의욕을 낸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파티들도 마물을 사냥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대부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얻고자 욕심을 부렸다.
반대로 용사는 오직 일직선.
급한 걸음으로 이 숲을 돌파하려고 움직였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나와 같이 불길함을 느낀 거겠지.
하지만 나는 흑마법사로서 확신했으나, 용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다.
그랬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실기 시험을 막았겠지.
용사가 수험생 대부분이 죽을 수도 있는 참사를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마물이 나올까?”
“저희도 정찰병 하나는 구할 걸 그랬나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라엘리, 프랑 둘 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곳에, 마물이 있다고요?”
“진심으로?”
걱정할 필요 없다.
정말로 마물이 있었으니까.
마족 또한 마찬가지.
머릿속에 그려진 레이더망에는 어느 곳에 마족과 마물이 있는지, 어느 정도 숫자인지 전부 확인됐다.
“나만 믿어봐.”
필기시험이야 프랑의 두뇌를 믿으면 될 일이고, 실기에서도 최상위권을 확보한다면 그건 곧 1등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왕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거, 수석을 차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수석이 되면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상당히 많았다.
장학금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쥐여주는 권한도 있다.
프랑과 라엘리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내가 가리킨 방향에 이동했다.
바스락거리는 수풀을 밟으며 걸어가니, 곧 마물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평상시에 볼 수 있는 고블린, 오크하고는 다르게, 진정 마기를 품고 살아온 마물.
어딘가 익숙하기도 하다.
마왕의 영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마기에 찌들어있는 괴물답게 괴이한 형태를 지녔다.
“...이게 왜 진짜?”
“개쩌네요.”
몸을 고양이처럼 잔뜩 웅크린 프랑이 나에게 말했다.
“마물의 위치를 그냥 알 방법이 있나요? 그런 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몸을 통째로 흑마법에 바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마기와 물아일체가 되다 보니 그 감각을 쉽게 느끼는 것.
회귀했어도, 한 번 배운 이상 사라지진 않았다.
단지 그 과정에서 수 십 번은 죽어야 해서 그렇지.
“방법이 다 있어.”
“자기만의 비법일 텐데 굳이 캐낼 이유는 없지.”
라엘리는 검부터 꺼내 들었다.
저번에 마물에게 한 번 당해서 그런지 그녀는 저 마물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런 그녀를 프랑이 제지했다.
“라엘리 잠시만요.”
“왜?”
“원래 이럴 땐 마법을 써서 선공해야죠.”
상대가 마나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한, 마법은 선공에 엄청난 강점을 지닌다.
프랑은 마법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로 마법진이 그려졌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영창을 이어갔다.
나보다 훨씬 느리고 무영창도 아니었지만, 여러 마법사를 봐왔기에 상당한 재능임을 알았다.
라엘리는 감탄했다.
“저게 마법이구나.”
프랑이 마법을 쓰는 걸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하급 마족을 잡는 테스트를 할 때 마법을 쓰긴 했으니까.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건 다르다.
마법사가 하는 세심한 손길을 하나하나 다 볼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마법진을 그리고, 어떻게 영창을 하며, 그 종결지는 어디인지.
[라이트닝빔.]
그녀는 내가 등급 테스트에 썼던 마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강한 빛의 집중으로 적을 녹여버리는 마법.
여기에 다수의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빛을 분산 시키는 활용법 까지 보여주었다.
단지, 그 수준은 나보단 어느 정도 떨어질 수밖에.
여기에 활용한 수단은 물론이고, 동원된 마나량도 달랐으니까.
“아, 바로 못 죽였어요.”
프랑은 아쉬워했다.
나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보잘것없었으니, 그 격차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심정을 라엘리가 후벼팠다.
“그 마법 뭐야? 처음 보는데 진짜 대단하다!”
마법 한 번으로 대부분의 마물을 빈사로 만들었으니, 칭찬하긴 했었다.
문제는 내가 어제 썼던 마법도 라이트닝빔이다, 라엘리.
그야말로 프랑에게 염장을 먹인 그녀는 바로 뛰쳐나가서 마물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했다.
“처, 처음 본다니요….”
프랑은 충격에 시무룩했다.
나는 한숨을 쉰다.
이러다가 또 싸우겠네.
나라도 대신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훌륭한 마법이었다 프랑.”
“정말요?!”
아까 시무룩한 건 어디 갔는지 프랑은 아주 뛸 듯이 기뻐했다.
내 칭찬이 그렇게까지 좋다는 건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감정에 대해서 점차 알아간다고 생각했더니만, 여전히 종잡을 수 없으니.
“전개 속도도, 여기에 대한 즉각적인 발동도 거의 완벽했다.”
“후, 훗…. 후후후.”
내 칭찬이 무척이나 좋은 건지 프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런 와중에 라엘리가 마물을 다 때려잡고 돌아왔다.
그녀는 마물의 흔적들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뭐해, 나 혼자 다 잡고 왔잖아.”
프랑은 암만 마법을 얻어맞았어도, 다수의 마물을 혼자 쓸어 담고 왔다는 사실에 꽤 놀라워했다.
프랑하고 나의 수준이 남다른 거지, 라엘리만 하더라도 평균을 상회했다.
“라엘리, 생각보다 유능하시네요?”
“생각보다아?”
“아니, 진짜 칭찬이라고요.”
프랑도 라엘리가 했던 것처럼 그녀를 맥이고 있던 사이에 곰곰이 생각했다.
나도 정말 신기했다.
한 달 사이에 기사 지망생 정도에서, 그냥 평기사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해졌다.
저번에 그 상황에서도 고블린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렸었지.
암만 내가 고블린을 붙잡고 있었더라도, 마기를 품고 있는 데다가, 보통 뼈가 단단한 목을 날려 버리기에는 전혀 쉽지 않았다.
...위기 상황을 겪으면 기량이 강해지는 타입인 건가?
일단 라엘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갈까요? 아르갈?”
“이왕 하는 김에 내기하자, 가장 많이 잡은 사람이 이기는 거로.”
“내기?”
마침 창성하고 내기를 이기고 온 판인데, 여기서도 내기를 꺼내고 있었다.
라엘리의 제안을 곱씹으며 물었다.
“뭘 걸 건데?”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냥 소소한 소원 정도로 한정 짓죠. 그럼.”
프랑도 나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마기의 방향을 읽었다.
“그럼 제대로 해야겠지.”
가장 많은 마물을 잡는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질 수 없는 싸움인데.
의욕을 불태우는 두 소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대체 무슨 소원을 쓰려고 그러는가 싶다.
**
인류의 희망이자 세계의 구원자.
용사는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마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생생한 꿈.
꿈속의 그녀는 성검을 받은 용사이자 이미 초월에 이른 초월자였으니.
매일 마왕군과 싸우며, 간부와 검을 맞대었고, 군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긴급한 소식이었다.
“수도가 침공당했습니다.”
“...그럴 수가.”
그렇다 하여도 긴박한 전장에서 전력을 뺄 수 없는 법.
오직 용사만이 급히 파견되어 수도로 복귀했다.
그녀는 절박한 심정으로 수도를 향했다.
텔레포트 마법진도 무슨 수를 썼는지 전부 다 먹통.
아무리 빨리 수도로 향해봐야 일주일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속도로 달려갔어도 그게 한계.
그리고 그녀가 보았던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수도였다.
사령왕의 군세로 보이는 언데드들은 성벽은 무너뜨리거나 남아있는 구조물을 박살 내고 있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던 민가들은 잿더미만 남았다.
최악은 왕성이었다.
왕국의 상징이자 절대적인 수호의 대상이었던 왕성은 반파되었으니, 탈출하지 못한 왕족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끔찍한 현장을 지켜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용사는 직감했다.
그래 저자다.
저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수도를 절멸시킨 것은 사령왕도 아닌, 또 다른 마왕군 간부도 아닌, 저기 볼품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에게는 흑마법으로 인한 저주가 뒤덮여 있었다.
또한 흑마법사라도 한 곳에 모아야만 되는 마기를 그는 전신에 쌓아두었다.
어찌 저러고도 안 죽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
악마와 계약을 했는지 손 등에는 악마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고, 반대편 왼손에는 끔찍하게 헤집어진 상처가 곪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증오를 짊어지고 있기에.
저러한 고통을 짊어지고, 수도를 불태우고자 했는가.
용사는 그것이 궁금하면서도 분노했다.
그녀의 적이 저기에 있다.
검을 뽑아 들고 저 존재에게 다가간다.
“왔구나.”
“그대는….”
다시 확인 해 보더라도 이상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
그런데도 언데드는 아닌 것.
“어떻게 살아있습니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살아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살아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를 말했다.
“■■자 아르갈.”
꿈속의 그녀는 저 두 마디의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꿈을 지켜보고 있던 용사는 저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아르갈은 중얼거렸다.
“그것이 나다.”
“세상에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존재하니 여기에 있지.”
또 다른 의문을 물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풀어주었습니까?”
철저히 수도만을 부수려는 목적인지, 아르갈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노리지 않았다.
이건 마왕군의 방식이 아니다.
마왕군의 방식은 인간이란 종의 멸절이니까.
아르갈은 의문에 대답했다.
“저들은 내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원래의 목표가 무엇이기에 수도와 왕가만을 무너뜨렸는가.
무엇을 이루었기에 저렇게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용사는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것으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아르갈이 단검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광기에 찬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벌어질 싸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듯이.
거기에 맞추어 용사는 검을 움직였다.
그걸로 꿈은 끝이었다.
그냥 꿈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르갈이란 존재를 그녀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 보았다.
불타는 수도가 아닌 아카데미에서.
흑마법사가 아닌, 마법사 아르갈로.
또한, 그에게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마기.
꿈에서 보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단검.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수험생들과 숲속을 나아가고 있던 용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는, 그를 죽여야 할까요?”
미래에 왕국을 멸망시킬.
마왕군의 간부가 될 존재를.
꿈 하나만 믿고.
미리 처단해야 할지.
용사는 고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