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마물 사냥에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라엘리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마물을 때려잡았고, 프랑도 심심찮으면 마법을 쏟아부었다.
나야 정보의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별의 근본으로 마나를 증폭하는 시간이 너무 속도를 잡아먹었다.
이게 생각보다 페널티가 꽤 컸다.
마기를 쓸 수 있다면 압도적인 1등이겠지만, 그럴 순 없겠지.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세 명 전부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라엘리, 우습게 보면 안 되겠네요?”
“후! 당연하지.”
암만 S등급을 받은 프랑이라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이 사냥에 특화됐다곤 볼 수 없었다.
마족이라도 나오는 게 아니라면, 마물 같은 졸따구를 잡는 데 효율이 높지 않았다.
그렇기에 라엘리가 실력에 비해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다.
“숫자를 세 보니까 저 12마리, 라엘리 13마리, 아르갈 12마리네요.”
“승부를 가리기가 힘들겠는데?”
“응, 내가 1등이야.”
라엘리야 좋아하고 있지만 앞으로 일주일이나 남은 실기 시험.
언제든 뒤집히고 누가 앞설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더불어 그녀들의 열의만큼 성적은 계속 올라갈 예정이었다.
이러다 잘 되면 수석, 차석을 나와 프랑이 차지하는 게 아닐까.
라엘리야 필기를 안 보았을 테니 성적에 한계가 있을 거다.
그러나 그녀의 실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던 제1반에 소속될 가능성이 생겼다.
익숙한 얼굴을 같은 반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던 참이다.
강렬한 마기의 감각.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느껴진다.
“...마족이다.”
가벼웠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마족은 마족.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적.
프랑은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마족의 강함까지 알 수 있어요?”
“등급 테스트할 때 나왔던 마족의 두 배 강한 정도.”
“끄으응….”
라엘리는 머리를 쥐어 싸더니 날 바라본다.
“아르갈! 그때처럼 마족을 개박살 낼 수 있지 않아?”
“불가능할 건 없지.”
“그럼, 우선 마족의 모습을 확인하고 싸워보는 게 어떨까요?”
멀리서 지켜보는 건 그리 위험하지 않으니,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그녀들의 말대로 마족이 위치한 곳까지 도달하자….
“...라인하르트?”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나요?”
이건 나도 예상외였다.
암만 마기에 통달 되었어도, 그 옆에 사람이 있는 건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검성이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검성은 검을 뽑아 들었고, 마족은 전신에 핏물을 가득 흘리고 있는 채로 철저히 난도질당했다.
테스트 때 보다 두 배 강한 마족이라도, 검성을 당해내기는 힘든가 보다.
-구어어어어억!
쿵!
마족은 금방 쓰러졌다.
검성은 마족의 귀를 모아서 성적을 올리는데 관심도 없는지, 쓰러져 있는 마족을 그대로 놔두었다.
근처에 있는 우리를 눈치챘는지 그는 소리 높여 외쳤다.
“나와라!”
숲속에서 걸어 나오자, 검성을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네 얼굴을 볼 줄이야….”
분명 날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반응이 이상했다.
날 반기는 분위기다.
...나와 검성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좋았던가?
너무 예절을 잘 주입했나 고민을 하던 참에, 프랑이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라인하르트, 당신은 분명 다른 파티원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지금 혼자인가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S등급의 라인하르트는 많은 영입 제안이 있었고, 그중 하나의 파티에 합류한 걸로 기억한다.
싹 다 거절하던 아셀하고는 달랐다.
라인하르트는 뭐 별거냐며 당당히 대답했다.
“다 내쫓았다.”
“...예?”
“그렇게 실력에 자신 있다더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들이었거든.”
“아하….”
“답답해서 나 혼자 마물을 잡고 있었다.”
프랑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아니면 원래 저런 인간이라며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다.
원래 저런 인간이다. 프랑.
그냥 포기해라.
뒤이어 라엘리가 물었다.
그녀는 검성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사냥하게? 그럼 계속 그러고 있어.”
“그럴 계획은 아니다. 좀 더 나은 팀원을 만나기 위함이지.”
검성이 하는 말에 무언가 짐작이 갔다.
더 나은 팀원.
그건 우리 파티 말고는 더 존재하지도 않았다.
S등급을 받은 이가 두 명씩이나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검성은 제안했다.
“그런 고로, 너희 파티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안 돼.”
“불가능해요.”
내 생각 이상으로 그녀들의 거부감이 더 심했지만.
검성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나만 한 파티원은 없을 텐데.”
“당신만 한 개차반은 없고요.”
“아르갈한테 시비 걸고서, 우리 파티에 들어오겠다고?”
검성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품속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그건 가운데에는 흰색의 공백만이 있는 수표.
수려한 필체로 수표에 숫자를 적더니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만약 날 영입한다면 이 정도 돈을 주지.”
“어….”
라엘리의 두 눈이 커졌다.
나도 수표를 확인 해보니 말이 안 되는 숫자에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공이 몇 개인 거야.
“저, 이런 돈 필요 없거든요?”
여기에 시큰둥했던 건 재력으로 크게 부족할 건 없는 프랑이었다.
라엘리 조차도 엄청난 금액의 유혹을 이겨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되돌려주며 말했다.
“그, 그렇지! 나도 이런 돈 필요 없어!”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지.”
그러는 검성은 중얼거리며 수표를 우리에게 하나씩 더 쥐여주었다.
똑같은 금액.
똑같은 수표.
그리고 두 장.
“...하려는 일이 잘 안 된다면, 금액이 부족한 게 아닐까 고민하라고.”
라인하르트의 풀네임은 라인하르트 루셀마니.
루셀마니는 왕국의 단 세 개뿐인 공작가의 이름이다.
확실히 공작가의 저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닌가 싶다.
프랑조차도 이 금액에는 약간 움찔거렸지만, 결국 자존심을 지켜냈다.
“흐, 흥! 돈으로 절 흔들 수 없다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무너진 건 라엘리였다.
한미한 시골 자작가 가문의 영애로서 이런 금액은 도저히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그, 아르갈 미안한데….”
“왜?”
“돈을…. 받으면 안 될까? 저번에 우리 아버지가 꽤 무리해서.”
어떤 무리를 했는가 싶었더니, 저번에 카리스 자작이 주었던 막대한 재물이 떠올랐다.
치료비 겸, 위로비였지만 너무 과한 감이 있었다.
영지의 운영까지 휘청거리는 건가.
“라엘리, 자존심도 없어요?!”
“시, 시끄러워 현실 앞에서 무슨 자존심이야!”
“아르갈을 괴롭혔던 천하의 악적을 받다니, 라엘리답지 않아요!”
“...내가 천하의 악적이였던가?”
프랑은 라엘리가 자존심을 접어버리자 이 틈에 괴롭히고 있었다.
...얘네들 이쯤 되면 그냥 사이좋은 게 아닐까.
검성은 자신의 대우에 불 맨 소리를 냈지만, 그렇다 해서 판을 깨지는 않았다.
그래, 이상했다.
검성이 제 자존심은 물론이고 뇌물까지 주면서 이러는 인간이 아니란 말이지.
“라인하르트.”
내가 검성을 부르자 다투려던 두 소녀가 멈추었다.
...그래도 중요한 상황에 조용히 해 주니 다행이다.
검성은 뚜렷한 눈으로 날 마주한다.
“뭘 보았느냐.”
“그게 무슨 뜻이지?”
“뭘 보았기에, 너답지 않게 굴고 있냐는 말이다.”
“음.”
검성은 잠시 주저하더니 제안을 했다.
“날 받아준다면 말해주지.”
“그러지.”
갈등의 당사자였던 만큼, 내가 절대로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프랑과 라엘리도 의외라는 건지 날 바라봤다.
검성 또한, 너무 흔쾌히 받아주었기에 약간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 당시에 시비를 걸었다 해서 속 깊이 담아둘 생각은 없었다.
한 대 때려주기도 했고.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보았던 걸 말한다.
“...중급 마족을 봤다. 확신은 안 들지만, 그 압박감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을 본다면, 아무래도 맞겠지.”
모두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드는 한 마디.
하급 마족과 달리 중급 마족은 지능을 가졌다.
최소한 하급 마족 보다 다섯 배는 강하다.
고작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나올법한 놈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더욱 큰 문제를 꺼내었다.
“신호탄도 먹통이다. 무언가의 농간이 있는 모양이야.”
“예에? 그게 말이 되나요?”
“의심된다면 한 번 쏴봐라.”
프랑은 급하게 가방에 있는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두 손에 꽉 쥐고 하늘 위로 향하게 한 뒤에 방아쇠를 당겼지만.
신호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라라…?”
위험한 사실을 알게 된 초기라면 빨리 탈출 해서 시험관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발상을 한 라엘리가 말했다.
“어차피 숲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됐고, 뒤로 가면!”
“소용없다.”
검성은 잔혹한 사실을 알렸다.
“저 뒤에서부터 중급 마족이 우릴 포위하고 있다.”
프랑은 날 바라보았다.
마족의 위치나 강함을 먼 곳에서도 알던 내가.
여태껏 모를 수가 있냐는 의문이 담긴 시선이다.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저들이 마기를 숨겼군.”
물론 나를 대상으로 숨긴 건 아닐 거다.
아마 이 시험을 관찰하고 조정해야 할 시험관들을 상대로 숨겼을 거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사제도 있었으니, 중급 마족이 대놓고 정체를 드러낸다면 이변을 눈치챘겠지.
그러던 와중이다.
휘이이잉-
“...무슨 바람이 이렇게 부나요?”
“서늘하네.”
커다란 마기의 파동.
남들은 커다란 바람처럼 느꼈지만,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여기 전체를 감싸던 흑마법이 발동됐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수험생들이, 몰살당하는 사건의 시작.
저 흑마법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어림짐작이 됐다.
파괴할 수 없는 결계.
우리를 가두기 위한 결계가 흑마법의 정체였다.
물론, 이건 나만 느낄 수 있는 것.
여기에 있는 이들은 뒤에서 몰려오는 중급 마족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나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라인하르트.”
“왜지?”
그의 행동이 다소 이해되지 않았기에.
회귀 전과 비교를 하더라도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렸다면 감정은 접어두고 서로 협력했을 텐데, 왜 굳이 돈부터 꺼낸 거지?”
“...너는 나와 한 번 싸웠잖는가, 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려 했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으면 서로 협조할 거라는 말을.
검성은 믿지 못했다.
...이 녀석도 성격이 어지간히 꼬여있다.
그나마 지금은 돈으로도 해결할 마음이 있는 게 다행인가.
회귀 전에는 이보다 더 혐성이었으니까.
프랑은 어처구니없어한다.
“아니, 목숨이 달렸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그러한가?”
라엘리도 황당한 건지 헛웃음을 지었다.
검성에겐 고작 두 장의 수표지만, 그녀에게는 마음이 흔들릴 정도의 거액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흔들어놨더니만, 정작 이건 돈이랑 상관없이 서로 도와야 할 일이 아닌가.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검성은 쿨하게 돈을 내놓았다.
“돈은 가져도 좋다. 주기로 한 것을 빼앗을 순 없지.”
“오오….”
라엘리는 영지에 보탬 될 수 있는 돈을 챙겼다고 좋아하는 기색을 보였다.
프랑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정도 돈이면 책이 오 천 권…!”
돈의 위력이란 참 대단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티는 잘 안 냈지만 다들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프랑, 너는 책으로 집이라도 지을 생각인가?
나도 검성이 준 수표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챙겨놓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한테 계획이 있다.”
사건이 터진다는 건 이미 예상을 해 놓았다.
그렇다면 미리 짜 놓았던 계획을 수행하면 되는 것.
첫 번째는 쉬운 길.
우선 프랑을 확실히 살리는 방법.
검성을 포함한 넷이서 흑마법 보호막이 위치한 가장자리까지 돌파하고, 내가 그 보호막을 뚫는 것이다.
흑마법의 규모가 워낙에 크기에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해도, 우리만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생존하면 끝.
작은 문제가 있다면, 남들 앞에서 흑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
이건 주교의 보증을 통해 해결은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용사의 전력이 약해진다.
기존이었다면, 창성, 프랑, 검성이 다 함께 위기를 넘기고, 여기서 프랑과 다수의 수험생이 죽는 걸로 추정되지만.
이 방법이라면 검성과 프랑이 빠지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다면 더 큰 참사가 날 수도 있었다.
모든 수험생이 전멸하거나, 용사가 죽거나.
두 번째는 용사를 돕는 방법.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이다.
덫과 함정으로 추정되는 모든 것은.
용사를 향하고 있어서.
치밀하게 설계된 모든 함정을 정면돌파 해야 했다.
내 동료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수험생이 죽는 정해진 결말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있었다.
가능성 있는 인재를 살리는 것이니, 이 또한 마왕을 죽이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용사를 도와서 용사의 신뢰와 더 나은 결과를 얻느냐.
아니면 온전한 생존을 얻고 더 큰 참상을 지켜봐야 하느냐.
어려운 선택이었다.
**
시험관들은 저 고요한 숲속을 바라보며 한가히 잡담했다.
“생각보다 좀 조용하네요.”
“그러게요. 지레 겁먹고 신호탄 쏠 거라 예상했더니 여태껏 단 한 명도 안 쏠 줄이야.”
그들은 학생의 안전을 책임지는 시험관으로서 엄청 바빠질 줄 알았지만, 이토록 한가할 줄은 몰랐었다.
“그만큼 이번 학생들의 재능이 넘치는 거 아니겠습니까?”
“왕태자님의 의도가 이토록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의 시험은 내부에서도 많은 반발을 일으켰다.
잘 못 하면 너무 많은 희생자가 생기기 때문에.
학생은 키워야지, 너무 급하게 굴려서 죽거나 다치면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도 왕실은 이 실기 시험을 강행했고,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직도 신호탄을 쏜 학생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숲 전체를 뒤덮는 커다란 마기.
초월적인 규모의 흑마법이 시전 된 것이다.
“어..?”
시험관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본 것도 잠시.
흑마법은 완성되었고.
모든 수험생은 마물이 도사리는 숲속에 갇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