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24화 (24/69)

“어떻게든 뚫어봐!”

“도저히 안 됩니다. 총괄님!”

“젠장!”

시험관들은 총력을 다하여 차단막을 뚫으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 주어진 단서가 있다면 오직,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라는 사실 하나.

“왕국 내부로 들어온 흑마법사가 있던가?”

“이 정도면 최소…. 초월급이어야만 합니다.”

“현시대에 초월급 흑마법사는 마왕군의 사령왕 뿐이잖아!”

떼죽음이다.

막지 못하면 떼죽음이다.

어찌하여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마왕군이 밑 작업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됐으나,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막아야만 했다.

초월자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건, 또 다른 초월자뿐.

왕국의 하나뿐인 초월자.

즉, 소드마스터는 북부에 있다.

그가 아카데미까지 오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한다고 고려를 하더라도.

총괄 시험관은 이 시험에서 희생될 학생들의 목숨을 떠올리며 최대한 머릿속을 긁어냈다.

그러다 떠오른 방안.

그래, 이것뿐이다.

이게 통하지 않으면 전멸이다.

“사제를 불러와라, 아카데미, 그 인근에 있는 모든 사제를 싸그리!”

“예, 예?”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험관의 모습에, 총괄은 윽박질렀다.

“초월자는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차라리 사제가 신의 힘을 빌려 작은 구멍이라도 뚫는 게 최선이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뭐해?!”

“알겠습니다!”

시험관들은 어떻게든 사제를 긁어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사제조차도 이를 극복 할 수 없다면,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용사 하나.

하지만 성검조차 받지 못한 어린 용사가, 이런 상황을 뒤집을 거란 기대는 하기 힘들었다.

“부디…. 성녀급의 사제가 여기 근처에 있길….”

게다가 사제라도 저 결계를 뚫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소한 성녀급이 와야만 가능한 일.

때마침 그러한 존재가 아카데미 근처에 오는 기적을 바라야 했다.

총괄은 신의 신도가 아니었지만, 이때만큼은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시험의 수험생들이 떼죽임당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

“우리끼리 숲을 돌파하는 것과 용사와 합류하는 것?”

나의 계획에 대해 검성이 반문했다.

여기에 라엘리가 제 생각을 꺼냈다.

“아무래도 용사랑 합류하는 게 낫지 않아? 주변에 중급 마족이 포위하고 있다면, 용사가 앞서서 뚫는 게 편하겠지.”

그러나 이건 단편적인 생각이었을 뿐, 프랑은 좀 더 고심을 거친 답변을 내놓았다.

“아뇨, 오히려 용사는 위험해요.”

검성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래, 그게 더 위험할 거다.”

“어, 어? 왜?”

라엘리만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했다.

그녀가 보기에는 가장 강한 용사와 함께하는 게 더 나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아카데미 시험이 이번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직 이번 시험에서 바뀐 건 단 하나.”

“용사의 입학.”

중요한 키워드를 꺼내 들었다.

그래, 다른 건 오직 용사다.

용사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이런 결과를 낳았겠는가.

우리가 의심하는 흑막이 있었다.

용사의 대적자.

마왕.

이번 사건은 마왕이 설계한 함정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용사는 너무 위험하다.

무려 마왕이 용사를 죽이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인데, 거기에 같이 합류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그러니 차라리 이 전력으로 숲을 빠져나가는 게 낫다.”

검성은 냉정히 말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 중급 마족을 뚫고 나아갈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은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뭐가?”

“이 숲 전체를 감싼 강력한 마법이 있어요.”

이건 좀 놀라웠다.

나만 알고 있는 정보일 줄 알았더니, 프랑도 이걸 눈치챘다.

“흑마법인건가요?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규모….”

프랑은 횡설수설했지만, 그럴 만했다.

그녀의 기량으로도 이 흑마법의 수준은 설명할 수 없으니.

검성이 물었다.

“그 흑마법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절대로 통과할 수 없죠. 이 정도라면 분명 초월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결계에요.”

“그러면 용사와 합류하는 길밖에 없겠군.”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넘어가자, 괜히 라엘리만 혼란스러워했다.

“아니, 아까는 합류하면 안 된다면서 지금은 왜 합류해야 된다는 거야?”

검성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초월자가 만든 결계를 뚫을 수 있는 건, 같은 초월자, 혹은 순간적이라도 신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성녀와 성녀급 성직자, 아니면 이와 비슷한 용사뿐이다.”

“저희가 암만 돌파를 해 봐야 거기에서 말라 죽어요. 결계를 뚫을 수 없으니까요.”

“그, 그런 거야?”

그들이 내린 결론은 용사와 합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은 정확히 이 상황을 직시했고, 금방 판단을 내렸다.

확실히 훗날 용사파티의 일원이 될 검성다운 지력이며, 프랑 또한 지식을 쌓는 마법사다웠다.

그러나 저 두 명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내가 저 결계를 뚫는 힘을 지녔다는 거겠지.

...나 또한 고민한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만약 여기서 용사를 방치했다가 죽는다면?

S등급을 받은 기존의 전력이 두 명씩이나 빠져버리면 생길 변수가 너무 컸다.

용사가 죽는 건 최악 중에서 최악이다.

마왕을 죽일 수 있는 검을 부서뜨리는 것.

아직 성검도 받지 못했으니 다시 뽑을 수 있더라도, 최종전까지 생존하는 용사가 지금 죽는 건 모든 것이 어그러지는 일이다.

차라리 죽을 수도 있는 프랑과 라엘리를 최대한 커버하는 게 나았다.

창성, 검성은 이번 고비에서 살아남는 걸 알고 있으니 그들은 방치하더라도.

저 두 명은 내 목숨을 걸어서 살리면 됐다.

고로, 결정 내렸다.

“우리는 용사를 구조하러 간다.”

결계를 뚫을 수 있다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특히나 검성.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퇴로가 있다면 언제든 도망을 치자고 주장을 할 것이다.

용사의 동료라는 의무조차 없는 지금의 검성이라면 더더욱.

그런 검성이 피식 웃었다.

“누군가를 구원하는 용사를 우리가 구조하러 간다니, 어감이 참 이상해.”

“뭐 어때요? 용사님이 위험한데 구하러 가야죠.”

“아르갈, 너는 내가 지켜줄게, 뒤에서 포격을 날려서 싹 죽이라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참으로 훈훈했다.

그러던 와중에 분위기를 깨는 침입자가 있었으니.

저벅- 저벅-

저 건너편에서 누군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다들 마족이나 마물인 줄 알고 경계를 했지만, 그게 아님을 알고 있던 나는 지켜만 보았다.

드디어 숲 너머에서 걷고 있던 상대의 정체가 드러났다.

“...안녕.”

그건 창성이었다.

지금도 내기를 충실히 지키는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그녀는 인사를 했다.

이건 또 무슨 우연인가.

아무런 파티 초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숲을 헤매던 창성을 여기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전신에 드러난 찰과상에다 옷이 반쯤 망가진 그녀의 모습.

어딘가 불편한지 창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족과 싸우다가 저리 다치기라도 했는가 싶었다.

프랑이 물어봤다.

“아셀…? 그건 그렇고 왜 그렇게 다쳤나요?”

창성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언덕을 굴렀어….”

...참으로 그녀다운 이유였다.

**

백작가 차남이었던 블래쉬는 이번 시험에 대해 일 분, 일 초마다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해?”

그는 평생을 손에 물 때 하나 안 묻히며 살아온 귀족이다.

그러나 가문을 물려받을 수 없는 차남이기도 했다.

하지만 승작.

백작가를 후작가로 올릴 수 있는 말이 안 되는 기회.

게다가 그런 공로를 세워온다면, 별 볼 일 없는 차남이 아닌, 당당히 가문을 이끌 가주가 될 수도 있었다.

블래쉬 곁에 있던 이들도 다 비슷한 처지였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어젯밤 기숙사에서 마음이 맞았던 이들이 모였고, 실기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도 짐을 좀 버려, 고작 5일 좀 걸어간다고 이렇게 무거운 짐이 필요해?”

“어차피 우리가 마물이랑 싸울 것도 아니잖아? 앞에서 용사가 다 잡아주고 있는데.”

그의 곁에 있던 귀족은 무거운 붕대나 치료약을 버리며 말했다.

블래쉬는 혹시라도 잘 못 될 가능성을 꺼내었다.

“그러다가 막상 다친다면?”

“평민한테 나눠달라고 하면 되지.”

“주기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

“몇 푼 좀 쥐여주면 좋다고 내놓을걸?”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돈 좀 쥐여주면 그까짓 거 내놓지 않을 평민이 있겠는가?

자기가 다쳤어도 이를 악물고 참는 게 그들이 알고 있는 평민이었다.

블래쉬는 한참은 먼 도착지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지만, 그대로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다.

승작이 주는 보상만 생각하며 입에서 올라오는 단내를 꾹 참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와중이다.

앞에서 나아가고 있던 수험생들이 한둘씩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벌써 휴식인가?”

그리 중얼거렸지만,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용사의 창백한 얼굴.

그녀는 저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뀐 건 없는데.”

블래쉬는 불안함에 중얼거렸다.

그가 보기에도 저 맑은 하늘은 똑같았다.

오히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식혀주었기에 그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지 않아 미카론? 용사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거….”

“히, 히익!”

그의 곁에 있던 친구를 부르며 블래쉬는 제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겁이었다.

소름 돋는 기분에 고개를 돌리자.

크륵- 크르륵-

그곳에 마물이 있었다.

하나였다면, 충분히 볼 법한 숫자였다.

마물을 인위적으로 뿌려놓았으니, 이제 마주할 때가 된 거겠지.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다섯…. 스물….

크륵-

크아아아아아-!

크르르르륵-!

마물들이 쏟아졌다.

“아, 아아악!”

“마물이다!”

“숫자가 너무 많아!”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블래쉬는 황급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검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서 실기 시험을 치르고자 했으며, 마족을 상대로 B등급까지 받아냈다.

마물 정도야 베어 넘길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끄으으!”

캉! 카각!

촤악!

흉기나 다름없는 마물의 손톱을 쳐 내며 목을 자른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다.

또 하나 나타난 마물이 그에게 들이닥친다.

버티고 또 버틴다.

용사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블래쉬는 굳게 믿었다.

“신호탄! 신호탄을 쏴!”

벌써 누군가는 시험을 포기하기 위해 하늘 높게 신호탄을 들어 올렸다.

그래! 차라리 신호탄을 쏴라.

암만 블래쉬는 승작에 욕심이 나더라도 죽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당장 시험관이 달려와 이 상황을 구조해주길 원했다.

반대로 말리는 수험생들도 있었다.

“벌써 포기해?”

“죽을 걸 각오하고 온 거 아니었어?!”

블래쉬가 승작에 목숨을 걸지 않는 한편, 반대로 목숨을 거는 수험생들도 당연히 존재했다.

마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니, 정작 신호탄을 들어 올린 수험생이 갈등에 빠져 있었다.

결정해 준 건 용사.

용사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시험은 끝났다.

다수의 수험생이 죽을 수도 있는 참상이 머지않았다.

“신호탄, 쏘세요!”

용사가 그리 외치자 신호탄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지만 신호탄에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아….”

작게 터져 나온 탄식.

또 누군가가 신호탄을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

셋이 아니라 열 명이.

신호탄을 당겨도 마찬가지.

“끄으아악! 살려…!”

-으드득! 으득!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가 죽었다.

블래쉬는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자신이 어떤 음모에 빠져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시험관은 이 시험이 위험하다고 예고했지만, 이건 위험이 아니다.

숲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모두를 집어삼킬 죽음이.

“아무나.”

그리 말했다.

너무나도 간절히.

“누구라도 와서 도와줘.”

짧은 몇 마디였다.

그러나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를 도와줘야 할 용사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마물이 쏟아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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