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26화 (26/69)

용사를 구하러 가기 전에 라엘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줬다.

내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것을.

앞으로 싸울 일이 많을 텐데, 전부 목걸이의 힘으로 때려잡았다고 설명하기에는 모순된 구석이 많았다.

오해가 쌓이기 전에 풀어야지.

“나는 목걸이의 힘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마법을 쓸 줄 알고 목걸이는 마나만 공급해 주는 거다. 라엘리.”

“뭐, 뭐?”

라엘리는 깜짝 놀랐지만, 반대로 프랑은 어이없어했다.

“아니, 그걸 여태껏 몰랐어요?”

“그, 목걸이의 힘인 줄 알았지.”

당장 마력 B등급을 받은 검성도 착각하는 마당에, 라엘리가 오해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기본인 마나 보유가 성립되지 않았으니까.

라엘리는 나름 수긍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이란 어지간한 재능이 아닌 한 독학이 불가능한 학문.

그런데 내가 마탑을 따로 가거나, 마법을 공부했다는 과거가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내 마법의 출처가 궁금한 모양이다.

“그럼 누구한테 마법을 배운 거야?”

“...있다. 교수라고, 예전에 선생이었던 사람이.”

내가 마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름 아닌 용사파티의 대마법사.

그녀와 싸우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러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대마법사는 현명했다.

어차피 불사자라는 죽지도 않는 적을 상대로 뭣 하러 힘을 빼며 싸우느냐.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로 평범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적 지식, 그리고 과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녀는 과거에 아카데미 교수라고 했었다.

그곳에서 극의를 연구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용사파티의 대마법사가 되어 극의를 습득한 마법사였다.

그녀는 나의 말동무이자.

마법 스승이기도 했다.

내가 스승에 대해서 언급을 하자 프랑의 두 눈이 초롱초롱한 걸 넘어서서 빛을 내고 있었지만, 더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대마법사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했을 뿐이지.

...아카데미 교수였다면, 지금 이곳에 근무하고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그리 상념을 하는 와중에 라엘리는 자기 나름대로 앞뒤를 짜 맞췄다.

“어…. 그러면 여태껏 마법은 배웠지만, 마나에 대한 재능이 없어서 못 쓰고 있다가 이번에 받은 유물로 마나를 수급할 수 있어서 마법을 쓸 수 있다. 이거 맞지?”

“그렇게 해석해도 되고.”

정말 내가 딱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 주는 라엘리를 보며 감탄한다.

옆에서 프랑은 고심에 빠졌다.

라엘리의 해석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조용히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이유를 숨기고 있으리라 판단 한 뒤 배려해준 모양이다.

“곧 도착이다.”

-끄아아악!

-살려줘!

-여기, 여기 숨을 안 쉬어!

가장 선두에서 서던 검성이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수라장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마족들이 수험생들을 습격했고, 그걸 막아야 할 용사는 중급 마족에게 붙들려 있다.

이미 죽은 사람들도 몇 명 보인다.

분위기는 절망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막을 수 있는 데도 진영이 무너지고 있음을 본다면, 방치하다간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다.

이해는 된다.

저들은 결국 마족을 잡을 실력을 지니지 못했다.

용사가 잡아줘야 하는데, 과연 용사가 중급 마족을 처리하고 저들을 구하러 나설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확신과 희망이 없기에 못 버티는 거다.

그중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진영이 붕괴하는 와중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검사.

곧 한계인지 마족에 의해 검이 쪼개지며 죽기 직전이었지만, 이미 예열해 놓은 별의 근본으로 저 마족의 머리를 박살 내는 게 더 빨랐다.

-퍼억!

검사는 마족의 목이 날아가면서 튀어버린 피를 전부 맞아버렸다.

그러고 날 멍하니 바라본다.

...뭔가 그러니까 미안해지는데.

마법을 좀 세련되게 쓸 걸 그랬나.

피범벅인 그를 놔두고 고개를 돌렸다.

프랑이 죽어 나가고 있던 수험생을 보더니, 화가 났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부 다 쓸어버릴까요?”

나한테는 이렇게 들렸다.

전력을 다해도 되냐고.

마법사가 하는 연산은 계산량이 막대한 만큼, 자연스럽게 두뇌에 무리가 간다.

따라서 평소에는 제한선을 두고 마법을 쓴다.

제한이 없으면 뇌가 타버리는 것 같은 불쾌함을 느끼며, 심하면 후유증이 크게 남을 수도 있다.

그러한 제한을 풀고 연산을 해도 괜찮겠냐는 물음이다.

당연히 해도 된다.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믿고 있으므로.

“쓸어버려.”

그러자 곧장 프랑의 주변에 커다란 마법진들이 몇 초 만에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전에 마물을 잡았을 때와 차원이 다른 속도.

그야말로 뇌를 태워버릴 정도의 연산을 가속 한 것이다.

어차피 죽지 않는 나야 매번 그런 방식으로 연산을 하니 상관이야 없지만, 상당히 정밀한 조정이 필요했다.

마법이 준비되는 동시에 나는 검성에게 말했다.

“라인하르트, 네가 수험생들을 지휘해라.”

“...그러지.”

그는 나의 지시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몇 걸음 앞으로 가서 묵직하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는다.

“지금 이 시각 부로,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하겠다.”

마력의 힘이 담긴 목소리가 수험생들 모두에게 들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

회귀 전에도 검성이 군을 통솔하는 걸 심심찮게 봤었다.

그러니 수험생들의 통제를 그에게 시킨 것이다.

전장에 대한 분석을 마친 그는 하나하나 지시하기 시작했다.

“모든 수험생은 그 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있어라, 진영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무작정 도망치는 게 아니라, 부상 인원이 뒤로 빠지고 앞을 버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떨어진 사기를 올리는 거다.

스릉-

검성이 검을 뽑아 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창성의 일 점 찌르기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일격을 사용한다.

푸아아악!

검성은 마족의 목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모를까, 뒤에서 급습했기에 저토록 강력하던 마족이 깔끔히 죽었다.

한순간에 떨어진 마족의 목을 보고.

끊임없이 절망을 보았던 수험생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버티자!”

“이건 이길 수 있다!”

검성이 수험생들을 독려하는 사이에, 나는 뒤이어서 창성, 프랑, 라엘리에게 한마디씩 말을 남겼다.

“프랑, 너는 우측을 맡아라, 진영이 잘 정돈된 편이라서 아군 오사의 위험이 적다. 마음껏 마법만 날리면 된다.”

“아셀, 너는 후방을 맡아라, 가장 진영이 망가져서 난전에 가까우니 아주 잠깐이라도 중심에서 버티는 기예를 보여주기만 해라.”

“라엘리, 너도 후방에 가라, 수험생들이 진영을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게 기본 중의 기본이며 전투의 시작이다.”

“알겠어!”

마법에 집중하는 프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라엘리는 힘차게 대답하며 후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셀은 멍하니 날 바라봤다.

“뭐해? 안 가고.”

“그, 혹시 미쳤어?”

창성은 저 뒤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무려 다섯이 넘는 마족.

만약 후방에 뛰어든다면, 그녀는 다섯의 마족을 상대로 버텨야 했다.

그걸 요구하고 있는 내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일만 했다.

“그래서, 안 하려고?”

내가 단검을 들어 올리니 아셀은 제 머리를 감싸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가면 무조건 죽잖아!”

“안 죽어 너는, 그리고 조금만 버티면 되고.”

이런 확신을 가지는 이유야, 창성은 난전과 버티기에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적 진영 한중간에 뛰어들어서 몇십 분도 아니고, 몇 시간을 마왕군 진영을 휘젓는 게 그녀의 장기였다.

사실상 혼자서 전쟁을 진압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나중에는 전장 한복판이 좋다고 뛰어드는 미친년이 된다.

어차피 미칠 거, 지금 미치는 게 좋지 않을까?

“으, 으으, 다치면 네 책임이야!”

결국 내 강요에 떠밀려 창성은 후방으로 나갔다.

진중한 척하던 창성은 이제 사라지고, 칭얼거리는 어린애의 모습만 남아있는 걸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이러던 애였나.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남은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좋은 음식은 혼자 먹어야지 않겠는가?

용사에게 신뢰를 얻을 기회다.

나는 용사를 도와서 중급 마족을 잡을 생각이었다.

별의 근원이 지닌 마나를 증폭하자, 목걸이에 박혀있던 별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용사는 항상 무거운 의무감을 느꼈다.

신의 축복을 받아 남들보다 강해졌으며.

평민 출신이나, 대우는 귀족보다 좋으며.

용사라며 모두에게 존중받는다고 하여도.

항상 막대한 의무와 책임만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검이 너무나 무거웠다.

중급 마족과 이어지는 충돌은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렵진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용, 용사 살려주…!”

콰득-!

중급 마족과 함께 몰려든 하급 마족들.

조금 전에 또 한 명의 수험생이 죽었다.

용사는 이를 악물었다.

도무지 그녀의 힘으로는 그들을 모두 구할 수 없기에.

고작 앞에 있는 중급 마족과 겨루는 게 한계였다.

[이, 인간, 강하다. 근데, 그걸로 나,날 죽일 수 없다.]

용사는 신께 기도했다.

나에게 더 강한 힘을 주길.

어려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인도하길.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아무리 용사라 하여도 신에게 항상 응답을 들을 수는 없는 법.

결국 그녀가 극복해야만 했다.

이 처절한 사투를.

많은 이들이 죽을 수 있는 고난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짐이 그녀를 짓누른다.

생각을 한번 할 때마다.

검이 마족을 찌르지 못하고 허망하게 튕겨 나갈 때마다.

누구 한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더라도 전열이 무너지고, 사기가 바닥으로 치닫는 걸 알 수 있었다.

공황에 빠져 도망치는 수험생도 보인다.

모두 죽는 건가?

용사마저도 좌절에 빠지려던 때에.

예상하지도 못한 기적이 찾아왔으니.

퍼억-!

그들을 압박하던 마족의 머리가 갑자기 터져나갔다.

강력하고 빠른 마법이다.

용사는 싸우는 와중에도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저 건너편의 언덕 위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용사도 모를 수 없었다.

단 다섯뿐인 S등급의 수험생 중에, 네 명이 저곳에 있었으니까.

라인하르트, 아셀, 프랑.

그리고…. 아르갈.

그녀는 꿈에서 보았던 걸 떠올렸다.

수도를 불태우고, 용사와 싸우고자 했던 아르갈.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걸 비교한다.

현재의 아르갈은.

그녀를 구원하고자 했다.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충격이 크게 다가왔다.

자신이 보았던 꿈은 그냥 거짓이었던가?

사람 하나를 추악한 악인으로 만들어놓은 악마의 마법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가 혼란에 빠진 사이, 전투는 안정세를 되찾기 시작한다.

전장에 네 명씩이나 되는 강자가 개입하자 바로 분위기가 일변한다.

라인하르트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족의 목을 잘라냈으며, 프랑이 쏘아낸 마법의 화력으로 마족들을 불태워버렸다.

가장 무너졌던 후방에는 무려, 아셀이 혼자서 다섯이나 되는 상대를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갈은….

“돕겠다. 합공하지.”

“...네?”

바로 곁에서 용사를 도왔다.

그림과 같이 합공이 이루어졌다.

그녀의 검로에 맞춰서 마법이 보조되었고, 종종 뻗어나가는 단검은 더 없이 치명적이었다.

그가 합류하는 순간 중급 마족이 기를 못 쓰고 얻어맞기만 했다.

하나하나 놀라웠지만, 그 무엇보다도 믿기지 않았던 건.

그녀와 아르갈의 합이 수십 년을 맞춘 동료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했다는 것이다.

마치.

단둘이서 결코 이길 수 없는 강적과 사투라도 해 본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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