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한 공격 주기를 보였다.
단계적으로 시련이라도 주고 싶었는지, 우리를 공격하러 온 중급 마족의 수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다.
엄청난 고행이었다.
매일같이 죽을 수도 있는 압박감과 함께, 무거운 짐을 들고 숲을 나아가야만 했다.
게다가 중간마다 한 번씩 습격이 들어오면서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나야 죽지도 않고 이보다 더한 강행군을 몇 번 해서 그러려니 했지, 다른 수험생들은 도저히 못 버텼다.
이를 지탱해줘야 할 주요 인물마저도.
검성은 용사에게 말했다.
“부상자를 버려야 한다.”
더는 부상자를 이끌고 갈 수 없었다.
이러다간 다 죽을 판이기에 하는 주장.
잘라낼 건 가차 없이 잘라내고자 하는 검성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건 없었다.
저런 걸로 용사와 많이 싸웠었지.
더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난민을 버리거나, 마왕군이 잡은 인질의 목숨을 버리라던가.
그렇다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마왕군이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용사파티 근처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 정도야 한 줌에 불과했다.
차라리 인질, 피난민에 신경 쓸 바에는 빨리 마왕을 죽여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가장 사람이 덜 죽는 방식이라는 게 검성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그럴 수 없습니다.”
“정신 차려라. 용사, 부상자를 계속 데려가다간 모두 죽을 판이다. 차라리 소수 정예로 숲을 돌파하는 게….”
“그럴 수 없다 했습니다.”
회귀 전 혐성이라면 여기서 더 강짜를 부렸을 거다.
용사가 인질 때문에 망설이니, 자기가 대신 인질을 죽이는 짓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용사의 주장은 존중하나, 일이 틀어진다면 언제든 부상자를 버릴 작정으로 보인다.
그런 검성에게 다가가 나는 말했다.
저러다가 결국 개판 싸울 때까지 용사랑 충돌하는데, 차라리 지금 그의 생각을 바꾸는 게 나았다.
“그 주장은 옳지 않다 라인하르트.”
“...이유가 뭐지?”
라인하르트는 무언가 놀란 표정이다.
분명 너라면 나와 똑같은 생각과 의견이지 않겠냐는 얼굴.
...이래서 예리한 놈들은 싫다.
본디 나라면 당연히 싹 다 버리는 건 물론이고, 만약 이들을 구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면 흑마법 결계를 뚫기 위해 혼자서 움직였을 거다.
그런데 내가 왜 이들을 돕겠는가.
이득이 돼서이다.
검성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귀띔했다.
용사가 듣기에는 알맞은 내용이 아니다.
“라인하르트, 잘 생각해 보아라, 저들은 모두 유망주다. 혹은 귀족이기도 하다. 모두가 너에게 감사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절반만 고마움을 가지면 나중에 분명 큰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루셀마니의 라인하르트다. 저들의 은인 행세를 할 필요가 없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영원히 그것을 가질 수 없는 법이지, 그리고 너는 루셀마니의 공자이지 주인은 아니잖은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 지지세를 모아야 한다. 이 커다란 참사의 구원자라는 소문이 생긴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검성은 실로 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중에 용사파티의 동료가 돼서 루셀마니의 가주건 뭐건 전부 무산되어 버리지만, 지금이야 검성은 가주의 자리에 신경 쓸 때다.
용사파티가 망가진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용사의 책임도 없지는 않았다.
용사는 논리의 구조가 정의와 올바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사람을 왜 구하는가?
그것이 올바르니까.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검성은 납득하지 못한다.
그는 철저히 계산적인 인물이었으니.
정의를 꺼내는 게 아닌, 이성과 합리로 따져야 한다.
그리고 검성.
생각보다 사람 구하는 게 수지타산이 많이 남는다.
내가 해봐서 안다니까?
결국 검성은 수긍했다.
“...최대한 부상자를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진행하지.”
“잘 생각했다.”
검성을 성공적으로 설득하고 자신만만하게 용사를 바라보았다.
어떤가 용사? 나에 대한 신뢰가 좀 더 오를 만하지?
그렇게 용사를 바라보니 그녀의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다.
...예상 이상으로 더 극적인 반응인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호감작이 생각보다 잘 되고 있던 것 같다.
**
중급 마족이 넷 이상 습격하지는 않았지만, 상대하기 버거운 건 마찬가지.
습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하루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사람들은 극한까지 몰리기 시작했다.
서로 싸우기도 했으며, 심하면 칼부림도 날 지경이다.
검성도 지친 건지 수험생들에 대한 통솔을 놓았고, 프랑은 과도한 가속 연산으로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이었으며, 항상 활기차던 라엘리도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창성은…. 나도 잘 모르겠다. 평소에도 저리 침울한 녀석이었으니.
구급품은 아끼고 아꼈지만, 결국 다 떨어졌고, 상처가 곪는 수험생들이 점차 나왔다.
최악에 최악이 겹친다.
누구 하나 숨쉬기도 어려운 지옥에서, 최대한 빠져나가기 위해, 나아가길 반복했다.
조용히, 그리고 묵직이 걸음을 옮기길 반복했다.
그런데도 고행 끝에 희망은 찾아오리다.
이미 실기 시험은 끝이 나버린 지 오래.
굳이 숲을 일직선으로 돌파할 이유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숲에서 벗어나 결계로 도달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 해서 가장 빠른 길인, 왔던 길로 가기에는 중급 마족 수십이 포위 중이다.
거기로 간다면 분명 다수의 수험생이 죽는 게 분명하다.
고로 우회를 해야 했다.
그 우회로를 정확히, 그리고 안전히 알 수 있는 내가 있었다.
단 3일 만에 숲을 온전히 빠져나갈 방향을 잡았다.
중급 마족이 포위를 하더라도 비어있는 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
고작 이틀이지만, 그 이틀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걸음 한 번 한 번 옮기는데 고역이었던 울창한 숲이 아닌, 점차 무성한 풀잎이 바닥을 뒤덮었다.
숲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에, 그 끝이 다가옴을 알기에.
그들의 발걸음에 점차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온 거지?”
“그치?”
“사, 살았다!”‘
“우린 해냈다고!”
어느 시점에서는 살았다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나는 이게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저 근처에 마족들이 우릴 주시하고 있으니.
...상급 마족 셋.
그중 하나는 마기의 기운이 무척이나 흐릿한 걸 보아하니 암살 타입인가?
내 감각에 몇 번 잡히더니 지금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용사도 이를 어렴풋이 느꼈는지, 숲에서 벗어나고 있음에도 얼굴이 창백했다.
알고 있는 거다.
자신조차 이길 수 없는 강적이 오고 있음을.
용사는 급한 걸음으로 결계에 다가갔다.
결계를 빠르게 부수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는 순간.
하늘에서 검은 점이 보였다.
나타난 거다.
상급 마족이.
콰아아아앙-!
바닥이 무너질 지경이다.
파도처럼 몰아친 흙먼지 뒤로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 손에는 칼을 들었으며, 흑색 갑주를 전신에 뒤집어쓴 괴인.
저 괴인이야 평범하디 평범한 상급 마족이겠지만.
저 갑주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절대 검이나 활, 창 같은 평범한 냉병기로 뚫어낼 수 없으며, 어지간한 마법에도 강력한 면역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마왕군 간부 키클롭스.
마기를 다루는 대장장이.
...또한 케르시아의 제단검을 만든 장본인.
흑색 갑주가 대전쟁 시기에 나온 물건인 줄 알았건만, 이미 생산을 마치고 상급 마족들이 착용하고 있던 거였나.
[호오.]
숨 막히는 압박감이 수험생들을 짓눌렀다.
상급 마족이 입을 열 때마다 숨을 못 쉬는 이도 보였다.
그만큼, 아직 유망주와 상급 마족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겨우 서른쯤 죽은 건가?]
매일같이 습격이 왔음에도 죽은 이가 많지 않았다.
사실 실기 시험에 서른 명이나 죽는 것만 하더라도 참상이지만, 회귀 전에는 절반 이상 죽었으니 선방이긴 하다.
[반 이상 죽을 줄 기대했건만.]
“그대 악적이여.”
용사는 증오를 불태웠다.
모든 수험생을 고통에 휩싸이게 하며.
서른의 목숨을 짓밟았고.
매일 밤 추위에 떨었으며.
죽음이라는 공포에 겁먹게 했고.
부상한 자들의 상처는 곪고 곧 썩어갈 것이다.
끔찍한 환경이었다.
지옥이었다.
더는 죽지 않아서 안심했지만, 더 죽을 수 있어서 두려웠다.
그런 마음을 용사는 검에 담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용사가 반 걸음 더 나아갔다는 걸 알았다.
“목을 베어서 그대의 죄를 참할 것입니다.”
[...확실히 좀 더 강해진 듯싶으나, 아직은 멀었구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약하다는 거다. 용사.]
마족은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걸 아래로 쭉 긋기만 했건만.
용사는 그걸 막아냈음에도, 바닥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며 뒤로 밀려났다.
쿠구궁-!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나, 고작 반도 안 죽었고 포위하고 있던 마족들을 피해서 이곳까지 오다니, 운이 좋은 건가 그 정도 실력이 있는 건가.]
“끄으윽!”
[몇이 죽으면 되는가? 열? 스물? 백? 혹은 전부? 그래야만 나와 대등해질 수 있는가?]
파앙!
퍽!
“꺄아아악!”
“주, 죽었어!”
마족의 손짓 한 번에 수험생 하나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비명이 터져 흐른다.
절망이 이곳을 짓누른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살아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더 큰 악의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용사는 이를 악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나와 맞서거라 용사여, 고난을 딛고 일어서거라 용사여, 그래야만 저들이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마족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점차 이상함을 느끼곤 중얼거렸다.
“...뭐지?”
들으면 들을수록 무언가 이상하다.
용사를 조롱하는 것처럼 들려왔지만, 마왕과 최후까지 싸운 나에게는 뭔가 걸렸다.
저 마족은 용사가 강해지길 원한다.
도대체 왜?
훗날 마왕과 대적할 용사를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마족은 용사를 죽이기는커녕, 다른 수험생들을 죽여서 용사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전제가 잘못되어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이상하다.
진작 용사를 죽이려 했다면 저 상급 마족 셋과 중급 마족 수십을 용사에게 던져놓으면 알아서 죽을 거다.
그런데 저들은 단계별로 용사가 성장할 수 있는 시련을 부과했다.
하나 떠오른 건 천칭의 힘.
천칭은 단순히 저울에 물건을 올리고 거래하는 것에 그치는 힘이 아니었다.
마왕은 개념을 다루는 권능을 지녔고, 천칭 위에 무엇이든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왕이 천칭의 반대편에 용사의 힘을 올려놓는다면?
“하.”
어이가 없었다.
무척이나 단순하고 강력해 보이는 방식이다.
나는 왜 이걸 이제야 알았는가.
우선,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
말이 마왕군 간부이지, 실제로는 외부 인사에 불과했다.
그런 나를 상대로 중요한 기밀을 공유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눈치조차 못 챈 이유도 있다.
회귀 전 초월에 이른 용사를 상대로, 이런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간부가, 마왕군 전체가 전력을 다해도 죽을 일 없는 영웅 그 자체였으니.
마왕군은 매번 전력을 다해서 용사를 죽이려 했고,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보였지, 그것이 용사를 키워주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이어지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마물이 나오더니 다음에는 하급 마족, 그리고 중급 마족.
마지막에는 상급 마족까지.
상급 마족은 대놓고 강해지라는 소리를 하고 있다.
도저히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천천히 굴러갔다.
마왕이 가진 강함의 원리를 알았기에, 이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 해 낸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기 마련.
지금의 마왕은 약했다.
용사가 상급 마족도 못 이길 정도로 허약했으니 당연한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마왕성에 쳐들어 가볼까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초월에 이른 간부들이 마왕을 지키고 있겠지.
마왕은 악마보다도 더 교활했다.
이런 약점을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다.
마왕성을 습격해도 모든 간부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을 거다.
간부의 숫자를 고려한다면 최소 초월급 셋 정도.
내가 불사자라 해도 미친 짓이다.
간부들이 대전쟁 직전까지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생각 해 보면, 그 이유가 다 있는 법.
마왕이 약하다는 걸 알아도 참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소름이 돋는 사실이 있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용사가 회귀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최강의 자리에 오른 용사가 과거에 되돌아왔다면, 마왕도 똑같이 최흉의 괴물이 되어서 기다릴 필요 없이 대륙에 강림할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용사가 눈치채고 있어서, ‘다른 사람만 회귀시킬 수 있다’라는 이상한 핑계를 대며 날 회귀 시킨 것이었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용사는 도대체 왜.
날 선택한 건가.
내가 죽지 않아서?
내가 용사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용사는 존재한다.
용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더없이 절박한 두 눈이 날 향한다.
그녀는 한계를 마주했고, 그 한계를 뚫으려면 그녀 자신이 더 강해지거나, 아니면 더 강한 적과 싸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나와 함께 싸워야만, 상급 마족을 잡을 수 있으리라 판단 한 것이다.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용사를 도와야 했다.
그녀의 각성을 막아야, 마왕이 더 강해지지 않을 테니까.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이미 증폭하고 있던 마나를 신체에 덧씌운다.
부작용 따윈 고려하지 않은 죽기 직전까지의 신체 강화.
그걸 본 프랑이 당황한다.
“잠깐만요. 아르갈!”
그녀가 날 붙잡기 전에.
내 몸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