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만큼은 너무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칼에 찔려, 두 번째의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건만.
내 앞에 있던 건 라엘리였다.
“아셀, 이때야.”
그녀는 제 배를 뚫고 들어간 검을 꽉 붙든다.
창성은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는 기회라 생각했는지,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럴 수 없다! 네 몸을 완전히 반으로 쪼개 죽여….]
마족이 검을 움직여 라엘리의 몸을 반으로 갈라 죽이려 하려던 순간.
수험생 하나가 달려들었다.
덥썩!
마족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것이 하나가 아니었다.
두 명, 세 명, 열 명.
모두가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마나를 써!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
“마법사도 달려와! 니들 마나 많잖아!”
마족이 저항을 할 때마다 그걸 얻어맞고 날아가는 수험생은 물론, 잘 못 맞아서 바닥을 구르고 그걸로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달려드는 수험생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났다.
그것이 스물, 거기에 두 배가 되어갔을 때, 마족은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쇠사슬에 마족은 완벽히 묶여버린 것이다.
[말도, 말도 안 된다!]
그들이 그저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면, 금방 헤쳐나갈 수 있겠지만, 하나하나 검사와 마법사들.
몸에 품고 있던 마나를 다하여 마족을 누르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은 창성이었다.
“그걸 쏴 버려!”
“저 잘난 마족의 대가리를 날리라고!”
창성은 당황했다.
사람이라는 산이, 마족을 짓눌렀지만, 문제는 빈틈이 없다는 거다.
그녀의 일 점 찌르기가, 사람을 찌르고 들어간다는 것.
“....안 돼, 그러면 같이 죽어.”
그렇지만 거기에 두려워하는 수험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찔러.”
“죽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살 놈은 살잖아? 그 정도면 괜찮은 거래지.”
그들의 각오가 느껴진다.
3일 동안 이어져 온 지옥 같은 환경.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어진 고난.
그리고 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을 도와준 이가 누군지 알기에.
나를 돕고자.
용사를 돕고자.
이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자.
목숨을 걸고, 여기에 뛰어들었다.
달라붙은 전부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만족한다.
이 마족을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구는 죽어야 했다.
그것이 상급 마족이다.
숙련된 기사 수십조차도 이길 수 없으리라 장담하는 적.
창성은 창을 움직였다.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정말, 미안해.”
그녀가 진정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언제 보았는가.
아마도 회귀 전과 지금을 통틀어서 처음일 거다.
살아남기 위한 희망과 각오를 품은 체.
하루에 한 번이 한계인 일 점 찌르기.
바닥까지 닿은 체력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창성은 자세를 준비했다.
용사는 그사이에 라엘리를 붙잡고 천천히 뒤로 빼내었다.
이미 마족은 다른 수험생들이 붙잡고 있었으니, 라엘리를 구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뱃속을 찌르고 들어간 검이 뽑히는 즉시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창성이 움직였다.
**
마족의 등 위에 매달리고 있던 블래쉬가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아르갈, 그에게 너무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목숨을 구조받은 것이 첫 번째.
반복되는 습격에서 지켜준 것이 두 번째이며.
부상한 자들을 버리지 않아 그의 친구 미카론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게 세 번째다.
그런 과정에서 어떠한 생색도 내지 않고, 자신을 헌신하면서 제 몸이 망가지더라도 사람들을 지켜냈다.
실로, 아르갈이 또 다른 용사가 아닐까도 싶을 정도로.
그런 빚을 지고 있는 마당에 마지막까지 가서, 아르갈은 목숨을 걸고 상급 마족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은인이 죽을 위기다.
가만히 서 있는 자는 배은망덕한 자이며.
그렇게 놔두어 죽는다면, 평생을 자책할지도 모르기에.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창을 찔러라 아셀!”
마침 가장 나서서 검을 맞았던 라엘리는 마족의 검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찌르기만 하면 된다.
아셀은 그 특유의 동작을 보이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근육을 억지로 움직인다.
소리 없는 무형의 힘이 마족을 감싸던 수험생들을 꿰뚫고 나아가 갑주에 닿는다.
마족이 비명을 지른다.
[그만, 그만두어라!!]
으드득-
강한 힘이 충돌하자 갑주가 부서졌고.
블래쉬는 힘을 잃은 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각오는 했지만, 위치상 그가 찔릴 법한 자리였다.
“...죽, 겠네.”
그는 생각보다 관통상이 엄청나게 아프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후회는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콰아아앙!
[다, 꺼져라!]
“끄아아악!”
“끄어억!”
결국 일격을 맞아버린 마족은 자신을 보호하던 갑주를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고작 잃어버린 건 갑주 하나뿐.
마족을 붙잡고 있던 수험생들도 한계에 다다르고 저 멀리 날아갔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마족이 그들을 잔뜩 비웃었다.
[하, 하하! 이게 마지막인가? 고작 이걸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흑색 갑주는 마족의 부무장일 뿐, 그게 곧 목숨인 건 아니다.
갑주가 부서졌어도, 상급 마족의 강력한 힘과 칼에도 잘 안 베이는 질긴 피부가 남아있었다.
마족을 죽일 수 있는 전력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아셀은 이미 두 번씩이나 일 점 찌르기를 한 마당이니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아있는 건 용사 정도.
어차피 용사가 각성하지 않는 한 마족을 이길 수 없으며, 각성한다면 목적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족은 안심했다.
[하나하나 다 죽여버릴 것이다. 특히 네놈을…?]
다시 아르갈을 죽이려 했던 마족은 이상함을 느낀다.
밝은 빛을 내는 마법진이 주변을 뒤덮는다.
마족이 그 방향을 바라보자, 코피가 흐를 정도로 과도한 연산을 한 프랑이 마법을 발동하고 있었다.
“...절 잊었네요!”
커다란 사슬이 마족을 다시 묶어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족은 몸부림치면서 외친다.
[날 아주 우습게 보는구나! 어차피 죽일 수단도 없으면서 또 묶어버리는가?]
“죽일 수단이 없다?”
여기에 푸른 머리의 소년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의 분위기는 한층 달라졌으니.
뽑아 들었던 검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시련 앞에서 강해지는 건 오직 용사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든 강한 힘을 쥘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여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별이 될 존재.
초월에 이를 수 있는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말…. 도 안된다.]
그 경지가 무엇인지 상급 마족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마나를 검에 감쌀 수 있는 경지.
엑스퍼트.
상급 마족과 엑스퍼트는 비등하다고 취급한다.
그런 비등한 상대를 두고 완연히 묶여 있다면.
상급 마족은 죽을 목숨인 셈이다.
[말, 말도 안 된다! 용사가 이르러야 할 경지를 네가, 네가 어떻게!]
“용사만 강해지는가?”
라인하르트는 검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억지로 끌어올린 경지에 불과하다.”
자신이 지닌 힘이 실로 허상에 가깝다는 건 누구보다도 본인이 알고 있었다.
더 없는 간절함.
저 마족을 죽이겠다는 진심을 품었기에.
라인하르트는 검에 마나를 피워올렸다.
“그렇지만, 널 죽이기에는 충분하지.”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다! 그분의 명을 이렇게…!]
철컹! 철컹!
마족이 푸른색 쇠사슬을 쥐고 흔들었다.
얼마나 힘이 강하면 이조차도 얼마 못 버티고 끊어질 지경.
프랑이 창백한 얼굴을 했다.
[크하하하! 너희 수준으로는 날 붙잡을 수….]
마족은 자신이 이길 줄 알고 비웃음을 지었으나 그것도 잠시.
커다란 검은 색 마법진이 주변을 뒤덮는다.
촤르르르르르-
더 강력하고 끊어질 수 없는 정교한 사슬이 마족을 묶었다.
마족은 이런 상황의 급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마법도 아닌 흑마법이 자신을 대상으로 공격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이건, 도대체 뭐지! 흑마법이, 날 왜 구속하는가?!]
“시끄럽다.”
엑스퍼트의 공격력은 상급 마족의 가죽을 뚫어버리기 충분하다.
라인하르트가 가진 막대한 재능이, 미래에 품고 있던 가능성을 끌고 왔으니.
푸른 빛이 깃든 검이 좌에서 우로 그어졌고.
푸아아아악-!
몸부림치던 마족은 끝내 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무심히 고개를 돌리며.
저 한 편에서 쏟아지는 커다란 마기를 느낀다.
“...넌 도대체.”
저 마기의 주인은 아르갈이었다.
마지막에 마족을 묶었던 흑마법도 마찬가지.
그는 너무나도 궁금하였기에 물었다.
“무엇이냐.”
**
전신을 뒤덮는 마기.
한동안 쓰지 않다가 다시 몸을 뒤덮더니 전능감이 느껴졌다.
내 앞에 쓰러진 라엘리의 배 위로 손을 올렸다.
그렇게 올라간 손을 그녀가 잡는다.
나의 왼손은 단검으로 찌른 흔적으로 인하여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뭐야, 또 상처가 생겼잖아.”
그녀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세져진다.
“이번엔 분명 지켜줬는데.”
“말하지 말아라.”
그녀의 배 속으로 마기가 쏟아졌다.
촘촘하게 설계된 마기는 그녀의 배를 완전히 감쌌으니.
이걸로 그녀가 죽을 일은 없었다.
“뭔, 뭔가 기분이 나쁜 기운이야. 그런데, 편안해.”
“...잠깐 쉬고 있어라.”
“물론이지. 안 그래도 잠이 와서…. 눈 좀 감고, 있을, 게….”
그렇게 기절을 한 라엘리를 마기의 힘으로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던 참에 내 목을 겨누는 검이 있었다.
스릉-
“부디, 흑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그녀는 용사이자 신을 믿는 성직자.
흑마법이란, 무조건 처단해야 할 상대다.
그걸 고려한다면 이유를 듣고 있는 게 더 신기할지도.
“말할 수 없다면.”
“처단…. 할 수는 없고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심문하겠습니다.”
용사의 두 눈과 검이 덜덜 떨렸다.
재발 내가 흑마법사가 아니길 바라고 있는 눈치다.
...뭔가 겉으로 보기에는 살벌한데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흑마법 사용자가 이유조차 못 내놓는다면, 그 즉시 즉결 처형이 용사의 원칙이다.
그걸 한 번 떠봤는데, 검을 움직이기는커녕 저런 식으로 대응하다니, 신뢰도는 확실히 쌓았나 보다.
심문받을 생각은 없으니 제대로 된 변명거리를 꺼냈다.
“이 단검은 흑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제단검, 찌르면 대가를 치르는 대신 강한 힘을 쥐여준다.”
용사는 화들짝 놀라며 검을 거두어갔다.
“정말 그렇다면…!”
“그 대가가 목숨은 아니니 걱정 말고.”
애초에 죽지도 않으니.
용사의 걱정을 쳐내며 라엘리를 결계로 옮겼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으니, 휩쓸린다면 곧장 죽을 수도 있는 그녀부터 빼내려 하는 것이다.
우릴 지켜보고 있는 상급 마족 하나.
그리고 기운을 숨기고 있는 암살자가 하나 있으니.
또 한 번의 충돌을 앞뒀다.
결계 앞에 선다.
예상은 했건만 지금 바라보니 확실히 사령왕의 작품임을 느꼈다.
대마법사가 나의 마법 스승이라면, 사령왕은 나의 흑마법 스승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걸어둔 결계의 수준을 완벽히 통찰하자.
지금 가지고 있는 마기를 전부 동원해서 딱 하나만 빼내는 게 한계임을 알았다.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분석해서, 통로를 뚫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당장이라도 확실하게 그녀의 목숨을 구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몰려들었다.
그래서인지 결계를 뚫으려고 시도함에도, 저 마족들은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뚫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희망을 앞두고 몸부림치라는 의도처럼 보인다.
이 시련과 고난은, 애시당초 여기 숲 내부의 모든 마족을 처치해야만 끝이 났었다.
아니면 용사가 각성하거나.
라엘리의 몸을 커다란 마기가 감싼다.
용사가 곁에서 물었다.
“뭘 하려는 거죠?”
“응급 환자부터 빼내려는 거다.”
아주 작은 구멍이.
오직 라엘리만이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열린다.
나는 계속해서 마기를 쏟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직 의식이 있는가 라엘리?”
그녀는 조금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으, 응. 아직 안 자는 중이야.”
“널 결계 바깥으로 빼낼 생각이다.”
“그래? 우리 모두 다 살아남는 거야?”
고개를 내저었다.
오직 내 판단으로 그녀를 빼낼 뿐이지.
모두가 살아남는 게 확정된 건 아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마기가 주변을 뒤덮었기에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었다.
용사마저도.
그렇기에, 해주는 말이다.
무의미한 희생은 필요 없었으니.
단순히 내가 죽는다고 착각해서 생기는 오해와.
그렇게 착각해서 대신 목숨을 잃을 뻔한 건 이야기가 달랐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안 죽는다 라엘리.”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죽지 않는 불사자다.”
이 두 마디가 무척이나 무겁게도 느껴졌다.
결코 꺼낼 생각 없었던 말을.
그녀로 인하여 꺼내게 되었으니.
내 최대의 약점을.
내놓는다.
“그러니 날 지킬 필요 없다. 라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