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31화 (31/69)

“푸흐흣!”

내 진지한 고백에 라엘리는 웃었다.

웃어 놓고 꿰뚫린 배가 아팠는지 얼굴을 구기고 있었지만.

“...왜 웃나?”

“아니, 아르갈, 세상에 불사자가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여기에 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다.

“재미있는 농담이었어,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매번 내 몸을 던지면서 남을 구하고 그랬잖는가, 죽지 않기에 그러는 거….”

그녀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지만 아르갈, 네가 정말 불사자라도 안 아픈 건 아니잖아.”

“...”

“겉은 바뀐 척하지만, 속은 여전히 유약한 공자님인 건 똑같네.”

두 손으로 꽉 잡는다.

그 감정이 너무나 목이 메고.

무거웠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헌신이 불사자라는 증거로 안 봐.”

“....”

“불사자라고 남을 목숨 걸어서 구하진 않잖아? 그건 그냥 네 성격이야.”

“도대체….”

“누가 봐도 거짓말처럼 보이잖아, 자기 지키려고 목숨 걸지 말라는 거짓말.”

라엘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도 걱정이 가득했다.

“정녕 네가 그렇게 믿고 있더라도, 정말로 죽는다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러니 네 몸을 던지지 마.”

그녀는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안 죽는 것을.

설령 그걸 믿었다가, 만약 정말로 죽는다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론은 죽지 말라는 소리다.

죽어야 의미를 지니는 나에게.

과거에는 불사자라는 이명이 항상 이름 앞에 따라붙었건만.

지금 와서는 사실을 꺼내도 믿지 않는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회귀 전이야 내가 워낙 많이 죽고 되살아났으니, 소문이 쫙 퍼져서 말하면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길 한복판에서 ‘나는 불사자’라고 외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지, 죽지 않는 존재라고 믿겠는가?

과거 대륙을 흔들었던 불사자는 이곳에 없었다.

라엘리를 결계 바깥으로 내보내며 말한다.

“일단, 쉬고 있어라.”

“알겠어…. 난, 자고 있을게….”

그렇게 기절하기 직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죽지 마, 아르갈.”

그 많던 마기를 집어삼킨 결계는 통과시키는 건 단 한 명으로 족하다는 건지 그대로 닫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몸을 지탱하던 마기조차 사라졌기에.

“괜찮습니까?!”

용사가 쓰러지는 날 부축했다.

“아르갈!”

뒤이어 프랑이 달려온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 명 남았구나.

라엘리 네가 원하는 건 들어주지 못하겠다.

불사자로서, 한 번 더 죽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으니.

**

어느 휑한 길에 마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전 만 하더라도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 찼던 도심이, 우울함으로 변모한 지 오래.

그런 도시로 향하는 마차는 많지 않았다.

마차에는 어느 소녀 혼자만이 타고 있었다.

삽시간에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있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뒤지겠네! 진짜.”

베시아는 요양을 덜 하고 아카데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한 원인이 된 아르갈을 욕할 겸.

“미친 거 아냐? 그 몸으로 실기를 보겠다고.”

주교님은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도무지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려 실기 시험을 보고 있는 전원이 흑마법 결계에 가둬져 버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아르갈도 거기에 포함이 된 모양.

아르갈을 모시던 메이드가 자기 주인을 구해달라고, 주교에게 편지까지 보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베시아는 안 좋은 몸을 이끌고 당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주교님이 걱정했지만, 그녀의 의지는 또렷했다.

만약, 죽어서 되돌아온다면 그녀 자신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미친놈, 진짜 미친놈, 돌아오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실기를 보았는지 몰라도, 그런 짓을 한 아르갈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생각한 베시아는 몇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그래, 일단 한 달 동안 방에서 못 벗어나게 만드는 거야.”

거기서 책이나 같이 읽고, 성경도 외우고, 주기도문도 읊어보고, 그러면 좀 얌전해지겠지? 아니, 거기서 헌신을 배우고 다른 사람 구하겠다고 날뛰려나?

그런 망상을 하고 있던 베시아는 곧 아카데미에 도착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 해서 아카데미로 향하지 않았다.

실습 현장이 아카데미에 있는 건 아니니까.

“마부님, 방향을 틀어줘요!”

“알겠습니다. 사제님!”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커다란 마기.

저런 마기로 결계를 만들다니, 베시아도 경악할 만한 규모였다.

분명 초월자가 아니라면 만들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실력이 성녀 급에 이르렀다는 걸 믿기에.

마차가 달려나가니, 결계 인근에 사람이 여럿 모인 인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사제와 성기사부터 시작해서, 교직원으로 보이는 이들, 아카데미의 핵심적인 두뇌를 맡는 교수진, 그리고 가장 권위 있는 옷을 입어 학장으로 보이는 이까지.

그 수 많은 사제가 열심히 결계에 성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주 조금의 변화도 안 보이니 점차 분위기는 초조함에 가까워졌다.

“소드마스터 께서 언제 오신답니까?”

“못 오신다고 하구나, 북부에서 마물이 쏟아진다.”

“젠장, 이런 때에….”

“성녀 후보는 왜 하필 이런 때에 타국에 가 있는지….”

모두가 걱정에 빠져있던 사이에, 베시아는 당당히 결계 부근으로 걸어갔다.

다가오는 베시아를 눈치챈 사제 중 하나가 그녀를 제지하며 말한다.

“자매님이시군요. 혹시 결계를 뚫는 것에 한 손 보태러 오셨다면 별 의미 없는 것이라 말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려 삼 일 밤낮으로 성력을 쏟았는데도 티끌의 차이도 없었으니까요.”

“비켜봐요.”

베시아는 손을 내저으며 결계까지 다가갔다.

그녀를 막았던 사제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검은 빛 결계에 마주한 베시아는 모든 전력을 다하여 성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커다란 빛이.

이 공간을 뒤덮는다.

“이럴 수가….”

“이러한 기적이 가능하다니….”

모두가 감탄하는 엄청난 성력.

이른바, 성녀 급이라 부르는 힘.

근처에 있는 사제는 물론이고, 건너편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던 교직원의 시선까지도 몰려들었다.

이런 초월적인 성력에 결계는 버티지 못했다.

더없이 견고했던 결계가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오오!”

“뚫린다. 저 결계를 돌파할 수 있어!”

하지만 당사자의 얼굴은 점차 구겨졌다.

베시아는 성력을 쏟아부으면서도 이조차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결계는 엄청난 속도로 자가 복구를 했다.

결계를 없애기는커녕, 잠깐 구멍만 뚫는 것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두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을.

아마 성력을 쏟아붓는 걸 멈춘다면 저 구멍은 곧장 메꿔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황급히 말했다.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 한 명! 아무나 빨리 와!”

“무슨 일입니까?”

“잠시 열어둔 틈을 유지할 수 없어요! 당장 진입해야 해요!”

여기에 교수들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후보군을 추렸다.

“학장님이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여기서 가장 강한 분이라면 당연히 학장님이신데.”

“나는 현역 뛴 지 한참 되었네, 예전 같은 실력이 아니야.”

“그럼 누가 가야….”

아무리 수험생들을 구하고 싶더라도,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는 저 내부에 함부로 뛰어들 교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다면 용기라도 낼 텐데, 결계를 뚫은 저 사제와 단둘이라니.

너무 위험하다.

그러던 와중.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가장 먼저 걸어 나간 사람이 있었다.

“내가 들어갈게.”

어느 한 여인이었다.

자기 관리는 전혀 안 되었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옷조차도 어디 골방에서 박혀있다 온 건지 온통 구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외모가 빛바래지 않았다.

풍만한 몸매와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회색의 두 눈.

바라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미모였으니.

그런 그녀를 보고 교수들은 당황했다.

“오필리아 교수….”

“그대가 이 일에?”

사람을 구하러 가겠다는 걸 보고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실례처럼 보이나.

오필리아를 상대로는 그럴 만했다.

자기만의 연구에 관심을 지녀, 실로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신경조차 안 쓸 교수였으니까.

애당초, 여기에 올 거라 기대한 사람도 없었다.

오필리아는 주머니에서 시험지를 꼬깃꼬깃 꺼내 들었다.

그녀가 꺼내든 시험지를 본 교수 중 하나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금방 밝힌다.

“...그건 이번 필기 시험지 아니오? 마법학으로 보이는데, 그대가 출제한 시험이잖소.”

“이 마지막 문제.”

손가락으로 툭툭 시험지를 건들며 그녀는 말했다.

두 눈에 기이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답에 거의 근접한 인간이, 저 안에 있어.”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몰라도 돼.”

오필리아를 몰랐던 이들조차도 그녀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해주는 한마디였다.

저러한 태도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 자는 대체 누굽니까?”

“....성격은 좋지 않지만, 실력은 장담할 수 있소이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신경조차 안 쓰고, 느긋한 걸음으로 베시아에게 다가갔다.

“사제, 네 이름이 뭐지?”

“...베시아에요.”

“그래 베시아, 같이 들어가자고.”

“여기서 당신이 가장 강한 사람인가요?”

베시아의 물음에 오필리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직 탑주였는데 아무래도?”

베시아는 흑탑주의 강함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탑주라는 말은 마법사들의 정점에 있는 강함의 상징이었기에.

하다못해 흑탑주 조차 아르갈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퇴치는커녕 악마에다 목숨을 바쳐 겨우 내쫓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강함에 대해 믿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셋을 세죠.”

쏟아붓는 성력이 멈추는 즉시, 결계의 구멍이 곧장 닫히고 말 것이다.

그 전에 바로 통과해야 했다.

베시아가 숫자를 세며 성력의 세기를 점차 줄여나갔다.

어느 정도 벌어진 빈틈이 삽시간에 좁혀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렇게 두 명은 도약하여 결계 내부로 들어갔고.

아주 짧은 사이에 결계는 완연히 닫혀, 꽁꽁 막혀버리고 만다.

**

“그러니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건지.

주요 인물 프랑, 용사, 검성, 창성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험생의 시선이 끌렸다.

아니 여기서 단검의 비밀을 꺼내라고?

내가 남의 시선 신경 쓰는 인간은 아니라도, 이건 좀 아니잖은가.

그렇지만 무언의 압박감 때문에 안 꺼내기도 뭣했다.

한숨을 쉬며 단검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흑마법을 저들 앞에서 써버렸으니, 변명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내 수명을 바쳐 흑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단검이다.”

프랑이 기겁했다.

“그럼!”

“그거 한 번 찔렀다고 바로 안 죽으니까 걱정….”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수명을 썼다는 건데.”

아, 그게 문제였구나.

프랑은 나의 줄어든 수명을 걱정했다.

용사는 통찰하는 눈으로 나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했다.

그녀는 무언가 음울해 보였다.

“줄어든 생명력을 계산한다면, 40년 정도 될 겁니다. 결코 쓰면 안 되는 극악한 물건….”

걱정이 잔뜩 담긴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아니, 불사자한테 일찍 죽는다는 걱정은 너무 어색한데.

나는 이상하게도 변명을 하고 있었다.

“수명 40년으로 사람 하나 살렸으면 싼 거지.”

“...정녕,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검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수명 40이 고작이라는 내 의견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너무나도 헌신적이구나 아르갈, 다시 생각해 보니, 너와 나는 똑같은 생각을 지닌 게 아니었다. 너는 교회에 가서 성자나, 용사를 할 인간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검성 너마저도 그러기냐.

이러면 어쩔 수 없겠지.

주제를 돌렸다.

“용사,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님을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용사도 확실히 알고 있을 테다.

저 뒤에 또 다른 상급 마족이 있다는 걸.

라엘리와 마찬가지도 프랑 또한 안전하게 결계 바깥으로 빼낼까 고민은 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결계를 뚫어 한 명 살려 보낸 걸 목격한 상급 마족들이, 그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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