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저 결계를 뚫어볼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나조차도 지금 당장 뚫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결계.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물어봤을 뿐.
“...한 번 해보겠습니다.”
용사는 검을 들어 올렸다.
검에 강한 힘이 담긴다.
그리고 결계에 내려찍었건만, 아주 허망하게 검이 튕겨 나갔다.
“이럴 수가.”
마지막 희망이 져버린 것이다.
오직 용사만이 결계를 부숴버릴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으니 그럴 만한 반응이다.
“난, 난 이제 더는 못 버텨.”
“이제 그만….”
수험생들이 희망의 끈을 놓고 무너지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아주 약간 갈라진 틈.
...사령왕의 결계를 파훼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끊임없는 재생 때문이다.
아무리 성력을 쏟아붓건, 물리적인 충격을 주건, 마기를 쏟더라도.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복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사의 일격만큼은 되돌리지 못했다.
예상이 가는 게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완벽히 소멸시킬 수 있는 영멸의 힘을 용사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귀신이건, 언데드이건 용사는 훨씬 더 잘 때려잡았다.
물론, 그 영멸의 힘으로도 날 죽이진 못하더라.
내 불사가 어떻게 되먹은 힘인가 싶긴 한데, 아무튼 저 결계가 복구하지 못하는 이유로 추정됐다.
이 점을 고려해, 용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용사, 잘 봐라.”
“...멀쩡한 결계 아닙니까?”
“아니, 정확히 보면 생겨난 흠집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만약 여러 번 타격 한다면?”
용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막바지에 가장 큰 희망을 되찾아서 그렇다.
이 사실이 다른 수험생들에게 알려졌고, 용사는 다시 강하게 결계를 내려쳤다.
무너지던 이들이 다시 희망을 되찾는다.
“살 수 있다!”
“우린 살아남을 수 있다고!”
결계의 흠집이 점차 틈새가 되어갔고, 그 틈새에서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이 점차 손 하나 통과할 크기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걱정했다.
...과연 이걸, 저들이 가만히 놔두고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켜보고 있던 상급 마족이 움직임을 보였다.
용사의 검격이 점차 급해진다.
그녀도 잘 알고 있다.
끔찍한 악몽이나 다름없는 상급 마족이 또 하나 나타날 것이었으니.
다행히 대응할 방법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나는 검성을 바라본다.
아주 잠깐이라도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걸 목격한지라, 그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싶었다.
내 몸을 너무 혹사한 지 오래라, 단검을 쓰더라도 도중에 급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죽어서 되살아날 수 있더라도, 부활하는 도중에 프랑이 죽고, 수험생이 떼 몰살당하여 용사가 각성해버리면.
무슨 의미가 남겠는가.
나는 최대한 늦게 죽어서 이들이 전부 살아남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내 시선을 느낀 검성은 말했다.
...무언가 이전보다 그의 어투가 친절해졌음을 느낀다.
“무슨 일인가.”
“엑스퍼트의 힘, 다시 쓸 수 있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때 간절히 바랐기에 겨우 끌어낸 힘이었지, 그러한 기적을 다시 불러올 거란 장담은 못 한다.”
그럼 쓸 수 있다는 소리네.
검성은 재능충 중에서 재능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용사보다도 더 재능충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녀석이 확신을 못 한다 해서 상관없다.
어차피 가능하게 만들 거다.
그러나, 나타날 거라 생각했던 상급 마족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무언가 준비를 했다.
“....이건 좀 예상외인데.”
저 뒤에서 응집되는 마기를 느낀다.
...상정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다.
마족 흑마법사가 왜 여기에 있는가.
보통은 마족에게 흑마법을 배울 정도의 지능은 없었다. 마기에서 기인한 광기와 폭력적인 부분이 마족의 지능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 그런 환경 속에서도 흑마법을 배울 정도의 고지능을 타고난 마족이 있었으니.
그런 마족들은 일반적인 흑마법사들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흑마법사는 마기를 얻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하는 반면, 마족은 마기가 자연생성 된다.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이점을 지닌다.
마족이란 한계 때문에 고차원적인 흑마법은 못 쓰더라도, 단순 포격 하나는 그 일대를 날려버릴 수준이다.
설마 상급 마족 중의 하나가 그런 괴물일 줄은 몰랐다.
마왕군에서도 귀히 활용되는 자원을 여기에 쓰다니.
그런 흑마법사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숨어서 흑마법을 전개했다.
고로, 우리는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
상대가 폭탄을 쏠 준비를 하는데,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거다.
게다가 이미 늦었다.
모두가 흩어져서 도망친다 해도, 포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차라리 모두를 모아놓고, 저항할 수 있는 쉴드를 거는 게 나았다.
아직 희망을 놓지 못하고 결계를 부수고 있던 용사를 불렀다.
“용사, 적의 공격을 각오하는 게 낫겠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늦었다. 대비해야지, 다들 준비해라.”
푸욱-!
단검으로 다시 내 손을 찔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진행된 자기희생.
프랑은 경악하며 나한테 달려들었다.
“아르갈, 무슨 짓이에요!”
“그러지 않으면 다 죽는다.”
아셀도 알아차린 듯, 저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렸다.
“저기, 위에서 죽음이, 내려오고 있어.”
차라리 내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다 살리는 게 나았다.
하늘에 검은 점이 보였다.
아까는 마족이 떨어지는 거였다면.
지금은 흑마법 포격이 이곳에 떨어지는 중이었다.
위기를 알아챈 수험생들은 포격 지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그러니 바로 흑마법을 활용한다.
모두가 놀라던 와중에, 흑마법 쉴드가 여기 있는 전원을 뒤덮었다.
나는 검성에게 말했다.
“라인하르트, 너는 아셀을 지켜라.”
“그리하지.”
“용사, 최대한 희생자가 적게 나올 수 있도록 해라.”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 점 찌르기를 두 번씩이나 쓴 아셀을 혼자 두기에는 다소 가혹한 짓이었다.
그러니 검성에게 맡긴다.
두 눈이 가물거렸다.
너무 무리를 많이 한 탓.
원래라면 이쯤 돼서 죽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도 살아있었다.
이번 흑마법을 마지막으로 어떠한 거동도 불가능하겠지.
...마침 곁에 프랑도 있었다.
아마 포격이 터져서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가 흩어져도, 프랑만은 바로 옆에 있겠지.
그녀는 내 몸을 만지며, 거의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울먹거렸다.
“주, 죽는 거 아니죠. 아르갈? 정말 죽는 게 아닌 거죠?”
“안 죽는다.”
입이 텁텁했다.
성대가 잘 열리지 않는다.
지금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도, 어찌 되건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리 슬퍼할 필요 없다 프랑.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남겼다.
“다들 살아있어라.”
여기에 검성이 대답했다.
“...너야말로 살아남거라 아르갈.”
창성이 조용히 웅얼거렸다.
“...죽지 마.”
용사가 이를 악물었다.
“부디, 이번 일을 보답할 수 있게, 살아있어 주시길.”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한 한마디.
저 높이 떨어지던 흑마법이.
그새 하늘을 뒤덮었으니.
그걸 마지막으로 커다란 폭발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포격을 맞고 주변으로 날아갔다.
원래였다면 흔적도 안 남고 증발했겠지만, 흑마법으로 감싼 쉴드가 버티게는 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지 폭발의 여파로 저 멀리 날아가는 건 못 막았다.
그러니까, 수험생 모두가 흩어진 셈.
과연 모두가 버틸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프랑이 날 꽉 껴안았기에 우리 둘은 똑같은 위치로 날아갔다는 점이다.
그래, 마지막에 다가갔다.
내 두 번째 목숨을.
가장 의미 있게 태워버리는 때를, 맞이한 것이다.
**
프랑이 정신을 차렸던 건,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기절할 정도로 아주 커다란 폭발이 터져나갔고, 흑마법 쉴드로 인하여 겨우 살아남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아르갈을 찾았다.
“아르갈, 아르갈! 살아있죠? 살아있는 거죠?”
그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르갈이 하였던 헌신을 지켜보았다.
살아남은 수험생들의 전반적인 관리는 물론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수명의 절반 이상을 갈아서 모두를 구해주었다.
무려 희생된 수명이 80….
그는 여기서 살더라도 곧 죽는다는 소리 아닌가.
그걸 지켜보던 프랑의 심정은 너무나도 벅찼다.
극의를 알고 있는 자가 죽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덤덤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친구를 잃을 거 같아서 그런 걸까.
결코 죽게 놔둘 수 없었다.
다행히 아르갈은 기절해 있더라도 심장은 뛰고 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다, 다행이에요.”
하지만 죽음에 가깝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프랑은 아르갈을 짊어지고, 어서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니 최소한 다른 수험생들과 합류하기 위해 움직였다.
“너무, 가벼워요.”
프랑도 자신이 그렇게까지 힘이 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같은 연령대의 소녀들 평균치 정도였지.
그걸 고려한다면 아르갈은 너무 가벼웠다.
그래,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무거워서 옮기지도 못했으면, 그게 더 문제다.
프랑은 아르갈을 업고선 천천히 숲속을 나아갔다.
용사, 아셀, 라인하르트, 어떤 수험생이라도 좋다.
재발 누구라도 만나서, 아르갈을 도울 수 있길 원한다.
“...극의도 필요 없어요.”
그렇기에 진심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모든 마법사가 원한다는 극의?
아니, 필요 없다.
목적이랄 게 없는 그녀가 허울 없이 쫓아가고 있는 거지.
지금은 목적이 생겼다.
아르갈을 살리고 싶었다.
“살아만, 주세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입이 마르고, 숨이 차기 시작해도 다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느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 언덕 위에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시선을 느꼈다.
프랑은 작게나마 희망을 품었다.
“그래요, 다른 수험생인 거죠?”
그렇게 고개를 들어 저 앞을 바라본 순간.
그녀는 동상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신을 뒤덮은 로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피부인 순수한 검은 색.
그리고, 결코 숨길 수 없는 마기.
[찾았구나.]
방금 포격을 날렸던 흑마법사가 여기에 나타났다.
[그분에 명에 따라, 가장 마법에 재능있는 이를 죽이라 하였다.]
“아아….”
[마침 둘 다 마법에 재능있으니.]
그 마족은 미소를 지었으니.
[둘 다 죽이면 되겠구나.]
프랑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죽는다.
이건 분명 죽는다.
아르갈뿐만이 아니라 프랑 그녀마저도.
“살, 살려줘.”
상급 마족의 위용을 알기에, 그녀는 도저히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힘이 풀린 체,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득한 살기로 인해서 프랑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누가, 도와줬으면.
누구라도 와서, 살려준다면.
[잘 가거라.]
상급 마족이 마기를 모았다.
그녀와 아르갈을 죽일 수 있는 흑마법이 간단하게 전개되니.
검은 구체가 삽시간에 저 둘에게로 날아갔다.
“쉴드!”
그런 와중에도 냉철한 마법사의 이성이 최소한 방비 수단을 이루어지게 했다.
하지만, 상위 마족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는 수준이다.
쉴드는 삽시간에 부서져 버리고, 저 검은 구체가 프랑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인다.
죽기 직전에 본다는 주마등처럼.
프랑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무나, 도와주세요….”
그 말에 울음이 가득 찼으니.
“하다못해….”
더없이 간절했으니.
“아르갈이라도 살아….”
“...그럴 필요 없다.”
파가각-!
그가 뻗은 손이 마족의 흑마법을 산산조각 냈다.
프랑이 그렇게 원했던 도움을.
죽기 직전에 다다른 이가 주었다.
“아르갈! 괜찮은 건….”
프랑은 무언가 이상함을 알았다.
많은 책을 읽고 하다못해 금서까지 뒤져보았던 프랑은, 그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건?”
그의 옆에는 종이 쪼가리로 이루어진, 계약서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허공에 떠올랐다.
프랑은 자기 머릿속의 지식을 뒤지며 저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저건 악마와의 계약서였으니.
“...무엇을 걸고, 악마와 계약을, 하신 건가요?”
“재산을 주었다. 악마는 돈도 받고, 마침 라인하르트가 주었던 수표가 있었으니.”
그렇게 답하니 프랑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재산을 거는 게 가장 안전한 방식의 계약이었으니까.
계약은 목숨부터 시작해서 다른 이의 생명까지 아주 다양한 방면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해 본다면, 아르갈이 제 목숨을 바치고 악마와 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재산은 가장 가치가 낮은 제물이었으니.
재산 하나로 죽어가던 사람을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하기에는, 계약이 성립되기 어려웠다.
프랑은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겠죠.”
정말 목숨을 바쳤다면.
그녀 자신이 버틸 수 없었기에 부정했다.
“아닐 거예요. 정말.”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