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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죽는다니까-34화 (34/69)

이제 정말 끝난 줄만 알았다.

여기서 또 상급 마족이 튀어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저 바깥으로 나간 부상입은 라엘리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 악몽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즐기면서도, 아르갈의 줄어든 수명을 되돌릴 방법을 논하는 미래를 그렸다.

그런데 아니었다.

악몽 위에, 절망 위에.

그 끝에는 죽음이 있었다.

푸우욱-

검은색 커다란 단검이 아르갈의 심장을 꿰뚫었다.

도무지 받아드릴 수 없는 상황.

프랑의 뇌는 잠시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아…?”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게도 천천히 다가온다.

아무리 보더라도 아르갈은 칼에 찔려 죽었다.

힘없이 바닥을 구르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치명상을 넘어섰다.

피의 비릿한 냄새가 콧속에 스며들며 멈춰버린 생각이 점차 돌아가기 시작했다.

창백해 보이는 손이 그녀를 향하며 널브러져 있었고.

가슴에 꿰뚫린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풀잎을 붉게 물들였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는 쓰러져 있었다.

그는 죽었다.

전신을 난도질한 마냥 끔찍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건 슬픔일까.

혹은 분노일까.

아니면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기분일까.

“안 돼요, 안 돼요!!”

프랑은 비명을 질렀다.

온갖 우울과 슬픔이란 감정이 머리를 휘갈긴다.

두 눈에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하여 그녀를 밀치고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두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닿았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갈은 저 마족 옆에 쓰러져 있었다.

[처치 완료.]

마족은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아르갈을 껴안았던 프랑도 단번에 같이 죽이려 했건만, 이에 실패했어도 별 미련 없어 보였다.

좀 더 손을 써서, 똑같이 죽이면 되니까.

[지령에 따라, 목표를 하나 더 처분한다.]

“으으윽!”

마법사의 이성이, 뇌를 뒤흔드는 감정을 집어삼킨다.

결국, 목숨이 위험한 상황.

프랑은 자신의 죽음까지 용납할 수 없었다.

죽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별의 근본을 꽉 쥐었다.

분명 아르갈이 그녀의 몸을 조종했고 기억은 남아있지 않으나, 여실히 남아있는 감각.

그 감각을 활용한다면 분명 이길 수 있었다.

저 증오스러운 마족을 죽일 수 있을 거다!

“반드시, 죽이겠어요.”

[고작, 네가 날?]

암살자는 프랑을 조롱했다.

[저자와 비교하면 발끝에도 못 미치는 네가?]

당연한 말이었다.

극의에 이른 마법사.

그러나 이유는 몰라도 몸에 전혀 마나가 담기지 않은 마법사.

그녀와 아르갈을 비교가 안 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프랑은 해내야만 된다.

저 마족을 죽여서, 아르갈의 희생이 덧없는 희생이 되지 않기 위해 막으려면.

목걸이에 두 손을 올린다.

각오를 다진다.

마나가 증폭되는 순간, 암살자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건지, 빠른 속도로 도약하여 프랑의 앞에 나타났다.

[기회를 줄 것 같은가?]

프랑은 제 몸속에 쌓여가는 폭발적인 마나를 곧장 활용했다.

머리가 타버리다 못해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고통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프랑의 마음보다도 덜 아팠기에.

견디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여태껏 이어왔던 가속 연산보다도 더 빠르게, 더욱 빠르게.

마법을 전개한다.

그녀의 주변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뒤덮인다.

“쉴드!”

촤르르르르-!

얼마나 많은 쉴드를 중첩했으면,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질 지경.

무려 10 중첩, 20 중첩, 30 중첩에 이른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증폭된 마나량과, 가히 천재라 봐도 무방한 재능이 합쳐지자, 그야말로 무식한 수준의 마법이 전개됐다.

암살자의 공격을 충분히 막고도 남았다.

콰가각-!

[의미 없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두 번.

마법사로서 보장되어야 할 절대적인 안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마나가 필요했다.

“으으윽!”

고통스러웠다.

두 배, 네 배, 여덟 배, 열여섯 배.

삽시간에 제곱으로 늘어나는 마나량은 그녀조차 전신이 찢어질 고통이 동반된다.

이 막대한 마나를 단 한 번도 몸이 적응한 적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아르갈은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딘 건가.

아무런 마나 조차 없는 평범한 몸으로, 그 많은 마나를 강제로 품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며 다른 이들을 도왔다.

“아르갈….”

그를 짖어 불렀다.

그녀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으면서, 프랑에게 살아남으라고 말했다.

신체 강화로 전신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그녀를 살려주었다.

이건 헌신조차 아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희생을 하는가.

그의 희생이 점차 와닿으면 와닿을수록, 그녀의 마음이 자신을 괴롭혔으니.

“...죽게 두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더욱 허망한 희망에 목을 매달았다.

그래, 그를 되살릴 거다.

저렇게 쓰러진 소년의 모습이 시체나 다름없어도.

반드시 프랑은 방법을 찾으리라.

초월을 이루건.

신에게 힘을 빌리건.

하다못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살릴 거예요…!”

[누구에게 말하는 건가?]

쾅-! 쾅-! 콰가각!

암살자가 몇 번이고 쉴드를 두드릴 때마다, 중첩된 쉴드가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상급 마족의 힘은 여전히 견고하고 강력하다.

그녀가 장로급이 아닌 이상 대적하기 어려우며.

장로급이라 하여도 안전이 보장되어야, 완벽히 상급 마족을 죽일 수 있는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마법.

이토록 적과 근접한 상태에서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마법.

수없이 많은 마법 책을 뒤져본 그녀는 딱 하나 떠올렸다.

이 숲 전체를 뒤덮은 결계가, 바로 그 증거였으니.

“차원 결계.”

코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가 증폭한 마력 전부를 쏟아서 결계를 형성한다.

결코 뚫을 수 없는 결계.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를 이미 보았기에, 방식이나 구조를 따라하기만 하면 됐다.

위이이이이잉-!

그녀의 중심으로부터 정교한 수식이 퍼져나갔다.

차원을 나누는 결계이기에, 정말로 엄청난 피로도가 소모되었다.

그러나 쓰러질 수 없었다.

아니, 쓰러지지 않겠다.

“으으으으윽!”

그런데도, 그녀의 각오하고는 다르게 결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마법사가 쓸 수 없는 수준이 다른 힘.

결국 프랑의 경지가 부족하다는 것에서 발목을 잡는다.

쉴드는 저 암살자로 인하여 점차 무너지고 있었고, 차라리 욕심을 버리고 다시 쉴드를 만드는 게 더 나을지 고민을 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러면 이길 수 없었다.

상급 마족의 위험에서 온전히 벗어나야, 마족을 죽일 힘을 쏟을 수 있기에.

그럼 한계를 뚫으면 된다.

아주 잠시라도.

그녀가 지닌 가능성을 빌려온다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프랑은 잠시 머리가 녹다 못해 깨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그 고통도 기꺼이 감내하며 억지로라도 결계를 완성했다.

우우웅-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건 그녀만을 뒤덮는 아주 작은 공간.

단번에 오를 수 없는 경지를 억지로 찢어서 끌어왔다.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걸 알기에.

프랑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건 대체?]

마족도 이상함을 느낀 건지, 그녀를 뒤덮은 하나의 막을 유심히 살폈다.

거기엔 반투명한 막 하나만이 있었다.

마족이 무심히 단검을 휘둘렀으나.

쿠웅!

오히려 단검이 튕겨 나갔다.

[뭐라?]

“...이제 제가 공격할 차례에요.”

프랑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찢어지도록 고통스러웠으나.

아르갈을 죽인 마족에게 반격할 수 있기에.

잠시나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거기서 죽어요.”

다시금 마나 증폭이 이루어진다.

결계는 프랑의 의도에 따라 주변을 뒤덮고 있다가, 좁은 틈을 열어서 그녀의 손에서 쏟아지는 빛을 투과시켰다.

그것이 마족을 사격했다.

**

쓰러진 내 몸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죽지는 않았다.

아직은.

이런 치명상에도 아직 죽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뚜렷하지 않은 시야 앞에서 보이는 계약서.

침묵의 악마와 이루어진 계약을 나는 천천히 읽었다.

...아주 잠깐만 죽음을 유예한다.

그 시간은 30분.

여기에 바칠 만한 대가는 거의 없었다.

목숨은 이미 한 번 썼다.

다시 죽고 되살아나야 새로 생긴 목숨을 쓸 수 있는 거지, 이미 악마에게 저당 잡힌 목숨을 또 걸 수는 없었다.

고로 내가 제물로 활용한 건, 가우디움의 창고에서 털어온 각종 흑마법 유물들.

잠깐이나마 죽음을 유예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왜 죽음을 유예했는가.

고민하기 위해서다.

...대악마와의 계약을 말이다.

그 계약의 내용은 치명적일 정도의 유혹이니.

회귀 전 대악마는 나에게 세 가지의 힘을 약속했다.

첫 번째로, 죽으면 즉시 부활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그 횟수는 하루에 열 번으로 한정한다.

세 번째로, 봉인, 구속을 당하면 내가 원할 때 대악마는 날 죽이고 다른 곳에서 부활시켜 준다.

이 불안정한 불사자에게 무척이나 필요한 힘.

오직 그 악마만 유일하게 제시한 강력한 힘.

계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악마가 나에게 요구한 건.

소중한 이들을 죽이는 것.

그렇기에 불사임을 밝히지 않았다.

만약 마왕이 이 사실을 알고 날 봉인하고자 한다면, 대악마와 계약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는 한 봉인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또다시 가족을 죽여야만 하는.

그런 선택을 도무지 할 수 없어서.

아직도 망설이고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너무나도 끔찍한 저울질이다.

대악마와 계약하여, 프랑을 살리고, 그러한 도살을 반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안존을 택하여 프랑이 죽도록 놔둬야 할지.

...그래서 프랑을 믿었다.

죽음을 유예하며 그녀의 가능성을 지켜본다.

별의 근본으로 부디, 마족을 죽이길 기대하며.

전신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느끼며.

나는 천천히.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

[내가 맨몸으로 여기에 왔는 줄 아는가?]

마족을 뒤덮고 있던 갑주가 드러났다.

아까 흑마법사와는 다르게, 암살자는 흑색 갑주를 입고 온 것이다.

“예상은 했어요! 갑옷이 있으면, 뚫어버리면 될 일!”

그러나 프랑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더 강력한 마법의 포격이.

마족을 향하여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크윽!]

완벽한 안전을 얻은 마법사는.

전장에서 최강의 힘을 발휘한다.

프랑은 제 결계만을 믿고서 마족에게 융단 포격을 했다.

콰아아아아앙!

[젠장!]

아무리 갑주가 있더라도, 저런 말도 안 되는 포격을 버틸 수 있지 않았다.

암살자의 특기를 살려서 어디론가 숨어들었어도, 귀신같이 프랑은 마족의 흔적을 찾아서 그곳을 포격했다.

“어딜, 도망가려고요?”

마족에 대한 증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기에.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무조건 저 마족을 죽이고, 아르갈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만이 프랑을 지배했다.

[크으윽!]

포격의 연속에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마족의 모습은 처참했다.

몇 번만 더 마법을 쏟는다면 마족은 아마 죽음에 맞이하리다.

그러나 마족은 프랑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우연히도, 어느 한 위치만이 마법 공격이 쏟아지지 않았다는 걸 보았기에.

결계 속에 숨어서 안전을 확보한 프랑이라 할지라도, 아르갈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장할 수 없었다.

마족은 아르갈을 붙잡고 협박했다.

[날 보내주지 않으면, 이 자의 몸을 난도질하겠다.]

“안 돼!”

프랑의 지식으로는 죽은 이를 부활시키려면 몸체가 온전해야만 했다.

아르갈을 건든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

프랑은 마법 공격을 멈춰야만 했다.

마족은 아르갈을 붙잡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자마자, 도망치기 위해서다.

[오늘 일을 그분께 반드시 전달해야겠군, 말도 안 되는 변수가 생겼….]

그러던 와중에.

숨 막히는 살기가 마족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과연 그게 될까?”

[언제 내 뒤로…!]

마족 뒤에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있으니.

마족이 보았던 건.

손가락을 튕기는 어느 한 여성이었다.

딱-

푸아악!

그걸로.

마족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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