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35화 (35/69)

프랑은 마족이 죽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아르갈에게 달려들었다.

최대한 마법으로 그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르갈에게 도달하자, 이상한 점을 느꼈다.

“살아, 있어요?”

분명 심장이 꿰뚫렸을 텐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도, 아르갈은 아직 죽지 않았다.

혈색이 온전했으며, 반으로 갈라진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런 모순적인 부분을 오필리아가 설명했다.

“대단한 녀석이네, 아주 잠시나마 죽음을 미루려고 악마와 계약을 한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던 건가?”

“그럼 안 죽은 게 맞는 거죠!”

프랑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과 죽기 직전에서 살리는 것의 난이도는 현격히 달랐으니.

한참은 무너졌던 프랑은 희망을 되찾은 것이다.

음울했던 그녀가 다시 활력을 얻었다.

그래, 너무나도 기쁜 것이다.

날 위해 죽은 이가 아직 안 죽었다는 것에서 오는 말초적인 행복.

그러나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분명 죽음을 ‘유예’한 것이기에 아르갈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신체를 치료해야만, 죽어가는 몸을 되살릴 수 있었다.

오필리아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기운은 넘쳐, 근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란 말이지.”

“당신이 도와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아까 마족을 단번에 죽이는 걸 보았을 때, 평범하신 분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내가 도울 문제는 아니야, 마법으로 망가진 신체를 복구할 힘은 한정적이고…. 차라리 악마 계약 관련된 부분은 내가 돕고, 치료는 저쪽 사제가 하는 게 맞지.”

“...사제요?”

프랑은 사제라는 말에 눈을 깜빡이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암만 보더라도 사제는 안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눈이 부실 정도의 성력을 신체에 쏟아붓고선 여기까지 달려오는 소녀가 있었으니.

유난히 깡마른 체형이지만, 살집이 올라오면 분명 미인이 될 법한 인상의 사제는 아르갈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 미, 미친, 정말 미쳤어!”

베시아는 곧장 달려들어서 힐을 퍼붓기 시작했다.

얼마나 치유량이 대단하냐면, 쪼개진 심장을 간신히 얼기설기 붙여만 놓은 악마의 힘을 뛰어넘어서 곧장 원상복구를 해 버렸다.

그렇지만 베시아가 받은 충격이 사라졌던 건 아니다.

단검으로 후벼파져 있는 왼손의 상처.

그걸 볼 때마다 베시아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떤 무리를 했는지 몰라도, 전신의 미세 혈관이 하나하나 다 터져있었고, 관절조차 망가져서 사실상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몸이다.

살아있으니 참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울음기가 올라오는 걸 최대한 참은 베시아는 눈에 맺히고 있던 물기를 쓱 닦으며 천천히 상황을 파악했다.

“몇 번 찔렀어?”

“...네?”

“단검으로 몇 번 찔렀냐고.”

프랑도 조금은 음울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아르갈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긴 했어도, 결국 수명을 다 써버렸으니까.

써버린 수명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다.

“두…. 번 정도 찔렀어요.”

“그게 정말이야?”

“네…. 그렇지만! 다른 분들과 함께 아르갈의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으면!”

“...그건 이미 썼어.”

“썼다고요?”

베시아의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향했으니.

그건 바로 프랑이 차고 있는 별의 근본이었다.

베시아는 이빨을 으득 하고 갈았다.

그건 네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다.

남의 생명줄을 함부로 가지고 있는가? 도대체 왜.

“네가, 왜 그걸 들고 있어?”

“...이거요? 아르갈이 저한테 준 거예요. 잠시 빌렸을 뿐이라고요.”

“그건 빌리거나 할 물건이 아니야, 남의 생명줄을 어떻게 함부로 넘길 수 있어?”

“생명줄이라고요?”

베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러는 당신은 누구인데요.”

“이 녀석을 한 번 되살렸던 사람.”

프랑은 아연실색한 얼굴을 했다.

“한 번 되살렸다고요?”

“그래.”

사람은 살리는 건 역사상 성녀만 가능한 일.

그것이 정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베시아가 품은 분위기나 감정은 확고함에 가까웠다.

그래, 아르갈을 되살렸다는 건 믿겠다.

여기서 파생되는 의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르갈은 예전에 왜 죽었으며.

저 사제는 저런 극단적인 감정을 보이는가.

게다가 생명줄이라니?

프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 목걸이가 생명줄인가요?”

“아르갈은 이미 몇 번 단검을 썼어, 수명을 다 썼기에 죽을 위기에 처했고, 줄어든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 목걸이를 대신 준 거야, 그러니 생명줄이지.”

“정말, 그런가요?”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프랑은 다시금 괴로웠다.

이미 수명을 다 쓰고도, 목걸이를 벗어 던지면 죽을 수도 있는 몸으로, 또 단검을 찔렀다는 것 아닌가.

그래놓고 그녀에게 목걸이를 주었으니.

프랑은 이러한 헌신에 어찌 보답을 해야 할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희망을 얻었다.

줄어든 수명을 채울 방법이 있다는 소리니까.

목걸이와 같은 물건을 또 찾는다면, 되돌릴 수 있을 거다.

프랑은 미련 없이 목걸이를 풀며 다시 아르갈에게 채워주었다.

베시아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지만, 프랑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목숨줄이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갔다면, 그 사람에게 주는 시선이 좋을 수 없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베시아의 치유로 인하여 아르갈의 안색이 많이 나아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불안한 게 많았다.

악마와의 계약.

거기에 무엇을 바친 건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이유로 한 번 죽었고, 저 사제와 무슨 관계인지.

“그러니까 부디 살아만 줘요.”

프랑은 그렇게 원했다.

아르갈이 살아만 남기를.

프랑이 몇 가지 말을 전하는 걸 들은 베시아도 아르갈에게 말했다.

“넌 진짜, 정말로 뒤졌어, 한 달은 방에서 가둬놓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 말에 프랑은 무언가 등 뒤에 소름이 듣는 기분이었다.

아르갈, 저 여자에게 집착 받고 있나요…?

그러며 프랑은 생각했다.

한 달은 과하고, 이 주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추측하기론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다니는 아르갈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감금이라는 수단이 적절하다고 판단을 한 프랑이다.

실로 베시아나 프랑이나 둘의 생각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

사실 이건 예상외였다.

내가 죽음을 유예한 건, 대악마와의 계약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지 고민을 하기 위함이지, 베시아에 의해서 치료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넌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냐.

저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고…?

확실히 성녀급 사제는 다르긴 달랐다.

사령왕의 결계를 뚫고 들어가다니.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 목숨은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악마에게 이미 목숨을 대가로 건네었기에, 이전처럼 바로 죽는 건 아니더라도, 잠시 후에 악마는 내 생명을 앗아갈 것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고 부활하는 게 낫겠지.

이렇게까지 혹사한 신체를 그대로 쓰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았다.

정말 베시아가 말한 한 달 동안은 감금되는 게 아니라 거동을 할 수 없어서 방 안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런 여유는 없으니, 악마에 의하여 죽는 게 나았다.

...근데 죽었다간 저 두 여자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지.

죽어서 부활하는 시간은 단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몇 시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날 한 달 동안 가둬놓겠다는 베시아의 집착이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프랑, 너는 왜 베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냐….

“이제 슬슬 말을 꺼내야겠네.”

게다가 대마법사…. 아니 지금은 교수이니 교수라 부르자.

오필리아 교수가 여기에 있었다.

예상은 했건만, 정말로 여기서 교수 일을 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면, 한창 극의 연구에 대해서 열중하던 교수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섰다는 거다.

자기 외에는 신경도 안 쓰는 인간임을 알기에 그렇다.

흥미 위주, 호기심 위주.

관심을 지니지 않는 영역에는 매정하다 못해 신경조차 안 쓴다.

검성, 창성급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용사파티에 악영향을 미쳤던 게 교수였다.

용사파티가 서로 싸우건, 무너지건 관심조차 안 지니고 불사자인 나랑 잡담이나 떨었으니.

그래도 나한테는 좋은 인식이 많은 이유야, 그녀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어서일지도 모른다.

극의를 알게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 많은 도움이 됐으니까.

그녀는 시험지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그래서 아르갈이 너야?”

프랑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네?”

베시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성질이 좋은 편이 아니었던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교수에게 반말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니, 누가 봐도 아르갈은 이 녀석이잖아!”

“정말?”

“아르갈은 애초에 남자 이름이잖아요. 저는 프랑이라고요.”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나 한 줌 없는 애가 극의에 근접한 답을 내놓았다고?”

그 시험 출제를 네가 했던 거였나.

확실히 극의를 물어보는 시험에서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시험이 아무리 어려워도 최소한 풀 수는 있어야 하는데, 초월자만 풀 수 있는 극의를 묻는 건 출제자 본인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놓은 것이다.

그런 기행이야 오필리아 교수만이 가능한 짓.

전직 탑주이자, 현시점 최강의 마법사이니 별의별 이상한 문제를 내더라도 딱히 태클을 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그 문제를 풀어버린 거고.

사실 완전히 푼 건 아니다. 극의에 대한 정답을 내놓는다는 건, 곧 초월자란 소리인데 그건 아니다 보니, 적당히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게 교수의 관심을 끌어버린 모양이다.

“음, 이러면 정말 죽게 놔둘 순 없는데.”

“이 정도로 치료했으면 안 죽잖아요.”

“지금이야 안 죽지, 근데 계약 때문에 목숨이 저당잡혔잖아.”

악마의 계약에서도 꽤 빠삭한 지식을 자랑하는 게 교수다.

베시아는 여기에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거의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교수에게 되물었다.

“내,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니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까? 이 녀석은 제 목숨을 내놓는 대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활력과 마기를 얻었어, 그 뒤로는 몇 가지 유물을 바쳐서 잠시 목숨을 유예했고, 남은 시간을 본다면, 아르갈은 얼마 안 지나 죽는다는 소리.”

분위기가 무거워지다 못해 바닥으로 훅 꺼져버렸다.

프랑의 두 눈동자가 벌벌 떨려왔고, 치유를 쏟아붓고 있던 베시아의 얼굴이 한없이 망가졌다.

“...또.”

베시아는 그 당시의 끔찍한 심정이 되살아났는지, 두 손이 덜덜 떨렸다.

“또야?”

그녀는 눈물까지 흘렸다.

내가 죽지 않았으니 참았던 그녀가, 죽는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때 겨우 되살렸는데 또다시?”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려던 베시아, 그리고 멘탈이 무너지려는 프랑.

이러니 함부로 죽을 수가 없다.

아니면 차라리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저 둘이 내가 불사라는 걸 믿기는 하겠나.

...차라리 이게 더 편할지 모르겠다.

지금 죽고 부활하여, 확실한 불사자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

밝힐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도, 괜찮겠지.

프랑과 베시아는 믿을 만하고, 교수 또한 불사자라는 사실을 악용할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교수가 헛웃음을 짓는다.

“내가 말했잖아, 죽게 놔둘 수 없다고.”

“네…. 에?”

“악마의 계약은 변경할 여지가 많아.”

그녀가 손가락을 쓱쓱 휘젓자 나와 계약했던 악마를 불러들였다.

입에 붕대를 감싼 악마가 나타났다.

“사람 목숨값이 비싸기야 하다만, 적당한 대가를 지급할 수 있다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지.”

“...적당한 대가가 어느 정도죠?”

“그건 내가 감당할게, 그 대신 극의에 관해서 물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교수는 극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대가를 대신 지불하겠다는 태도를 지녔다.

아니, 근데 불사자한테 가장 무의미한 목숨을 살려주고, 가장 비싼걸 받아 가겠다고?

이거, 사기 계약이다.

그만두라니까.

하지만 쓰러져 있는 이는 말이 없는 법.

그녀가 계약을 취소할 때까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있긴 했다.

교수가 주는 대가까지 내가 다 가져가는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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